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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환기 감독이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이었던 정치인 김대중의 일대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작이라고 한다.
 
1924년생이신 김대중대통령의 청년 창업가 시절부터  1987년 9월 광주·목포 방문까지의 일대기를 담았으며 총 3부작 중 1부작이라고 한다. 
 
내가 TV를 통해 본 기억이 있는 대통령은 전두환(1980년 ~ 1988년)씨 부터다.
윤보선, 박정희 대통령은 동네에 TV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볼 수가 없었거나, 봤더라도 그 시절에 통치자를 기억할 필요가 없었을 나이이기 때문에 기억이 없는 것이리라..
 
다만 어릴 때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단체로 가서 묵념을 한 기억이 있는데 아마 박정희대통령 국장이 아닐까 싶다.박정희 대통령 장례식은 1979년 11월 3일 시작하여 9일 동안 열렸다고 하니, 국민학교에서 학생들을 이끌고 단체 조문을 갔던 모양이고 그 어린 시절 기억의 파편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대통령 선거를 참여한 것은 김영삼대통령(1993년 ~ 1998년)부터다. 
1998년 ~ 2003년 재임하셨던 15대 김대중대통령 이 분의 '벤처기업 육성 정책' 덕분에 그나마 IMF시절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1970년대에 경기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내가 이 분에 대하여 더 잘 아는 바는 크게 없었다.  

이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빨갱이’, ‘독한 전라도 사람들의 선생님’, ’양김‘ 등 여러 부정적(?) 형용사로 일컬어 지는 정도 였지만 나도 투표를 한 분이었다. 이런 인품과 실력임을 알아서가 아니고 상대 후보들 보다는 낫다고 생각 때문이었다. (15대 대선 후보: 이회창/김대중/이인제)
 
이 영화는 영화 추천 팟캐스트에서 2024년 기억에 남는 다큐멘터리로 언급을 했기에, 찾아 보았다.
취침 전에 보다 잘 생각이었으나 중간에 멈추지 못했고 새벽까지 완청하고 뒤척이다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그렇데 똑 까놓고 대들어 본다면 우리는 실제로 누군가에 삶에 대해서 그렇게 잘아는 바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자연스럽긴 했지만 이 분에 대해서 기본적인 사항도 모르고 있었구나, 아니 내가 아는 것 이상 큰 인물이구라는 배움과 울림이 있었다.

역시 우리 각자는 자신이 지닌 상식이 평균 이하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보/지식 습득의 자세란 것이 또 한 번 증명되었다.

'이 만한 거인이 우리 시대에 계셨구나'라는 교훈과 어떤 영화보다 재미와 감동이 있었다.
 
내 전공과 돈벌이에 관련 있는 리더십을 배운다고 스티브 잡스의 삶이나 전략이론을 배운다고 BC 6세기에 사람인  손자나 조지 마셜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 많이 읽었다.
정작 우리시대에 호흡을 같이 하면서 우리 나라의 문제와 미래를 고민하고 행동했던 지도자에 대해서는 너무나 아는 것이 빈약했구나라는 죄송함이 내내 남았다. 

이렇게 이 분들이 치열하게 살고 쟁취해 낸 자유로운
환경적 성과를 누리고 살면서 그 고마움을 모르고 남같이 스쳐 지나갔구나 라는 죄송함이 남았다.  

 
10대 시절인 1997년 누나가 사서 읽은 소설 <단> 읽은 후 감동하여  <원효>, <서경덕>, <이황>, <정제두>, <정약용>, <동학>, <정역> 등 한국사상, 한국철학에 잠시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기는 했다. 그러다  <천부경> <환단고기> 등이 너무 비논리/비상식을 넘어 국수주의로 가는 거 아닌가 싶어서 이 분야에 눈길을 놓았다. 

상품이나 서비스처럼 인물도 국산은 웬지 없어 보이고, 싸보인다는 일종의 '사대주의'에 내 정신도 무의식적으로 쩔어 있었던 것이리라...
 
한 사람을 표현할 때 '우리 곁에 왔던 부처", "우리 곁에 왔던 성자'이라는 형용사 표현이 있다. 
종교인들이 어떤 특정한 종교인을 존경하는 마음에 붙여 주는 형용사일 것이다.
 
