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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감수성이란 외부 세상을 받아들여서 인지하고 느끼는 능력을 의미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 이후다.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를 통해 서서히 만들어졌으며, 이 진화가 미래에도 계속 진행된다고 봤다. 진화가 계속된다면 인간은 지금과는 다른 형태가 될 것이기 때문에, 트랜스휴먼(transhuman 또는 trans-human)은 진화의 결과로 나타난 미래 인간을 의미했던 것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은 휴머니즘 이후(post)를 지향하는 감수성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기술의 진보에 대해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인간과 동물, 인간과 환경,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이 서로를 형성하고 서로 의존하는 관계임을 강조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에게만 의식과 인식이 있다는 휴머니즘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체에 인지 과정이 있다고 생각한다....포스트휴머니즘은 가이아 속에서 인간의 위치와 책임에 대해 성찰한다.
월터 피츠(Walter Pitts)는 일찌감치 인간의 뇌가 '논리 기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뇌과학을 연구하던 워런 맥컬럭(Warren McCulloch)은 논리적 연산을 수행하는 튜링 기계와 인간 뇌의 공통점이 아주 분명해 보였다.
기존 컴퓨터 프로그램과 인공지능의 차이점은 인공지능에는 스스로 배우고 추론하고 결정을 내리는 등의 기능이 있다는 점이었다.
튜링의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논문은 당시 컴퓨터를 제작하던 사람들에게 거의 읽히지 않았으며, 튜링이 폰 노이만에게 미친 영향도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아버지 튜링'이라는 이미지는 1950년대 이후 컴퓨터 과학의 이론적인 근원을 수리 논리학에서 찾으려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전반적인 견해다.
초지능은 모든 결정의 효용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인간을 행복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면 모든 인간의 두뇌에 전기봉을 꽂아 행복을 느끼는 뇌 영역을 자극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하인츠 폰 푀르스터(Heinz von Foerster)는 생명체와 같이 자기 완결적인 구조를 '자기 조직화 self-organization' 혹은 '자기 조직 체계'라 명명했다. 진정한 자기 조직 체계는 관찰자가 만든 모델의 예측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폰 푀르스터 성찰성(reflexivity)를 중요하게 본다. 성찰성에 따르면 세상을 분석하는 '나' 자신도 '나'의 분석 대상에 포함시켜야 했다.....자기 조직적 체계를 분석하는 사이베네틱스에서는 관찰자가 개입해 이 체계의 일부를 이룬다. 폰 푀르스터는 관찰자의 개입 과정이 '우리가 실제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즉, 실재는 외부 세상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찰과 인식의 구성물이라는 것이었다.
---> 폰 포르스터(1911~ 2002년)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게 된 분있고 흥미가 생겼다.
---> 이 분의 책은 국내에 한 권 밖에 번역이 되어 있지 않다.
움베르토 마투라나(Humberto Maturana)는 생명체는 생명체 외부에 어떤 목적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생명체의 특성 중 하나는 그것을 이루는 구성 요소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것인데, 이런 상호작용은 외부에 어떤 기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이라는 자기 자신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생명은 기본적으로 그 구성 요소들이 살아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위해 상호작용을 하는 닫힌 네트워크와 비슷했다. 다시 말하면, 생명체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모든 구성 요소는 생명이라는 자신을 지시(refer)것이라고 할 수 있다......생명이라는 것은, 폰 푀르스터가 강조했던 자기 지시 체계였던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언어학이나 논리학에서 모순을 낳는 자기 지시성이 생명체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는 것이다.
마투라나와 바레라는 생명체만이 자기 생성을 한다고 생각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Nicklas Luhmann)은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자기 생성 개념을 사회에 적용했다.
인간은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자기 생성 체계이며, 인간의 인지는 세상에 대한 반영이 아니라 인간 주체가 적극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되었다. 인간과 다른 생명체를 구별 짓던 경계는 허물어 졌다. 인간만이 세상에 대해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단세포 생명체도, 까마귀도, 개구리도 세상에 대해 인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지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특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를 가진 복잡한 자기 생성 체계가 외부 세계에 대해 행하는 작용이었다.
과학계의 주류는 (폰 포르스터,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주장인) 지식이 주관적이라는 생각, 진리라는 개념이 불필요하다는 생각, 생명체의 본질이 자기 생성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자기 생성으로 대표되는 이 새로운 세계관은 인지과학, 심리학, 뇌과학, 인식론 등의 분야를 파고들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의식이 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식 과정에서 인간의 몸이 매우 중요하다는 '체화된 인지 이론 theory of embodied cognition'은 그들의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 앨런 재서노프 (Alan Jasanoff)교수도 "인간 행동과 인지의 본질을 오직 뇌로만 설명할 수 없다. 뇌는 신체 및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유기적인 기관임이다."라고 썼다.
비트겐슈타인은 지식의 확실성이 논리나 수학 같은 확실한 토대가 우리의 지식을 받쳐줘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공유한 언어와 이런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회적 관습과 제도가 있기 때문에 보장된다고 보았다. 언어, 관습, 제도는 모두 촘촘한 관계들의 네트워크다. 지식의 확실성은, 우리 인간이 신을 닮은 이성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이미 만들져 있는 촘촘한 사회/문화적인 네트워크에 의존했다.
패러다임은 자연에 대한 하나의 모델에 불과할 뿐이다. 이것이 해결할 수 없는 변칙(anomaly)을 설명하는 다른 모델, 즉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기존 패러다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 패러다임보다 더 좋은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일 뿐이다. 쿤은 기존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합리적인 잣대로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을 공약불가능성 incommensurability'이라고 불렀다. 공약불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과학의 역사는 단선적인 진보가 아니었다.
쿤은 과학사의 많은 사례를 통해 과학 활동이 자연의 진리를 발견하는 이성의 활동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제창하고 공유하며 그것을 완벽하게 만들어가는 사회적 과정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었다.
마르크스의 기술관은 두 가지 측면에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는 그가 도구와 기계를 구분하고, 전자를 긍정적으로 후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점이다. 두 번째로 마르크스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고 사용하는 가에 따라서 기술이 특정한 계급의 이익을 낳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중립적으로 보이는 기술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하이데거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장인이 사용하는 망치와 같은 도구와 '기술'을 구별했다. 도구는 사용자와 세상의 관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주지만, 기술은 거꾸로 세상의 풍성함을 앗아간다고 보았다.
하이데거는 기술의 지배는 너무 강력하고 온전해서 인간은 스스로 이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오직 신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Gibert Simondon)은 도구와 기계에 대해 마르크스나 하이데게와는 정반대이 주장을 했다.....기계는 도구를 포함한 여러 부품이 결합애 만들어진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추상적인'인 도구에 비해 휠씬 더 '구체적'이었다. ...시몽동에 따르면, 모든 기술은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을 만들어내는데, 바로 이것이 기술의 본질이었다.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우리가 사회라고 부르는 것이 인간과 비인간의 다양한 결합(association) 혹은 네트워크라고 주장했다. 가장 대표적인 비인간인 기술은 인간과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해 사회를 만든다......라투르는 기술과 무관한 인간 존재 및 인간의 본성, 자유의지, 책임 등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 자평 ]
홍성욱교수의 책은 나도 꽤 읽은 것 같다.
교수님의 창작 콘텐트와 나의 관심분야가 겹치는 부분이 꽤 있는가 보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 돈을 책을 사 본 시점부터 되었으니 인연이 꽤 오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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