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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오, 세상에서 보기 드문 늙은 고래요.

그대의 집은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힘이 바로 정의인 곳에 사는 힘쎈 거인이여,

그대는 끝없는 바다의 왕이로다.

- 고래의 노래

 

(제1장) 어렴풋이 보이는 것들 

돈이야말로 지상의 모든 악의 근원이고,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우리가 진지하게 믿고 있음을 생각하면, 사나이가 멋진 활동으로 돈을 받는 것은 참으로 경탄할 만한 일이다. 아아! 우리는 얼마나 기꺼이 우리 자신을 파멸에 내맡기고 있는가!

 

(제5장) 아침식사 

어떤 사람이 자신을 유쾌한 웃음거리로 제공한다면, 그 사람이 부끄러워서 꽁무니를 빼지 않고 기꺼이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고 남의 웃음거리가 되게 해주어라. 자신에 대해 실컷 웃을 거리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많은 것이 들어 있을 게 분명하다.

 

(제9장) 설교

우리가 하느님에게 복종하려면 우리 자신을 거역해야 합니다. 하느님에게 복종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을 거역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기쁨은 이 지상의 거만한 신들과 선장들을 거역하고 그 자신의 확고한 자아를 내세우는 자에게 있습니다. 이 비열하고 배신적인 세상의 배가 발밑에서 가라앉고 있을 때 튼튼한 두 팔로 아직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자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제16장) 배 

고귀하지만 웬지 모르게 우울한 배! 고귀한 것들은 모두 그런 기미를 띠고 있는 법이다.

 

(제24장) 변호

나는 모든 명예와 영광을 포경업에 돌린다고 여기서 미리 밝혀두겠다.

포경없은 나의 예일 대학이며 하버드 대학이기 때문이다.

 

(제26장) 기사와 종자들 

"고래를 두려워하는 자는 내 보트에 절대로 태우지 않겠다"고 스타벅은 말했다. 이 말은 가장 믿을 수 있고 쓸모 있는 용기는 위험에 맞닥뜨렸을 때 그 위험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데에서 나온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겁쟁이보다 휠씬 위험한 동료라는 뜻이기도 했다.

 

이 위험한 바다에 나온 것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 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지, 고래의 생계를 위해 고래한테 죽으러 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36장) 뒷갑판

자네는 좀 더 낮은 층을 볼 필요가 있어. 돈을 모든 가치의 척도로 삼는다면, 그리고 회계사들이 이 지구를 계산대로 삼아 기니 금화를 1센트미터마다 하나씩 놓아서 지구를 둘러싸는 방법으로 계산했다면, 분명히 말하지만 내 복수는 거기에 막대한 프리미엄을 가져다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41장) 모비딕 

복수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에이해브가 광적일 정도로 과민해져서 결국에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지적/정신적인 분노까지도 모두 흰 고래와 결부시켰다는 점이다. 흰 고래는 모든 사악한 존재의 편집광적 화신으로서 에이해브의 눈앞을 끊임없이 헤엄치게 되었다.

 

 

 

(제72장) 원숭이 밧줄 

자네는 깊이를 잴 수 없는 바다 속에서 헐떡이고 있지만, 그 바다야 말로 '인생'인 것이다. 그 상어들은 너의 적, 그 고래 삽은 너의 친구, 상어와 삽 사이에서 가엾은 자네는 슬픈 곤경과 위험에 빠져 있다.

 

(제89장) 잡힌 고래와 놓친 고래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자유는 '놓친 고래'가 아니고 무엇인가?

모든 인간의 마음과 의견은 '놓친 고래'가 아니고 무엇인가.

 

(제94장) 손으로 쥐어짜기 

나는 오랫동안 되풀이된 경험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경우든 자기가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결국에는 낮추거나 어떤 식으로든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행복은 결코 지성이나 상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나 연인,침대, 식탁, 안장, 난롯가, 그리고 전원 등에 있다.

 

(제99장) 스페인 금화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세상에 청하는 자는 수고에 비해 얻는 것은 보잘것없다.

세상은 자신의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통 속에서 태어난 인간은 고뇌 속에서 살고 고통 속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도 좋다고 하자.

여기에 재난이 닥쳐오는 것을 꿋꿋이 견뎌내는 사나이가 있노라! 그것도 좋다고 하자.

 

(제104장) 화석 고래 

광범위하고 개방적인 주제의 장점은 이렇게 우리 자신까지도 확대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 주제의 크기만큼 커지는 것이다. 웅대한 책을 낳으려면 웅대한 주제를 선택해야 한다. 

벼룩에 대한 책을 쓰려고 시도해본 사람은 적지 않겠지만, 벼록에 대해 웅대하고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진 책을 쓸 수는 없다. 

 

'시간'은 인간과 더불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제107장) 목수 

인간을 고도로 추상화된 개념으로만 바라보라. 

