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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일락서산(日落西山) : '태양이 지다'라는 뜻
내 살과 뼈가 여문 마을어었건만, 옛모습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옛모습으로 남아난 것이 저토록 귀할 수 있을까.
"게 다 마찬가지여. 먹구 헐일 읎이 지달리는 게나, 일찍 가서 누워 잔딜찰방(察訪)허는 게나..."
...휠씬 씨알이 여문 그리움이었다.
고령도 고령이겠지만 그보다는 가운의 불황과 우왕좌왕하는 시대에 이미 적응할 수 없음을 스스로 터득하여 은둔하기로 결심했던가보았다.
매사가 매양 엇먹고 섞갈리는 상태였다.
다시 한번 옛집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 너머 서산마루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지는 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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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십일(花無十日) : '열흘 붉은 꽃이 없다''라는 뜻
그렇게 죽지 못해 삼동을 물리고 해가 원수같이 길어지기 시작한 여름이었다.
그것은 오고 가는 말투만으로도 미루어 단정하기 넉넉한 일이었다.
소반 사라고 외치는 소리도 오래 사는 설움과 못 이룬 한이라도 맺힌 듯 청승맞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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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유수(行雲流水) : '떠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
"아씨, 안녕허섰에유. 나리만님 기력두 여전허시구, 서방님이랑 사랑으른들두 뵐고 읎으신가유?"
"말꼬랑지 파리가 천리 가더라구 옹젬이가 그렇당께."
그녀가 떠벌리기를 가장 즐겨하던 노래는 내가 기억하기에 <황하다방>이었다.
----> 1941년 나온 백난아 선생의 노래라고 한다.
https://youtu.be/e-RI1TnY1qQ?si=1xoJjKXgOmJ11qD2

그것은 살아오면서 겪음한 바가 적지 않았듯, 길흉화복이건 일상의 범속한 일이었건, 삶의 과정은 무슨 조짐이나 예측이 없이 우연으로 시작되기 예사이고, 종말 역시 그렇게 맺던 것에 바탕하여 하는 말이다.
그 얻은 눈이며 들은 귀라면 어디에 내놔도 흠잡힐 리가 없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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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수청산(綠水靑山) : ' 녹음이 깃든 자연을 그린 표현'
대복어메...남 좋은 일에는 개미허리로 웃어주고, 이웃의 안된 일엔 눈물도 싸게 먼저 울어댔으며, 욕을 하려 들면 안팎 동네 구정물은 혼자 다 마신 듯이 걸고 상스러웠다.
-----> <그리스인 조라바>에 나오는 조르바를 보는 느낌.....
그녀의 허물을 구설거리로 삼기 전에 가난으로부터 건져 줄 수 없음을 더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전생의 무습 업처럼, 하늘과 땅으로부터 얻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생활이었다.
조팽랭이는 늙었어도 젊어서 망나니답지 않게 주어진 일이면 힘은 부치나마 깜냥껏 해찰 부리지 않고 해내었다.
다시금 꿈결속에 본 대자연처럼 그지없이 아름답고, 은하를 헤엄쳐가는 듯한 심란한 향수에 잠기게 하며, 때로는 나 혼자나 알고 죽을 것 같이 비밀스럽고, 혹은 물려줄 수 없는 소중한 재산처럼 여겨지곤 한다.
".....피래미 십 녁 묵어 붕어 되는 법 못 봤으니께."
내가 그런 북새에 얻은 것이라고는 말귀가 트이고 눈치나 빨라졌을 뿐, 한번 들어버린 멍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무릇 전쟁의 가증스러움, 목숨의 허무함, 인생이 무상함, 생활이런 것의 부질없음, 세월의 덧없음을 조금씩 깨우치기 비롯하고, 알면서 살고 싶은, 쉬운 말로 느낌을 가져온 계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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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토월(空山吐月) : '사람이 없는 빈산이 달을 토하다'
우유부단한 성격을 뜯어고치고자 이해득실을 암산해보기 전에 육감과 즉흥적인 판단에 따라 일관성 있게 언동했고,
천성이 늠름치 못해 외강내유의 졸망스러운 배포뿐이었으되 인품과 덕량이 있는,
어질고 슬기로운 선비를 닯고 싶어 늘 신경이 무디지 않도록 관리해왔음도 사실이었다.
대전의 두 시인, 박용래와 임강빈씨...
홍시는 겉과 속이 한 가지 색깔이며 어루만지기 더없이 부드러운 피부를 가졌으되, 외부의 강압적인 폭력만 작용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물러터지거나 깨어짐이 없음에서이다.
"나는.....나는 울었다. 그냥 울었다. 두만강 눈송이를 바라보며 한없이 한없이 그냥 울었단 말여...."
-----> 1925년 생이시라 박용래 시인(1925 ~ 1980년)은 두만강에서 눈 내리는 모습을 보신 부이구나...


