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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고통 같은 희열 속에서 현실의 시간을 건너 영화의 시간으로 넘어 갔고, 그 안에서 순간이지만 영원 같은 평온에 침잠할 수 있었다.
<리스본 스토리>에서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가 들려주었던 소박한 독백이 떠올랐다. 영화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억이자 그 시간의 그림자라는 것.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왕가위의 <아비정전>)
아비의 마지막 독백...."어디로도 갈 수 없었던 발 없는 새. 처음부터 죽어 있었던 새."
영화가 진정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규칙적이고 객관적인 시간이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불연속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모두 각자의 시간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불규칙하고 주관적인 시간은 이후로도 왕가위의 영화를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 레오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
어디까지 가느냐는 미셸의 물음에 "끝까지"라고 짧게 답한다.
이 격정적 사랑 이야기는 무엇보다 인물들의 '몸'을 통해 전달된다......
그와 가까워질수록 그녀 역시 점차 언어라는 인위적 표현 수단을 내려 놓고 온몸으로 내면의 감정들을 표출하게 된다.
몸을 통한 감정의 표현은 이러한 자기 검열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생의 그늘을 비추는 죽음의 빛 :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
삶에 내재된 죽음, 남겨진 이의 이야기, 순환하는 시간, 가족에 대한 단상 등 이후로 그의 영화를 특징지을 요소들이 서늘한 침묵 속에서 아름다운 영상을 매개로 종교하게 교합되어 있다.
고레에다의 영화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원을 그리며 순환하는 것이다.
그의 표현처럼 "한 바퀴를 돈 다음 조금 다른 곳에 착지하는" 시간.
(세기말, 우리 모두를 위한 멜로드라마 :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내 어머지의 모드 것>)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을 발표하기 전까지 약 20년 동안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은 거의 항상 '악'의 근원이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으며 거짓과 악행을 일삼았다.
그녀에게 주어진 세번째 에스테반/남성이지만, 또다시 희망의 끈을 놓치 않는 것이다.
극중극 형식으로 삽입된 두 작품 - 영화 <이브의 모든 것>과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이 이 영화의 이야기와 끊임없이 겹쳐지면서 평범한 서사구조를 매혹적인 것으로 바꿔놓는다.
특히 그가 사랑하는 붉은색은 욕망이나 열정보다 생명와 희망을 상징하는 색으로 사용되면서 영화의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표현해낸다.
(열병 같은 사랑의 기억 :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의 <열대병>)
감독은...."사랑은 고통이다. 집착하기 때문이다. 더이상 갈망하지 않을 때 당신은 진정 행복해질 수 있다."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 차이밍량의 <애정만세>)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랑의 가능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 파스빈더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삶의 의미를 잃고 감정마저 잃어가는 독일의 전후 세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차이밍량의 영화에서 침묵은 기본적으로 현대 대만 사회에 급속도로 유입된 서구 문명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말을 할수록 소통이 더 어려워지고 더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을 알기에, 이들은 침묵으로 간신히 서로를 붙들고 있다.
까만 암전 위로 들리는 그녀의 울음소리는 지금의 고달픈 시간이 미래에도 그대로 이어질 거라는 사실을 예고한다.지독한 고독과 공허가 청춘을 지나도 변함없이 우리의 삶을 지배할 거라는 사실, 그리고 사랑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애정만세라니, 이 얼마나 잔인한 냉소인가!
(영원한 아웃사이더의 유랑 일기 : 난니 모레티의 <나의 즐거운 일기>)
1976년 스물 세 살의 청년 난니 모레티......21년 후, 모래티는 정말로 완벽하게 자급자족하는 영화인이 된다. 제작에서부터 각본, 연출, 배급, 상연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전 과정을 스스로 해결하는 유일무이한 일인 제작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그의 태도는 철저한 반-권위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오랫동안 이탈리아인들의 정신을 병들게 했던 선민의식과 권위의식을 그 근본까지 도래내 없애버리고 싶은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기억의 도시 리스본, 기억으로의 영화 : 빔 벤버스의 <리스본 스토리>)
"눈부신 햇살처럼 빛나는 소리를 듣고 싶다.". 이 영화는 마치 페소아의 이 한 문장으로부터 시작된 듯하다.
