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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들으려 애쓰지 않아도 들리는 이것.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보이는 이것. 이것이 스스로의 참 모습이다.

중생과 부처는 깨침과 상관없이 본바탕은 그대로 다 똑같습니다.
단지 지금 쓰고 있는 1차 작용이 참 주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기만 하면 깨친 것이고 곧장 수행에 들어가는 겁니다.
지금 보고 듣는 이 물건이 바로 그 깨침이고, 그 깨침이 바로 지금 보고 듣는 이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듣는 바로 이 작용입니다.
45년 불법의 핵심이 바로 이것뿐 입니다.

1차 작용: 생각 이전에 바로 보는 자리

---> 위험하다. 그대로 이해하고 믿는 다면 위험하고 어리석은 문장이다.
---> 시간과 공간을 돌아서 제 자리로 온 자와, 원래 제 자리 있던 자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 고양된 의식을 나는 '꼬임'(spiral dynamics)이라고 본다...중심축에서 보면 같은 자리인 듯 하지만 3차원으로 보면 높이가 다른 것이다.....2차원으로 보면 어제 그 자리가 바로 그 자리지만 3차원으로 보면 바로 그 자리가 어제 그 자리가 아니다.
---> 또한 2차원이건, 3차원이건 같은 자리라고 하려면 한 번 돌아 와야 한다.


---> 그리고 이는 인지심리관점에서도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뇌간/소뇌 등 1층뇌만 작동하고 2층뇌, 3층뇌는 작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깨달음 사람이라는 건가? 이런 사람은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아닌 것이다....


'1차 작용'
실상은 생각이 일어나기 전 눈에 닿으면 바로 보고, 귀에 닿으면 바로 듣는 이 자리입니다.
생각으로 알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지금 바로 작용하는 것. 인위적으로 보려고 하거나 들으려고 해서 알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 답답하다....
---> 이는 별스럽지도 않고 뇌와 인지심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만 있어도 당연히 아는 것이다.
---> 감정과 본능에 대한 반응을 해석하려면 이성의 뇌가 작동을 해야 한다.....
---> 1차 작용만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 매우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사회에 해를 끼칠 수도 있는 대단히 무서운 사람일 확률이 높다.....
---> 내가 깨달은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그런 분이 있다고 하면 그 분도 당연히 1층/2층/3층 뇌가 다 우리처럼 100% 작동을 할 것이다. 저자의 말씀처럼 1차 작용만 작동하는 사람은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 갈 수 없다.

이렇게 주장자를 들면 보는 데까지는 실상이 그대로 작용한 1차 작용인 것입니다.
보고 난 후에 상상을 통해 덧붙여진 그림이 바로 2차 작용이에요.
2차 작용의 허상에 묶이면 꿈을 꾸는 것처럼 되어 버립니다.
생각할 필요 없이 단순하게 바로 보는 이 자리.
1차 작용!
실상 작용!
그 뒤에 상상을 덧붙여 이미지화 되면서 마음에 갖가지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
2차 작용!
허상!
--->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는지는 대강 알겠다.
---> 하지만 제대로 전달하려면 지식을 좀 쌓아야 한다. 세상 지식, 세상 언어를 배워야 한다. 이는 1차, 2차의 문제가 아니고 우놔와 좌뇌의 문제다...
---> 같은 말을 세상 지식을 쌓은 서양의 선사는 어떻게 풀어 내는지 좀 배워야 한다. 요즘 세상에 어떤 사람의 글을 읽고 어떤 사람의 말을 배울지 이는 명확한 것이다....마음 타령만 하지 말고 좀 배워야 한다.


---> 좀 더 깊게 알고 싶으면 제럴드 M. 에델만 (Gerald Maurice Edelman)의 책을 읽으면 된다.
---> 에델만은 깨달은 자가 아니지 않냐고? 글로만 보았을 때는 이 책을 쓴 분의 글이 깨달은 분의 글이라는 것은 또 어찌 알겠는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한다. 둘 다 고양된 의식을 가리키고 있다면 좀 더 달에 가까운 글은 에델만이다.....내 경험으로는 의식의 각성에 대한 관점에서 읽는다 해도 에델만의 책이 1000% 낫다. 통찰력 이나 명상적인 배움 측면에서도...
이런 분들이 평생을 화두 하나를 들듯이 에델만 같은 사람도 평생을 '의식'이라는 화두를 들었다고 보면 된다.
차이가 있다면 선사분들은 생대사를 마쳤다고 '오도송'을 쓰지만 에델만 같은 분을은 안 것과 그 과정을 검증받고 공유하기 위해 '논문'이나 '책'을 쓴 다는 것 뿐이다..
----> 이에 대해서는 에델만의 책이.. 책이 부담스럽다면 아래 블로거를 쓰신 분이 잘 정리해 주신 내용이 있다.
([신경과학과 철학 사이] ‘에델만의 의식 이론’ 후기 및 6월 1일(금) 차시 예고 - 세미나자료 - [수유너머104] 지식공동체 (nomadist.org))


"1차 의식은 기억된 현재이다."

