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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가 감명 깊게 봤다고 추천했던 영화였는데, 개봉관이 없어 보지 못했다.

영화 관련 유튜버들이 2024년 결산에서 꽤 많이 언급했던 영화였다.

 

첫 느낌은 이런 영화는 인생의 끝에 도달할 즈음의 세월 내공이 없는 사람이 각본을 쓰거나, 연출을 하거나, 연기해서는 그 맛을 만들지도 실리지도 못했을 거라는 점이다. 

 

<파리,텍사스, Paris,Texas,1984년>의 빔 벤더스(Wim Wenders, 1945년 ~) 각본이자 감독

 <쉘 위 댄스, Shall we ダンス? , 1996년>의 야쿠쇼 코지(Yakusho Koji, 1956년 ~) 주연

조카역을 맡은 <아리사 나카노>의 귀여운 모습도 좋았다. 특히 중고 책방의 주인역의 <이누야마 이누코>의 배역이 마음에 든다. 어떤 책이라도 한 줄로 가치를 요약하는 고수의 경험과 통찰..

아리사 나카노(2005년 ~)

 

이 정도의 결합이어야 이런 블랙홀 같이 무겁지만 약수물 같이 아무 맛이 없는 밋밋한 명작을 만들 수 있겠구나 싶다.

특히 <파리/텍사스>에서 보여 준 천연색 화려한 쓸쓸한 색감각이 완전히  빠진 녹색과 청색, 흑백의 잔잔한 찬란함 만을 보여준 빔 벤더스 감독....

역시나 천재는 세월을 그냥 보내지는 않는거구나 싶었다. 거장이란 이런 사람을 말하는 거구나 느겼다. 

 

영화 전체적은 느낌은 밋밋하고 지루했다. 딱히 클라이맥스도 없고, 특별한 이벤트나 극적 서사도 없다.

왜 그러한가?라는 친절한 원인이나 인물이나 상황에 대해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설명도, 미장센도 없다.

아마 내가 10~20대에 봤다면 아마 (심리적으로는) 환불을 요구했을 성 싶은 영화였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 재미라는 맛은 없지만 참으로 묵묵하게 감동적인 영화였다.

 

예전에 어느 수행자께서  "도인이 세상살이 한다면 그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The World's Fastest Indian, 2005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Memories Of Matsuko, 2007년>,을 보명 알 수 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영화를 보고,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겠다 싶었다.

 

이 영화를 그런 류의 또 다른 영화라고 봤다. 세상에 마음을 놓은, 마음을 세상에 놓은 도인은 아마도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아니 꼭 도인이 아니어도 평균 이상의 인간은 이렇게 세월을 살면서 늙어 갈 것이다. 그래야 한다. 

 

드라마 스토리가 왜 다 저리 극단적이냐고하면 집사람은 "우리 삶을 그냥 보여주면, 누가 보겠는냐?"라고 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보여 줬다. 너와 나, 우리의 아주 작고 변화 없는 일상도 이렇게 '완벽한 날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실제로 우리의 삶은 이러한 날들로 매일 매순간이 채워져 있다는 것을.....

실제 신이 있다면 신에 그 피조물을 보는 영화는 바로 이런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앞으로 몇 번은 볼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아주 밋밋한 영화....

 

대체로 전문가들이 보는 바도 비슷한 것 같다.

 

다른 모든 순간과 비슷하게 보이는 단 하나의 순간들로 일렁이는 온전한 나날들이동진 (★★★★)
삶은 곧 수행. 그러니 적절한 여백을 즐길 줄 아는 태도로 - 조현나 (★★★☆)

 

마지막 장면에서 당신은 야쿠쇼 코지와 똑같은 표정을 따라 지으면서 이 장면을 끝내지 말아 달라고 스크린을 향해 몇 번이고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정성일

 
기억에 남긴 장면과 대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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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거나, 혼자 있다가 뜬금없이 웃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적어도 5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생을 살아 왔고,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밥벌이를 하는, 홀로 사는 남자가

그것도 혼자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은...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영화 소개글에서 "당신의 하루는 어떤 기쁨으로 채워져 있는가?" 라고 묻는 글을 봤다.

글쎄... 이 분이 기쁨으로 채워져서 웃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웃거나, 작은 무엇으로 인해 웃는 것 같다. 

햇볕, 바람에 날리는 나무, 책 한 줄의 글귀, 노래 한 소절의 감성....등 등...

 

그래서 이 분이 놀라운 분이라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 그저 잠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놀랍게 강한 사람이다. 무서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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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중심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화려한 언변이 초식이 날라다는 영화가 아니기에 기억나는 대사는 별로 없다.

그러나 이 대사만큼은 마음에 남았다.

 

단골 선술집 주인은 <이시카와 사유리, 1958년 ~ >님의 한 마디...

 

"왜 이대로 있을 수 없는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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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좌파와 우파만 있거나, 탄핵찬성과 탄핵반대만 있거나, 자유무역이나 보호무역만 있는 건 아닐텐데...

국민학교 때부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반공/반일> , <친자유/친미>적인 교육을 암암리 받은 나도 이분법으로만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강한 것 같다..

 

세상은 아마 양자역학이 말해 주는 것처럼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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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사를 듣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1945년생인 빔 벤더스 감독은 나와는 대강 한 세대 차이가 나는 분이다. 

이런 각본은 그런 시절을 살아 내 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

이 분도 거쳐 갔구나 그런 세월을.....나는 지금 거쳐 가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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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블루스 싱어송라이터인 니나 시몬(Nina Simone, 1933 ~ 2003년)의 <Feeling Good>을 들으며 아무 말없이 웃면서 울고, 울면서 우는 장면...

 

압축적으로 우리 삶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그것도 투자 대비 성과를 내야 하는 영화 비즈니스 산업계에서...

 

말없이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연출자, 또 그것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 흔치 않을 듯 하다. 

 

https://youtu.be/2tpYCMkMjlo?si=jTC6npDYlPJSC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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