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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들

분노의 포도 by 존 스타인벡

비즈붓다 2023. 11. 1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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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1장)

 

바람은 한밤중에 조용히 이 땅을 떠났다.

 

한참 후, 이를 지켜보던 남자들의 얼굴에서 망연한 표정이 사라지고 강인함과 분노와 저항이 나타났다. 여자들은 이제 남자들이 주저앉지 않을리라는  것, 위험이 지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남자들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그 어떤 불행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다. 

 

(4장)

 

"안녕하십니까? 저 길이 지옥보다 더 덥군요."

 

"나는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름을 받았지만, 사람들을 이끌고 갈 데가 없어."

 

"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어. '에라 모르겠다! 죄는 없어. 미덕도 없고. 그냥 사람들이 하는 이런저런 일들이 있을 뿐이야. 그건 전부 같은 거야. 사람들이 하는 일 중에 어떤 건 좋고 어떤 건 나쁘지만,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어쩌면,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건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인지도 몰라. 어쩌면 그게 바로 성령인지도 몰라. 바로 인간의 정신. 사람들이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대도 말이지. 어쩌면 모든 사람이 하나의 커다란 영혼을 갖고 있어서 모두가 그 영혼의 일부인지도 몰라."

 

 

(5장)

 

 

그 괴물은 계속 자라지 못하면 죽어 버려요. 계속 같은 크기로 있을 수 없단 말입니다.

 

 

땅은 쇠뭉치 밑에서 열매를 맺고, 쇠뭉치 밑에서 점점 죽어 갔다. 땅을 사랑하는 사람도 증오하는 사람도 없고, 땅을 위한 기도도 저주도 없었기 때문에.

 

 

"방법을 찾아야 해. 우리 모두. 이 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이건 벼락이나 지진하고 달라. 이건 인간이 저지른 짓이라고. 그렇다면 틀림없이 우리가 막을 수 있을 거야."

 

(6장)

 

"저 녀석이 어디로 가는 것 같아요?" 조드가 말했다. 

"평생동안 거북을 봤는데, 녀석들은 항상 어디론가 가고 있더라고요. 항상 어딘가로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사는 곳은 바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야.

 

"도움이 필요할 거야. 그 어떤 설교에서도 얻을 수 없는 도움이.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데 천국의 희망이 무슨 소용이겠나? 우리 영혼이 슬픔에 잠겨 기가 꺾였는데 성령이 다 뭐야?  도움이 필요할 거야. 그 사람들은 죽기 전에 먼저 제대로 살아 봐야 해."

 

 

(8장)

 

어머니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그것을 두 팔 벌려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가족의 요새며, 그 요새는 결코 점령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위대하면서도 하찮아 보이는 가족 내의 그 위치에서 어머니는 깨끗하고 차분한 아름다움과 위엄을 얻었다.

 

 

(10장)

 

"감옥에 있을 때 어땠는지 아세요? 거기서는 자기가 언제 나가게 될지 생각하면 안 돼요. 그랬다가는 미쳐 버리니까.

그냥 그날 하루하루만 생각해야 돼요."

 

"설교는 사람들한테 뭔가 얘기를 해 주는 것이지만, 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질 거야. 그건 설교가 아니잖나, 안 그래? "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할 생각이 있느냐가 문제죠." 어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못해요. 캘리포니아에도 못 갈거예요. 하지만 할 생각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내겠죠."

 

 

(11장)

 

일에서 느끼는 경이가 사라져 버릴 만큼 쉽고, 땅을 경작하면서 느끼는 경이가 사라져 버릴 만큼 효율적이다.

경이가 사라지면 땅과 일에 대한 깊은 이해와 다정함도 사라진다.

 

 

(12장)

 

여긴 자유의 나라예요.

그럼 뭐 자유를 조금 얻으려고 해 보쇼. 사람들 말로는 자유도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다고 하던데.

 

지독하게 잔인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믿음에 영원히 불이 켜질 만큼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13장)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지치기만 할 뿐이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게 되는 삶은 하나뿐이야. 만약 내가 그 가능성들을 다 생각해 본다면 견디기 어려울 거다."

