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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선사들의 어록

비즈붓다 2020. 7. 14.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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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성철스님의 입적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 불교도가 아닌 나도 관심이 많았다. 

 

그 계기로 아마 1991년에 나온 조계정 종정들의 삶과 말씀(법어)을 모아 놓은

정휴스님의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란 책부터 읽었을 것이다.

(내가 읽은 것은 1991년 판인데, 1998년, 2000년 판 모두 절판이다.)

(동산, 효봉, 청담, 고암, 서옹, 성철, 월하, 혜암 등 여덟 분의 종정) 

 

 

정휴쓰님이 1991년 펴낸 '백척간두에서 무슨 절망이 있으랴' 도 절판이다. 

(15명의 선사들과 김일엽스님의 얘기였다고 한다.....책은 애석하게도 화재로 타 버렸다)

 

 

 

이후 선, 선사에 매력에 빠져서 한 동안 다양한 책들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 

대충 기억나는 것으로는

이원섭 시인의 깨침의 미학

 

 

소설 토정비결의 작가 이재운씨의 '목불의 태워 사리나 얻어볼까'

 

 

유명한 선사들의 어록은 '선림고경총서'로 몇 권이 나왔었는데 현재는 전부 절판상태라 구하기가 어렵다.

선림고경총서를 포함하여 유명한 선사들의 어록은 나도 꽤 가지고 있었는데

2000년 초반 시골집이 불이 나면서 전부 소실되었다.

(아마 임제록하나 타다 만 것이 있어 그나마 구한 것 같다.)

(선림고경총서로 발행된 중국의 유명산 선사 뿐 아니라 국내 경허, 만공, 효봉, 혜암 등....꽤 많이 있었는데....ㅠㅠㅠ)

 

 

다행스러운 것은 무심선원 김태완원장께서.. 

요즘 세대에 맞게 요즘 언어로 간간히 다시 번역을 하신다는 것이다.

 

 

 

 

 

 

 

 

2000년 중반쯤 이후로 나는 선사들의 어록을 떠났다.

불교 자체에 관한 책을 거의 읽지는 않는다...

(근래에 산 책은 데이비드 J. 칼루파하나 (David J.Kalupahana)의 책 정도다)

 

 

이유는?

 

첫째, 대중화되고 큰스님화(영웅화)되고 자본주의화된 고양된 정신팔이가 지나친 것 같다.

특히 깨닫고 나면 (실제 깨달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생대사(一生大事)를 다 마친 것 같은 허영스러움

이를 넘어 세상사 모든 일에 대해 정답을 안다는 듯이 즉문즉설을 하는 오만스러움이 보일 때..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서양의 한 철학자보다 못한 조언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특히 스님이 책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가장 나쁜 선례를 남긴 책은 부터..

 

 

너무 많은 문제에 대해서 코칭을 하는 책까지....

 

 

자기계발서 작가까지..

 

 

백성호 종교담당 기자가 쓴 '현무우답'에는 가관이 나온다..

"왜냐고요? 수행과 깨달음을 너무 ‘신화화(神話化)’했기 때문이죠. 수행담이 ‘땅 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 너머의 이야기’가 돼버린 거죠. 수행을 위해 손가락을 태우고, 토굴에 들어가 하루 한 끼만 먹고, 수십 년간 자리에 눕지 않고, 죽을 때도 앉은 채로 입적하는 것을 마치 ‘깨달음의 필수 조건’ 혹은 ‘깨달음의 징표’처럼 여기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누워서 돌아가신 스승을 일으켜 앉혀서 사진을 찍고, ‘ㄴ’자로 관(棺)을 짤 정도가 돼버린 겁니다. ‘좌탈입망(座脫立亡)’이란 신화를 만들기 위해서죠"

 

 

특히 어느 큰스님이란 분은 약력에 '석가 정통 법맥 잇는 79대 법손 ㅇㅇㅇ 큰스님'이라는 말에 나는 파안대소를 했다.

홍보 기사를 보면 대강...

