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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1장. 세계사의 시간이 거꾸로 흐를 때)

 

오늘날 유럽에서는 이른바 '국민국가의 부활'이 일어나고 있다.

(국민국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국가. 이때의 국민이란 문화,언어,전통,종교,혈통 등에서 공통의 정체성을 지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시스템이란 의미에서의 유럽은 미국의 소프트파워에 의해 식민지화됐다고 볼 수 있다.

(소프트파워: 군사력이나 경제 제재 등의 강제력이 아닌, 정보과학, 문화, 예술 등을 기반으로 설득과 매력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

 

미국이 유럽에 보인 것은 틀림없는 의태 전략이며, 똑같은 일을 중국이 미국에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태 전략으로 중국은 현재 글로벌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완전한 의태다. 소셜 미디어가 사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인터넷에는 법정도 없고 권력의 분립도 없다. 민주주의의 기본 구조가 인터넷 내에서는 전혀 실현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의 밖에서도 인터넷에 엑세스할 수 있고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 완전히 비민주적인 환경이다. 인터넷이야말로 민주주의 토대를 뒤흔들고 있다.

사람들이 표퓰리즘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 대국에서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이 명백히 증대되고 있는 것은, 실제 세계가 디지털 세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2장. 왜 지금 신실재론인가)

 

나의 신샐재론(New Realism)은 두 가지 테제(These)가 조합되어 이루어져 있다. 

전혀 다른 차원이 다른 두 가지를 조합했기 때문에 혁신적이며, 지금까지의 신실재론과 차이가 있다. 

 

첫째는 '모든 일'을 포괄하는 단일한 현실을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

이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술로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실은 이른바 '의미장'이라고 불리는 장소에 나타난다.

세계란 '우리 없이도 존재하는 모든 일과 사실뿐만 아니라 우리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일체의 일과 사실도 그 안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영역'이라고 정의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말은 "현실은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복수의 현실을 하나의 현실로 환원할 수 없다.

 

두 번째 주장..."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다."는 사고관이다. 우리는 틀림없이 그 현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정신 상태를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분명 그 정신 상태 자체이기 때문이다. 

 

구축주의를 비판한다. 구축주의는 '일반적으로 사실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중층적인 언설 또는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모든 사실을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  칸트 --> 캉탱 메이야수

 

현실은 모두 '알 수 있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나 현실에 관해 감춰진 것은 없다. 

 

신실재론에 의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이 다시 명확해질 수 있다. 경계선이 모호한 것은 현대의 이데올리기다. 사실과 가짜의 경계선, 허구와 사실의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생각은 포스트모던의 철학적 사고의 결과 생성된 것이다.

 

포스트모던이 만들어낸 것은 '우리는 각자의 환상에 빠져 있다'라는 새로운 환상이다.

 

의미장은 특정한 해석을 할 때 대상을 배열(arrangement)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모든 것은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하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의도(intent)'야말로 내가 '의미(sense)'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의미'에 호응해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을 '장'이라 말할 수 있다. 의미장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관계와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적합한 이유를 근거로 옳은 말을 하는가 하는 점이다.

 

통계적인 세계관이 감추는 일..

현재 서구 문명을 이끌고 있는 미국의 이데올로기는 과학 중심적이다.이는 자연과학과, 자연과학을 경제학이나 기술생산에 응용하는 것이 '구제의 길'이라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투자는 이 분야만으로 충분하니 다른 분야에 관해서는 잊으라는 식의 발상이다.

 

 

(3장. 가치의 위기: 비인간화, 보편적인 가치, 니힐리즘)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하고자 마음 먹을 때 필요한 것은 상대방을 비인간화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상대를 사살하는 일 따위를 할 수 없다.

 

지금 이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문화상대주의의 기능은 비민주적인 인터넷을 정당하기 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서 인간성을 빼앗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상대를 악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이며, 또 한가지는 상대를 선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이다. 

 

니체의 최후의 인간...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고통을 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4장. 민주주의 위기: 양식, 문화적 다원성, 다양성의 역설)

 

민주주의는 실재로 존재하는 재판소, 인프라, 세금 시스템, 관료, 관공서 등 그런 모든 기관이 얽혀 있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민주주의 제도의 기능은 의견의 차이가 발생했을 때 폭력 사태가 일어날 확률을 줄이는 일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라면 그 어떤 허튼 것이라도 말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여긴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고 페이스북이다.

 

민주주의는 진실한 민주주의여야 하며, 그러므로 '사실(fact)'이 중요하다. 