 

"그 사람들이 가는 데가 어디요? 거기 가서 뭘 하려는 거지?"

톰이 말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지. 어딘가 살 곳을 찾아가는 거요.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그게 전부요."

 

"다들 똑같은 질문을 하더군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되는거냐고. 내가 보기에 우리는 결코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항상 무엇을 행해 가고 있을 뿐."

 

 

(14장)

 

 

(15장)

 

그들은 안정을 갈망하지만, 안정이 지상에서 사라져 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저길 좀 봐"

그녀가 커피 잔 옆의 동전 두 개를 가리켰다. 50센트짜리 동전 두 개였다...

"트럭 운전사들이란." 메이가 경탄과 존경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눈은 고속도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삶이 휙휙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곳을.

 

 

(16장)

 

"그런 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전 그냥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을 뿐이에요....

감방을 드나들 때도, 식당을 오갈 때도 계속 한 발 한 발 걸었다고요."

 

 

(18장)

 

"거기선 살 수 있겠소?"

"아뇨. 하지만 굶어 죽더라도 우리가 아는 사람들하고 같이 있을 수는 있죠.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 옆에서 굶어 죽지는 않을 겁니다."

 

"그 말을 하지 말걸. 사람은 항상 현명한 척하면서 사람들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고 싶어 해서 탈이라니까."

 

(19장)

 

지주들이 더 이상 농장에서 일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그들은 서류로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그들은 땅의 냄새와 느낌을 잊어버렸다.

 

지주들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농장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20장)

 

"톰. 우리 같은 사람들은 계속 새로 나타나. 절대 불안해하지 마라. 톰. 다른 시대가 오고 있어."

 

"계속 가고 싶은 곳으로 갈 거예요. 설사 기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21장)

 

재산을 갖지 않은 사람이 재산을 가진 사람의 고통을 어찌 알겠는가?

 

사람들은 스스로를 다그쳐 잔인한 사람이 되었다.

 

 

(23장)

 

목사들....하지만 그놈들도 나름대로 취해 있잖아.

 

개혁가들....그놈들은 삶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해서 사실을 모르는 거야..

 

 

(24장)

 

"변화가 오고 있어. 어떤 변화인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그 변화를 보지 못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분명히 변화가 오고 있어. 뭔가가 들떠 있는 느낌이야. 사람들은 뭔가 알 수 가 없어서 이렇게 불안해하고 있는 거야."

 

(25장)

 

과일 썩는 냄새가 캘리포니아 주 전체에 퍼져 나간다. 이 달콤한 냄새는 이 땅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커다란 슬픔을 보여 준다. 나무를 접붙일 줄도 알고 씨앗을 심어 크고 풍요로운 열매를 길러 낼 줄도 아는 사람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굶주린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른 열매를 먹일 길이 없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익어 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

 

(26장)

 

"죄를 지으려 해도 적어도 2달러가 드는데, 우린 그럴 돈이 없어요."

 

"좋은 걸 한 가지 배웠네요. 항상 배우고 있죠. 매일.

사람이 곤란해지거나 다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땐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라는 것. 남을 도와주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뿐이라니까. 그런 사람들뿐이에요."

 

"그래. 자네 말이 맞는 것 같네. 자기가 직접 당해 봐야 알겠지."

 

(28장)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잘 변해요. 여자들은 삶을 모두 가슴에 품고 있고, 남자들은 머리에 품고 있죠."

"꼭 집어서 말하기는 어려워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내가 보기에는 그냥 삶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이루어지는 일 같아요......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려고 애쓰는 거예요. 하루하루."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예요. 괜히 걱정할 필요 없어요."

 

(29장)

 

 

(작품 해설 : 주렁주렁 열렸던 분노의 포도가 공동체에 대한 사랑으로 : 조철원(서울대 영문과)

 

<분노의 포도>는 문학작품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나 문제 제기가 없는 선전물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작품이 감상적으로 끝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다. 

