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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들

살다, 읽다, 쓰다 by 김연경

비즈붓다 2022. 3. 1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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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돈기호테)

마냥 감동하기에는 너무 웃기고 마냥 웃기에는 너무 처량하다. 이 소설이 숭고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희비극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세계 자체가 분열된 탓이다.

<돈키호테>는 신 중심의 세계(중세)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르네상스)를 거쳐 근대의 문턱에 이른 순간에 태어났다. 영웅적이고 낭만적인 열광의 시대가 끝나고 권태와 환멸의 시대, 심지어 범속과 일상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마지막 장에 이렇게 썼다. "오직 나만을 위해 돈키호테는 태어났고 나는 그를 위해 태어났다. 그는 행동할 줄 알았고 나는 그것을 적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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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세계 문학사는 발자크를 소설의 교과서로 정의했다. 근대, 자본주의, 대도시, 속물들, 야망에 찬 청년, 전혀 미화되지 않은 날것의 삶 등 <고리오 영감>에는 말하자면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세상은 시적인 데라곤 하나도 없이 시종일관 속되고 치사하다. 여기서 라스티냐크의 목표는 단 하나,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알쏭달쏭한 '세상이라는 책'을 정복하고 출세하는 것뿐이다.

"청춘 시절에 흘려야 할 마지막 눈물을" 고리오 영감의 무덤에 묻은 뒤 등불이 빛나는 파리를 내려다보며 그는 이렇게 외친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그는 세상이 더럽고 비루할수록 그 세상과 한판 붙어 볼 자유가 소중하다는 사실 또한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라스티냐크의 경우처럼 속물스러운 타협의 형태가 될지라도 그것 없이는 우리의 인생은 결코 어떤 진정성도 확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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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가죽)

많이 욕망하면 빨리 죽는다. 하지만 욕망을 죽인 채 조심조심 영위하는 삶은 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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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흑)

실제 사랑에 앞서 사랑이라는 관념을 먼저 알게 된 그녀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상에 맞게 창조하려고 한다. 과연 "파리에서는 사랑이란 소설의 소산"이다.

소설을 '큰 길가를 돌아다니는 거울'로 생각한 스탕달 특유의 냉혹한 리얼리즘의 정수가 들어 있기도 하다.

스탕달의 유언이자 묘비명
'밀라노인 아리고 베일레. 살았고 썼고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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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라리)

끊임없이 욕망을 생산해 내는 책(소설)과 그 욕망- 책을 끊임없이 배반하는 삶의 충돌, 그것을 엠마의 인생이 보여 준다.

플로베르는 '일물일어설'의 창시자답게 비단 '무엇'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 즉 '문체'의 문제에 최초로 골몰한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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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설마 그 살인자가 나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치명적인 물음이 나온다.

악덕과 악행 때문이 아니라 어떤 과오 때문에 불행에 빠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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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신곡>의 단테는 지옥은 저녁에, 연옥은 새벽에, 천국은 정오에 오른다. 우리의 인생은 지금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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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괴테 덕분에 독일 문학은 비로소 영국 문학의 셰익스피어와 같은 존재를 갖게 됐다.

<파우스트>는 그가 24세(1773년)에 쓰기 시작하여 죽기 1년 전(1831년)에 완성한 방대한 극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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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아버지의 복수를 미루는 햄릿의 우유부단함, 즉 '행동'이 아닌 '행동 없음'이 이 희곡의 플롯을 이끄는 것도 흥미롭다.

괴테는 "지극히 도덕적인 한 인물이 자기가 도저히 감당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던져 버릴 수도 없는 무거운 짐에 짓눌려 파멸한다"고 말했다. 영웅이 되는 데 필요한 '억센 감각'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햄릿을 행동의 대명사인 돈키호테와 비교하여 자의식과 사유에 얽매인 인텔리겐치아의 전형, 즉 '잉여 인간'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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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욕망이란, 특히 '검고 깊은 욕망'이란 그 속성상 모순덩어리에 염치없는 대식가이기 때문이다.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그림자가 걷는 것, 배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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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

우리는 울면서 여기 왔어.
넓고 넓은 바보들의 무대로 나왔다고
태어날 때 우는 거야.

오셀로의 오해, 맥베스의 야망, 햄릿의 우유부단함, 리어왕의 어리석음과 판단 착오

"최선의 의도로, 최악을 부른 건 우리가 처음은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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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정신은 '낙타'에서 '사자'로, 또 '사자'에서 마침내 '아이'가 되는 과정을 다룬다.
낙타는 끊임없이 무거운 짐을 요구하는 인내의 정신으로서 그 짐을 지고 사막을 달린다.
사자는 당위와 의무('너는 해야 한다')에 맞서 사자는 의지와 자유('나는 원한다')를 주장한다.
아이는 순진문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닌가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한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아이는 정신이 도달해야 할 최고의 단계를 상징한다. 끊임없이 '건너가고' '몰락하고' 그로써 끊임없는 긍정과 창조를 실천한다.

