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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수호전>이 암흑적인 수단의 집대성이라고 한다면, <삼국지>는 권모술수와 음모 그리고 교활한 심보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홍루몽>을 왕양명 이후에 등장한, 가장 위대하면서도 정서적인 분위기를 갖춘 심학으로 본다.
모든 민족에는 두 종류의 문화가 있는데, 하나는 원형문화이며 다른 하나는 위형 문화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문화에는 원질의 문화와 변질된 문화가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쌍전(수호전과 삼국지)은 문자 언어 체제의 소설 예술이지만, 또한 독자의 숭배, 비평가의 추앙 그리고 다양한 매체가 그것을 이용하여 일종의 문화적 현상을 만들어냈다.
문학작품은 무의식중에 감화시키는 힘이 있어 독자와 사람들의 인간성에 영향을 끼친다. 이는 바로 량치차오가 말한 '침(스며듦), 훈(배어듦), 제(끌어냄), 자(자극하여 격발시킴) 등 네 가지 작용이다.
---> 멋진 문장이다. 이리하여 '무엇을 읽는가'가 곧 그 사람을 말해주고, 곧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두 소설이 지닌 최대의 문제점은 "한 권은 폭력을 숭배하고, 다른 한권은 권모술수를 숭배하는 데 있다.
장타이옌이 제시한 '악도 진화한다'는 사상은 류차이푸의 <쌍전>이 논하는 문화 '위형화', 즉 문화가 거짓 형태로 변해간다는 주장과 같다.
하나의 폭력 행위가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한다' 혹은 '반란은 정당하다'고 설명될 때, 당사자는 그것이 제시하는 합리성만 인식할 뿐 잔혹성이나 피비린내 나는 측면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삼국지>의 분위기는 사실상 권모술수의 분위기이며, 아주 어두운 흑막의 분위기이다. 또한 <수호전>의 분위기는 사실상 건달들의 분위기이며, 깡패들의 분위기이다. 그들은 중국의 국민성 가운데 어두침침하고 열등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대표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는.... 폭력과 비열한 권모술수를 꾸짖는 불후의 비극을 성공적으로 써냈다. 이를 쌍전과 비교하자면 둘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작가의 윤리에 있었다..... 두 나라 소설의 사상적인 경지, 인생의 경지, 그리고 미학적 취미는 그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컸다. 문학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맥베스>와 같은 작품은 위대하고 불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호전>과 <삼국지>는 유행에 불과한 보통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중국의 평론가와 독자는 단지 자신들의 심리적인 쾌감만 추구할 뿐이다. 생명의 척도, 즉 인간성의 척도로 영웅들의 행위를 판단하는 것을 잊었다.
<삼국지>는 계략과 권모술수와 음모를 집대성한 책으로, 그것은 권모술수의 각종 형태를 전시하고 있다. 소설 전체에서 드러나는 정치, 군사, 외교, 인간관계 등의 영역에서 뚜렸하고 부각되는 글자 하나는 '기만'이다. 모든 권모술수는 기만술인 것이다.
필자가 이해하고 있는 문학이란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갖춘 것이다.
첫째는 정신이고, 둘째는 상상력, 셋째는 심미적 형식이다.
가치관의 측면에서 지적하자면 이 두 걸작은 '대재난의 책'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폭력을 숭배하고, 또 한편으로는 권모술수를 숭배하기 때문이다. 이 두 권의 소설은 모두 정신적인 재난을 조성하고 있는 셈이다.
원형 문화란 한 민족의 원질이며 원액과도 같은 문화다. 즉 참다운 본연의 문화다. 반면 위형문화는 본연의 형태가 변하고 성질이 바뀐 문화다. 질적으로도 변질된 문화다. 모든 민족의 문화는 장기적으로 역사의 풍랑 속에서 변질될 수 있다. 문화를 고찰할 때는 자연히 이러한 현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위형이 발생한 원인은.....외부적인 요인이었다. 즉 외래 문화의 침입과 영향이다.
