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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감각(sensation)

ㅇ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체와 속성을 구분했을 때부터 주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ㅇ 감각은 참된 인식을 하는 데 중요하지 않거나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생각을 지성주의(intellecualism) 혹은 합리주의(rationalism)라고 부른다.

ㅇ 영국의 경험론자들은....일체의 본유관념은 없고 오로지 외래관념인 감각이야말로 모든 인식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ㅇ 감각적인 사물이 결코 인간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을 벗어난 저쪽 세계에 진짜로 존재한다고 여긴 철학자가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

ㅇ 들뢰즈의 '신경 체계적 감각'...신경이라는 물질이 감각과 거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결합되어 있음을 바탕으로 함

 

개념(concept)

ㅇ 일종의 관념. 감각적인 관념이 개별적인 관념인 것과는 달리, 개념은 보편적인 관념이다.

ㅇ 보편적인 관념이란 다른 여러 가지 관념, 예컨대 개별적이고 감각적인 단순 관념이나 복합 관념들을 일반화해서 포괄적으로 관계하는 관념이다.

ㅇ 똑똑해진다는 것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각기 특수한 감각적인 관념들이 작동하는 구체적인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ㅇ 주어진 상황과 관련된 개념들을 활용해야만 그 상황에 본질을 잘 알 수 있고, 그럼으로써 그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개념에도 급수가 있다. 철학의 기초 개념들은 모든 학문에서 활용되는 여러 개념을 뒷받침하는 근본 개념들이어서 그 급수가 최고로 높다.

ㅇ 경험적 개념은 흔히 보통명사(흙, 물, 공기, 인간 등)라 불리는 것들로 표기된다.....범주적 개념들은 흔히 추상명사로 불리는 것들로 표기된다....동일성, 차이, 인식, 존재, 원인과 결과, 우연과 필연, 주체와 대상 등의 개념은 범주적인 개념들이다......철학의 기초 개념들이 대체로 범주적인 개념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ㅇ 칸트는 "감각적 직관이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감각적 직관은 맹목적이다."라고 했다.

개념이란 항상 다른 개념들을 통해 설명된다.

ㅇ 설명항은 피설명항을 통해 설명된다. 이 피설명항은 또 다른 설명항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개념 설명은 무한 연쇄의 부조리에 빠지게 된다. 

ㅇ 데리다의 차연(difference). 즉 차이를 바탕으로 계속 의미가 결정되지 않고 연기된다는 것이다.

인생을 정의할 수 있는 본질적인 개념은 존재하는가? 인생에 있어서 본질적인 개념은 있을 수 없고, 각자가 제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독특하게 만들어간다고 하는 입장이 바로 실존철학적인 입장이다.

 

이성(reason)

ㅇ 기본적으로 논리적 이성. 추론 능력으로서 하나의 명제에서 다른 명제를 정립하는 능력이다.

ㅇ 문제는 논리적인 추론을 할 때 출발점이 되는 명제를 어떻게 정립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ㅇ 예컨대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명제를 어떻게 정립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ㅇ 이제까지 태어난 모든 인간이 죽었으니까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인간도 죽을 것이라고 귀납적으로 예단하는 것에 불과

직관적 이성...예컨대 기하학의 제1공리라고 할 수 있는 '직선은 두 점 간의 가장 짧은 거리다'라는 명제를 정립하는 것은 경험적인 귀납으로써는 도대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명제를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도 결코 쉽지 않다.

ㅇ 직관과 추론 능력만으로는 인간의 인식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어떤 관심을 갖고서 직관하고 추론하는가에 따라 인식되는 내용이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ㅇ 관심은 삶의 가치와 직결되어 있다....관심은 인생 전반의 태도와 직결된다.

ㅇ 이성이 발휘되는 대상 영역에 따라 이성이 나눠지고도 한다. 학문적인 인식에 발휘되는 이성이 이론이성(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고 최대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해서 행동의 가치를 높이는 데 발휘되는 이성이 실천이성(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이다. 

ㅇ 합리성을 통하지 않고는 정의로운 사회를 결코 건설할 수 없다고 여긴 철학자가 하버마스(Habermas, 1929~)이다. 그는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최대한 강조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 공론의 장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은 이성이 아닌 감정과 감각의 정의로운 분배이고, 그를 통한 서로의 만남으로 감정과 감각이 서로를 좋은 방향으로 부추길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험

ㅇ 타고난 관념들(본유관념)과 크게 대립되면서 외부 세계와의 감각적인 접촉을 통해 새로운 관념들을 획득하는 것

ㅇ 형식과 크게 대립되면서 형식을 채우는 내용으로 취급

ㅇ 이론적인 작업과 크게 대립되면서 이론 구성을 위한 일차적인 재료를 제공해주는 원천으로 취급

ㅇ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우리의 모든 인식이 경험과 동시에 시작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의심도 없다."고 했다.

경험이 무엇인가를 안다면 일체의 인식의 근본을 아는 것이고, 따라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으로 연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하자면 경험을 철학적으로 이해/분석/설명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라 할 수 있다.

ㅇ 경험 자체에 종류를 나누는 기준을 형성하는 능력이 있다고 할 때 그 능력은 경험 외적인 이성과는 달리 지성이라고 일컬어진다.

ㅇ 칸트는 순수한 이성은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감각과 무관하게 사유하는 능력이고 지성은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감각들을 사유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ㅇ 칸트에 따르면 신이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주장은 참도 거짓도 아니고, 그저 사변적인 놀이에 불과하다. 그러고 보면 참다운 인식은 오로지 경험적인 인식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은 앎을 떠나서는 영위될 수 없는데, 경험이야말로 모든 진정한 앎의 원천인 것이다. 