그래도 이런 존경의 형용사를 받을 정도의 삶을 살았다고, 그 종교인이 아닌 사람도 인정할 만한 분들은 손에 꼽힌다.
우리 시대 분으로 내가 읽어 알고, 인정이 될 만한 분은 성철스님(1912 ~ 1993년)과 김수환추기경(1922 ~ 2009년) 정도였다. 영화를 다 본 후에 '우리 곁에 왔던 정치인''으로 충분히 인정될 만한 삶이 아니신가 싶다. 

 
아래 처럼 동의가 안되게 이런 과한 형용사를 쓴 경우도 있긴 있다. 격이 안됨에도 과장되고 과도한 형용사는 사람과 책을 망친다. 

 
이런 형용사를 쓰는 것보다 아래와 같이 그전 담백하게 그냥 서술 형용사를 적합하게 사용하면 되는 것일텐데...

기억에 특히 남는 대사와 장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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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나, 내란 폭동 등으로 대수의 사람이 죽는 모습, 본인이 죽을 수도 있었던 경험을 가진 사람과..
이런 것을 역사로 글로 배운 나 같은 사람과는 오감으로 인식되는 체험의 질이 다르리라고 본다.
 
따라서 "당신은 왜 총칼에 저항하지 못했는가?"라고 따지는 나같은 책상론자들은 이런 분들을 비판할 때 조심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왜 불의와 비리에 저항하지 못했나?"라 따지기 전에 (비판하는 나) 당신도 창신개명하라면 바로 창신개명하러  달려 갈 그냥 일반인, 바람보다 먼저 눞는 풀 중의 하나인 우매한 대중일 확률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지금 내 앞에 총칼이 없어서 당당한 모습을, 총칼이 없어서 비겁한 모습을 했던 분들의 삶의 폄하하는 잣대로 사용한다면 그것만큼 체험 없는 오만한 자기당착이 없는 것이리라.....
 
죽음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과 죽음의 냄새를 맡아본 사람과, 그 죽음의 기록을 본 사람과는 천지차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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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직이든, 어느 역사든, 어느 인물이든...
권력을 획득하고 강화하고 유지하며 지속하려는 지도자와 집단은 똑같은 것 같다.
이렇게 하면서도 자신의 정당성을 한 푼도 의심하거나 미안해 허거나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은 두꺼움, 뻔뻔함이 있어야 한드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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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어렴풋이 나도 배운 점이 있다.
"사람은 온전히 믿지 말고, 말만을 완전히 믿지 말자." , "사람과 언어는 행동과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다"라는 점..
누가 말했으니 그 말이/행동이 전부 다 맏을 것이라는 절대적 신뢰는 맹신이다.
말은 아름답고, 멋지고, 옳은 말이지만  '말'만이 '말'이 많다.
김대중 대통령, 삼성스님의 말씀처럼 '행동하는 양심'.....이것도 비슷한 느낌이리라..
자신의 믿음과 말을 자신의 행동과 삶으로 증명하려는 노력.....
 
삼성스님(1941~2004) ..."내 도력은 양심에서 나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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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부터 회사라는 조직에만 있어본 나는, 회사의 리더들은 '돈'을 번다는 목적과 목표,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관점/방향/계획 등이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경지에 이르기 전에는 시류에 따라가고 편승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런 경지에 이른 리더는 아마 손에 꼽을 것이다. 거의 30년 회사 생활에서 거의 기억이 나는 분은 없다. 자신만의 회사 조직 운영 철학과 방향/방법을 가지고 있는 분은 아주 희귀하다.
 
2024년 현재이도 어떤 정치인도 이런 자신만의 관점과 생각을 정리하여 전달하는 사람을 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1960년 ~ 1970년대 이미 이런 생각을 하신 분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시대를 앞서 간다는 것이 이런 분을 말하는 것이구나.
 