<수호전>과 <삼국지>는 한편으로는 중국 영웅 문화의 '위형'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여성 문화의 '위형'이다. 중국 문화의 큰 줄기에서 이른 시기에는 여성 문화의 원형이 있었다. 그 원형 중에서 여성은 세상을 창조하는 숭고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산해경>의 여와도 있었는데, 하늘을 메우고 또 사람을 만드는 창세자가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는 중국 문화 원형의 위대한 상징이었다.
여성적인 것이 우월하다고 하는 철학은 중국의 원형 철학이었다. 나아가 중국 문화의 진정한 정화였다. 그러나 수화전과 삼국지는 그러한 철학의 변형이며, 변질이다. 이 두 소설은 모두 남성적인 폭력을 숭상함과 동시에 여성적인 것을 멸시하고, 심지어 여성을 적대시하거나 도끼로 찍어 죽이고, 여성을 이용했다. 그것은 중국 문화의 가장 암흑적인 한 페이지였다.
<홍루몽>은 중국 대지 위에서 생산된, 인간과 관련된 위대한 깃발이었다......<홍루몽>은 인간의 책이다. 인간을 발견한 책이고, 사람들이 인간 속에서 인간을 발견하는 책이다.
---> 몰랐다. 홍루몽은 금병매와 같은 연애소설인 줄 알았다.....
---> 내 어릴 적에도 TV에서 내내 삼국지 타령만 하고... 국내 내놓으라 하는 작가들의 삼국지 칭송이고....삼국지를 읽어야 서울대를 갈 수 있는 줄 선전을 해 댔으니까..
<수호전>의 문화는 근본적으로 폭력과 반란의 문화다. 반란의 문화란 주위 환경에 대한 반란, 이유와 목표에 대한 반란, 주체와 대상에 대한 반란 그리고 방식 등에 대한 반란을 포함하다. 이 모든 것이 <수호전> 가운데 표현되어 있다.....소설 본문에 내포되어 있는 두 가지 기본 대명제는..
첫째, 반란은 정당하다. 둘째, 욕망은 죄악이다.
나는 하늘을 대신하여 정의를 행사하기 때문에 당연히 정당하며, 내가 사용하는 어떠한 수단도 정당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무고한 사람들을 함부로 죽여도 도덕적인 명분을 갖는다.
중국의 원형적인 문화에서 인류의 반항과 반란 행위는 다음처럼 귀중한 세 가지 규범을....
(1) 어떠한 반란이라도 모두 자비심을 가지고 이끌어야 한다... 혁명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2) 어떠한 반란이라도 모두 일정한 도덕적 경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반드시 일정한 한도를 지켜야 한다.
(3) 어떠한 반란의 수단이든 모두 인류의 생존이 지속되도록 하는 목적성을 지녀야 한다. 즉 그것은 인간성의 준칙에 들어맞아야 한다.
독재 정권의 주체와 독재 정권에 반항한 주체가 심리적으로 모두 동일한 구조.....
문명사회는 동물적인 표준을 내세워 사람들을 방종하도록 풀어놓지 않지만, 또한 신적인 표준으로 사람들을 꽁꽁 묶어놓는 사회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태도를 가지고 우선 욕망의 권리를 확인하고, 교육을 통해 그 욕망을 좀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며, 도덕과 법률을 통해 그것을 제어하는 사회다.
<수호전>의 핵심적인 가치 관념 중 하나는 욕망은 죄악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울러 여성은 욕망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들을 재앙을 부르는 원천이며 숱한 악의 근원으로 본다. '많은 악 가운데 음란함이 으뜸'이라고 여긴다.....수호전에서 여성은 사람이 아니다. 물건이다.
<삼국지>가 지닌 총체적인 효과는 영혼이 없고 마음의 꾀만 가지고 있는 '삼국지 인간'을 부단하게 제조해내는 것이었다.