선과 악이라는 낡아 빠진 망상을 뒤엎고 '선악의 저편'을 꿈꾼, 아침놀과 한낮의 태양을 사랑한 자, 그는 부정과 어둠과 비극에 맞서 끊임없이 긍정과 생성과 기쁨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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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일격을 가하려면 가면을 뚫어야 해! 죄수가 벽을 뚫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나? 나한테는 이 흰고래가 나를 바싹 에워싸는 벽이라네." 개인적인 복수심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신 혹은 자연)을 향한 분노를 모조리 고래에게 쏟아붓는 격이다.

"본질적으로 색이라기보다 가시적의 색의 부재인 동시에 모든 색이 응집된 상태"와 같은 저 흰색이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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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결국 당신도 똑같은 짓을 한 셈이잖아? 당신도 역시 넘어섰으니까.....넘어설 수 있었으니가."

세계의 부조리에 맞서는 방식을 달랐지만 (겸허한 수용과 이타주의 vs 오만한 반역과 이기주의) 그들은 어쨌거나 '넘어섬'(이 단어는 러시아어에서 '범죄'와 어근이 같다)을 공유한다. 죄의 체험과 그 인식이 두 청춘을 엮어 주는 절망의 친화력으로 작용하고 '고결한 살인자'와 '성스러운 매춘부'는 종교적인 차원의 합일을 향해 나아간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것은 인물이든 작가든 그들 스스로 설정한 특정한 '선'(혹은 벽)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 사이의 긴장과 결렬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마흔 다섯 살에 쓴 <죄와 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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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각각 '감성(드미트리)'과 '이성(이반)'과 '영성(알료샤)'의 축을 형성하는 매력적인 청년들의 활약..

이 소설의 사상을 대변하는 이반은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입장에서 출발, 만약 신이 인간을 자신의 닮은꼴로 창조했다면 왜 이 세계에 악이 존재하는가, 하는 식의 물음을 던진다.

"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이 창조한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위대한 죄인'인 것은 엄밀히 말해 죄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죄를 느낄 줄 아는 양심의 크기 때문이다. 이 죄의식이 그를 윤리와 도덕의 정점으로 이끈다. 그의 이론이 와해되는 지점에서 신의 존재가 요청된다.

"모든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해 모든 사람 앞에서 죄인이다."

총체적인 화해와 사랑을 역설하는 <카마라조프가의 형제들>은 환갑을 코 앞에 둔 도스토예프스키가 스물네 살 연하의 아내, 어린 아들딸과 더불어 인생의 황금시대를 구가하며 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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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때로는 목을 잘리게 되기도 하는 법인가 보다."

민중(우매함)과 지식인(나약함)의 '격절'과 그에 대한 '우수'

"우매한 국민은 아무리 몸이 성하고 튼튼해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구경거리가 되거나 구경꾼밖에는 될 수 없다."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과 마찬가지이다. - 루쉰, 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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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성격과 신분(계급), 부가 다양한 방식으로 양산한 '오만', 또 거기서 자연스레 파생되는 '편견(심지어 오해)'을 해소하는 과정이 이 소설의 내용을 이룬다. 오만이 거만이 아니라 진정한 자긍심과 동의어가 되는 순간 소설도 끝난다.

"허영은 진짜 결점인 반면, 오만은 진정으로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라면 늘 그것을 잘 통제하기 마련이고, 그건 오만이라기보다 자긍심이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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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천재 작가가 쓴 놀라운 작품임은 분명하지만 영국 문학사의 '위대한 전통'의 맥락에서 보자면 '일종의 변종'이라는 평(리비스, <위대한 전통>)이 지배적이다. 즉, 일탈적인 측면이 곧 매력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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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디킨스는 "단순히 위대하기도 하고 대중적이기도 하다든가 또는 대중적임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바로 대중적이기 때문에 위대한 극소수의 예술가"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현대편>)에 속한다.

셰익스피어가 "영웅시대를 구가하던 탐욕스러운 영국(엘리자베스 조)"을 대변한다면 디킨스는 "부드럽고 집안일을 돌보는 주부"의 영국(빅토리아 조)을 대변한다. (슈테판 츠바이크, <천재와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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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그녀에게 있어 사랑은 삶과 동의어이다. 그것을 지키기위해 그녀는 자신을 옥죄는 거짓과 기만의 거미줄을 찢어 버린다. 결국 그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해다.

인간 개개인의 삶과 세계의 흐름을 관장하는 어떤 거대한 힘은 존재하는 것이며 위대한 순간도 그것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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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체호프 선집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관리의 죽음>은...