그러면 인간은 참으로 경이롭고 위대하며 비애 자체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지점에서 인류를 집단으로 바라보라.

그들은 대부분 쓸모없는 복제품으로 보인다.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과거와 현재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다 엇비슷한 복제품 같다.

 

(제108장) 에이해브와 목수

걱정 말게. 나는 꽉 죄는 게 좋아. 이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나를 꽉 잡아줄 수 있는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

 

(제109장) 선장실의 에이해브와 스타벅

이렇게 으르렁거리는 인생의 강풍속에서 어떻게 구멍을 막는단 말인가? 스타벅, 나는 고패를 감지 않겠네.

 

 

선장님은 웃을지 모르지만, 에이해브는 에이해브를 경계해야 합니다. 

영감님, 자신을 조심하십시오

 

(제110장) 관 속의 퀴퀘그

사람들은 살고 죽는 것이 자신의 의지와 욕구에 달린 문제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이 살기로 결심하면, 고래나 폭풍이나 그 밖의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무지막지한 파괴자의 손에의해서만 죽을 뿐, 단순한 질병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제114장) 도금장이

뒤섞이고 뒤엉킨 삶의 실오라기는 날줄과 씨줄로 역이고, 평온한 날씨는 반드시 폭풍과 교차한다. 

우리의 삶에도 온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결같은 전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정해진 단계를 거쳐 나아가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멈추는 것도 아니다.

 

(제119장) 세 개의 양초

흰 고래를 잡겠다는 너희들의 맹세는 내 맹세만큼 구속력을 갖는다. 

그리고 이 늙은 에이해브는 심장도 영혼도 육체도 허파도 생명도 모두 그 맹세에 묶여 있다. 

 

(제123장) 머스킷 총

 

 

(제125장) 측정기와 측심줄

괜찮을 거야. 영감. 

오랫동안 열을 받고 물에 젖은 자네는 못쓰게 됐나?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자네가 목숨을 붙잡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목숨이 자네를 붙잡고 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군.

 

(제127장) 갑판

오오! 세상 만물은 얼마나 하찮은가. 헤아릴 수 없는 사념 이외에 그 무엇이 진실로 존재하는가? 

지금 여기에서는 가장 무서운 죽음의 상징인 관이 단순한 우연으로 가장 절박한 위험에 처해 있는 생명에 대한 구원과 희망의 표상이 되어 있다.

 

(제132장) 교향곡

오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

고귀한 영혼이여! 위대한 정신이여! 그 가증스러운 고래를 무엇 때문에 추적해야 합니까! 

 

 

 

(제133장) 추적- 첫째 날

나약한 사람들이 자비롭게도 평생에 걸쳐 조금씩 받는 가벼운 고통을 위대한 사람들은 이따금 한순간에 단 한 번의 깊은 고통으로 응축시킨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그 깊은 고통을 겪을 때마다 즉시 회복되기는 하지만, 신들의 뜻이라면 순간순간의 강렬한 고통을 그대로 축적시켜 평생을 고뇌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이 고매한 사람들은 나약한 영혼의 전체 범주에 해당하는 것을 무딘 중심점에 집약시키기 때문이다.

 

(제135장) 추적- 셋째 날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 옮긴이의 덧붙임 ---------------------------

 

모비딕은, 리어왕, 폭풍의 언덕과 함께 영어로 쓰인 3대 비극으로 일컬어진다.

 

작가 멜빌은 인간의 모든 역사를 비극으로 보고,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의 지리적 팽창을 비참과 오염의 확대로 보고, 바다와 별을 포함한 우주의 생성을 무언가 위대한 존재가 저지른 과오로 인식한다.

 

밤의 어둠을 밝힐 불빛의 원료를 얻기 위해 끝없이 팽챙해가는 고래사냥이라는 '종족 말살'.

방자하게 남획하여 결국에는 포획할 대상이 없어진다는 우스꽝스러운 공포.

그것이 미국식 공격형 자본주의를 암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성적 무의식 영역의 팽창을 암시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멜빌 시대의 청교도주의에 대한 반발과 반동은 다양한 인간 긍정적 종교사상이나 세계관으로 나타났는데,

말하자면 선의의 사상, 선의의 세계관이었다. 철인 에머슨이나 시인 휘트먼, 자연인 소로 등이 인간 찬가를 노래했다.

그런데 유독 멜빌의 비극 의식은 세계에 대한 부정으로,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깊이 역행하고 첨예화한다.

그리고 무거운 회의주의로 침착해간다. 

 

[ 자평 ] 모비딕 - 단어와 문장으로 쌓은 히말라야 !!!

 

이것은 히말라야다.

단어로 쌓은 히말라야요, 문장으로 만들어진 우주다.

 

2020년 9월 14일 ~ 2021년 3월 1일... 약 거의 6개월이 걸렸다.

