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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은 이유 ]

 

로마인 이야기는 한 번 쯤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상식....

하지만 전체를 읽어 보기에는 무담이 되는 현실....

 

시오미 나나미의 내공을 한 권으로 접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한 권 만 읽고 전체를 읽은 듯 아는 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왜 지금, 로마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있고....

 

[ 배운 점 ]

 

1.000년의 로마 역사를  배우고 익혀야 할 사항만을 압축한 것이 좋았다.

 

특히 2017년 1월 15일...헌재의 대통령 탄액, 국정 조사 및 특검을 통해 본

국내 정치 지도자들의 수준과 대비하여 더욱 극명한 인상을 준다.

 

우선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서....생각해 볼 때..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 지적 능력, 설득력, 육체적 내구력, 자기 제어 능력, 지속하는 의지.." 라는 글에서

 

이 중 뭐라도 제대로 갖춘 것이 없어 보이는 지도자들이 나라를, 조직을 잘 이끌 수 있기를 바랬다는 것이 너무 과한 기대가 아니 었나 싶다.

 

또한 다들 1등하고 서울대 나오고 박사한 자들이 왜 저리 비굴하에 연명하고 붙어 먹고 도피하고 회피할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

아래 글을 읽으면서

1등 만을 법만 가르치고 배우면 저리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인재가 많아도 그것을 활용하는 매커니즘이 기능하지 않으면 결국은 인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가 뿐 아니라 모든 조직이 쇠퇴하는 것은 인재의 소진 때문이 아니다. 인재는 어느 세상이나 어느 조직에도 있다. 다만 쇠퇴기에 접어들면 그 인재를 활용하는 매커니즘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또한 나니미 여사는 마키아벨리 말대로 "결과만 좋으면 수단은 항상 정당화되는 것"이 정치라고 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매우 동의가 가지는 않는다......

 

[ 주요 내용 ]

 

ㅇ 역사 속에는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ㅇ 인간은 역사이니까요. 그래서 '역사가 딱 질색'이라고 하면 '인간이 딱 질색'이라는 고백이 되거든요

 

ㅇ 인간성의 현실을 냉혹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르네상스 운동은 '고대 부흥'이라고 한다. 이 새로운 사상이 비기독교적인 성격을 갖게 된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르네상스 사람들이 주목했던 것은 다름 아닌 고대 로마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역사였다.

 

ㅇ 로마인들은 기독교회처럼 종교에 의해 인간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로마인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철학이 인간성을 향상시킨다고도 생각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리얼리즘에 철저한 인간상을 생각했다. 이러한 로마인의 리얼리즘을 다시 부흥시키려고 한 것이 르네상스 시대였고, 마케아벨리도 그 시대의 한 인물이었다.....1,000년에 걸친 기독교의 '교화'가 인간성 향상에 전혀 공헌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인물이 또 한 사람 있었다. 바로 종교개혁을 한 마르틴 루터이다.

 

ㅇ 루터는 성직자 계급을 배제하고 신과 신자가 바로 결합되는 형태의 신앙을 주창했다. 이것이 프로테스탄티즘 운동이었다.

 

ㅇ 르물루스는 왕이 되어서도 권력을 독점하려 들지 않고 국정을 왕, 원로원, 시민회의 세 기관에 의해 운영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로마의 왕은 시민 전체가 참가하는 시민회의 투표에 의해 결정되었다. 왕은 종신제였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왕의 자손이나 혈족이 자동적으로 왕위승계를 하지 않고 로마 시민의 동의를 필요로 했다.....왕이 새로운 정책을 행하려면 반드시 시민회에 찬반을 물어야 했고, 전쟁을 시작하고 끝내는 때에도 시민회의 승인을 필요했다. 

 

ㅇ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패자마저도 자신들에게 동화시킨다"는 이 방식만큼 로마를 강하게 만들고 영토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한 것은 없다" 고 했다.

 

ㅇ 왕정 시대 때도 로마에서는 힘 있는 귀족이든 그렇지 않은 평민이든 병역을 치러야만 비로서 한 사람의 시민이 된다고 생각했다.

