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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지만, 그 실천 이념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생각이 서로 다르더라도,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 반 100년 살고 보니 이것이 진짜 가능한 일인가 의심이 든다.
--> 이에 대하여 내가 읽은 가장 감동적인 책은....'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소통은 시간이 걸린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과감한 결단'과 '저돌적 추진'의 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한국의 '압축성장'은 소통을 건너뛴 '시간 절약'의 결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소통의 귀결로 여겨지는 타협과 화합은 우선적으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조정될 때에 가능하다.
그걸 외면하고 명분만으로 일을 풀려고 하는 것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제1장) 소통의 구조적 장애
한국은 세계 50대 교회 중 제1위를 포함하여 23개를 갖고 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겐 음주, 섹스, 도박, 스포츠가 있다. 음주/섹스/도박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한국은 '오락공화국'이란 거다!
한국인이야말로 이른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전형이다.
한국인들은 정치를 욕하지만, 정치야말로 고급 오락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욕 하면서 즐기는 오락, 이건 오락의 최고봉이다.
오락공화국을 좀 점잖은 말로 표현하자면, '대중매체 사회'다. 대중매체가 오락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한국만큼 대중매체가 사회 진로와 대중의 일상적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도 드물다......
동질적이며 중앙집중적이다. 한국 사회의 독보적인 '쏠림/소용돌이' 현상은 바로 그런 특성의 산물이다.
'대중매체 사회'의 결과 중 가장 중요한 건 뭐니뭐니 해도 소통의 일방통행이다.
위에서 아래로, 극소수가 절대다수에게 퍼부어대는 오락 위주의 소통질서는 국민 상호간 소통을 희생으로 한 것이었다. 인터넷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지 않았느냐고 하겠지만, '훈련없는 소통'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 2020년에 이 통찰을 더욱 더 날카롭게 읽힌다.
우리는 '역지사지'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그건 우리 인간에게 생물학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일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 때가 많다.
'승자독식'주의는 조선조 이래 한국 사회에 굳건하게 뿌리내린 각개약진 체계의 산물이다.
승리를 위한 일사분란은 소통의 원흉이다.
앨빈 토플러는 디지털 기술 발전의 현주소와 전망에 대해 "한국은 기술 발전은 급속히 이뤘지만 사회변화는 없었다."고 전제하고 "한국이 기술발전에 힘을 쏟아온 것처럼 이젠 사회변혁을 위해 모든 창의력과 인재를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더불어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한 선결과제로 교육개혁을 꼽았다.
KAIST 총장이었던 로버트 로플린이 잘 지적했듯이, 고위직으로 갈수록 언어능력이 절대적 요소가 되며 마케팅 능력이 결정적 요인이 되는데도 한국의 과학도들은 그런 능력과는 담을 쌓게끔 길러지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문화에 빠져들수록 아날로그 문화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처럼, 늘 '나'로 격리된 사람들은 가끔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잠재적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 잠재적 욕망의 대폭발이 2002년의 '월드컵 신드롬'이었다.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라는 걸 인식하는 건. 이제 우리의 목표가 '통합'이 아니라 '연대'가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자꾸 되지도 않을 통합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증오도 일어나는 것이다.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지만, 연대는 나의 운명이다.
진정한 꼴통은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모든 걸 걸 수도 있다.
요즘 이런 꼴통을 볼 수 있는가?
(제2장) 정치와 소통
정도는 덜했을망정 부정부패는 여전했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없었다.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은 권력행사를 통해 그 어떤 보상을 찾고자 했음인지 독선으로 치닫기도 했다. 겸손은 없었다.
'집단사고'란 동질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최악의 강경노선을 대표 의견으로 채택하는 사고 경향을 의미한다. 인터넷 이전엔 동질적인 사람들을 찾아내 한곳에 모으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매일 만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그 어려움과 불가능을 일시에 해결해 주었다.
우리가 흔히 '이념' 투쟁이라고 말하는 것의 내막은 '돈 투쟁'이기도 하다는 걸 뜻한다.