체호프는 냉혹한 유물론자였고, 때문에 저 세계가 아닌 이 세계, 영혼이 아닌 몸에 주목했다.

인간과 세계의 '작음'을 '위'가 아니라 그저 '밖'에서 그려 낸 '겸손함'이야말로 체호프의 천재성의 근거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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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제임스 개츠'가 '제이 개츠비'로 바뀌면서 거의 '페이스 오프'에 가까운 성형과 신분 세탁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의 중심축이 물신, 즉 돈이며 데이지는 그 육화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그녀에게 돈이란 뼛속까지 밴 부르주아 근성의 총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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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헤밍웨이 작품 역시 동시대의 다른 걸작에 필적할 만한 깊이와 무게를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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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이 세상에서 중요한 건 팔아먹을 수 있는 것들이야."

린다의 말대로 윌리는 딱히 유명하지도,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도 아니지만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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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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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물에 빠진 사람이 헤엄을 잘 치든 말든 살기 위해 수영을 해야 하듯 자기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도덕률의 핵심인 보편적인 법칙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내면의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타고 나고, 그것은 범상한 삶에 대한 낭만적 정신의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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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어떤 이미징 대한 추억은 어느 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아! 집도 길도 거리도 세월처럼 덧없다.

"요컨대 프루스트에게 있어 인식의 허망함을 아는 인식 외에 다른 진실한 인식은 없으며, 인식된 허망함은 진실의 유일한 내용이 된다." (이성복,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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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쓰메 소세키는 사무라이 문화, 즉 전근대적인 일본을 부정하지만 동시에 서양의 영향에 침윤된 현재의 일본, 즉 근대화의 환상을 혐오한다.

"자연의 아들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의지의 인간이 될 것인가." 자연은 곧 사랑(불륜)이며 의지는 제도(결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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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낮은 데로 임'하여 돈키호테처럼 우스꽝스러운 광인-바보의 역할을 맡음으로써 그는 지상의 그리스도로 거듭난다.

지상의 그리스도를 꿈꾼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들이 현실에서 범죄자, 백치, 광인이 될 수 밖에 없던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요조는 스스로를 '인간 실격'으로 규정짓는다.

맨손체조만 좀 했어도 그의(다자이 오사무) 우울증은 치유됐을 것이라는 미시마 유키오의 냉소적인 말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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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관능적이고 농염한 고마코, 청순하고 순결한 요코 등 남성의 눈에 포착된 두 여성은 그 자체로 미의 육화이다.

소설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가 '허무'이다. 대체로 <설국>의 허무주의와 탐미주의는 어려서 부모, 누나, 조부모을 연이어 잃은 작가의 개인사, 나아가 20세기 전반 일본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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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음악이 그를 이토록 사로잡는데 그가 한 마리 동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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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그렇게 나가고 싶어 하더니, 여기가 출구라고 수없이 말해 줘도 꼼짝도 하지 않는군요."

'체포'와 '처형', 그 사이에 위치한 '소송'은 물론, 부조리한 인간 실존의 은유이다.
덧붙여 존재와 존재함 자체가 죄이다.

"뭔가 잘못된 겁니다. 도대체 인간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땅에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인간입니다."

"글은 불변이고, 해석들은 종종 글에 대한 절망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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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성을 신의 은총과 자비의 상징으로 보는 전통적인 독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 폐허와 불모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고 숭고한 것은 새로운 패배를 향한 K의 거듭되는 시도, 그 '집요함' 이다.

'고독한 원의 고독한 중심'을 자처한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로 글을 쓴 유대인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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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카뮈가 스물아홉 살에 발표한 <이방인>은 '엄마'의 죽음을 알리면서 시작해 '나'의 살인을 거쳐 '나'의 사형 집행을 예고하며 끝난다.

모든 문제는 삶의 논리와 법률의 논리, 삶의 무대(실제)와 연극 무대(유희) 사이의 간극 때문에 발생한다. 말하자면 살인 장면에서 뫼르소가 보여 준, 처음 한 방과 두 번째 네 방 사이의 간극, 그 틈새 같은 것이다.

문학은 이렇듯 논리와 조리와 상식이 놓쳐 버린, 인과 관계의 필연성의 원칙으로는 영원히 메워지지 않는 저 우연한 틈새(부조리!)를 보여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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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페스트는 '부조리-부정'(이방인)을 잇는 '반항-긍정'의 소설적 표현이다. 또 연대기의 형식과 문체, 타루의 성자 콤플렉스, 연대 투쟁의 모티브 등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에, 리유의 형이사항적 반항과 바늘루 신부와의 논쟁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카뮈가 개작하여 무대에 올린 반 있다.)

