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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여기서 말하는 '현대사상'이란 1960년대부터 1990년대를 중심으로, 주로 프랑스에서 전개된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을 가리킵니다...
대표자로 세 명을 꼽고 싶습니다....자크 데이다, 질 들뢰즈, 미셸 푸코
현대에서는 '제대로 하는' 방향으로 여러 개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 의견인데, 저는 이것 때문에 생활이 더 갑갑해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똑바로 해야 한다, 제대로 해야 한다, 즉, 질서화입니다.
근대란 시민사회와 진보주의, 과학주의 등이 결합된 것입니다.
포스트포던의 상태를 좋게 보는 포스트모던 사상,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목표해야 할 올바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는 '상대주의'라고 자주 얘기됩니다.
일단 철저하게 기성 질서를 의심해야 근본 = 급진적으로 '함께'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인 현대사항의 자세입니다.
구조란 대략 '패턴'과 똑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패턴의 변화나 패턴에서 벗어나는 것, 일탈을 문제 삼고 역동적으로 변화해 가는 세계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포스트구조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탈구축.....사물을 '이항대립', 즉 '두 개념의 대립'에 의해서 파악하여 좋고 나쁨을 말하려는 것을 일단 유보한다는 것입니다.
데리다는 '개념의 탈구축', 들뢰즈는 '존재의 탈구축', 푸코는 '사회의 탈구축'이라는 식으로 분담시켜 설명합니다.
(데리다: 개념의 탈구축)
반대의 관계로 되어 있는 쌍을 이항대립이라고 부릅니다 (안과 바깥, 남자와 여자, 주체와 객체, 서양과 비서양 등)
포스트구조주의 = 현대사상이란 한마디로 '차이의 철학'이라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차이의 철학이란 반드시 정의에 들어맞는 것은 아닌 어긋남(간극)이나 변화를 중시하는 사고입니다.
"대립을 탈구축한다는 것은 우선 어떤 일정한 순간에, 위계질서를 전도시킨다는 것입니다."
(들뢰즈: 존재의 탈구축)
고정적인 질서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운 외부에서 새로운 관계성을 넓혀 갈 것, 자신의 껍데기를 깨고 뛰쳐나갈 것 등을 격려하는 메시지를 보낸 철학자.
세계는 차이로 이루어져 있다.
동일성보다 차이가 먼저라는 사고방식입니다.
모든 동일성은 가고정적이다.....동일성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영원불변하고 하나로 굳어진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관계 속에서 일실적으로 그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모든 사물을 상이한 상태로 '되는' 도중입니다.
모든 것은 중도이고, 진정한 시작이나 진정한 끝은 없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도전을 해서 스스로 준안정상태를 만들어 나가라....
'진정한 나의 본모습'을 탐구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를 하자, 여러 가지를 하다 보면 어떻게된 될 것이다.
(푸코: 사회의 탈구축)
지배를 당하고 있는 우리는 사실 그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받는 것을 적극적으로 바라는' 구조가 있다.
근대사회의 핵심은 지배자가 비가시화된다는 것
근현대 사회는 규율 훈련과 생명정치라는 두 바퀴로 움직이고 있다.
(현대사상의 원류 :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질서의 외부, 혹은 비이성적인 것을 다룬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니체: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맞버팀)
우선 디오니소스적 에너지가 중요하며,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일이 성립되지 않으면, 아폴론적인 형식과의 맞버팀에서 무언가가 성립합니다.
(프로이트: 무의식)
무의식적으로는 무엇인가 성적인 에너지의 응어리가 있고, 그것이 외견상 성적으로 생각되지 않는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내 안의 무의식적인 말과 이미지의 연쇄는 내 안의 '타자'이다.
무의식이란 과거의 여러 사건이 우연적으로 어떤 구조를 형성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의 알 수 없음은 과거의 여러 연결의 우연성 때문이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란 억압된 무의식이며, 그것은 이야기(서사)적 의미 아래 꿈틀거리는 율동적인 사건들의 무리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하부구조인 거죠.
인간에게 필터 같은 것이 갖추어져 있고, 그것을 통과한 것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필터를 빼고는 세계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말이 좀 어렵지만, 이 필터를 칸트는 '초월론적인 것'이라고 불렀어요.
감성, 이성, 오성이라는 세 가지가 얽히는 것이 칸트의 OS(운영체계)입니다.
칸트의 <순서 이성 비판>은 새로운 유한자 = 근대적 인간의 존재 방식을 처음으로 명료하게 분석한 획기적인 작업이었습니다.