영혼을 가진 지식인은 결코 그 책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나의 의견이다. 문학비평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마땅히 <삼국지>를 문학의 걸작으로 긍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소설이 품고 있는 정신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반드시 경계하고 거기에 물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의'가 사랑의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관심과 책임이 없는 보편성이다. 만약에 우리가 사회적인 관습언어로 표현한다면 '도원결의'는 양산박이든 그것들은 모두 패거리 집단에 불과한 것이다. 사회가 아니다.
루쉰은 펄벅이 <수호전>을 '사해는 모두 형제다'라고 번역한 것에 대해서 타당하지 않다고 비평했다. 왜냐하면 <수호전>의 영웅들은 '사해'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으며, 세상 사람들은 모두 형제라고 여긴 적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들은 집단의 안과 바깥을 구분했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비록 지혜가 충만하지만 주로 정치적 두뇌와 군사적 두뇌에만 머문다. 전쟁을 결국 유혈의 정치라고 한다면 당시 삼국 시대의 지혜는 간략히 말해 정치 두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 지혜가 아닌 철학 지혜, 역사 지혜, 예술 지혜는 없다. 적어도 상당히 빈약했다고 할 수 있다. <홍루몽>보다도 휠씬 뒤떨어진다.
<삼국지>의 역사관은 매우 천반하다. 역사 지혜는 실로 언급할 가치가 없다. 철학에 대해서는 더욱더 심하여 종적도 없다.
지혜는 파괴적 지혜와 건설적 지혜로 나눌 수 있다. 제갈량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의 군사적 지혜는 파괴적 지혜에 속한다. 그러나 그의 치국의 지혜는 건설적 지혜에 속한다.....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제갈량을 매우 존경하고 숭배했다. 그러나 그의 평가는 결국 제갈량이 '재상'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재능이 아주 대단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장수'로서 용병의 전략에 있어서는 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삼국'의 혼란 속에서 지도적 인물들을 모두가 교언영색으로 말을 잘했다. 입으로는 청산유수였지만 그들 마음에 '성실'이라는 두 글자는 없었다.
---> 그 때 뿐이겠는가 ?!!!
---> 지금도 '성실'은 '말과 글빨'에 가려져 사람을 말과 글 외로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 드물다....
<삼국지>, <수호전>의 최대의 공통점은 단지 영웅의 가치만을 알았지,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의 가치는 모른다는 점이다. 부녀의 가치나 아동의 가치는 더더욱 몰랐다.
[ 자평 ] 이견도 있을테지만 난 '류짜이푸 (劉再復)' 말을 따르기로 했다. 관점은 선택이다.
읽은 지 거의 10년이 지난 책인데....기억에 남는 책이다.
당시에 읽으면서 상당히 충격적으로 동의했으며 '속아 살았구나~~~'란 생각을 많이 했다.
정리를 위해 다시 읽어 보니 무릇 다시 동의가 된다.
누가 말했는지 모르지만 이런 말들이 꽤 오래 전부터 떠돌았다.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자와는 이야기 하지 말며 삼국지를 열 번 이상 읽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아마 삼국지를 팔아 먹으려는 번역자나 출판사가 퍼뜨렸을 것이다...)
(검색을 좀 해보니 맞는 것 같다. '철인 28호', '요술공주 샐리' 등의 만화를 그린 '요코야마 미츠테루 (橫山光輝)'가 출판한 60권 짜리 '전략삼국지'란 만화에 "삼국지 10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말라"는 문장이 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은 후 나름 삼국지를 놓고 아래와 같은 기준을 세웠다.
세번 이상 읽은 자와는 이야기를 하지 말고, 열 번 이상 읽은 자와는 아예 상종을 말아야 한다.
특히 40년 이상을 산 사람이 삼국지를 추천한다면 뭐 인연을 맺지 말아야 겠다.
왜? 내 마음이다. 인생을 보는 눈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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