"불교에서는 먼저 깨달은 스승이 제자의 법을 점검하고 인증서를 주는 독특한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법맥의 뿌리는 석가모니 부처의 수제자인 마하가섭에서 시작됐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법이 28대 보리달마를 기점으로 중국으로 넘어갔고 57대 태고보우 때부터 한국으로 넘어왔다. 서산대사로 유명한 63조 청허휴정을 거치면서 이어져 오고 있다. 근세사에서의 법손은 75조 경허성우, 76조 혜월혜명, 77조 운봉성수, 78조 향곡혜림 00 스님은 석가로부터 이어져온 정통 법맥을 잇는 79대 법손이다. 지금까지 종정 가운데 정통 법맥을 잇는 선승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스님의 종정 추대는 한국 선불교 역사상 의미가 남다르다는 게 불교계 평가다."

--> 웃기고 웃길 노릇이다. 정말.... 

--> 경제학계의 무슨 학파 노릇도 아니고, 어느 분은 자기가 어느 분의 제자다 보니 "금오스님은 경허(鏡虛) 만공(滿空) 보월(寶月)선사로 이어지는 한국불교 정통 선맥(禪脈)을 이었다."라고 주장한다.

--> 가장 유명한 선사 성철 스님은 성철 스님은 용성-동산으로부터 선맥을 이은 것라고 제자들은 주장한다. 
--> 불교의 법통은 혜능 33대로 완전히 끊어진다. 이는 나 같은 불교도가 아닌 사람 중 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금방 배울 수 있는 역사다. 석가로 부터 1대 마하가섭 -> 2대 아난 -> 27대 반야다라가 인도 마지막 법맥이다.

-> 달마가 28대로 달마는 중국에서 1조가 된다 -> 2조 혜가 -> 3조 승찬 -> 4조 도신 -> 5조 홍인 -> 6조 혜능. 끝..

1조 ~ 6조도 중국선종이 그냥 이렇게 한 것 아닌가 싶다....

--> 다만 절에서 아침에 종을 28번, 저녁에 33번을 치는 것은 선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한다.

--> 불교신문을 검색해 보니 아침의 28번은 시방세계 즉 욕계 6천天, 색계 18天, 무색계 4天 등 28계(界) 세상을 다 열어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는 소리이고, 저녁의 33번은 제석천왕이 머무는 선견궁을 포함한 도리천 등 33천에 각각 부처님의 음성이 널리 울려 퍼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 또한 북종선을 연구한 혜원스님은 '북종선'이라는 책에서 타당한 주장을 한다.

"신수 대사가 그토록 오랜 세월 폄하돼 온 이유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나 할까. 실제로는 신수가 뒤늦게 홍인과 인연이 닿았고 혜능과도 30년 이상 나이차이가 나는 것을 감안하면 혜능은 신수를 알았을지라도 신수는 혜능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신수에 대한 폄하는 무지이며 단견이다. 기존의 논리체계와 알음알이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철저하게 타파하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선이다. 오히려 신수가 깨달음의 방편으로 선을 화엄, 정토, 계율과 연결시켰던 점은 오늘날 한국 선의 방향설정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둘째, 깨달음 자체가 무엇인지도 공감대가 없는 업계의 현실...

 

 

--> 현응스님은 <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에서 "깨달음이란 잘 이해하는 것. 지혜와 이해의 영역이며, 선정수행을 통해 이루는 몸과 마음의 높은 경지를 뜻함이 아니다."라고 한다.

--> 이에 수불스님은 "수행을 직접 안 해보고서는 모르는 소리를 한다고 현응 스님을 비판한다" 그는 " 깨달음은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은 사유의 영역을 초월한다."라고 한다. "진리란 잘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보고 얻고 알고 깨우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의심을 뛰어넘고, 의혹을 제거하고, 두려움 없음을 얻을 수 있다. 이해하는 것만으로 안된다는 것을 수행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면 너무나 잘안다"고 했다. 

--> 수불스님은 특히 "이해하는 것만으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전세계 불교학자들마다 깨달았다고 해야 할 것"이라며 "깨달음이 이해라는 주장은 수행자들을 모두 바보로 만드는 회론이자 책상물림의 말"이라고 비판한다.

