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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한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어떤 인식의 틀에 맞추어 사물들에 질서를 부여하고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무의식적 인식의 틀을 '에피스테메'라고 하며, 푸코는 이 에피스테메가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고 주장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모든 문제는 철학자들이 언어를 잘못 사용하여 발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언어를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모든 철학적 문제들이 자연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쓴 책이 바로 <논리철학논고>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합리화하는 존재'입니다.

 

카뮈는 우리가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부조리한 감정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러한 부조리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는 헛된 희망을 가져봅니다.

 

부조리한 삶에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은 자기기만입니다. 여우가 먹지 못하는 포도가 시다고 자기기만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냥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살라고 합니다. 그는 그것을 '반항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카뮈에게 '반항한다'는 것은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입니다. 

삶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냥 행복하게 현재를 살라는 것입니다. 

 

 

즉자- 대자- 존재가 바로 자기의식입니다. 그런데 자기의식은 다른 자기의식에 의해서 인정받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식은 항상 어떤 자기의식에 대한 자기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의식을 가진 존재들은 끊임없이 인정받기를 욕망합니다.

 

 

니체의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는 말은 뒤집어서 이해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라."는 뜻입니다. 

 

이 현실세계의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가정하더라도, 현재와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것은 고도는 그 무엇도 아니고, 따라서 고도를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며, 이들의 모든 대화나 행위도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사무엘 베케티는 말년에 단테의 <신곡> 이 한 권의 책만 읽었다고 합니다.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입구에는 이런 말이 씌어 있다고 합니다. "이 문에 들어서는 자여, 희망을 버려라.

사무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희망을 버려라. 고도는 오지 않는다."

 

라캉은 의식은 언어의 세계이고, 무의식은 언어를 벗어난 세계라고 합니다. 

언어의 세계를 상징계, 언어를 벗어난 세계를 실재계라고 합니다.

 

세상에 벌어지는 사건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듯이, 그레고리가 왜 벌레가 되었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고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어느 날 아침 벌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이라는 것이죠.

 

철학자 흄은 '자아'라는 것은 없으며, 자아라고 생각되는 것은 단지 감각과 생각의 다발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러셀은 '나'는 실체로서 존재하는 어떤 것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사태를 기술하는 불완전한 기호일 뿐이라고 합니다.

 

 

요점은 우리는 실체가 아닌 것을 문장의 주어 자리에 놓음으로써, 그것이 마치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물이 나의 밖에 먼저 존재한다는 입장을 실재론, 나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사물이 존재한다는 입장이 관념론입니다.

그 중간에 걸쳐 있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고요.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없음. 그것이 바로 그가 유죄인 이유입니다.

 

내가 말하고 내가 듣는 것, 이것이 바로 '생각'입니다. 

언어가 곧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 없이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강한 인류원리, 버클리의 이론, 양자역학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우주는 존재한다."

 

 

 

[ 자평 ]  쉽게 썼다. 

 

우연찮게되 김필영씨의 책을 꽤 읽었다.

이제 그가 기존의 철학자의 이론을 쉽게 풀어쓰는 작업은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이런 목적의 책은 수없이 많고, 이런 목적을 잘 달성한 책도 수업이 많다.

그 이상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칸트는 플라톤의 철학을 쉽게 설명해 줘서 철학자가 된 것이 아니다.니체는 칸트의 철학을 쉽게 설명해 줘서 철학자가 된 것이 아니다.

 

철학 선생과 철학자는 인간과 돼지 보다 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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