 

ㅇ 로물루스는 시민회에 의해 왕을 선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이 독자적인 체계를 로마 시민들은 잘 활용해 '적재적소'라도 할 만큼 왕을 제대로 뽑았다.

 

거부권이야말로 권력 중의 권력이다.

 

ㅇ 지도자가 대중에 영합하는 것만을 생가한다면 민주 정치는 곧바로 우민 정치로 추락해 버릴 것이다. 반대로 민주정의 지도자가 여론을 무시하면 금세 실각의 쓰라림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만약 뛰어난 지도자를 얻지 못하면 민주정치는 백가쟁명의 대중 정치로 타락해 버린다....로마인들은 이러한 아테네의 교훈에서 '한 개인의 역량에 의지하는 사회는 위험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귀족과 평민의 대립 해소에서 로마는 아테네와 같은 길을 택하지 않았다. 민주정을 택하지 않은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은 '인재의 총집합체'로서 원로원을 전면 개방해 과두정치를 강화하고 발전시킨다. 한 사람의 천재에게 의지하지 않고, 대중의 뜻을 모아 비록 수수해도 견실한 과정을 밟아 나가겠다.

 

ㅇ 평민 중에서도 뛰어난 인재를 모으고, 원로원 중심의 통치 체제 내에서 그 인재를 활용해 나간 로마의 방식은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면 '조직력'이라는 한마디로 집약된다.

 

로마에는 눈에  띄는 영웅이 탄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로마는 '강한 조직'으로 존재했다.

 

 

 

ㅇ 로마인들은 항상 밖을 향해 조직을 개방했다. 이것이야말로 로마를 로마답게 하는 특색이었다.  로마의 강함은 귀족의 아성이었던 원로원을 평민에게도 개방하고, 로마 연합에 패한 자들에게도 로마 시민권을 나누어 주었으며, 도로망을 깔아 로마 연합 내부에서 사람이나 물건의 흐름을 활성화시키는 등 여러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됨으로써 나타나게 되었다.

 

ㅇ 알렉산드로스가 창안하고 한니발이 계승한 이 전법은 기병이 가진 기동력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것이었다......기병이 가진 스피드를 최대한 활용해 적을 배후에서 공격하거나 혹은 적진을 분산시키는 방법이다.....실제 전투에서는 기대대로 움직여 주는 것도 아니므로 임기웅변적인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천재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옛날부터 눈앞에 있었는데도 아무도 주목하지 못했던 것을 주목해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천재이다.

 

ㅇ '자기다움'을 빼 버린 개혁은 무의미하다....로마군은 자기 개혁에 관해서는 오히려 열심이었지만 기병 도입만은 그것이 급선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단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ㅇ 로마가 결단을 내린 것은 스스로가 가진 최대한의 장점을 이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즉 조직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길을 선택한다.....한니발을 이길 수 없다면 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절대로 정면에서 맞붙는 전투는 피하고 철저히 지구전에 돌입하기로 한 것이다.

 

ㅇ 구성원을 교체하지 않으면 그 집단은 필연적으로 내향적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구성원 상호간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이권 집단'으로 화한다......내향적인 정신세계와 강렬한 자부심이 복합되어 버리면 거기에서 생기는 것은 현상 유지적인 발상뿐이다.

 

'공동체'에 대한 공공심과 자기비판의 정신 양쪽 모두가 없으면 개혁은 실행될 수 없다. 이 두 가지 모두를 기피할 때 남겨진 길은 현상 유지, 아니면 기껏해야 형식적인 개혁이 고작이다.

 

ㅇ 카이사르에게는 무력이 있었지만 그라쿠스 형제에게는 없었다는 점이다..."무기를 갖지 않은 예언자는 실패를 피할 수 없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했는데, 그라쿠스 형제가 바로 '무기 없는 예언자' 였다.

