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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근본경전은 어디까지나 변형과 첨삭의 문제이지만 대승은 완전한 창작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변형과 창작은 근원적인 가치에 있어서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아난다여, 한결같은 이의 법들에는 '스승의 주먹'과 같은 것이 따로 없습니다."
----> 속 시원하다.
----> 부처님의 79대 법손이니 이런 작위적인 전법체계가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알려 준다. 붓다께서 없다고 하신다.
과연 정법시대의 비구들이 말법시대의 중생들보다 그릇이 작고 이해력이 떨어졌을까? 오히려 중생들의 자질이 갈수록 하열해진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이것은 부처님 당대부터 시작된 일이었음을....
---> 그렇구나. 현재 대부분의 선승들, 스님들의 스승은 붓다가 아닌 데와닷따 구나.
네 가지 앎 : 법에서의 앎. 추리에서의 앎. 경험에서의 앎. 합의에서의 앎
열반은 이렇게 "맑은 호수 속에 물고기를 보듯이" 직접적으로 현실에서 태어남은 끝났다고 분명하게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며" 확인하는 성질의 것이다.
열반이라는 단어는 그 어떤 전문적인 의미가 부여된다고 하더라도 일단 '꺼짐'으로 직역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열반에 대한 추상화와 신비화 ,존재론적인 대상화의 오류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
부처님이 접법을 망설인 이유도 따라서- 같이 - 생겨남이라는 진리의 난해함과 꺼짐이라는 결과에 대한 중생들의 거부감, 이 두 가지로 요약된다.
꺼짐이란 적어도 개체성의 소멸을 의미한다. 대승처럼 개체적인 영원불멸의 생명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절망적인 협오감을 발생시킬 것이다.
아라한이나 부처님에게 영원불변하는 진아와 같은 것은 당연히 없을 뿐더라 윤회를 지속시킬 주체 같은 것도 세워져 있지 않다.
삼법인
ㅇ 모든 형성작용들은 무상하다.
ㅇ 모든 형성작용들은 괴롭다.
ㅇ 모든 형성작용들은 자기가 없다.
불교에서는 '형성작용'일 뿐이다. 실체 대신 이 형성작용을 내세울 뿐이다.
법의 핵심적인 의미는 진리였다. 불교의 진리는 따라서-같이- 생겨남이다.
창조신 사상에서는 진리가 존재성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진리는 법칙성에서 찾아진다. 그 법칙성이 바로 '이-연유로-됨'이다.
12고리를 우리말로 정리해 보겠다.
깜깜모름 -> 형성작용들 -> 식별 -> 명칭과 방해물 -> 여섯 영역 -> 접촉 -> 느낌 -> 갈구 -> 포착 -> 생성됨 -> 태어남 -> 늙고 죽음
모든 세상이 마음으로부터 발생한 것이고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명은 바라문교의 신성자 창조설 내지 전변설과 부합하는 주장이다. 근본경전에서도 마음은 그림이 비유되었다.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마음이 그림이 아닌 화가로 비유되었다.
마쓰모토 시로가 그의 <여래장사상과 본각사상>에서
"나는 여래장 사상이란 기본적으로 힌두교의 아트만론의 불교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곧 힌두교의 아트만론이 특히 대승불교 성립 이래 불교 내부에 침투하여 불교적 표현으로 위장하여 성립한 것이 여래장사상이라고 본다."라고 비판한 말은 주목할 만하다.
범아일여(하느님과 나는 한결같다)사상.."중생이 곧 부처다" 혹은 "내가 바로 부처다."라고 한결같이 주장하는 대승사상과 놀랍게도 일치한다....
한때 우리나라 스님들이 이러한 사상의 계보에 속하는 마하리쉬류의 서적에 쉽게 젖어든 이유 중의 하나는 대승의 불성론은 단어만 바꾼 신성자의 신성론이기 때문이다.
<깔라마 경>에 의하여 불교 수행의 과정을 정리래 보면...