 

민주주의에서는 '우리가 사실을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가치관은 양식(common sense)이다. 양식이란, 시민이 근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 대해 민주적 시민이 공통적으로 갖는 감성이다.

 

 

(5장. 자본주의의 위기: 공연역주의,자기 세계화, 도덕적 기업)

 

자본주의는 노동의 역할 분담에 대한 응답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의 역할 분담을 이용해 '한 사람의 인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이 모른다'는 사실을 가치로 변환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비즈니스다. 

 

자본주의 자체가 불투명한 시스템이다. 자본주의에는 투명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래는 자본주의가 악이 될 필요는 없다. 이것은 근대화의 우발적인 부산물이다.

 

내가 아는 한, 인류사상 가장 성공한 '회사'다. 이집트 신관들도 꽤 상당한 단계까지 추진했지만 근 5000년 동안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기업은 카톨릭교회다.

 

신자유주의: 시장원리주의를 중시하고 규제 완화와 행정의 민영화를 추진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하는 사상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통계적 세계관이 자동적으로 모든 사람의 자유도를 높인다고 주장했다.

 

분명히 말해서, 이 혹성을 파괴한 것은 물리학자들이다. 

 

 

(6장. 테크놀로지의 위기: 인공적인 지능, GAFA 대항책, 부드러운 독재국가)

 

나는 자연주의(naturalism)이야말로 현대에 도사리고 있는 최악의 '지성의 병'이라고 강조해왔다.

(자연주의: 모든 현상은 자연(신이나 혼 등 초자연이 아니라는 의미에서의 자연)에 있는 원인과 법칙을 통해 기계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입장)

 

자연주의 이데올로기는 '자연과학의 대상이 아닌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를 기본으로 한다.

'자연과학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대상만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다. 자연과학만을 믿어라, 상식이나 문학, 정치학, 자신의 감각을 믿지 마라.'. 개략적이지만 이러한 내용이 자연주의가 내세우는 신조다.

 

이것이 자연주의의 문제다. 권력자나 정치가를 포함한 사람들 대부분이 과학자에게 몰려가서 하나부터 열까지 의 존하려고 한다. 기업은 경제학자에게 온갖 것을 묻는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그런 일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학자에 전문 분야 이외의 일을 물어서는 안 된다.

----> 나도 1000% 동의한다. 여러 영역을 넘어선 통섭이나, 특히 지혜는 정말 보기 드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살 면서 나는 지혜를 읽은 적은 있지만, 지혜가 발생하는 현장을 목격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과학의 진보가 인류를 구원한다'는 미신과 싸워야만 한다.

 

인간의 정의는 '동물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물'이며 그렇기에 그곳에 기술이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나는 bottom-up 사고를 '레고중심주의'라고 부른데, 리얼리티- 적어도 물리학자의 리얼리트-는 레고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인공지능'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복잡한 폴더다.

 

자동화가 최적화된 상태라는 착각은 오늘날 사람들이 믿고 있는 장대한 신화다. 대개는 순전히 자동화가 사물을 범용화시킨다.

 

나는 지능이란, 부여받은 시간 내에 부여받은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같은 과제를 더욱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더욱 지적이라는 뜻이다. 

 

사고 모델은 사고 자체에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사고 모델은 사고가 아니다.

 

컴퓨터 과학은 경험과학이다. 컴퓨터과학은 대상이 되는 시스템을 모델화한다. 소정의 시스템이 있고 컴퓨터과학이 그 시스템을 연구한다. 따라서 컴퓨터과학과 컴퓨터과학이 연구하는 대상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7장. 표상의 위기: 사실, 가짜뉴스, 미국의 병)

 

표상은 정확한가 부정확한가의 속성을 지닌 현실의 모델이다.

 

'나의 신념은 진실이간 거짓인가를 결정하는 규범은 사실(fact)이다. 내 사고의 규범성(normativity)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이미지가 좋은지 아닌지는 이미지가 아닌, 현실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이다.

 

5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은 그것으로 구입할 수 있는 가치를 표상한다.

 

사람은 허위의 사고를 할 수 없습니다. 허위를 생각한다는 것은 무언가가 허위라는 진실에 관해서 생각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므로 허위의 사고를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은 옳은 사고다'라는 사고 없이 사고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자신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기보다, 믿어야 합니다.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공한 사회는 잘못을 저지를 위험률을 줄여주는 사회입니다. 

사회에서 기본적이며 최고의 가치가 진실이라는 뜻입니다. 

 

 

[ 자평 ]

 

책 표지띠지의 형용문구는 <모든 것이 모호한 경계 속에서 어떻게 삶의 중심을 지켜낼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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