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시는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유인 즉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으며,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았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가벼움을 생각할 때마다 오늘은 오늘일 뿐 내일이 되지 못합니다. 이와는 달리 존재의 무거움은 오늘은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됩니다.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것은 무거움만이 가치 있다는 것이 었습니다. 뒤돌아보면 인생이란 이런 무거움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는 것에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동정심이란 타인의 고통을 차가운 심장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입니다....무엇보다도 동정심은 고통뿐만 아니라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
사랑과 정체성, 무엇이 가벼웁고, 무엇이 무거운가? 나는 지금까지 참을 수 없는 것이 '존재'인지 '가벼움' 인지 단정 짓지 못한다. 이러한 의문은 1990년, 영화 를 보았을 때도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죽은 것이 '시인'인가? 아니면 '사회'인가?" 토머스는 테레사를 6번의 우연 끝에, 그야말로 우연히 만난다. 그는 이 '우연'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토머스는 어떤 존재이든 자유로운 삶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토머스의 "상대의 삶과 자유에 대해 요구하지 않는 비감상적 관계에서만 두 사람은 행복하게 될 수 있다."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에게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된다.
[ 밑줄 ] (1부. 가벼움과 무거움) 산다는 것은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음과 찬란함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세상사는, 세상사가 덧없는 것이라는 정상참작을 배제한 상태에서 나타난다. 사실 이 정상참작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심판도 내릴 수 없다. 곧 사라지고 말 덧없는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용서되며, 따라서 모든 것이 냉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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