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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두 가지 난제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곧 누군가가 와서(또는 새로운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는 믿음이다.

---> 우리 시대가 아니라 인류의 문제였다는 관점이 더 맞는 것 같다.

10년 안에 아프리카의 광활한 지역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이 될 것이다.

 

10년 안에 인간보다  똑똑한 기계가 일상을 지배할 것이다.

서구 산업국가의 '보조 작업대' 역할을 하면서 약간의 부를 얻었던 아시아 저임금 국가들에게 이는 특히 재앙이 될 것이다.

 

기술의 진보와 지금의 자본주의는 환상의 짝꿍이 아니다.

기술이 파괴적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은 많은 부분 이익 극대화 때문이지,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기술 진보의 원동력이라는 미신이 널리 퍼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디지털 기술 그리고 파괴적 기술이라는 말은 이제 그만 써야 한다.

기술 자체는 그 어느 것도 파괴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우리가' 기술을 어디에 투입하느냐에 달렸다.

 

(다섯 가지 오류: 시스템 오류인가, 오류 시스템인가)

평등과 힘의 균형은 모델에만 존재할 뿐, 진짜 세계는 휠씬 기이하게 작동한다. 양자와 비슷하다.

모델과 다른 현실의 다섯 가지 오류...

 

(첫 번째 오류: 확산하는 독단주의)

테러로 인한 서구 국가의 사망자는 미국의 총기 희생자 혹은 독일의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휠씬 적다.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은 역시 모순되게 행동하기 혹은 논리와 인과관계만이 아니라 적어도 감정에도 이끌리는 것을 의미한다. 

 

소셜 미디어는 필터버블로 가짜 뉴스를 수천 번씩 공유하면서 도그마를 강화한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메아리가 울리는 작은 방을 만들고, 사용자는 자신이 그 방 안에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것은 소위 '인식의 폐쇄' 현상을 부추긴다. 

 

독단주의의 반대는 회의론이다. 독단주의는 하나의 주장을 불가침의 진리로 선언한다. 회의론자는 모든 가정을 시험대로 세운다. 

 

독단주의를 극복하려면 회의론에 집중해야 한다. 철학적 회의론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세계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회의론은 우리가 감각을 통해 언제나 부정확한 정보를 얻고 그래서 우리가 세우는 모든 가설 역시 언제나  부정확하다고 말하다. 

 

인간은 완전한 진리에 결코 도달할 수 없지만,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자세로 조금씩 조금씩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

---> 나도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내 블로거의 어떤 분이 남긴 댓글 중 "책만 보지 말고 사람과 현실을 보라는 충고....사람 속에 진리가 있다"고 한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책에도 진리는 없지만, 사람 속에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나 차라리책에 진리가 있다고 믿는 것이, 어느 특정 사람이 진리를 알고 있다고 믿는 것보다는 사회적 피해/폐해가 적다고 본다. 

 

우리가 믿어온 모델과 이론을 점검하고 개선하고 혹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오류: 치명적 정보사회)

관심,권력, 추종세력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굉음을 내는 경쟁

사실과 생각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감정에 이끌리는 싸움.

이런 사회에서는 감정을 가장 격렬하게 높이는 사람이 주도권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클릭 수는 혼란스러운 우리의 정보사회에서 가장 견고한 화폐가 됐다.

 

정보는 지식과 같은가? 아니다.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아니다.

첫째, 당신이 정말로 이해한 것만이 당신의 진짜 지식이다.

그게 아닐 경우에는 그저 저장만 했다가 앵무새처럼 재생할 뿐이다. 

정보를 지식으로 바꾸려면, 정보에 의문을 제기하고 평가하고 분류해야 한다.

 

둘째, 정보는 인터넷 시대에 범람하는 데이터 흐름에 불과하다.

정보는 진실 혹은 거짓, 왜곡 혹은 허구일 수 있다. 

 

가상세계에서는 신체적, 정서적 경험을 통해 진실성 혹은 타당성을 점검할 기회가 없다. 

 

(세 번째 오류: 길들여진 생각)

교육시스템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지식을 여전히 머리에 집어넣고 있다.