"변연-뇌간 시스템과 시상피질계, 이 두 시스템은 진화과정 중 서로 연결됐다. 이 두 시스템이 만나서 1차 의식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후에 진화한 피질계는 점점 복잡해지는 주변 환경에 적합한 학습 행위에 도움이 됐다. 이 행위는 초기 변연-뇌간 시스템에 의해 조정되는 생리적 욕구와 가치에 도움이 되도록 선택되었음이 분명하기에 그 두 시스템의 조화는 학습에 있어 결정적인 부분이다. 피질이 세계의 범주화와 관계가 있고, 변연-뇌간 시스템이 가치와 관련이 있다면(즉 진화론적으로 선택된 생리학적 유형들에 대해 조정을 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 학습은 가치라는 배경 위에서 범주화가 가치를 만족시키는 행위에 적응적 변화를 낳게 하는 수단으로서 간주될 수도 있다."


"고차 의식:언어에 물든 세컨드 네이처"

"인간은 언어라는 상징으로 구성된 가상세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제1의 자연Nature’에서 살고 있지만 자연을 직접 만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참조하고 있는 자연은 ‘제2의 자연Second nature’이다. 실제 물리적 자연과 합일하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의식에 존재하는, 자연스럽게 표상된 자연을 제2의 자연Second nature’이라고 명명하였다. 즉, 인간의 지각은 자연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지각하는 자연은 기억에 의해 해석된 자연이라는 의미이다. 이 가상세계는 내부의 본능적 가치(욕구)작용이 외부의 감각신호와 결합하여 의미와 목적으로 변형된 세계가 된다. 자아라는 것, 세계라는 것도 모두 뇌가 만들어 낸 가상세계이다.

“동물은 감각장에 구속되어 있고, 인간은 의미장에 구속되어 있다.”

상상의 세계가 가짜인 줄 먼저 바로 알고 난 후 거기에 묶이지 않는 연습을 통해 그림의 노예에서 벗어나면 해탈한 것입니다.

생각에 관여 하지 않은 것은 곧 일어나는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실재의 세계인 실상. 1차 작용
상상의 세계인 허상. 2차 작용
실상과 허상은 본래 나눌 수 없는 것입니다.
---> 나를 크게 웃게 한 문장.
---> 큰 일이다. 우리 나라 불교계의 어른 이라는 분들의 지식 수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회적 지식 수준의 평균도 못 따라가는 지식으로 전달하려는) 전달력이란...
---> 정확하게 나는 이 분의 깨달음 수준을 모른다. 깨달음 자체를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내용을 전달하는 한국어로 쓰인, 말해진 지식을 표현한 단어의 수준을 문제 삼는 것이다.
---> 정확하게 전달을 하시려면 적어도 '크리스 나이바우어 (Chris Niebauer)'가 어떻게 동일한 것을 세상 지식 수준에 맞는 단어로 풀어 내는지 배우셔야 할 듯 하다.

1차 작용 후 상상으로 만들어진 허상이 실제처럼 착각되어 뒤집힌다.
1차 작용이 일어나는 바탕의 근본은 모양이 없기 때문에 어떤 형상으로도 볼 수 가 없다.
근본 모양으로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어떤 형상으로도 인식될 수 없으며, 작용하고 남는 것은 단지 2차 작용을 통한 상상의 그림일 뿐이다.

무아...
하나의 견해를 세움으로써 그 관념에 묶이는 것을 타파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

공..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생멸을 반복하면서 임시 가립된 것.
내면으로부터 인식되어온 모든 형상은 전부 공일 뿐...

[ 자평 ] 어른의 글로 알고 읽으면 된다. 지식이나 지혜의 글로 알고 있으면 아깝고 아쉽고 웃긴다.