감독 벤버스....그에 따르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억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카메라에 포착된 시간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영화는 그 시간의 그림자를 그려낸다. 영화는 우리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음에 대한 기록이자 기억인 것이다.
리스본은 유럽이 이미 지나오고 잊어버린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는 도시이고, 여전히 그 기억 속에서 살고 있는 도시다.
(우리는 왜 이토록 고독한가 :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현대사회에서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비장소(non-lieu, non-place)' 들에 주목한다.
비장소는 도로, 공항, 기차역, 호텔, 쇼핑몰 등의 공간과 각종 통신수단과 교통수단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장소가 관계적이고 역사적이며 개인의 정체성을 특징짓는 공간이라면, 비장소는 관계적이지도 역사적이지도 않고 정체성과도 관련 없는 공간이다. 비장소는 유기적인 사회성 대신 고독한 계약성을 만들어내며, 사람들은 비장소에 수시로 모이면서도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서로 고립된다.
비장소든 장소든, 인물들은 도시의 공간들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한 채 단지 유령처럼 스치며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서로에게 '거짓'을 말하고 있는 세상,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속이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반복하는 세상.
그곳에서 진실은 아무런 가치도 얻지 못하며, 그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오히려 삶의 표면 아래 묻혀 있어야 하고, 어쩌면 표면 위로 삐쳐나오면 비국이 시작된다.
에드워드 양의 영화에서 집착과 비이성은 종종 평온한 일상의 껍질을 뚫고 분출되는데, 그 분출의 결과는 주로 폭력과 죽임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에 감도는 비린 내 :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
린위탕의 동명 에세이에서 아무 뜻 없이 빌려 온 제목처럼, 인물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단지 자신의 욕망과 집착만을 확인할 뿐이다.
홍상수는 에릭 로메르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의 한 계보를 이어간다고 할 수 있다. 로메로의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영화에서도 중요한 것은 삶의 외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사건들이 아니라, 그러한 외적 사건들의 매 순간마다 등장인물의 머릿속에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들 혹은 내적 사건들이다.
"모든 일은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일어난다"는 로메로의 언급처럼, <생활의 발견>에서도 모든 일은 경수의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삶도, 영화도 계속되어야 한다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길이 있어야 삶이 가능하고, 길이 사라지면 삶도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에서 길이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이고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에서 길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이라면, 이 영화에서 길은 지진으로 끊어진 삶을 다시 이어주는 길이라 할 수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어디까지가 영화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의 영역인가?
키아로스타미에게 영화란 그 자체로 '또하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소년을 보라 : 다르덴 형제의 <약속>)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특징짓는 주요 요소들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일종의 원형 같은 영화다.
저예산 제작, 동시대 사회문제, 비전문배우 같은 기본 요소들에서부터 핸드핼드 촬영, 파편화된 공간, 음악이 배제된 사운드 같은 형식적 요소들을 모두 아우른다.
다르덴 형제 역시 배우 제레미 레니에를 통해 소년 이고르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버려지고 쓸모없는 것들에 대하여 : 아녜스 바르다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버려지거나 폐기되더라도 여전히 고유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존재들이다.
그녀에게 '이삭줍기'와 '영화 만들기'는 동의어인 것이다. 그녀는 이삭을 줍듯 평생 동안 세상을 돌아다니며 삶의 조작들을 그러모았고, 그 여정에서 버려지고 잊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녀에게 영화는 쓸모없어지거나 망각되는 것들, 혹은 너무 평범하거나 보잘것없어서 금세 우리의 관심에서 사라지는 것들의 의미를 되살려내고 고정시키는 작업이다.
(늙어감에 대하여 : 마노엘 드 올리베이리의 <나는 집으로 간다>)
"어떤 나이가 되면, 인간은 삶이 아닌 시간과 대면하네.
삶이 영위되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지.
삶을 산 채로 집어삼키는 시간만 보이는 걸세.
그러면 가슴이 저리지." (파스칼 키냐르, <로마의 테라스>)
정신적, 유체적 쇠락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사회적 쇠락이다.
쇠락은 곧 '자기소외'로 이어진다. 장 아메리가 <늙어감에 대하여>에서 말한 것처럼, 노년의 진실은 내가 '나 아닌 나'가 되는 깊은 충격에 있기 때문이다.