오늘의 대중들은 자기의 위치를 앗긴 채 변두리로 밀려나가 구경꾼 노릇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구경마저도 목숨의 보전 및 본능의 연장전이라는, 절등(切 等)의 뜻을 품고 있을 정도로 외롭다.
이 나라 어디를 가본들 은근하고 수더분한 인심이 남아 있을 것인가, 이미 한 세대 전부터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이 아니더라며 탄식한 시인이 있지 않았던가.
----> 정지용 시인(1902 ~ 1950년)의 고향을 말씀하시는 듯하다.

그 사람은 내가 일생을 살며 추모해도 다하지 못할 만큼 나이를 얻어 살수록 못내 그립기만 했다.
그의 이름은 신현석
달은 어느덧 자리를 거의 다 내놓아 겨우 앞치마만한 하늘을 두른 채 왕소나무 가지 틈에 머물고 있었으며, 뒷동산 솔수펑이의 부엉이만이 잠 못 들어 투덜대고 있었다.
시작에서 끝이 없으되 결국은 잠깐이기에 세월이라 이름했거니 한다.
"....이왕 이런 몸뜅이, 숫제 족보 있이 유명헌 병이라먼 좋겄네. 유명헌 병은 약도쌨을 텡께...."
아, 별든은 또 어찌 그리도 고대 숨너어가듯 가물거려댔던 걸까.

"나는 살을야 되여..."
"나는 살으야 헌당께..."
"나는 살구 싶은디, 살구 싶은디 그여 데려가네......
늙은신 부모를 두구 먼저 가다니, 어린 새끼들은 워칙허라구 나를 데려가까...."
"잘들 사는 걸 보구 죽으야 옳을 텐디, 이대루 죽어서 미안허네......부디 잘들 살어.."
하며 움직여지지 않은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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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추정(關山芻丁) : '고향에서 꼴 베는 사람, 즉 고향의 옛 친구를 의미함'
바다는 밤으로 더 가까이 오면서 길잡이 바람만 되돌아가 구름으로 솔면 으레껏 선잠에 들며 늘 그렇듯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달빛이 뚫어지고 별이 새어나오면 어둠을 얼비추며 너울춤이 칠칠하던 바다가, 갚잎에 이슬이 잘게 열리는 밤이면 깬 꿈을 한결같이 다시 잇던 것이다.
"나 같은 수민(手民) 따위야 민주주의 공산주의, 푸렝이 뿔갱이 찾을 것 있것나, 그저 먹자주의가 당세관(當世官)이지..."
언제 보더라도 없이사는 집의 놓아먹이는 아이 같지가 않았다. 어른을 어려워하고 어린아이를 고루 겸애하였다.