자칭/타칭 큰스님...'깨달았다'는 분들께도 남들을 가르치려면 세상 지식 공부가 필요하다.
깨달음은(정확히는 깨달은 상태 후는) 공부가 필요 없겠지만, 깨달음을 전달을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아주 기본적인 뇌과학이나 인지 심리학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고....경제의 원리 등 도 필요하고....세상 사회가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현대의 논리를 좀 배워야 한다 등 등.....

깨달음과 깨달은 자는 다른 것이다.
(그 분들의 말대로 )깨달음은 전달할 수 없다고 하여도, 깨달은 자가 전달할 깨달음의 내용은, 깨달은 자가 지니고 있는 세상 지식의 수준에 따라 전달 수준이 달라 진다. 세상의 지식과 언어로 전달을 하려면 깨달은 자도 공부를 좀 해야 한다...
세상 지식을 더 많이 아는 깨달은 자가 깨달은 내용을 더 잘 전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더 잘 전달하든, 더 덜 전달하든, 아주 전달하지 않기로 했든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다.
하지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제발 세상에 대한 기초 지식을 좀 배우시기를........

너무 허접하면 의심되고, 위험한 법이다. 시간을 들여 읽은 것이 화가 날 때도 있다.
이 어른이 주장하는 1차 작용이라는 것은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오감으로 지각된 외부 자극이 전기 신호로 바뀌어 심상을 형성한 그 단계를 말하는 것 같다......이 단계에서 머물러 있어야 깨달음이고......기억과 비교하여 판단, 예측하는 2차 작용이 끼어들면 중생의식이라고 보는 것 같다...

답답하다....
불교에도 <중론> <유심론> 이라는 멋진 심리학 이론이 있지 않나?
불교도가 아닌 나도 <중론>이나 <유심론>에 대한 해설서는 몇 권 읽어 봤거늘.....이런 기본적인 사항만 알아도 이런 글은 안나올 텐데.....


<중론> <유심론>은 불교 이론이니, 스님들이 좀 배우지 않나?
선불교 탓에 하루 종일/주구장장 화두만 들고,,,,, 주장자들고 억소리 할소리나 내나?
홀로 깨달아 홀로 존재한다면 모를까? 이렇게 대중을 상대로 깨달음을 전달하려면 세상 지식을 좀 배워야 한다....
깨달음이 우습지 않듯이......세상 대중도 그렇게 우습지 않다......
자칫하면 본인의 깨달음 자체도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염화미소만으로 깨달음을 전단할 세상은 2,500년 전에 지났다.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불문에서는 부처외에 깨달은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붓다의 무아, 연기 사상은 (원음 그대로 인지 모르지만) 지금 읽어도 독특하고 대단하다....
깨달음으로 읽지 않고 이론으로 읽어도 독특하다....
불교도가 아닌 사람이 읽어도 무아, 연기, 공 등 그의 사상은 분명 한 경계가 다른 것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확연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후 대단스럽고 요란스러운 큰 스님들의 말씀과 언어는 내 생각에 그 분의 재탕/삼탕이었다......
깨달음이 하나의 경지라면 재탕/삼탕이라도 원탕과 같은 향기와 맛이 나야할 텐데.... 나 같은 허잡한 사람이 봐도 해상도가 매우 떨어지는 copy & paste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여 '살부살조'란 말로 붓다를 만만하게 보는, 심지어 자기와 같은 경지로 보는, 오만한 세손들을 볼 때 웃음이 나 온다.... 저 많은 뻥글과 뻥말 값을 죽어서 어찌 갚으려고 하는지.....

(현재 선사들은 자신이 세손 79대손이라 주로 말한다...참 우습다. 이게 무슨 족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이렇게 세간에 깨어 있는 지식인보다 수준이 못하니 누가 이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까?
석가모니부터 직계 전승되어 경허,명공,전강 선사로 이어진 육조정맥 - NDNnews)

적어도 내가 보기에 지금 (자칭) 불세손 79손이라 자칭하는 분들이 붓다와 마주 한다면 '살불살조'는 커녕 그 눈빛 하나도 마주하여 거두어 내지 못할 것이다.... 붓다는 자비롭겠지만.... 그 사상과 이론에는 칼 같은 치밀함이 있다.....그는 허접하지 않고 치밀하고 꼼꼼하며 논리적이다 . 분명 그 분은 100% 그 전의 누군가를 베껴 쓰고 말하는 것이 분명 아니다.....



한자경 교수님이 새롭게 책을 냈다. 구매하여 이 답답함을 좀 해소하여 볼 까 한다.
베끼고 배우고 깨닫고 쓰고 말하려면 이 정도 경계는 되셔야 붓다에게 부끄럽지 않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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