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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정호승
어머를 위한 자장가 
 
잘 자라 우리 엄마할미꽃처럼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장독 위에 내리던함박눈처럼
 
잘자라 우리 엄마산그림자처럼산 그림자 속에 잠든산새들처럼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잘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신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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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한 번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니자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 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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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온윤
묵시시
 
내가
창가에 앉아 있는 날씨의 하얀 털을
한 손으로만 쓰다듬는 사람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섯개의 손톱을 똑같은 모양으로 자르고
다시
다섯개의 손톱을 똑같은 모양으로 자르고
 
왼손과 오른손을 똑같이 사랑합니다
 
밥 먹는 법을 배운 건 오른손이 전부였으나
밥을 먹는 동안 조용히
무릎을 감싸고 있는 왼손에서도
식전의 기도는 중요합니다 
 
사교적인 사람들과 식사 자리에 둘러앉아
뙤약볕 같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도
침묵의 몫입니다
 
혼자가 되어야 외롭지 않은 혼자가 있습니다
 
밥을 먹다가 
왜 그렇게 말이 없냐고 
말을 걸어오면
말이 없는 이유를 생각해보다
말이 없어집니다
 
다섯 개의 손톱이 웃는 모양이라서
다섯 개의 손톱이 웃는 모양이라서
나는 그저 가진런히 열을 세며 있고 싶습니다
 
말을 아끼기에는 
나는 말이 너무 없어서
사랑받는 말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식탁 위에는 햇볕이  한줌 엎질러져 있어
커튼을 쳐서 닦아내려다
두 손을 컵처럼 만들어 햇볕을 담아봅니다.
 
이건 사랑받는 말일까요
하지만 투명한 장갑이라도 낀 것처럼
따스해지기만 할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침묵을 오랫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 곁에 찾아와
조용히 앉아만 있다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가 나의 왼손입니다
 
----> 생각보다 너무 젊은(솔직히 어린) 시인 놀랬다
---> 조온윤시인(199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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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상
소를 끌고
 
눈 덮인 집이 저 너머에 있다
사방 길은 지워지고 따듯한 섬 같은 집
감나무 한그루가 돛대처럼 지키고 있는 집
저녁연기가 목화솜처럼 깔리던 집
 
아궁이 곁불에 닭들이 졸고
아랫목에서 메주가 뜨고
설은 다가오고 까치는 마당에 내려와 놀고
들판을 달려온 바람이 몸을 녹이다 가고
 
장독간 가는 길에 눈을 쓸고 김치를 내오고
볼이 튼 아이는 눈밭에서 뛰놀고
입김 불어 손을 녹이며 아낙은
소 없는 외앙간 아궁이에 소죽을 쑤고
 
산 너머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 밤새 들리고
길을 재촉하는 부엉이 먼 산에서 울고
나는 아직도 희미한 그 집에 가고 있다
흙과 짐승과 나무가 주인인 집에
이랴이랴 소 한마리 끌고 돌아가는 중이다
 
갈수록 멀어지는 그 사람들 그 집에
내가 살던 집도 아닌 그 집에
이상한 일이다
수십년 동안 나는 돌아가는 중이다
 
----> 멋진 시다
----> 백무산 시인(1955년 ~)이자 노동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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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휘
신발 모양 어둠
 
끈이 서로 묶인 운동화 한켤레가 전깃줄에
높이 걸려 있다 오래 바람에 흔들린 듯하다
어느 저녁에 울면서 맨발로 집으로 돌아간
키 작은 아이가 있었으리라
허공의 신발이야 어린 날의 추억이라고 치자
구두를 신어도 맨발 같언 저녁은
울음을 참으며 집으로 돌아가던 구부정한 저녁은
당신에게 왜 추억이 되지 않나
오늘은 짙은 노을이 당신의 발을 감싸는 하루
그리고 하루쯤 더 살아보라고 걸음 앞에
신발 모양의 두툼한 어둠이 내린다
 
----> 심재휘시인 (196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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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애경
이모에게 가는 길
 
미금농협 앞에서 버스를 내려
작은 육교를 건너면
직업병으로 시달리다가 공원도 공장주도 던져버린 흉물
공장
창마다 검게 구멍이 뚫린 원진레이온 건물이 나올 것이다
그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젊은 버스 기사와 야한 차람의 십대 아가씨의
푹 익은 대화를 들으며
종점까지 시골길 골목을 가야 한다
거기서 내려 세 집을 건너가면
옛날엔 대갓집이었다는 낡은 한옥이 나옥
문간에 팔순이 된 이모가 반겨줄 것이다
전에는 청량리역까지 마중을 나왔고
몇달 전에는 종점까지 마중을 나왔지만
이제 이모는 다리가 아파 문간까지밖에 못 나오실 것이다
아이고 내 새끼하고 이모는 말하고 싶겠지만
이제 푹 삭은 나이가 된 조카가 싫어할까봐
아이고 교수님 바쁜데 웬일일까하고 하실 것이다
사실 언제나 바쁠 것 하나 없는데다가 방학인데도
이모는 바쁘다는 자손들에게 미리 기가 죽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실 것이다
 