둘째, 비판적이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전문가의 말을 그대로 믿도록 가르친다.

 

미래의 지식이 점점 더 기계와 자동화 과정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현대 직장인들 대부분이 오늘날에 벌써 몇십 년 전의 직장인들보다 지식과 기술이 휠씬 덜 필요해졌다.

 

가까운 미래의 노동자들이 배워야 할 기술은 사회성, 감성, 공감, 윤리적 행동 등이다.

 

 

(네 번째 오류: 미완의 자본주의)

인류의 마지막 종교는 현재 물질주의 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인 것 같다. 

 

우리가 이제 정말로 해야 할 일은 마르크스의 작업을 21세기 맥락에서 새롭게 정리하는 것이다.

중산층을 안정시키는 힘과 빈부격차를 해소할 해결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병적인 중독에 해당한다. 소비중독자는 구매한 제품이 곧바로 행복, 만족, 자신감, 더 큰 자의식을 선물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환각이나 헤로인과 마찬가지로 그 효과가 오래 가지 않는다. 

 

(다섯 번째 오류: 고장난 민주주의)

현대 민주주의의 중요한 시스템 오류 중 두가지...

첫째, 알고리즘 시대에 감성에 기초한 결정이 무제한으로 조작된다.

둘째, 지구화된 세계에서 국내 정치인의 힘이 약화되면서 세계가 거짓 약속과 퇴보의 길로 들어선다. 

 

정치인들이 기후변화, 지구화된 경제, 디지털화 같은 키워드를 종종 입에 돌리더라도, 그들 대부분은 정말 중대한 과제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다니엘 에이멘(Daniel Amen)이 <여성의 뇌는 힘이 세다>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여성은 신경학적으로 현대세계의 요구와 맞다. 에이맨이 여성의 강점 중 특히 리더의 자질로 인정하는 다섯 가지는 공감, 협동, 직관, 자제력, 책임의식이다.

여성의 뇌는 합리적 '자아'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원시적인 뇌 부위의 공격성과 패닉 프로그램을 잘 통제한다.

 

거절, 두려움, 슬픔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애정과 충성심을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자만과 허영, 분노와 혐오 같은 특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인공지능, 나노기술, 바이오테크놀로지 세 기술은, 산업혁명 이후의 기술적 사회적 변혁보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의 현실을 바꿔 놓을 것이다.

 

양자물리학의 몇 가지 일반 용어들을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AI는 실시간으로 의사결정을 모방 혹으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통계, 신경망, 알고리즘, 피드백순환, 패턴인식을 조합하여 학습할 줄 아는 기계인 것이다.

 

양자 유토피아로 가는 길의 토대는 무한, 순환, 상호의존이다.

 

탈물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양자경제 시스템에서는 재화가 공정하게 배분되고, 현재의 화폐가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양자 유토피아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지성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

오늘날의 '의무사회'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의식적으로 자유롭게 구성하는 '가능성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미래에는 경영진과 직원의 책임 있는 태도와 행동, 그리고 기업의 윤리적 방향이 기업의 성공을 결정할 것이다.

 

철학자는 책을 쓴다. 실용적인 철학은 세계를 바꾼다.

 

[ 자평  ] 용두사미. 문제점은 심각하게, 해결책은 <시크릿> 방식으로....이런 책은 내용이 나빠서가 아니라, 내 돈과 시간을 빼앗는 기회 비용이 크다는 것이다. 차라리 다른 책들을 읽자. 

 

1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읽을만 했다.

2부: 양자 유토피아 부터는 짜증이 났다. 

 

이렇게 제대로 되고 철저한 지식 바탕이 없는 분들 (이분법으로 정리하면 인문학적 배경만 있는 분들)이 양자 물리/양자 영학을 얼씬 거린 후 대강/대충의 지식을 얻으면 이런 형편 없는 책을 쓴다.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시크릿> ,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왓칭>과 같은 과학 스러운  용어를 차용한 <유사과학>도 안되는 작품이다. 

 

이런 멍청한 주장과 논리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가끔 백신을 맞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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