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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내용 ]

 

ㅇ 그는 마지막 일기에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이 지혜롭다고 할 수 없다."며 자신의 지혜까지 완벽하게 비워버리고 조그만 꽃잎 하나를 그려 놓고 의자에 앉아 홀연히 계룡산 소쩍새 소리를 들으며 무위진인디 되어 사라지니...

 

ㅇ 예전에는 정보매체가 없어 이심전심일 수 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정보매체가 발달되어 빠른 시간에 여러 사람에게 전달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 행동하지 않는 진실, 행동하지 않는 불성은 마른 똥 막대기이다.

 

ㅇ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기에 깨달은 선사는 신통변화가 무쌍하고 모든 것을 아는 만물박사려니 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끝이 없는 수행의 여정 길에 사람을 통한 마장을 넘어야 하고, 사람을 통한 깨달음을 얻고 증명하고 증오를 해야 한다.

 

ㅇ 출가 수행자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어렵고 고통스러운 마장은 색욕이다.

 

ㅇ 속이지 아니하고, 꾸밈이 없는, 천진무구한 진정한 양심이 불성이고, 부처님이고,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나의 이런 주장은 불교사에 없는 주장이다.

 

ㅇ 양심을 알아보고 깨쳐 실천하는 사람이 부처님이다.....어떠한 행위에서든 양심을 속이지 않는 마음, 꾸밈이 없는 마임이 관심하는 마음이다.

 

ㅇ 행동하는 양심은 자신의 행동을 확신하고 활력에 차있다. 양심이 없는 사람은 초조하고 불안하며 고통이 따른다.

 

ㅇ 깨달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해오와 증오다. 해오는 의식의 각성에 그치는 것이고, 증오는 의식의 경험적 발전이다.

 

ㅇ 양심이 곧 불성이다. 양심을 바로 보고, 양심을 바로 알고, 양심대로 행동하면 생사를 뛰어 넘어 두려움이 없다.

 

ㅇ 참회하지 아니하고 깨달음을 구하거나 복을 구하는 것은 더러운 밥그릇을 닦지 않고 밥을 달라는 것과 같고, 그릇은 종발만한데 항아리만큼 달라는 것과 같아서 이런 마음에는 지혜든 복이든 소원이 성취되지 않는다.

 

ㅇ 중국의 마조도일, 황벽희운, 임제의현, 남전보원, 조주종념 같은 조사들이 화두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후학들이 어리석게 화두를 삼은 것이다.

 

간화선자들은 간절한 문제의식으로 대의심을 품고 질문을 하여야 하고, 이때 진실로 질문자의 문제의식을 간파하고 답을 해주는 자가 있어야 한다.

 

ㅇ 내가 친견하지는 못했지만 만공 선사의 "허공을 속이지 말라."는 말씀을 가장 존경하고 있다. 이 말씀은 "어두운 방에서 속이는 마음이라도 신의 눈은 번개와 같이 본다."는 공자님 말씀보다 더 좋은 것이다.

 

오도했다는 것은 가야 할 길을 알았다는 뜻이다. 도의 끝을 보았다거나 완성한 듯이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ㅇ 여러 사람이 있거나, 혼자 있거나, 속이지 않는 마음이 오염되지 아니한 양심이며, 이것을 나는 불성이라고 한다.

 

ㅇ 부처가 되면 인과를 초월하고 차제를 뛰어 넘는다는 선사들의 어록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런 법문은 부처라도 부정합니다. 부처가 되어도 인과를 받고, 차제를 거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고 생각합니다.

 

ㅇ 인과를 초월한 존재는 없습니다. 부처님도 예외는 아닙니다. 인과를 무시하고 차제를 무시하는 부처나 조사는 일봉에 타살되어야 합니다.

 

ㅇ 빌 곳이 없을 정도로, 빌 것이 없을 정도로 정신적 경지를 밝힌 것입니다. 이것이 살불살조의 정신이지요.

 

ㅇ '마음이 곧 부처이고 마음 밖에 부처 없다.'는 것이 나의 철저한 믿음이고 증오인 것이다. 어떤 마음이 부처인가? 양심이다. 양심은 어떻게 증명되는가? 진실로 증명된다.

 

마음은 몸이 없고서는 존재할 곳이 없어 홀로 존재할 수 없다....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이것과 저것의 상호 관계로서만 존재한다.

 

ㅇ 불교에서 지구를 고통스런 사바세계라고 한 것은 사람의 욕망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인간의 욕심이 한량없음을 말함이지 환경이 고통을 준다는 것은 아니다. 환경에 무심하면 그 환경이 무심을 파괴하지 못한다. 무심이 지고의 행복이다.

 

 

[ 배운 점/느낀 점 ]

 

띠지의 부제는 '행동하는 양심이 부처...."

 

내가 선사들의 삶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아마 이 책이 계기를 마련하지 않았나 싶다.

'백척간두에 무슨 절망이 있으랴'  - 정휴스님, 1991년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청년 시절에 목숨을 걸어 놓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사들의 삶에 이상적인 매력, 감성적인 끌림, 무의식적인 숭배가 있었다..

 

이후 자서전식으로 접해던 선사들의 삶은......

 

국내 근대선의 태주인 경허선사를 시작으로, 만공, 수월, 성철, 경봉, 효봉, 청담, 혜암, 청화, 대행....등 등....

 

책장에 가장 많은 분은 대행스님, 성철스님과 청화스님 책인 듯 하다...

 

이후 게송, 확철대오, 접법계, 부처님의 ㅇㅇ대 제자(혹은 붓다 ㅇㅇ대손, 혹은 불조정맥 등), 좌탈입망, 사리 등 이 업종의 완전한 고지식과 몰이해, 자기만족과 자기기만에 식상하여.......더 이상의 책을 들지는 않는다....

 

(불교정맥에 의하면 경허선사는 제75조가 된다..ㅋㅋㅋㅋ)

(이분들의 주장에 의하면 현재 조계종 종정인 진제스님은 79대손이다....)

(이 소식을 붓다가 아시면 얼마나 배꼽을 잡고 웃을지, 아님 어이가 없어 울지 참..)

 

다만 근래에는 아래와 같은 불교서적에 눈이 가고는 있다.

불교도 이제 좀 깨어서 아무 의미도 없는 선사들의 신격화, 힌두교와 차이도 인지하지 못하는 진아 타령에서 좀 벗어나서 제대로된 정리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윤회와 반윤회 - 정세근

불교를 철학하다 - 이진경

어느 수학자가 본 기이한 세상 - 강병균

 

 

대체적으로 절의 주지를 하여 따르는 대중이 많고, 그 대중들과 제자들에 의하여 영웅시 또는 성인시 된 스님을 제외한 스님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이 책의 주인공인 '삼성'스님이다...

 

무엇보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사진이다.

내 양심이 곧 부처더라

 

실제로 존재하는 불교 수행자의 사진 중에 나는 이 사진이 가장 멋져 보인다.

순수해 보이고 해맑아 보인다. 삼성 스님의 말씀대로 '양심'적으로 보인다.

 

포대화상이나 한산, 습득, 장자가 웃는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한산 ∙ 습득 - 한산 습득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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