한국에서 지식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씽크탱크 못지않게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보수 신문들이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인간의 보수성은 나이가 들수록 거의 본능적인 양태를 보인다. 2003년 초 한국과학기술원은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고정관념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은 정서의 문제가 아니라 유전자 기능 변화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며 "인간의 보수성에는 그만큼 저항하기 힘든 본능성이 내재돼 있다는 의미이다"고 말했다.
보수성을 경계하되, "변화와 새로운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도 던져볼 필요가 있겠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 누구의 관점과 입장에 서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보수주의는 현 상태의 유지를 위해 전통, 역사, 관습, 제도 따위를 지키는 주의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 당시 이성의 이름으로 전통을 일소하려는 시도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꼈는데,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의 바로 이런 과격함에 대한 하나의 반동으로 나타난 사상이다....
인간의 이성과 의지만으로 움직일 수 없는 역사의 힘이라는 걸 절감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역사가 인간의 의지에 의하여 전개되고 발전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이란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의하여 규정되는 부분이 휠씬 더 많은 존재라고 본다.
보수주의 사상의 원조라고 할 에드먼트 버크(Edmund Burke, 1729~1797)....
"진리가 수세기 동안 어둠 속에 있다가 갑자기 자기를 통해서 빛나게 되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자살적인 자만행위다....
사회생활은 관습적이고 무심코 하는 행동이 대부분이다.....'편견'이라 부를 수 있는, 아직 검토되지 않은 확신들의 긍정적은 긍정적인 가치가 있다......이성보다는 본능과 감정이 올바른 길로 인도할 때도 있다."
늘 아쉬운 쪽은 기존의 질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다. 따라서 진보는 '보수의 지혜'를 중시하고 배워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보수의 지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보수를 경멸하고 혐오하는 게 한국 진보세력이 오랜 관습이었다.
(제3장) 개혁/진보세력의 소통 장애
서민은 이념과 노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그들과 더불어 '동고동락'하는 것이다.
임지헌의 '대중독재론'.....
'소수의 다수에 대한 폭력이 방법이 아닌 대중들의 자발적인 동의에 이해 만들어진 독재체계'를 의미한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나 군사독재 등 파시즘적 지배를 단순히 '소수의 사악한 가해자'의 억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적어도 대중의 암묵적 동의와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엔 자기교정 매커니즘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치세력이건 자신이 직접 잘해서 점수 따는건 드물고 상대편의 타락과 과오의 반사이익을 챙겨 득세하는 게 정치의 법칙처럼 돼버리고 말았다.
양쪽 모두 자기성찰이 없이 상대편 흠집내기에만 열중해 번갈아가며 과실을 챙기는 '시소게임' 비슷하게 되버렸다.
(제4장) 소통의 심리학
귀스타프 르 봉(Gustave Le Bon, 1841~1931)은 1896년 펴낸 저서 <군중>에서.....
"군중은 충동의 노예다.", "군중의 증언은 믿을 것이 못 된다." , "군중의 기질은 과장적이기 때문에 과격한 감정에만 쉽게끌린다."." 군중은 편협하고 독재적이며 보수적이다.", "군중은 도덕적 기질을 갖기 어렵다.", "군중은 마치 범죄자처럼 쉽게 용감해진다."
풍부한 정보가 극단주의를 촉진한다.
인터넷처럼 정보를 임의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공간에서 집단극화 현상이 쉽게 일어난다....
사람들이 같은 견해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정보를 공유하면 할수록, 그들의 견해는 더욱 더 극단화된다.
실제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경제의 팽창은 계층간 물리적 거리를 더욱 더 크게 만들어 이른바 '이중 도시'의 출현을 가속화하고 있다. 모든 걸 다 집에서 해결할 수 있으므로 계층간 서로 섞일 일이 없이 부자는 부자들끼리 빈자는 빈자들끼리만 몰려 살게 된다는 것이다.
--> 2019년 ~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사항을 시류 타는 사람들은 얼른 '언택트'(Untack)라는 것으로 포장하여 팔기 시작했다.
