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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들

에셔의 손 by 김백상

비즈붓다 2020. 8. 22.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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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 ]

 

우리는 화가이다

         그림이다

         그리고 그려지며

           흘러가는 강물이다

 

막상 기억을 지우려 하면 누구나 그런 눈빛을 보인다.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망설임.

 

전뇌공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에는 '의식의 지평선'이라는 경계가 존재한다고 한다.

--> 진짜 궁금하다. 의식과 무의식을 나누는 경계가 있는지....

 

소위 '전뇌불능자'들. 전뇌사회의 하위 2%를 차지하는 그들은 애당초 전뇌 이식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뇌는 전뇌와 같은 인공 삽입물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전뇌사회에서 전뇌는 경제력과 직결되기에 그들은 대부분 극빈층을 이룬다.

 

필적이라는 건 말이야. 사람의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한마디로 필적은 단순한 손의 기교가 아니라 뇌의 지문, 즉 뇌적인 셈이라고....

 

내 눈은 보는 기능을 상실했지만 눈물을 흘리는 기능은 그대로인 모양이다.

 

어둡고 구불구불한 항로를 따라 날마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해요. 이 중력장에서 퇴출당한다면 어떻게 살지 모르겠어요.

 

회로애락과 우여곡절을 품은 숱한 인생이 이곳에서는 그저 아스라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을 본인의 의지에 반해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은 많지 않다. 가장 손쉬운 수단이 매수와 협박이고 그 외에 세뇌 같은 방식이다. 

 

엄마라는 존재가 정말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면 나는 결코 그런 식으로 너를 낳지 않았을 거야.

 

두 손을 조각한 에셔의 손,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제3의 손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의 사고는 한 차원 높은 단계로 확장한다.

 

진화의 법칙은 언제나 작용과 반작용의 관계였다. 환경의 작용에 반작용할 힘을 갖추지 못한 생명은 시간의 퇴적층에 묻혔다. 

 

한 꺼플 한 꺼플 껍질을 벗겨내면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단세포생물과 다를바 없어.

 

생태계에 새로운 종이 하나 나타났어. 그 종이 살아남으려면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다양성? 

 

 

[ 자평 ]

 

누구의 말인지를 표시하는 " " 표시가 없다. 특이하다. 

 

SF소설답게 재미있었다. 

 

박상준씨는 심사평에서 "무한 반복의 운명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에셔의 손'은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둘의 차이점은 생각해볼수록 절묘하다. '에셔의 손'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그리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벗어날 수 없게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굴레가 아니다....

이 우주가 뫼비우스의 띠일 수는 있지만, 적어도 인간은 그리는 손을 갖고 있다." 라고 썻다. 멋진 관점이다.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썼다.

"'에셔의 손'이라는 별을 찾는 데 1년이 걸렸다. 이후 6년간 세심하게 별빛을 살폈다. "

 

저자의 다음 책이 벌써 기다려 진다. 

 

도공처럼 오래 우려 내면서 써야 한데.. 쓰레기 같은 책을 매년 몇 권씩 내는 다작가들은 좀 반성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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