 

 

 

ㅇ 카이사르가 한 것을 근현대사에 옮겨 놓으면 대영제국의 의회에 인도인 간디나 네루를 맞이하는 것과 마찬가지며, 나바호족의 족장이 미국 상원의회에 추천되는 것과 같다. 민주주의의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이나 미국이라고 해도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갈리아의 유력자들에게 원로원 의석까지 준 것은 기독교의 박애정신이나 근대 민주주의의 평등 정신 같은 추상적인 이념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생각하는 '새로운 로마'는 그렇게 함으로써 공생을 실현하는 길로 들어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찬성하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ㅇ 단정적으로 말하면 유럽은 고대 로마인에 의해 만들어였다...영국의 수상 처칠도 "대영제국의 역사는 기원전 55년 8월 26일에 시작되었다."라고 했다. 카이사르와 그 군단이 브리타니아, 즉 현대의 영국에 상륙한 날로부터 영국사가 시작된다는 이야기이다.

 

ㅇ 카이사르는 "내가 자유를 준 사람들이 다시 나에게 칼을 들이댄다 해도 그런 일로 번민하고 싶지 않네. 나 스스로 다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내 생각에 충실하며 사는 것이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네."

 

ㅇ 고대 로마인에게 국가란 주민 공동체이며 따라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었다.....국가는 일부 특권계급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의 목적은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행복감을 높이는 데 있다는 것이 로마인의 일관된 사상이었다.

 

ㅇ 원로원이 새로운 황제에게 일인자, 호민관 특권, 전군 최고 사령관의 권한을 주는 것을 의결하는 동시에 시민들이 새 황제의 통치를 승인한다는 것을 표명하면 비로서 그가 황제가 된다....로마의 황제란 중국의 황제처럼 천명을 받들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승인을 얻어야만 비로소 존재 이유를 획득할 수 있는 지위이다.

 

ㅇ 로마인들에게 정치 시스템이란 로마 가도를 보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항상 보수 유지하는 것'이었다.

 

ㅇ 철학적 사고에 의해 진리를 추구하는 그리스인이나 일신교의 절대신을 믿는 유대교나 기독교 신자와 달리 로마인은 이런 종류의 '절대'에는 친숙하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시스템이라도 인간이 만든 것은 반드시 결함이 숨겨져 있다는 현실적인 감각을 그들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ㅇ '시스템이란 끊임없이 보수, 개정해 나가는 것'이라는 로마인의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이 법률에 대한 그들의 태도일 것...

 

인간 행동 원리의 규범을

    종교에서 찾은 유대인

    철학에서 찾은 그리스인,

    법률에서 찾은 로마인,

    이 한 가지만으로도 이들 세 민족의 특징이 떠오를 정도이다.

 

ㅇ '행동 원리의 규범'이란 알기 쉽게 말하면 무엇을 선악의 판단 기준으로 하는가이다.

 

문이었다. 법은 다르다. 같은 신앙을 갖지 않아도, 같은 지적 수준이 아니라도 법이라는 규칙을 지키는 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로마의 법'이란 인종이나 종교 등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평등한 권리를 보증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따라 '공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ㅇ 과거와의 정합성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대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개혁은 단순히 '개량'으로 끝나 버리고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둘 수 없다.

 

ㅇ 역사와 전통을 무시한 개혁은 실패한다....자신이 소지한 카드가 무엇인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중에서 현재도 통용되는 것과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것을 분류한다. 그리고 지금도 통용되는 카드를 조합해 최대의 효과를 노린다. 나는 이것이 확실히 재구축이라는 의미의 진정한 구조 조정이라고 생각한다.

 

ㅇ 성공한 개혁은 자신들의 현재의 모습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유효한 것을 골라내어 그것이 최대한 효과를 거둘 수 있게 재구축해 나가는 작업이 아닐까? 로마 역사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우선 자신들이 놓여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 현재 시스템의 어느 부분이 현상에 적합하지 않게 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렇게 해 나가는 중에 비로서 '버려야 할 카드'와 '남겨야 할 카드'를 찾아낼 수 있다고 본다.