--> 적어도 이런 현상에 어떤 긍정적 또는 부정적 흐름을 유발할지 다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 심지어 어떤 사람은 '더 많은 연결을 위한 새로운 시대 진화 코드'라 포장한다....강준만교수가 10년 전에 언급한 것보다 한참이 뒤진 시각, 사회적 책임 의식도 없는 발언들이다.
편중된 정보의 방에 갇혀 벽 너머를 이해 못하는 단절의 시대를 사는 탓이다....
선택이 풍요한 다매체 시대는 분명 축복이다. 그러나 그 속에 이념의 편중화란 독이 숨어 있다. '선택이 패러독스'다.
--> SNS는 매우 큰 단절을 유발한다. 네트워킹 서비스가 더 큰 단절을 유발하다니 아이러니 하다.
--> 이것은 소통인가? 정보 습득인가? 단절인가? 무관심인가?
집단사고는 집단 구성원으로부터 '왕따'를 당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 혹은 보상에 대한 기대로 인하여 의심을 억누름으로써 나타난다.
현실적으로 가장 유력한 집단사고 방지책은 '악역 두기'다. 무슨 결정에서건 아예 반대를 전담하는 사람을 두라는 것..
윌리엄 화이트는 1956년 <조직인간>에서...
"조직의 요구는 강력하고 끊임없다. 조직생활에 빠져있을수록 조직의 요구에 저항하거나 그 요구를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조직에 굴복해야만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제5장) 소통의 인간학
과거지향적 인맥은 한국 사회의 철칙이다.....
정권교체 이후 벌어진 모든 싸움이 인맥 싸움이었고, 그 다음엔 정권 내부의 인맥 싸움이 벌어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덕과 정을 추가해 인맥을 사람 됨됨이의 문제로 격상시킨다. 삶의 보람이나 의미까지 덤으로 주어지기도 한다.
인격이 없더라도 이념이나 실적으로 큰 일을 이룰 수 잇다면, 그게 사회 전체에 휠씬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믿는 사고의 틀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일시적 성공을 거둘 수는 있어도 다음 단계에서 무너지고 만다....
'인격'을 사소하고 사적인 것으로만 여겨온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격과 이념은 같이 가야 한다.
소설가의 인격으로 그의 작품까지 평가해도 좋으냐는 의문도 논점을 벗어난 비약인 것 같다. 논점은 인격과 작품의 관계까 아니라, 작품만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그 소설가의 인격을 문인들의 술자리 가십으로만 소비하는 기존 풍토에 대한 평가다. 범죄행위거나 그에 가까운 인격적 일탈행위가 빈발했음에도 그걸 너그럽게 껴안는 것이 문인다운 도량이라고 생각하는 풍토는 바꿔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인격이 이념을 망친다.
정혜신은 "진보의 끝은 인간의 개별화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인간의 개별화'가 어렵다는 뜻이다.
네델란드의 사회심리학자 기어트 호프슈테더는 세계 53개국을 대상으로 불확실성의 회피와 수용 정도를 조사했다.
'불확실성의 회피(Uncertainty Avoidance)'란 한 문화의 구성원들이 불확실한 상황이나 미지의 상황으로 인해 위협을 느끼는 정도를 의미한다.
불확실성 회피 경향이 강한 문화인 독일, 프랑스는 데카르트,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샤르트르 같은 위대한 철학자를 많이 배출했다. 반면 불확실성 회피 경향이 약한 문화에서는 뉴튼, 린네, 다윈 등의 경우처럼 위대한 경험주의자, 즉 명상보다는 관찰과 실험을 통해 결론을 끌어내는 사람을 많이 배출했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사람일수록 리더십을 비교적 덜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리더십을 강조하는 데서 영웅주의나 엘리트주의 냄새가 난다며 의도적으로 싫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진보는 주로 '구조'나 '민중'을 강조한다.
우리는 정치를 엔터테인먼트보다 더 진지하고 심각한 것으로 여기지만, 두 분야의 본질은 같다.
그건 바로 둘 다 '스타 산업'이라는 사실이다.