책이 커서 들고 다닐 수가 없어,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조금씩 읽고 출근을 했다.

 

우선 이 책은 김석희교수님께 정말 고마워 해야 할 것 같다....

번역 뿐 아니라 옮긴이 각주가 없었다면 이 책을 어떻게 읽어 냈겠는가.....

역자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책이 몇 권이나 되겠는가........

 

일리아스, 오딧세이아 그리스 원전을 번역해 주신 천병희 교수님...

돈키호테 스페인 원전을 번역하신 안영옥 교수님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 원전을 번역하신 유재원 교수님...

 

 

책은 영화보다 호흡이 길다.

책은 시간과 땀을 요구한다. 

책은 그런 만큼 원시적이고 육체적이다.

영화 처럼 팝콘이나 먹으면서 앉아 있는다고 배달해 주는 감동이 아니다....... 

뇌를 통해서 이해하면서 눈으로 직접 단어를 밀고 나가야 한다.

내 뇌와 눈과 속으로 직접 밀어 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책이 영화보다 더 인간적이고 덜 자본주의적이며 좀 더 평등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책은 원시적이다....

 

기쁨과 허전함이 공감한다....

하루 하루 밥벌이에 바쁜 대한민국 직장인 중에 몇 명이나 이 책을 완독하겠는가??! 라는 도전 의식으로 읽었다.

이 거대한 문장의 히말라야와 단어의 우주를 내가 진실로 끝까지 밀어 내었구나라는 자기 만족이 샘솟았다.

 

아. 이런 것을 명작이라고 하는구나?! 라는 허전함으로 끝났다....

에이헤브의 죽음과 함께 책도 끝나고 나의 도전도 끝났다. 

 

내가 본 첫 모비딕은 어릴 때 주말의 명화? 또는 토요 명화에서 본 <백경>이다..

그저 함 미친 아저씨가 고래 잡다가 죽은 영화였을 뿐이다..

 

1956년 영화이니 아마 재방송된 영화를 봤을 것이다.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 '그레고리 펙'이 저런 연기도 하는구나.....

(로마의 휴일이 1955년 작품이나 그레고리 펙은 1년 만에 이런 연기 변신에 도전한 것이다...)

(멋진 아저씨다...)

고래에 매달려 시체로 떠 오르는 장면 정도가 기억나는 정도였을 뿐이다.

 

 

이 소설은 꽤나 지루하다.. 과장해서 한 2/3는 지루한 것 같다.......

고래에 대해서, 포경선에 대하여 쓸데 없어 보이는 것 까지 아주 조목조목 쓰여져 있다.

 

왜 저자는 이렇게 썼을까? 글재주가 없어서???
만일 이 지루한 부분이 없고...

고래와 싸우는 장면으로 바로 나아 갔다면 이 작품은 더 명작이 되었을까? 

 

고래와 싸우기 위한 기다림.....지루함.. 기다림...지루함.....

우리 삶은 지루하다....싸우기 위해서 지루하고......싸우지 않기 위해서 지루하다..

 

위대한 것은, 삶은 매우 꽤나 지루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랬을까? 

 

멜빌은 이 책을 31세 때 썼다고 한다.

나는 31세때 무엇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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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선으로 더 배우기)

(독서의 즐거움 by 수잔 와이즈 바우어)

 

이 소설은 상징주의를 연습한 두툼한 연습장이라 하겠다. 

(위험한 독서의 해  by 앤디 밀러)

<모비 딕>은 정확히 말하자면 '내던지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길고 읽기 힘들며 난해한 골치거리다. 

 

<모비 딕>은 천재의 작품이다. 그 책의 천재성은 다소 어둡고 초자연적이다. 

 

고래의 순백색, 그 초현실적 공백은 20세기 초부터 줄곳 성적, 정치적, 영적, 군사적, 우주적, 개인적 - 무엇이든 간에 당대 사회의 강박 대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말해보라, 이 세상에 노예 아닌 사람이 있는가?" 나는 나 자신에게 흰 고래는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비평가 집단이 <모비 딕>을 인정한 것은 새로운 세기가 오고 세계대전과 모더니즘의 혁신이 한 차례 지난간 후였다. 이 책의 독자가 유의미하게 늘어난 것은 2차대전 이후의 일이다. 

 

1851년 출판된 <모비 딕>은.....40년 후에도 초판 3000부가 소진되지 않았을 정도였다. 

 

<모비 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비적인 수수께끼다. 그리고 그 놈의 붙잡기 어려운 흰 고래야말로 소위 '잊혀버린 상징'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멜빌은 임종 당시에  <빌리 버드>라는 중편을 쓰던 중이었다....멜빌이 소설을 집필하던 책상 안쪽에 풀로 붙여놓은 정열적이면서도 서글픈 문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그대, 청춘의 꿈에 충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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