 

아무리 인재가 많아도 그것을 활용하는 매커니즘이 기능하지 않으면 결국은 인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가 뿐 아니라 모든 조직이 쇠퇴하는 것은 인재의 소진 때문이 아니다. 인재는 어느 세상이나 어느 조직에도 있다. 다만 쇠퇴기에 접어들면 그 인재를 활용하는 매커니즘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ㅇ 로마뿐 아니라 어떤 국가나 어떤 시대에도 개혁은 결코 회의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나타나 스스로가 믿는 바에 따라 개혁을 단행하지 않는 한 체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ㅇ 카이사르의 말을 인용하면,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 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개혁에 의해 기득권이 없어지는 것에 정신을 쏟고 있는 사람에게 개혁의 의의를 아무리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의 반대에 귀를 기울여 버리면 어떻게 될까? 결국 어떤 개혁도 대폭 수정이 돼 소폭의 개량으로  끝나 버릴 것이 뻔하다. 따라서 개혁을 하려면 결국 힘으로 돌파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인물이 술라였고 카이사르였다.

 

ㅇ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지금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일을 실행하지 않으면 정치가로써의 가치는 전무하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군사를 인솔해 루비콘 강을 건너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다.....많은 사람의 지혜를 모은 개혁은 이상으로서는 아름다워도 현실적인 방책이 아닌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 정도의 대개혁은 누구에게든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자는 고독하고, 고독하기 때문에 지지자를 필요로 한다. 아우구스투스가 연기를 해서라도 원로원을 아군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ㅇ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

    지적 능력, 설득력, 육체적 내구력, 자기 제어 능력, 지속하는 의지

    카이사르만이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 이탈리라의 일반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역사 교과서에서

 

ㅇ 페리클레스는 도시국가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혼자서 구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정치가입니다.

 

ㅇ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지적 능력이란 현상을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의 문제 해결 능력이라고 할 것입니다. 선견지명도 거기에 포함되겠지요.....

 

ㅇ 어느 시대라도 지식인은 현실에 대한 통찰 능력만큼은 우수합니다. 지금 세상의 어디가 잘못되어 있는지에 대해 비판을 하라고 하면, 그들은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 날카로운 말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는 구체적인 제안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도자와 지식인의 큰 차이입니다.....키케로는 비평가나 언론인으로서는 초일류이지만 그의 논지는 '글로 써 놓았다'는 식의 이상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키케로는 '서재 속의 사람'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ㅇ 이 개혁을 시행하면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어떤 이점이 있는지 그 말이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을 명쾌하게 전하지 못하면 아무도 납득하지 못합니다. 너무 무미건조해도 곤란하지만, 간결함과 명쾌함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ㅇ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등 후세에 전해지는 카이사르의 명구들이 많은데, 지식인이라고 평가받는 키케로의 연설과는 달리 카이사르의 이야기는 누가 들어도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ㅇ 어차피 안토니우스는 군단장급의 인재였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군단장에게 요구되는 것은 최고 사령관이 지시한 작전만 충실히 이행하는 능력이며, 본질적인 지적 능력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안토니우스는 설득력도 없고 자기 제어 능력도 없었습니다.

 

분명히 지도자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나 국민에게 결과적으로 선이었나 하는 것이며, 동기의 선악은 관계없습니다. 어떤 동기라도 좋은 결과를 남겼으면 좋은 지도자인 것입니다.

 

ㅇ 목표가 주어지면 능숙하게 해결할 수 있지만, 스스로 목표 설정을 하지는 못했던 폼페이우스는 '모범생' 타입

 

ㅇ 흔히 '이상적인 지도자'의 조건으로 인격의 원만함이나 덕성 등을 요구합니다만 인격이 고결한 것과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 비록 인격에 문제가 있더라도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큰 목적만 달성하면 그것이 좋은 지도자 입니다.....마키아벨리 말대로 "결과만 좋으면 수단은 항상 정당화되는 것"이 정치이며, 그들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인은 인간성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해서도 환상을 품지 않았다.

 

ㅇ 인류 최초이자 마지막 보편 제국이었던 로마제국은 문화의 차이, 종교의 차이를 모두 감싸안고 다양성을 인정했다.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구분도 없었고 황제도 속국에서 나올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인류가 로마인만 같았으면 종교 분쟁이나 문화 차이로 인한 전쟁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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