(마르크스: 힘과 경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에 대해 임금을 받는데, 이 임금은 생활에 필요한 금액이고, 결과적으로 임금에 상응하는 것 이상으로 생산하게 되어 그 잉여의 이익, 즉 '잉여가치'를 사용자= 자본가가 뱅땅을 친다는 매커니즘입니다.
착취당하고 있어도 쾌적하기 위해 스스로 자진해서 (착취당할)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정신분석과 현대 사상: 라캉, 르장드르)
인간은 과잉의 동물이다.
정신분석은 인간에 대한 하나의 정의를 줍니다. 그것은 '인간은 과잉의 동물이다'라는 것입니다.
과잉, 혹은 질서로부터의 일탈성, 저는 자주 '인간은 에너지를 남긴다'라고 말합니다.
애초에 과잉이며, 정리되지 않은 인지의 에너지를 어떻게든 제한하고 정류해 나간다는 것이 인간의 발달 과정이다.
인간은 인지 에너지를 남긴다.
칸트가 현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상계와 상징계이 조합입니다. 인간은 이미지(감성)과 언어(오성)에 의해 세계를 현상으로서 파악합니다. 그러나 그 맞은편에 현실계(물자체)가 있으며 그것에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접속하려고 하면 계속 실패합니다.
(현대사상을 만드는 방법)
데리다 : 원- 에크리튀르(타자성)
사실상 세계는 근본적으로 에그리튀르적 차이가 도처에 있는데도 이를 부인하고 있다는 것을 세계의 초월적인 전제로서 발견합니다.
데리다는 파롤(말하는 말)과 에크리튀르(글로 쓰인 것)을 대립시켜 사람들이 파롤적이라고, 즉 진리에 가깝다고 간주하는 것이더라도 결코 순수한 진리일 수 없고, 항상 거기에는 어긋남이나 오해의 가능성이 있다. 즉 모든 것에는 '원(原)-에크리튀르'라는 면이 있다고 합니다.
들뢰즈: 차이 그 자체로
동일한 A와 B 사이의 차이가 아니라 '차이 그 자체'가 세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라는 존재론이 나오게 됩니다.
레비나스: 존재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철학자는 타자의 문제를 배제해 왔다, 그래서 타자 쪽으로 향하는 철학을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이니다.
존재론이라는 극단적 추상성에 저항하는, 근본적인(radical) 의미에서의 타자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21세기에 들어서 서양에서의 포스트-포스트구조주의 전개는 포스트구조주의적 동일성과 차이의 이항대립을 더욱 탈구축하는 형태로 전개되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라부 : 형태의 가소성
모든 것은 가고정적이로 형태를 가지면서도 차이화하고 변화해 간다라는 유형의 차이 개념을 제출..
메이야수: 절대적 실재와 그 변화 가능성
인간의 해석에 좌우되지 않는 그저 단적으로 동일적으로 존재하는 물자체로서의 실재..
(포스트-포스트구조주의)
메이야수의 주저 <유한성 이후>는 21세기 프랑스 현대사상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저작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변적 실재론의 등장)
인간에 의한 의미 부여와는 관계없이, 그저 단적으로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사물 쪽으로 향한다는 방향입니다.
의미보다는 그 자체로서 있는 것을 문제 삼는 신종 실재론이 등장했습니다.
모든 존재자 = 객체는 근본적으로 제각각이며 절대적으로 무관하게 존재하며 관계는 이차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기술하는 세계는 그것을 보증하는 근원적인 의미가 전혀 없고, 언제 어느 때, 전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 버려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수수께끼의 X를 파고들지 않고, 생활 속에서 과제(task)가 하나하나 완료되어 간다는 그런 이미지의, 담당한 유한성입니다. 주체란 우선 행동의 주체이지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의 신체가 실재한다. 그것에 깊은 의미는 없다.
신체의 근본적인 우연성을 긍정하는 것, 그것은 무한한 반성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문제와 유한하게 씨름하는 것입니다.
[ 자평 ] 다 못알아 읽어지만...뇌를 때리는 신선한 독서란 이러 것이다.. 몰라도 쾌감스러운.....통쾌...
데리다, 들뢰즈, 푸코, 메이야수, 하먼, 라퀴엘 등 현대사상가에 대하여 쓴 책으로 저자가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1978년 생) 철학자이자인 지바 마사야라는 분이로, 일본 ‘신서대상 2023’ 대상을 수상했다고 하여 읽었다.
꽤 전에 읽었던 국내 서적과도 결이 유사하다.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은 2 1세기 현재 가장 주목받는 사상가 25인에 대해여 간단히 소개한 자료이다.
이 책보다는 깊이나 넓이나 맥락이 휠씬 더 좋고 탄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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