최창집은 "급변하는 사태의 복합적 국면을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는 데 김구만큼 더디고 효과적이지 못한 지도자는 많지 않다."는 평가를 내렸다. 특정 상황에서의 지도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회비용'이라는 게 있다면, 김구는 그 점에선 비판받아 마땅한 지도자였는지도 모른다.
지식계 일각의 아웃사이더들이 애용하던 독설은 이제 사이버공간에 철철 흘러넘치고, 심지어 정/관계 인사들까지 독설가 대열에 뛰어들었다. 유사 이래 최초라 할 독설의 대향연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요한 호이징하는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 파격적 주장을 원용하자면, 적어도 2002년의 사이버혁명 이후 정치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김영희PD는..."재미라는 것은 무시되어야 할 가치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휴머니티와 거의 동등한 가치가 재미다. 인간은 재미라는 가치가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다."
재미는 소통이다. 소통 없이 재미없다.
사람들은 재미없는 계몽에 저항하는 것뿐이다. 위에서 아래로 퍼부어지기만 하는 일방적인 계몽에 등을 돌린 것뿐이다.
(제6장) 소통의 실천전략
카톨릭대 김기찬 경영대학원장은..."기업이 통섭, 융합, 협력, 네트워크, 상생 없이는 성공 신화를 쓸 수 없게 됐다."
오히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한 방에 가능한 해결책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 자평 ] 읽다. 멈췄다. 다시 읽다. 정리한다. 버린다.
강준만교수는 1956년 생이다.
이 책은 2009년에 쓰였으니 대충 54세 정도에 썼을 것이다.
나는 뭐 54살이 되더라도 이 정도에 필력은 커녕 지식도 없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으면 2009년 읽을 때는 큰 감동이 없었다. 대충 중간 정도를 읽다가 막혀서 덮었다.
10년 지난 2020년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오늘날에도 건져 올릴 문장을 다시 정리했다.
당시 못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었고 꼼꼼히 읽다가........ 역시......띄엄 띄엄 읽다가.......의무감으로 페이지는 다 읽었다.
강준만교수는 상당히 다작을 하는 분이다.
부지런하게 세상을 보고, 정보를 모으고 아는 것을 정리하는 것이 습관이 되신 분이 아닌가 싶다.
책을 내며서 다음 책을 낼 정보를 모으는 것이 습관이 된....
다작을 하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한 칼럼을 묶어서 내는 경우가 많다.
개별 개별은 사실이지만 (정확히는 아는체의 난사) 책 전체로는 지향점이나 개념의 통일성도 없다 경우가 많다.
어느 책에서 읽은 지 모르지만... 대충
"어제의 뉴욕타임즈는 가장 최근의 사실을 보여주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보다 오늘의 인간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말이 있다......변죽만 끓이다가 끝나는 경우가 왕왕이라는 말....
그저 그런 책은 그저 그런 책이다.
역기처럼 정신과 마음을 짓누르지 못하고 미세먼지처럼 답답하고 지루하다.
정신과 마음의 근육으로 붙는 것이 아니라 먼지 걷히면 쓰레기통으로 가는 것이다.....
2020년 8월 기준으로 알라딘에서 검색을 해보니 272권이 검색된다....
1989년에 첫 책이 나왔고, 2020년 7월에도 책을 냈다....
기본적으로 다작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고정관념이 있다.
한 인간의 정신적 넗이와 깊이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문장의 질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장르가 다르겠지만
현대 대표적인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전집이래야 평생 써 온 것을 모아야 15권이다.
300권을,,,,400권을,,,,500권을 쓴 분 보다는 가장 읽은 만한 것을 쓴 분이면 좋겠다.
나 같은 사회학을 전공은 커녕 사회학에 무지한 사람도 들어 봤고....책을 들게하는
사회학 서적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책....
'저자 = 사회를 읽는 핵심 개념'이 되는 책....
전공이나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음에도 내 책장에는 꽂혀있는 책들....
적어도 평생 글을 썼다면 자기 집 책장 전부에 꼽힐 만큼 책을 쓰는 것이 목표가 아닌,,,,
죽을 때 가져가고 싶거나 죽은 후 후세대에 읽은 만한 제대로 된 한권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목록에 들어갈 책을 이제 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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