--> 수불스님은 "돈오를 확실하게 체험하면 단박에 본래 괴로움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제거해야 할 미혹은 물론 이루어야 할 깨달음마저도 없다는 실상이 밝혀진다"고 했다..

--> 진짜 이런지는 모르지만, 진짜 이런 경지에 있는 사람을 우리가 조사들이 말한 책 외에 어떻게 알 수 있는지? 

 

--> (고)신영복교수님은 동양고전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의미는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라고 한다. 박병기교수는 '깨달음의 사회화, 그 당위성과 방향'이라는 논문에서 이를 받아 선불교에서의 깨달음은 결국 현실과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 특히 교수님의 아래 말씀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한국불교계의 수행분위기와 관련된 비판 중 하나인 '깨달음에 대한 환상'과 그로 인한 막행막식 문화의 잔존 등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깨달음을 그 자체로 목적으로 삼는 무명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뭇삶의 고통을 직시함으로써 극복하기 위해 수행한다."

 

셋째, 깨닫는 방법 자체에 대해서도 공통된 의견이 없는 현실...

(돈오 vs 점수, 해오 vs 증오, 간화선 vs 위빠사나 등 등 )

 

 

 

나는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닌 바른 삶으로서의 붓다의 가르침이 굉장히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붓다의 원래 말씀을 들을 방법이 없고,

또한 2500년 전의 말씀으로 오늘의 시대상과 맞지 않는 면도 있을 거라 본다.

 

그런 측면에서 붓다와 같은 눈높이를 가진 현대를 사는 분의 가르침이 있다면

오늘 우리에게 더 없이 중요하고 소중하리가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눈높이를 가진 분인지 아닌지는 나 같은 사람의 낮은 시선으로는 알 수 없다.

대부분은 나이들고 그런 자리에 있으면 그런 눈높이를 가진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듣는다.

 

하지만 요즘 나는 불교계에서 자칭/타칭 큰스님이라 하는 분들의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 선종()에서는 내려오는 ‘불립문자ㆍ직지인심ㆍ견성성불(  )’ 중

(특히 불립문자의 과도한 집착이 서양 합리성에 기반한 대학 교육 이상을 받은 현재 대중을 감화 못시키고 괴리를 일으키는 원인 중에 하나라고 본다.)

(또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직지인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즉문즉설이란 말도 안되는 show를 불러 일으킨다고 본다.)

 

대신

1) 박재현, 권오민 같은 성실하고 치열한 불교학자

 

 

2) 인경스님이나 혜원스님 등 스님이지만 논문을 써 보신 스님들의 쓰신 책

3) 나카무라 하지메 (中村元),데이비드 J. 칼루파하나 (David J.Kalupahana), 베르나르 포르 (Bernard Faure),

  로버트 서먼(Robert Thurman )등 서양의 (또는 서양식 학문 방법론을 읽힌) 불교 연구자 들이 쓴 책

 

만 선별하여 읽는다.

 

 

이렇게 중국의 선사어록, 특히 한국의 큰스님이라는 분들의 말씀 자료에서

급선회에 영향을 준 책은 아래와 같다. 이 책들도 한번 쭈욱 정리를 해야  겠다.

 

스님이었다가 다시 환속하여 불교 관련 책을 쓰는 스티븐 배철러 (Stephen Batchelor)

그가 쓴 '붓다는 없다'(2001년), '어느 불교 무신론자의 고백' (2014년)

 

 

 

 

 

2004년 무문관에 입관해 1년간 고행정진하다 그 속에 입적하신 탄화 삼성선사 자서전 (2007년)

 

 

포항공대 수학교수인 강병균씨가 쓴....그야 말로 충격적인 큰스님 비판서..

큰스님, 왜 이러십니까? 환망공상幻妄空想의 수상록

 

 

천윤스님이란 분이 쓴...선의 반역서들

 

 

훤일 규암스님과 김종수씨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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