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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들

활자잔혹극 by 루스 랜들

비즈붓다 2024. 9. 1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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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한 까닭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문맹은 일종의 시각 장애이다. 커버데일 집안 사람들이 이 말을 들었더라면, 그런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못했으리라.
 
문맹의 장점은 본 그대로 기억하여 거의 완전하게 재현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활자로 도배된 세상이 끔찍했다. 활자를 자신에게 닥친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활자는 거리를 두고 피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그녀에게 활자를 보여 주려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죄인들이 없으면 그녀는 현자가 될 수 없었으니까.
 
우정이란 때로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고 확신할 때 가장 돈독해지곤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세상은 사랑에 빠진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유니스는 숨 쉬는 돌이었다. 지금까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역자 후기.. 이 동윤)
 
<활자잔혹극>이야말로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강렬했던 도입부를 선사했던 작품이었다. 
작가 자신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듯, 이 작품의 첫 문장은 미스터리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도입부일 것이다.
 
 
(발문: 문맹과 문해 사이_장정일)
 

 
문맹을 타인에 대한 감정을 헤어릴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로 간주함으로써 작가는 문맹과 폭력의 연결 가능성을 폭넓게 열어 놓았는데, 그것을 증폭시킨 것이 영상 문화이다.
 
글을 읽는 독자들이 활자와 책에 대한 턱없는 신뢰와 교만을 피할 수 있도록, '독서광'의 비인격적인 실례마저 함께 보여준 데에 있다.
 
작가는 문맹이 아니라, 책에 코를 박은 채 타자나 현실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탐서가의 병폐도 함께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 자평 ]
 
추리 소설은 아마 어릴 때 셜록 홈즈 시리즈나 아가스 크리스티 여사의 책 몇개를 읽은 이후에 간만에 읽었던 것 같다.
내가 크게 찾아서 읽은 장르도 아니고 앞으로도 뭐 특별히 찾아 읽지도 않을 것 같다.
 
다만 읽는 내내 <더 리더>라는 책이 충첩되었다.
문맹 여성이라는 측면, 살인과 연관된 측면 등이 유사한 점이 많았다.
 
이 책의 원저는 ' A Judgement in Stone'으로 1977년 출판이고,  베른하르트 슐링크 (Bernhard Schlink)의 원저 ' Der Vorleser'는 1995년 출판이다.  슈링크가 핵심 아이디어를 이 책에서 따 왔다 하더라도 왜 더 나은 메시지와 질문을 던지는지, 또한 문학적으로 왜 더 뛰어난 평가를 받는지는 알겠다. 
 
하나의 책은 시간을 보내는 한가한 독서 꺼리로 치울 수 있지만
하나의 작품은 인간 전체가, 인류가, 우리 시대, 다음 시대를 위해 물어야 할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책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어떻게 그 자존감을 희석하는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지만
하나의 작품은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어떻게 그 자존감을 극복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하나의 책은 사회가 부여한 상식적인 능력에 대한 자존심의 손상에 대한 이야기지만
하나의 작품은 사회가 기대한 상식적인 능력에 대한 개인의 심리적 저항과 극복을 그린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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