이 분은 1960년대 부터 정치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셨고 그런 지식을 갖고자 노력했고, 가지신 분이었구나라는 선지자에 대한 감동과 존경이 생겼다. 이 정도면 이 분은 정치가 이면서/사상가/철학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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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큼의 대중 동원력을 모을 수 있는 대중 연설가, 정치인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시대 상황이나 사회적 배경, 민중의 관심도가 지금과는 달라서 이런 대중 동원력이 생겨 났을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정도의 팬덤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자연인 그 사람의 매력도,호감도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파급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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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24일.
이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과 본 후에 내가 내린 생각은...
그 전에 내가 본 김대중이란 분은 그저 15대 대통령, 상대적으로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서는 비교 우위에 있던 통치자였다.
이후에 내가 본 김대중이란 분은 이 수준을 넘어 한 분의 사상가이자 철학자로 보였다.
'고민하는, 공부하는, 정리하는, 믿음을 가진, 행동하는, 연설하는, 실천하는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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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나 온 "국민의 개돼지라는"말을 그 말 그대로가 아닌 다른 목적에서 나는 좋아한다.
내가 그저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개돼지"가 아닌가? 나는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자각을 하기 위해서, 스스로 묻기 위해서 저 선언을 좋아한다. 
미디어가 그대로 주입하는 대로, 남이 나에게 알려주고 보여주는 대로, 환경에 단순히 반응하는 개돼지가 아님을 나는 늘 증명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깨어 있으리라!,", "자각하라!"라는 같은 취지의 말씀이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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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인간의 삶은 그 분의 지구의 삶이 끝난 후에만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번의 성공, 하나의 실패로 과하게 칭송하고 엄청 비난하는 부화뇌동의 꼬라지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난 후의 검증, 객체의 움직임이 죽음으로 사라진 후에 어려 사람이 다양한 관점에서 그 객체를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말 자체도 멋지만
말과 같이,
이 분이 그 삶에서 증명하려 했고, 증명했기 때문에 내 기준에서 이 분이 존경할 만 한 것이다.
자신의 언어를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는 분.....
이런 사람이 현재의 내가 봤을 때는 내 기준으로는 유일하게 존경은 받을 만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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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도 대사도 기가 막히다.
 
이 시절의 사상가로는 나는 류영모선생(1890 ~ 1981년)과 함석헌선생(1901 ~  1989년)정도의 책만 읽어 봤다. 
이런 분들을 나는 사상가로 봤고, 김대중대통령은  정치인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 다큐 이후에 나는 아마도 김대중대통령을 한 분의 사상가이자 정치인으로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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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자기 확신이 있고, 이루어 내는 분들은 이렇구나 라는 것을 알았지만, 또 알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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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에일스 (Roger Ailes)의 ‘당신이 메시지"라는 책이 있다.
내가 아는 프레젠테이션, 홍보, 커뮤니케이션의 최고의 경지를 말해 주는 책이다. 
가장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케이터 자신이다.
이런 점에 어울리는 삶의 궤적과 성과를 지난 사람은 드물다. 자신이 삶이 곧 커뮤니케이션 메시지가 되는 경지에 이른 분.
이 분이 그런 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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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 시절을 겪은 또래를 사회 생활하면서 만난 적이 있다.
이 분들의 경험과 내가 읽은 책에서, 영상에서 본 간접 경험은 체험의 밀도와 질이, 중력이 다르다.
이 분들의 아픔은 지구의 중력과 블랙홀 지평선의 중력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 아니라 통곡한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보게 된다.
 
이 분의 이 통곡은 나는 이후 TV에서 한 번 더 보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장면에서의 통곡

이 장면을 볼 때 이만한 거인이 저렇게 통곡을 해 줄 정도의 삷을 산 젊은 노무현이란 사람도 어떤 의미에서는 잘 산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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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믿음과 언어를 증명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나는 어느 길에 있던, 진정한 구도자라고 본다.

이제 서서히 결혼식에 갈 일 보다 장례식에 갈 일이 많아진다. 또한 아버님/어머님 대의 장례식에서 이제 형님/형수님 대의 장례식에 갈 날이 잦아지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한 마디로, 영상으로만 숭배하고 폄하하거나 흘러 보낼 수 있겠는가.

숭배냐, 폄하냐, 무관심이냐!의 결론을 얻기에 보는 것이 아니었다.  내 삶도 앞으로 몇 명에게 숭배 받거나 폄하 되거나 무시될 것도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나의 남은 삶이 무시되고 폄하되지 않기 위해서는 좀 더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게 해주는 것들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 분의 삶을 보여 준 영상과 보낸 시간은 분면히 존경 받고 숭배 받을 말한 가치가 있었다.

다시 본다.
37년 전 내가 표를 던졌던 김대중일란 분
옳은 선택 이었지만 충분한 선택이 아니었다.
너무 짧고 좁고 어림잡은 선택이었다.
그 분의 삶의 나의 평가보다 3차원적으로 커야 했다.
그 분의 생각은 나의 추정보다 불가사의 할 정도로 무거워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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