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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전쟁의 허무와 불안

(황순원, 나무들 비탈에서다, 1960년 )

 

그대들이 말하는 불안이니 절망이니 하는 어구들이 불행하게도 내게는 아무런 실감으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그대들이 말하는 어구들이 아직 그대들 자신에 의해 육체화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안한 청춘의 표정과 부끄러움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1964년)

 

불안한 청춘의 내면을 김승옥은 "자기세계"라고 불렀다. "자기세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남의 세계와는 다른, "함락시킬 수 없는 성곽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냉정함과 공포, 적대감과 후회, 사랑과 증오 같은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감정들로 이루어진 기이한 세계다. 그 모순적인 감정들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내부"를 "무관심한 표정으로 가려버리는 법"([환상수첩])을 터득했을 때 비로소 "자기세계"는 완성된다.

 

김승옥 소설의 청춘들이 서울에서 살아 남기 위해 위장과 위악을 무기로 자기의 순수한 꿈과 열정까지도 파괴하면서 헤쳐나온 그 사건들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는 그 한줌의 부끄러움조차 희귀한 것이 되어버렸다. 

 

 

불가능한 혁명과 고독한 드라큘라

(최인훈, 회색인, 1967년)

 

일반적으로 <회색인>은 <광장>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실은 <광장>보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소설이다.

 

<회색인>은 회의와 좌절에 사로잡힌 무력한 자아가 한국 사회을 지배했던 거대한 혼돈과 절망을 냉철한 이성으로 파헤쳐나간 끈질긴 탐구의 기록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 최인훈이 지키고자 했더 최후의 보루가 다름 아닌 개인의 가치와 정신의 자유였다는 점이다.

 

작가에 따르면 혁명이 불가능한 이 땅에서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정신의 망명뿐이다. 

 

김학은 말한다. "혁명이 가능했던 상황이란 건 없었어. 혁명은 그 불가능을 의지로 이겨내는 거야."

 

소시민, 천바가거나 가련한

(이호철, 소시민, 1968년)

 

'나는 이 세계가 순박함의 세계에서 경솔함과 부박함의 세계로 이동할 것임을 직감한다.'

 

이호철은 "인간의 삶이란 그런 이론이나 이념으로 다 재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손창섭, 길, 1969년)

 

한국사회에서 정직하게 열심히 노력하면 과연 성공할 수 있는가? 이것이 <길>에서 작가 손창섭이 던지는 비판적 질문이다.

 

 

(이문구, 관촌수필, )

 

그의 문장은 개발의 시간에 역행하는, 어쩌면 사라진 농촌 공동체에나 있음직한 느긋하고 유장한 시간을 창조해낸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1978년)

 

"싸움은 언제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부딪쳐 일어나는 거야. 우리가 어느 쪽인가 생각해봐."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며 구원이라는 사실을, 그 깊은 절망을 통해서만 진실한 예술적 영혼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실은 질병과 고통과 비애로 얼룩진, 그래서 반드시 탈출해야 하는 열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써봐야 현실은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바꾸려고 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젊은 날의 초상>이면에 숨어 있는 작가의 논리다.

 

 

(조영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 전태일 평전>, 1983년)

 

 

'배움= 성공" 이라는 논리는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에 못 배우고 가난한 자들을 개발의 전쟁터에 동원하기 위한 허구적인 이데일로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피를 토하면서 쓰러진 여공과 막노동판에서 버림받은 밑바닥 인생은 그에겐 단순히 고통받는 타인이 아니라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로 들어온다. 

 

전태일의 드라마는 자기희생을 통해 이 죄의식의 윤리를 완성하는 숭고한 주체의 드라마다. 

 

 

(김원일, 마당 깊은 집)

 

저항과 도피와 일탈은 먹고살아야 하는 생존의 시급함 앞에서는 사치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건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나'는 그저 빨리 늙고 싶을 뿐이다. 그저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나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벌레'가 되고 싶을 뿐이다.

 

이것은 절박한 생존의 요구 속에서 자시를 소모시켜온 세대의 우울한 자학적 내면이다.

빨리 늙어버리고 차라리 '벌레'가 되어서라도 자기를 짓눌러온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 자기소멸의 충동

 

문화의 언어로 쓴 전쟁자본론

(황석영, 무기의 그늘, 1988년)

 

 

(박경리, 토지)

 

소설은 시간을 다루는 예술이다.

인간의 삶은 시간과 더불어 변화하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갖은 우여곡절과 흥망성쇠를 겪는다. 

소설이란 인간 삶의 면면히 생동하는 그 시작과 끝도 없는 시간의 한 토막을 잘라내 펼쳐놓은 장르다. 

 

박경리는 문학으로 현실을 살았던 작가였고 소설을 삶의 본질이라는 차원에서 사유한 작가였다. 

 

<토지>가 그려내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세상 질서의 변화다.

봉건에서 근대로,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탈신분제 사회로, 농업사회에서 상업사회로, 농촌에서 도시로, 조선에서 간도로 확장되는 삶의 변화가 이 소설의 중심에 있다.

 

평사리는 모든 것을 품어주는 여성적 돌봄과 치유의 공간이며 삶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본원적인 생명의 공간이다. 

 

 

(신경숙, 외딴방)

 

 

(백민석, 헤이, 우리 소풍간다)

 

산다는 것은 조금씩 "미쳐들 가는 것"라는 새리의 말처럼, 이 소설의 화자는 그렇게 점점 미쳐가는 영혼이다.

 

 

(김영하, 검은 꽃)

 

세상은 항상 개인의 진의와는 무관하게 오히려 그것을 배반하면서 굴러가다. 

<검은 꽃>에서 작가 김영하가 도달한 지점은 바로 이러한 삶의 우연성과 불가항력이 아니었을까?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마지막 팬클럽'은 자본주의가 조정하는 무한 경쟁의 삶에 순응하고 적응하기를 사양하는 탈자본 교양소설이다.

 

"나"가 선택한 삶의 태도는 바로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다. 즉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목적을 향해 한길로 내달리는 삶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달리기"보다 "어떻게" 달려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애란, 달려라, 아비, 2005년)

 

비참한 현실에 절망하기보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대처한다. 그 방식이란 바로 농담과 상상, 혹은 거짓말의 전략이다. 

그것은 자기의 상처와 아픔조차 가볍게 허구화하는 방법론이다. 

 

 

살아남음의 치욕과 "끼니"의 비애

(김훈, 남한산성)

 

홀로 이 지옥을 견디는 자의 고독한 신음과 냉정한 허무가 김훈의 소설을 지배한다.

 

그에 따르면 삶은 전쟁터다. 그곳엔 오직 양육강식의 생존 논리만이 지배한다.

 

<남한산성>의 주제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참혹하여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다만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

삶은 더이상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이고, 다만 당면해 살아갈 뿐이다.

 

 

주어진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다만 그 안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지상의 가치다.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2007년)

 

그 모두의 삶을 이어주는 것은 '우연'이다. 삶은 불가항력적인 우연의 연속이다. 

 

 

[ 자평 ]  "책을 읽고 그 책을 해독한다는 것은 이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구나!" 라는 경지를 느끼게 해 준 책

 

책 소개처럼 1950년대  ~ 2000년대 까지 한국 소설 30편을 소개한 책이다.

정비석선생의 <자유부인>부터  한강의 <채식주의자>까지 15권을 심진경씨가

황순원선생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서 부터  김연수의 <네가 누그든 얼마나 외롭든>까지 15권을 김영찬씨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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