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 밑줄/연결 ]

 

미국의 철학자 제임스 베일리(James Baillie)는...."우리 일상에 깊이 뿌리박힌 사고 패턴, 모든 존재의 중심에 우리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우리의 사고 패턴으로 인하여 어떤  '실존적 충격'(existential shock)'을 경험하기 이전까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멸성(mortality)에 대하여 진정한 앎을 획득하지 못한다"고 논증한다.

 

프리델 와이너트(Fridel Weinert)교수는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이 갖는 인류학적 교훈을 '중심성의 상실'(the loss of centrality)로, 다윈의 발견이 갖는 인류학적 교훈을 '합리적 창조의 상실'(the loss of rational desing)로, 그리고 프로이트의 연구가 갖는 인류학적 교훈을 '투명성의 상실'(the loss of transparency)로 명명한다.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시지프스나 인간이 살아가는 것으로 밝혀진) 이러한 허무주의적 삶 자체는 어떠한 비극적 요소도 없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그러한 무의미한 형벌을 내린 신들에게 반항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신들이 살 가치가 없는 삶이라고 여겨 시지포스에게 강요한 그 지독한 무의미한 삶이 실상 살아갈 만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들에 의해 지독한 무의미한 삶을 강요받은 시지포스가 그 삶을 기꺼이 살아냄으로써 신들의 오판을 증명하는 반항인으로 진정한 '부조리의 영웅'으로 재탄생한다고 카뮈는 강조한다.

 

진정 우리 세계가 중요한 것이라고는 도대체 존재하지 않는 허무주의적 세계라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그 허무주의적 사실 자체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삶을 지속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나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고 말하는 허무주의자는 삶을 끝내는 것 역시 아무런 의미나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부조리의 핵심은 겉모습(presense)과 실재(reality)사이의 불일치가 있다는 것이다.

 

 

 

네이글에게 인간의 부조리는 인간이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사실에서 따라 나오는 귀결일 뿐이다.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 문제 상황이 아니란는 말이다.

 

가이 카하네(Guy Kahane)가 규정한 바의'반대신론자'(anti-theist)에 가깝다....

반대신론은 무신론이 참으로 판명날지 거짓으로 판명날지와 무관하게 우리 세계에서무신론이 참이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Guy Kahane

 

반대신론이란 신이 전지전능하고 그리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존재라는 사실,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신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무신론과 유신론 사이의 논쟁은 신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사실판단과 관련되는 반면 반대신론과 찬성신론 사이의 논쟁은 신의 존재가 바람직한지 여부에 대한 가치판단과 관련된다.

 

논쟁의 핵심은 인간이 자기 자신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전지전능한 신의 계획에 봉사하는 피조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자아상을 취할지 아니면 인간이 독립적인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자아상을 취할지 여부라는 것이다.

 

현명한 자의 모습은 아마도 네이글의 조언을 따라서 자신의 삶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과 포기할 수 없는 목적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그에 대하여 아이러니를 띤 미소로 응대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자평 ] '반대신론'이라는 것은 이 책에 처음 봤다. 

 

그래.....결론적으로는 그냥 웃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