믿음 -> 이해 -> 수행 -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이해 -> 믿음 -> 수행 -> 깨달음"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불교든 외도든 모두 하나의 진리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고 무책임한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자들은 원칙 없는 사상적 개방성을 지적인 역량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심지어 부처님은 불교의 핵심 사상인 자기-없음(무아)을 위배하는, 자기라는 단일한 주체를 상정할 여지가 있는 질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세상이란 '인지가 개입된 세상'이며 '착각이 개입된 세상' 이다.
"쭌야여. 자기도 길들여지지 않았고 제어되지 않았으며 완전히 꺼지지 않은 사람이 남을 길들이고 제어하며 완전히 꺼지게 하는 경우는 분명히 있을 수 없습니다."
불교 수행의 전체 개괄
정떨어짐 --> 퇴색함 --> 풀려남 --> 꺼짐
깨달음이란 불교수행의 결과이므로 그 깨달음을 측정할 잣대란 불법의 총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결론적인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깨달음에 이르는 불교수행의 전체적인 흐름
점수(4향) --> 점오(4과) --> 원수(동격자의 삶)
점수(점차수습), 4향 (예류의 길, 일래의 길, 불환의 길, 동격의 길)
점오(점차돈오), 4과 (네 가지 출가수행의 결과들 :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동격과)
대승의 염불 수행이 효과가 없다고 하지 않겠다. 다만 불교의 수행이 아니고 이교도적인 것이며 많은 부작용과 삿된 견해를 양산한다는 것을 밝힐 뿐이다.
족보 편집증....한 명으로 지정된 부처님의 전법 제자는 없었다는 사실에 이 족보의 날조성은 증명된다.
동격자가 오도송을 읊는다면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는 자각을 공통적으로 말하게 된다.
선불교는 예류자를 중심으로 한 불교였다.
불교사상사는 거짓말과 개념 왜곡의 역사였다.
거짓말의 역사는 아미담마 철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대승은 제3의 종교
대승의 실체사상은 브라만교의 불이론적 베단따의 한 유형일 뿐이며 서양 사상으로 보자면 범재신론에 불과하다.
[ 자평 ] 얼치기 선은 이제 완전히 떠난다.
이런 제대로 된 연구에서 비롯된 자체 비판서를 쓰신 분이 있다니 속이 시원하다...
선사들의 선어록부터 불교를 접한 나는 선사들을 말씀을 읽으면서 두 가지 의심이 들었었다.
첫 번째, 이것이 붓다가 깨달았다는 내용, 방법과 일치하는가? 읽으면 읽을 수록 웬지 아닐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두 번째, 선사들의 깨달음의 경지라는 것이 붓다의 경지와 같을까? 웬지 그보다는 부족하고 모자란 점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확철대오로 대변되는 돈오돈수 한 방이면 정말 붓다의 깨달음 경지와 같아 지는 것일까?
이런 나의 의문은 2014년 아래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물론 근본불교(원시불교) 자체의 경전을 번역한 것은 아니었지만 김병훈씨가 요약해서 알려 주는 붓다의 깨달음 내용은 내가 그 동안 읽어 왔던 선사들의 화두처럼 두루뭉실하거나 헛뻥과는 달리 명확하며 논리적인 점이 충격이었다.
이 즈음에 나의 결론은
선사들의 깨달음의 내용, 방법은 붓다의 방법과 차이가 크다. (심지어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시대가 변했으니 방법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깨달음 내용에 대해서도 의심이 들었다.
나는 선사들의 수준은 붓다의 경지외 비교를 논하는 것조차 말이 안될 정도로 수준이하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 만큼의 경지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방법과 체계와 그 경지를 붓다처럼 자신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내 기준으로는) 바보 같은 선사들의 어록이나 선어 대한 책, 불교에 대한 책을 거의 끊었다.
이후 이 책처럼 제대로 된 분이 제대로 연구하여 제대로 증명해 준 붓다와 얼치기 선사들이 어떤 점에 다른가를 명확하게 제시해 준 책이다. 훑어 읽었고 이번에 재독하면서 다시 꼼꼼하게 살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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