 

하워드 리반트나 워렌 프렌치는....<분노의 포도>는 존 포드를 포함한 조드 가족 모두의 정신적 성장을 세밀하게 그려 낸, 스타인벡의 "완숙한 경지에 이른 예술 작품"이라고 극찬을 했다.

 

개별적인 조드 가족의 아픈 이야기가 아니라 고통 받는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룰 수 있는 것

 

성실한 노력으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어 온 미국인들의 꿈의 신화가 여지없이 깨진 것을 의미한다.

 

개개인의 존엄성에 궁극적인 가치를 둠에 따라 개인 자신의 노력을 통해 신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케이시의 신념은 19세기 사상가 에머슨이 주장한 초절주의 사상이 뿌리박힌 종교인의 모습이다.

 

조드 가족 개개인에게 케이시의 초절주의적 신념의 내면화가 이 소설의 전개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톰 조드의 어머니가 가진 힘 - 좀더 근원적이면서 삶의 뿌리를 지켜 내고자 하는 의지의 결정체 - 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스타인벡은 감상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좀 더 근원적인 힘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으며 결국 그것에 힘입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모든 불행을 견디어 내고 회생할 수 있는 질긴 인간의 생명력을 마지막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 자평 ]  영화가 더 나은 것 같고, 소설에 대한 비평과 반론을 다 읽어 보면 비평에 마음이 더 간다. 

 

영화가 너무 감명 깊어 사두고 읽기를 미뤄 왔던 소설을 바로 꺼내서 읽어 보았다. 

 

보통 원작 소설이 있는 경우 (특히 그 소설이 너무나 유명하다면)  그 수준을 넘는 영화가 나오기 힘들다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영화가 너무 너무 훌륭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톰을 연기한 헨리 폰다(Henry Fonda 1905 ~ 1982년), 어머니를 연기하여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제인 다웰(Jane Darwell, 1879 ~ 1967년)을 소설에서 상상한 부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어머니가 이렇게 (약간) 뚱뚱하신 체질은 아닌 것 같기는 하다. 

 

무엇 보다도 영화가 소설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결말 부분이다. 아마 존 스타인벡이 소설을 다시 쓴다면 결말을 영화처럼 끝나고 싶었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끝냈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영화의 각본을 쓴 누덜리 존슨(Nunnally Johnson, 1897 ~ 1977년)에게 결말 처리 부분은 감사해야 할 것 같다. 

 

해설자의 해설에 나온 것처럼 소설의 결말에 대한 부분이 일부 비평가가 지적하는 것처럼

나도 의아하고 신선하지는 못했다. 김이 화 빠진 느낌이었다.

 

해설자의 말씀처럼 '스타인벡은 감상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좀 더 근원적인 힘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으며 결국 그것에 힘입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젖을 물리는 장면을 통해...근성에 깊이 배어 있는 강한 생명으로의 회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가 한 것이다.' 라는 부분은 이해가 되었느나  지금은 꽤나 알려진 루벤스 '시몬과 페로'(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의 그림과 해설이 팍 떠오르는 허망한 결말이었다. 

 

젖을 먹는 노인과 젊은 여인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젖을 먹는 노인과 젊은 여인

젖을 먹는 노인과 젊은 여인    그림 속에는 젊은 여인이 젖가슴을 드러내 놓고 있고 옷을 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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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이렇게 끝난 것인가? 뭔가  있을 듯이 끝나야 한다는 독자의 기대를 저자가 미리 예상한 결말일까?

저자가 소설에서 은근히 비춰 주듯이  그저 삶이란 어제와 오늘 내일은 그저 그러한 흐름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했는가?라는 의문이 들지만....

 

즉 강렬함이나 종결되거나 뭔가를 기대하거나 희망하는 독자들의 눈빛을 꺽을 수 있는 평범함의 한수를 보여주고자 한 것인지???

 

이런 저런 의문 처리라 해도 영화처럼 끝내 다면 더욱 소설의 맛이 있었을 듯 하다.

 

레미제라블처럼 행동하는 민중도 아니고,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무의미를 받아 들이는 무의미한 개인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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