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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들

유럽의 붓다, 니체

비즈붓다 2022. 8.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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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붓다는 피안의 세계에 의지했고, 고통과 무지를 야기하는 윤회의 순환을 끝내고 싶어 했다. 

반면, 니체는 삶의 덧없음과 불확실함에 대해서 어떠한 환상도 품지 않았기에, 결연히 생명의 대양을 항해하며 만물의 영원회귀를 무조건적으로 승인했다.

 

니체가 말하는 <위대한 건강>은 고통과 질병이라는 피할 수 없는 시련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생명을 증대시키는 법을 발견하는 것이다. 

 

니체와 선종의 공통점의 출발점은 바로 순응주의에 대한 거부다. 순응주의야말로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을, 우리 각자 안에 있는 <붓다의 본성>이 실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니체가 보기에 깨달음은 잃어버린 자발성을 되찾는 것, 즉 선종에서 우리의 본래적 얼굴, 탄생 이전의 얼굴이라고 불렀던 것을 회복하는데 있었다. 

 

본래 진리란 포착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관을 통해서야, 즉 직접적이며 우회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서만 진리에 다가설 수 있다. 

 

사유는 단순히 하나의 과정이고, 실체적인 것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은 연속적 생성이다. 

 

니체는 모든 순간의 영원성을 긍정한다. 생기를 잃은, 공허한 순간들도 시간의 실타래의 본질적인 부분들이며, 오직 공허함을 느껴 본 자들만이 끊임없이 재미있는 일들로 시간을 채우면서, 시간을 붙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 자평 ] 잘 읽히지 않고 답답하다....

 

니체가 제대로된 불교의 핵심적 사상을 접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제 폴 드루아 (Roger-Pol Droit)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썼다.

"불교를 '무의 숭배'로서 파악한 사람들 중에는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같은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들도 들어 있었다. 헤겔은 불교를 자기 파괴, 의식의 삭제, 생각을 소멸을 지향하고 있다고 보았다. 무화는 불교의 가장 항구적인 동인이며 또 궁극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

붓다와 니체가 분명 다르고, 붓다와 도원선사(도겐)는 다르다. 또한 니체와 도원선사(도겐)도 다르고....위대한 것은 같다는 것은 때로는 지나친 동일화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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