늙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뿐 아니라 세계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하며, 세상의 겉모습만을 의식한 채 절반의 자아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희망 없는 곳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기 :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과거가 없는 남자>)
미니멀리즘 또는 '미학적 금욕주의'라고도 불리는 그의 스타일은 배우에게 최소한의 동작과 표정 연기만을 허용하며, 절제된 카메라 움직임과 간소한 세트를 고수한다.
켄 로치처럼 소리 높여 주장하지 않고, 다르덴 형제처럼 냉정하게 현실을 도려내 보여주지 않지만, 대신 소박한 시정과 유머로 그들의 각박한 삶을 위로해준다.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
짓밟히고 내몰려도 어떻게든 버티는 사람들, 비현실적인 열악한 현실을 견디며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환영 속의 외줄 타는 곡예사름 닮았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밖에는, 계속 살아가는 것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그 매혹적인 꿈의 기계 :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모든 것은 환상일 뿐이다."
데이비드 린츠에게 영화 만들기는 "이성으로부터 벗어나 불가사의한 것과 가늠할 수 없는 것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오래전에 잊혔던 초기 영화인들의 꿈을 다시 소환해 완벽에 가깝게 구현한다. 현실과 맞물려 있는 꿈의 세계를 생생한 이미지들로 보여줄 뿐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마법 같은 힘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휴머니즘이라는 환상 :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
스스로 이 영화를 '문학과 연극과 영화의 결합체'라고 언급할 만큼, 무엇보다 문학과 연극에서 차용한 양식들이 두드러진다.
하늘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관찰하는 신, 그러나 인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해줄수도 없는 비정하고 무능한 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도그빌>은 서구 근대적 인간의 이상적 가치를 모두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우선 '민주주의적 인간'....
아울로 '계몽적 인간' 또는 '이성적 인간 상'도 철저히 파괴된다.
더 격렬하게 부정되는 것은 '기독교적 인간'이다. 이는 예수를 육화한 그레이스의 모습을 통해 실행된다.
영화는 좀더 솔직한 관계 맺기를 제안한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는 없으며, 절대적으로 희생해야 하거나 고통받아야 할 존재도 없다. 무조건적인 용서 또한 종교적 기망에 휘둘린 어리석은 오만일 뿐이다.
카메라로 쓴 애도 일기 : 구스 반 산트의 <엘리먼트>)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하지 못한다.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을 조금씩 사라지게 할 뿐이다."
-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누구는 좀더 속물적이며, 누구는 내향적이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을 끝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잘못은 그들에게도 있다 : 미카에 하네케의 <히든>)
자크 파니젤의 다큐멘터리 영화 <파리의 10월>....
미카엘 하네케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40여 년 동안 이런 비극이 은폐되어왔다는 사실에 아연실잭하다. 그리고 영화 <히든>(2005)을 구상한다.
특히 하네케는 문학토론 프로그램 진행자인 주인공과 그 주변인들의 모습을 통해 프랑스 '중산층-지식인'의 이중적 태도를 문제삼는다. 말로는 온갖 자유의 향연을 즐기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과오엔 침묵하고, 문화, 경제, 교육 등 모든 기회를 다 누리면서도 그들이 지배했던 타자들의 고통과 불행에는 눈을 감는 태도에 분노한다. 현대 프랑스 사회의 핵심인 이 중산층-지식인의 철저한 위선이 사회 주변부에 남아 있는 증오의 기억을 더 심화시키고 지속시키는 주요 원인임을 고발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자 않았다 : 크리스티안 문쥬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체계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도, 누군가는 얽히고설킨 폭력의 구조 아래서 착취당하고 있다. 또 여전히 악의 평범한 얼굴을 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새로운 희생양을 찾고 있다.
[ 자평 ] 영화가 보고 싶고, 영화감독을 알고 싶게 만드는.... 제대로 그 목적을 달성한 미끼를 아름답게 던진 책..
영화평론전문가 1990년에서 2007년 사이에 발표된 영화 중 의미 있는 걸작, 총 24편을 선별하여 소개하는 책이다.
책이 좋아서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 보는 중에 <조르주 페렉>의 번역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의 다른 책을 사냥해야 겠다. 이 책으로 이 저자의 충분히 먹잇감이 될 만함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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