이모는 오후 세시이지만 텅 빈 집에서 혼자 밥을 먹기 싫
었기 때문에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무언가 먹이려 하실
것이다
하지만 눈 어둡고 귀 어둡고 가게도 먼 지금동 마을에서
이모가 차린 밥상은 구미에 맞지 않을 것이다
씻은 그릇에 밥알도 간혹 묻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가지고 온 과자나 과일이나 약 따위를 늘
어놓으며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먹고 싶지 않다고 할 것이다
이모는 아직 하얗고 아담한 다리를 펴 보이며
다리가 이렇게 감각이 없어져서 걱정이라고 하실 것이다
그래서 텃밭에 갔다가 넘어져서 몇달 고생도 했다고 하실
것이다
트럼펫처럼 잘 울리는 웃음소리를 가진
아이 둘을 한꺼번에 끌어안고 젖을 먹일 만큼 좋은 젖가
슴을 가졌던 이모
아이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게 하던 이모
이모의 젖을 먹지 않고 큰 아이는 이 집안에 없었다
이제 이모는 귀가 잘 안 들리기 때문에
젊은 아이들에게 지청구를 먹일까봐 이야기를 걸어도 머
뭇거리신다
그냥 아이구 그래 대견도 하지라고 하실 뿐이다
 
지어 온 한약을 내놓고 한시간이 지나면
나는 여섯시 이십분 기차니까 지금 가야 해요라고 할 것
이다
그러면 이모는 아이구 그래 차 시간 넉넉히 가야지하고
하실 것이다
텃밭에 심었던 정구지 한 묶음하고
내가 사간 복숭아를 몇알 도로 싸주실 것이다
그러고도 뭘 또 줄 게 없을 까 해서
명절날 들어온 미원이니 참치 통조림이니 비누 따위를 주
섬주섬 찾으실 것이다
꼬꼬엄마 그럼 잘 있어요라고 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이모의 빰에 내 빰을 부빌 것이다
그러면 이모는 감동해서 역시 내 새끼였지라고 좋아하실
것이다
마당에 이만큼 나선 나에게
마을버스 시간에 맞추어야지 서둘러라라고 하면서도
어디 한번 더 안아보자 하실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처럼 두 팔로 푸짐한 이모의 가슴을 껴안고
이모의 빰에 내 빰을 꼬옥 대볼 것이다
이모는 속으로 이 새끼를 이제 못 볼지도 모른다고 생
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속없이 마을버스를 놓칠까봐 뛰어나오고
세 집을 건너 뛰어가면
마을버스가 모퉁이를 돌아설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며 나는 자꾸만 눈언저리를 닦을 것이다
노인네 혼자 빈 집에 남겨져
젊은 애들한테 방해나 되게 너무 오래 사는 것 아닌가 하
면서
잘 펴지지 않는 다리를 조심스레 움직여보면서
혼자 오래 걸려 방으로 돌아가실 것을 생각하면서 
우는 나를 마을버스 기사가 의아하게 거을 속으로 바라볼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번잡한 길에서 느꼈던 짜증이 부끄
럽고
사람이 늙는다는 게 슬프고 무서워서
다시는 살아 있는 이모를 만나지 못할까 무서워서
나는 더 운다 원진레이온 앞에 올 때까지 십분이 못 되는
시간을
 
그리고 눈물이 깨끗이 씻겨서
이모가 길러주었던 
일곱살짜리 갈래머리 계집애가 되어
청량리역 가는 버스를 탈 것이다
세상에 꿈도 많고 고집도 세었던
제일 귀염 받던 곱슬머리 계집애가 되어서.
 
--> 기가 막히다. 이런 주제로, 이런 방식으로, 이런 언어로도 이런 멋진 시를 쓸 수 있구나
---> 거의 백수가 되셔서 돌아가신 나의 큰이모도 생각나고, 이 시의 이모가 내 늙어서 홀로 시골에 계신 엄마로 읽혀지고..
---> 양 애경시인(195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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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목계장터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땋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려
민물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을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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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귀뚜라미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역시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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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어느 날 스타벅스에서
 
나에게는 이제 남아 있는 내가 별로 없다
어느새 어둑한 헛간같이 되어서
산그늘 옛집에 살던 때 일이나
살이 패리도록 외롭지 않으면
어머니를 불러본 지도 오래되었다
 
저녁내 외양간에 불을 켜놓고
송아지 나올 때를 기다리거나
새벽차를 타고 영을 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거의 새것이다
 
그동안 많은 것을 보고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내 것이 아닌
나는 저 산천의 아들, 혹은
강가에 모래 부려놓고 집으로 가는 물처럼
노래하는 사람
 
나에게는 지금 내가 아는 내가 별로 없다
바퀴처럼 멀리 와 무엇이 되긴 되었는데
나도 거의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그 사람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 놀랍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과거의 '나'를 기억하다.
---> 스타벅스를 말씀하셔서, 또한 시어가 현대적이라 젊은 시인인 줄 알았더니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 이 상국 시인(194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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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사랑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개월은
어디다 마음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허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속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직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컷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이뻐 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배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은 어느 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인 참 좋았습니다.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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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있는 그대로, 라는 말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뭐냐면 있는 그대로더라
나이테를 보면서 연못의 파문을, 지문을,
턴테이블을, 높은음자리표와 자전거 바퀴를
연상하는 것도 좋으나
그도 결국은
나이테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만은 못하더라
누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평화 없이는 비둘기를 보지 못한다면
그보다 슬픈 일도 없지
나무와 풀과 새의 있는 그대로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어졌나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게 뭐냐면,
너의 눈망울을 있는 그대로 더는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더라
나의 공부는 모두외면을 위한 것이었지
있는 그대로, 참으로
아득하기만 한 말 
 
---> 당연히 스쳐지나가듯이 일상적으로 내뱉는 문장인데, 정말 그렇구나.
----> 손택수 시인(1970년 ~)

 
 
[ 자평 ]  새롭게 접한 시인, 시들이 있어 좋았다.
 
창비시선 500 특별시선집이다. 50년 동안 시집 500권을 발행한 기념으로 발간한 시집이다.
시집을 발간한 시인들이 직접 즐겨 읽는 시편들을 모은 특별시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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