 

의식(consciousness)

ㅇ 모든 종류의 의식들에서 그 공통적 본질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잘 드러내는 개념이 후설의 지향성(intentionality)개념

ㅇ 후설은 "의식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다.

의식은 그 자체만으로 존립할 수 없고 오로지 대상에 대한 의식으로만 존립한다는 것이다. 의식 작용과 의식 대상 간에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ㅇ 후설은 고대철학에서부터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전제되어온 의식의 실체성, 즉 의식은 의식의 대상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파기한다.

ㅇ 메를로퐁티는 인식에서 몸-주체의 근본성을 내세운다....순수의식, 절대의식, 초월적 의식 등은 성립할 수 없고 오로지체화된 의식만이 현존할 수 있다. 체화된 의식은 근본적으로 몸에서 임시로 발현했다가 다시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ㅇ 의식을 실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정신이니 영혼이니 하는 것들 조차도 의식과 마찬가지로 다른 무엇인가에 의존해서 성립할 수밖에 없는 파생적이고 기생적인 것이라는 의미다.

 

지각

ㅇ 판단이 이루어지기 전 판단의 원천적인 재료를 제공하는 것

ㅇ 지각은 행동과 판단 양쪽을 매개한다.

ㅇ 몸을 인간 활동의 근본적인 주체로 놓게 되면 '행동 -> 지각 -> 판단 -> 지각 -> 행동'으로 이어지는 동시적인 순환의 중심에 몸이 자리 잡는다. 

ㅇ 몸은 지각 대상이면서 지각 주체...몸을 지각 대상으로 삼게 되면 몸 자체가 외부 세계에 편입되는 셈이다.

ㅇ 세계에 속한 몸이 지각 주체로 작동함으로써, 말하자면 세계의 부분이 세계 자신을 지각하는 꼴이 된다.....세계가 자신 속에서 몸을 일으켜 그 몸을 통해 자기 자신을 지각하는 꼴이다.....궁극적으로 세계가 자신을 지각하는 셈이 된다.

ㅇ 이 모든 세계에서 지각의 주체가 과연 누구(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보려고 하지 않는 것도 보이고, 만지려고 하지 않는 것도 만져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각 속에 도취(몰입)해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지향성

ㅇ 의식이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이라는 이야기는 의식이 결코 실체, 즉 원리상 자신 외에 다른 것 없이 존재할 수 없음을 뜻한다. 이로써 데카르트에 의해 제시되었던 '사유하는 사물'로서 실체라 이야기되었던 정신(혹은 영혼)의 실체성은 철학사에서 삭제되고 말았다. 

의식은 순전히 작용으로 취급되면서 작용할 필요가 없을 때는 현존하지 않는 것이 되고 말았다....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결코 독자적인 실체성을 띨 수 없고 항상 상황에 따른 작용을 할 뿐이다. 

ㅇ 대상 역시 그와 짝하는 의식 작용 없이는 성립할 수 없음을 함축한다. 다만 대상은 사물이 아니다. 대상은 인식적인 판단면에서의 개념이고 사물은 존재적인 판면에서의 개념이다. 

ㅇ 사물을 인식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고, 사건을 인식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고, 기호를 인식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고, 가치를 인식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고, 개념을 인식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 

ㅇ 지향성은 의식의 작용과 대상 간의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나타낸다. 

ㅇ 하이데거는 전혀 지향적이지 않은 의식 작용이 있다면서 '불안(Angst)'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불안을 바탕으로 지향성의 관계를 넘어선 '존재(Sein)' 개념을 구축했다. 

 

다양태로 본 두뇌와 몸

ㅇ 시냅스 전 뉴런의 떨림이 시냅스 후 뉴런으로 전달되면서 시냅스 후 뉴런이 이 떨림을 자신의 떨림으로 바꾸어 또다시 다른 뉴런에 전달하는 것이 뇌의 시냅스 전달 체계다.

몸은 외부의 다양태들이 발산하는 파동들(힘들)을 이미 늘 받아들이고, 또 연속적으로 분석해서 스스로가 어떤 종류와 어떤 성격의 파동들(힘들)을 발산해야 하는가를 연속적으로 결정하고 그런 파동들을 발산한다.

ㅇ 몸은 결국 행동을 통해 다양태로서의 자신을 표출하는데, 그 내부를 보면 신경이라는 일차적 다양태와 의식이라는 이차적 다양태를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표출이 가능하다. 

ㅇ 의식 활동은 신경 활동 자체를 조절하기 위한 신경 활동, 즉 자기 조절적 신경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매 상황마다 일일이 자기 조절을 해야 하지만 이전에 받아들인 감각과 엇비슷한 것들에 관해서는 굳이 '비용이 드는' 의식 활동을 일으킬 필요가 없도록 스스로를 조졸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습관이고 이를 떠받치고 있는 몸틀이다. 

 

[ 자평 ] 정의....그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뇌를 공부하다가 의식의 문제로 들어 서게 되다 보니 철학을 훔쳐 볼 수 밖에 없었다.

철학을 왜 공부하는지? 명확한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게 된 것은 오래지 않았다. 

 

내가 전공한 경영학은 두루뭉실하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철학이야 말로 더 애매모호할 것이라 단정했다. 

물리학은 좀 더 명확하고 수학은 공리가 있으니 학문 중에서 가장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철학은 내가 생각한 것 만큼 그렇게 애매모호, 두루뭉실, 각자해석이 아니었다.

 

기본적 철학 개념을 설명한 책들을 그 이후 몇 권 읽고 또 소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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