한데 도스토예프스키와 비교할 때 그의 소설은 '삶' 부족하고 그의 영원한 동반자인 사르트르에 비해서는 '관념'이 부족하다. 달리 말하면 삶과 관념의 긴장 어린 공존이 카뮈 소설의 매력이다.

'고독(부조리-부정)'에 골몰했던 20대의 카뮈가 30대가 되면서 '연대(반항-긍정)'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 다음 단계에 염두에 둔 것은 '사랑'이었다. (노벨상 수상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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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르네상스 이래 지난 세기의 문학이 이룩한 '나-자아'의 신화를 이렇게 무너진다.

시계와 달력이 없는 이곳에서 '고도'는 시간의 다름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존재와 시간은 기다림의 형식으로 서로에게 손발이 꽁꽁 묶여 있다. 이 경우 기다림은 삶의 동의로서 행위(순간)이라기 보다는 양태(지속)이다. 고도와 디디는 오지 않는 '고도' 때문에, 더 정확히 '고도'가 오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

"이 세상의 눈물과 웃음의 총합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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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당(전체)는 당원(개인)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과 같은 문제적인 걸작들을 내놓았지만,,,,

'프랑스로 망명한 체코 작가'가 아니라 '체코 출신의 프랑스 작가'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아무튼 두 정체성 사이에서 진동하며 '향수의 고통'과 더불어 그보다 더 고약한 '소외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그의 작가적 숙명인 것 같다.

그가 노골적인 찬사를 아끼지 않은 카프카, 세르반테스와....

소설이란 "작가가 실험적 자아(인물)을 통해 실존의 중요한 주제를 끝까지 탐사하는 위대한 산문 형식" (소설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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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가의 해석인즉, 인생이란 단 한번뿐, 그래서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삶에는 아무런 문제도, 의미도 없다.

독일 속담대로 "한번 뿐인 것은 전혀 업었던 것과 같다.".....영원성(반복/회귀)와 일회성의 모순이다.
영원성이 무거움이라면 일회성은 가벼움이다. 그렇다고 이 대립이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가치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야 한다." 필연과 우연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시점에서 특정한 사건과 직면하여 과연 그래야 하는가 하고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모든 사건은 단 한번뿐인 까닭이다. 한 개인의 삶과 한 국가, 나아가 세계의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가벼움 대신 무거움을 지향하는 그녀(테레자)에게는 토마시 역시 우연이 아닌 필연의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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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문학과 정치의 상관성은 <1984>, 나아가 조지 오웰의 문학을 받치고 있는 축이기도 하다.

조지 오웰이 작가가 된 동기 네 가지 중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도 "정치적 목적"이다. 여기서 '정치적'이란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보려는 욕망"을 말한다. 고로 "어떤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아주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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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모험소설이나 성장 소설로 읽히지는 않는다. 차라리 디스토피아 소설, 혹은 우화의 형식 속에 인간의 본성과 그 사회적 발현인 정체에 대한 사유를 담아 낸 철학 소설에 가깝다. 소년들은 크게 랠프파와 잭파로 나뉘는데, 이를 통해 이성과 광기(본능), 문명과 야망,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 낙관주의와 냉소주의,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등의 이분법이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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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과 마르가리타)

우선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다.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네 선으로 무엇을 할 것이며, 땅 위에 그림자가 사라진다면 이 땅은 어떻게 보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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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보르헤스의 소설을 펼치는 순간, 소설이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통념이 무너진다.

보르헤스는 사실의 모방과 재현이 아니라 허구와 맞서는 또 다른 허구, 즉 '픽션들'의 창조와 기교의 개발에 집중한다. 인간과 세계 자체가 아니라 이미 그 작업을 거쳐 텍스트에서 출발하여 그것으로 귀결되는 만큼, 그의 소설은 그 태생에 있어 이론적이고 철학적, 즉 메타적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현실과 환상(꿈), 나(주체)와 너(객체)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모든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분신이자 환영이다.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원형의 폐허>. <모래의 책> . <바벨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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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은 '덧없는 이름(기호)'만 남은 '지난 날의 장미', 즉 '책-텍스트'에 관한 '책-텍스트'이자 '책-문건'에 바치는 또 다른 '책-물건'이다.

웃음을 두고 기독교 전통(특히 구약, 순수 히브리 전통)과 '이교'인 고대 희랍(나아가 라틴-로마) 전통, 또한 신학과 철학(문학)의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 자평 ] 충실한 안내. 안내의 역할을 목적에 닿으며 된다. 강을 건넜으면 배는 버려야 한다.

김연경씨는 연배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번역자이다.
특히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는 이분의 책을 신뢰한다.

소설에 대한 책, 소설을 소개해 주는 책, 소설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려는 책은 많다.
대체로 읽은 책들 중 머리게 기억이 나는 것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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