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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6장. 알다 : 진리로 가는 굽은 길)

 

(무엇이 옳은가?)

 

진리론에서는 진술의 내용이 언제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따지지 광범위한 미지의 존재, 즉 극소수의 이들만이 깨우친 '진리'를 따지지 않는다.

 

일상 언어 학파의 몇몇 철학자들은 철학이란 그저 일상 언어의 정확한 분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현대 진리론에서는 무엇보다도 형용사 '진실한'과 '그릇된'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철학 분야에서 진릿값 지지자들은....이들의 선택지로는 발언, 주장, 논증, 생각, 문장, 이론 등이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선택지에 대해 때로는 참, 때로는 거짓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은 공통적으로 어떤 명제(논리 명제)를 표현한다....간단하게 말하자면 발화된 문장 혹은 발언이나 논증의 내용이다. 

 

(진리의 현실)

 

진리의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파생되었으며 짧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모든 존재들에 대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참이고, 모든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우리는 이 정의를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여부는 그것이 이 세상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칸트는 "진리는 인식과 그 대상의 일치다."

'인식'은 여기서 판단이나 확신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와 우리의 생각 또한 이 세상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대응론'은 반박당했다. 일치라는 개념이 진리라는 개념을 설명할 수 없다는 반론이 일었다.

 

 

(진리의 주관성)

 

진리대응론의 반대편에 선 것이 진리인식론이다. 즉 어떤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는 우리의 인식에 달렸다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란츠 브렌타노(Franz Brentano)...사람들이 어떤 주장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갖고 있다면 그 주장은 진리

 

윌리엄 제임스의...<진리실용론>(Pragmatic theory of truth)

 

찰스 샌더스 퍼스의 <진리합의론>(Consenus theory of truth)

 

 

(진리를 정의할 수 있을까?)

 

프랭크 램지(Frank Ramsey)...<진리잉여론>

 

진리인식론의 문제는 사람들이 진리를 '정의할 수 있다'고 믿는 데 있다. 

 

도널드 데이브슨..."우리는 진리의 '정의'보다 진리의 '드러난 특성'을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말과 생각으로 이 세상과 관계를 맺고, 우리의 말과 생각은 그 생각과 문장의 가각의 요소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따라 참이거나 거짓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말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참인 의견이나 논증이 존재할 뿐이다.

 

'근접했다'는 말 또한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을 때만 사용해야 한다. 

 

 

(진리는 상대적인가?)

 

"진리는 끊임없이 움지이는 은유의 떼다. 진리는 우리가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잊어버린 환상이다."  - 니체

 

"인간이라는 종은 스스로를 우주의 중심이라고 여기는데, 이는 격정적으로 공기 중을 누비고 돌아다니는 모기도 마찬가지다." - 니체

 

진리가 존재하지 않으려면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참이어야 한다. 그런데 진리는 존재한다.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장 자체도 하나의 진리다. 

 

"이 약은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당신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어요.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라고 말하면 환자로서는 상대주의자가 되기보다 다른 의사를 찾는 편이 더 낫다.

 

진리라는 개념은 정의할 수 없다. 진리는 객관적인 것이며 나 자신이나 타인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그저 이 세상이 만들어진 방법에 달렸다. 대부분의 상대주의자들은 진리와 지식을 분리하지 않는다. 진리가 지식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인 것은 맞지만, 지식만이 각 사람에게 달려 있으며 진리는 그렇지 않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지식론은 인식론과 동일하다. 지식론의 주요 의문점은 지식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다.

 

소크라테스는 <테아이테토스>와의 대화에서 "지식은 참인 판단이다."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 말을 '지식은 참인 논증'이다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참인 것을 믿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참인 것을 뒷받침할 충분한 근거를 갖추고 있어야만 그것을 토대로 참인 논증을 정당화할 수 있다. 

 

지식이란 참이고 정당화된 논증이다. 

 

철학자 에드먼드 게티어(Edmund Gettier)가 등장하기 전까지, 테아이테토스의 정의는 2000년 이상 유효했다.

 

게티어는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짧으면서 유명한 철학 논문을 써냈다. 이 논문은 겨우 세 페이인데, 게티어는 그 안에서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다시 던졌다. "정당화된 참인 믿음은 지식인가?"

 

참이고 정당화된 논증이라고 해서 모두 지식인 것은 아니다....

이제 지식의 개념 분석은 점차 범위를 넗혀서 이제는 '참인 정당화된 논증 더하기 X'가 되었다. 

이 X요소가 과연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논쟁이 치열하다. 

 

지식을 무오류성과 혼동.....가능한 오류를 무조건 배제해야 한다면 우리는 누군가 어떤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우리 인간은 오류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다. 정신적인 능력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모든 주장과 논증은 거짓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거짓일 수는 없다.

 

지식의 증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지식이라고 말할 때, '정보'를 의미하지만, 사실 정보란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과 설명을 겹쳐서 생각한다.

 

 

(토대인가, 연결인가?)

 

인식론의 첫 번째 질문은 '지식이란 무엇인가?' ...두 번째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

 

철학자들은 지식의 토대를....인식으로 봤다...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 혹은 거의 모든 것은 언제나 인식을 통해 우리에게 도달한 것이다....

인식이 늘 믿음직스럽지는 않다.

 

데이비슨과 콰인은 논증이란 오로지 서로를 지탱하는 더 많은 논증의 연결를 통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한 가지 조건이 더 있다. 논증의 연결로 가는 길은 신뢰도가 높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 자평 ]  뭐. 별로.. 그저.. 

 

<삶의 교양이 되는 19가지 철학 수업>

철학 교수가 

철학적 질문들을 크게 10가지 주제(감정, 언어, 종교와 믿음, 꿈과 무의식, 의지와 행동, 진리와 지식, 미와 예술, 의식과 사고, 감각, 삶과 죽음)로 나눈 뒤, 해당 주제를 둘러싼 다양한 철학 이론들의 각축과 논쟁을 쉽고 흥미롭게 버무려낸 현대철학 입문서다.

 

필요하여 6장. 알다 부분만 봤다. 다른 것은 볼 이유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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