"구부러진 나무가 선산 지킨다더니 내가 바루 그 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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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요주서(與謠註序) : '노래와 같은 주석이나 서문'으로 '여러 사람 사이에 떠도는 소소한 소문 또는 풍문에 대한 설명', '그저 소소한 이야기'라는 뜻
진실을 아는 자가 잠시라도 그런 자세를 취해보이는 것은 진실이 공개될 때까지 그 증거를 완전한 형태로 보전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인 것이며 그 증거의 가장 완전한 형태가 곧 양심인바....
나는 용모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물은 부드러우나 추운 겨울에 얼면 굳어져 부러진다던, 어디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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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후야(月谷後夜) : '월곡마을의 늦은 밤'이라는 뜻
주야로 독서한 탓에 쓸데없이 유식해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기 생활과 무관한 지식 과잉 상태가 부끄러움을 알았고 늦은 후회도 했는데, 없어도 살 만한 것과 있어서 불편한 것을 나름껏 적실하게 줄 그어서, 내내 지닐 것과 어서 버려야 할 것을 가르려고 노력하였다.
정보 산업 시대의 부작용....
일테면 활자와 전파에 의한 정보 공해라는 말로 간추릴 수 있는 내용이었다.
"말려두 소용읎는디, 폭력을 박력이라구 믿는 것들이니 대책이 읎는 거라."
"소설을 여러 편이나 쓴 자도 막상 이런 인생 문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군."
....
"세계 명작을 수도 없이 고쳐준 당대의 문형도 눈앞의 연애 문제 하나를 해결 못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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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후기
<관촌수필>만은 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여 좀더 낫게 써보려고 나름으로는 무던히 애쓴 편이었다.
한마당에 자란 동네 아이들어었다....
<행운유수>의 옹점이, <녹수청산>이 대복이, <관산추정>의 복산이가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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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해설 : 폐쇄 사회, 인정주의, 이데올로기 김 주 연
작가가 자기의 체험을 말하느냐 않느냐를 중심으로 획책되어질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체험을 얼마나 공적인 체험으로 객관화해내느냐 못 해내느냐는 문제로 바뀌어진다.
도대체 작가가 작품 이외에 너무 말이 많은 것은 어쩐지 신뢰되지 않는다....
<관촌수필>에 대해서도 기껏 그가 내뱉는 말이라는 것은,
"성실하게 살다간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니까유....."
<공산토월>은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다.
한학의 박식한 어휘와 국어 사전에도 없는 낯설고 상스러운 토속어의 모순에 찬 공존은 소설 <관촌수필>이 지니는 최대의 특징이다.
이문구는 주체성이란 곧 성실성이란 말로써 믿고 있는 것 같다.
성실한 사람이 역사의 모순 속에서 배반당한 채 어떻게 파탄되어가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이 소설의 메시지라면, 이 소설을 통해 그는 매우 주체적인 작가로 자신을 분명히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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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 해설 : 1991년에 읽은 <관촌수필> 권 성 우
우리는 과연 농경 사회나 루카치가 그리던 고대 그리스 사회의 인간들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일까.
<관촌수필>에 관류하여 흐르고 있는 지배적 정서는 바로 근대화/도시화에 의하여 사라진 풍속과 정서, 인간에 대한 하염없는 그리움이다.
간단히 말해서 <관촌수필>을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은 근대화/도시화/산업화를 우울하게 지켜보고 있는 정결한 선비의 세계관이다.
---> 글쎄??? '정결한 선비의 세계관'이라???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막걸리 한잔 슬프게 들이킨 걸죽한 촌로의 세계관'이 더 맞는 것 같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에게 있어서 그의 고향 시절은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자연이, 자연과 자연이 서로 친화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그곳은 그야말로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길을 찾을 수 있던 안온한 모성적 공간이다.
---> 해설을 쓴 권성우라는 분이 누구길래 이런 평을 하시나 의아했다. 아님 내가 잘못 해석하는 건지??
----> 문학평론가 권성우(1963년 ~)
이상적인 공간??? 내 보기에 작가는 이상적인 공간, 시간, 사람들에 대해 쓰려고 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의 기억 편린에 아리고 쓰리고 때론 아주 잠깐 빛나던 시절을 최대한 그 공간/시간/아픔/기쁨 시절로 돌아 가서 하나 하나 뼈아프게 주워 올린 결과물들을 한 자 한 자 눌러쓴 느낌이다.
----> 아마 문화평론가께서 이 문구작가 보다는 어리서서 경험치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은 이해가 하지만 농촌에 살아 본 경험 자체가 없으신 것 같다. 살아본 경험이 있다면 ’이상적 공간’이라는 평은 아나올 듯
현대 도시 사회에서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친화적이고 전인적이 인물에 대한 자세한 묘사이다.
이를테면 우리에게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인 <공산토월>에서 이문구는 그가 고향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석공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신현석을 들고 있다.
비평가 김종철은 "석공이야말로 우리가 어렸던 시절, 고향에 더러 남아 있던 '구원(久遠)의 한국상'이다...
이문구만이 쓸 수 있는 토속적 문체...
농촌은 이제 그리움과 친화적 공간이 아니라, 문명과 도시의 모든 쓰레기가 고스란히 유입되어 있는 피폐된 공간이다.
그 분노는 그리움이라는 원초적 정서와 농촌의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뼈저린 인식을 통과해서 생성된 것이기에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차원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된다.
[ 자평 ] 이런 것이 정말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한국어 원어민인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런 작가는 노벨상은 받지 못하리라. 진정 local적인 것은 보편적 인간의 가치를 다루었다 하다라도 그 독특함으로 인해 외부인이 얻어 가기에는 장벽이 있는 것이다.
이문구선생이 1972년 5월 <현대문학>을 통해 발표하면서 시작한 연작 소설이다.
글의 탄생 시절을 즈음은 내가 태어난 시절과 엇비슷하여 더욱 운명적인 공감이 흐른다.
또한 내 처가댁에 충청도라 또한 이 정도의 사투리는 못들어 봤지만, 남같지 않은 언어적 공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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