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 밑줄/연결 ]

(차라투스트라의 서설)

(백승영교수 해설) 위버맨쉬(Ubernebsch)....가장 기본적 속성은 '자기 자신을 - 넘어서 - 가는' 자기극복의 모습...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다리라는 데에 있다. 인간에서서 사랑받을 만한 점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자 내려가는 존재라는 데에 있다.

인간말종은 '사랑이라는 게 뭔데? 창조라는 게 뭔데? 동경이라는 게 뭔데? 별은 또 뭔데? '라고 묻고는 눈을 껌뻑거린다.

(백승영교수 해설) 위버멘쉬로의 길을 '직접' 걸으면서
(1) 자기부정의 고통(하강, 몰락, 파멸) (2) 자기창조의 고통(상승, 창조) (3) 기존 가치를 부정하는 고통 (4)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고통 (5) 홀로가는 고통 등 여러 유형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말)

나는 그대에게 정신의 세 변화를 말하련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아이가 되는지를.

(백승영교수 해설) 낙타 정신(복종하는 정신), 사자 정신(부정하는 정신), 아이 정신(창조의 정신이자 긍정의 정신)..

(백승영교수 해설) 인간이 건강한 힘에의 의지의 주체이자 창조자일 때, 그때 인간 존재와 인간의 행위 일체도 '죄가 없다'.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일체의 글 가운데 나는 누군가가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낯선 피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한가롭게 책을 뒤적거리는 자들을 미워한다.

(백승영교수 해설) 글이란 온몸(신체)으로 체험하고 살아가는 삶에서 나오고 그 삶의 문제를 건드리며, 삶을 위해 봉사하는 행위다.

(백승영교수 해설) '뚜렷한 의식을 동원하여 하나 하나 꼽씹어서 내면화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삶으로 실천하면서 다시 뱉어내는 배움'이라는 의미.....체화..

삶이란 견뎌내기 어렵다. 하지만 그처럼 연약한 체하지 말라!
우리 모두는 무거운 짐을 잘도 짊어지는 귀여운 수나귀들이고 암나귀들이니.

사랑에는 늘 얼마간의 광기가 깃들기 마련이다. 광기에는 늘 얼마간의 이성이 있기 마련이고.

(싸움과 전사에 대하여)

뛰어난 전사에게는 '너는 해야 한다' "나는 원한다"보다 더 편안하게 들린다.
그러니 그대들이 사랑하는 것 모두가 그대들에게 먼저 명령하게 하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시장의 파리떼에 대하여)

세상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돌아간다. 배우를 중심으로 대중과 명성이 될아간다. 세상의 운행이라는 것은 이런 모양새다.

모든 깊은 샘의 체험은 더디다. 무엇이 자신의 깊은 곳으로 떨어졌는지를 알아내려면 샘은 오래 기다려야 한다.
위대한 일은 하나같이 시장과 명성에서 벗어난 곳에서 일어났다.

(천 개의 목표와 하나의 목표에 대하여)

인류에게 아직도 목표가 업다면, 인류 자체가 아직 업는 셈이 아닌가?

(이웃사랑에 대하여)

가장 가까이 있는 자에 대한 사랑보다 더 높은 것은 가장 멀리 있는 자와 미래의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창조자의 길에 대하여)

그대는 그대가 자유롭다고 말하는가? 내가 듣고 싶은 것은 그대가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대를 지배하는 사상에 대해서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고?.....'무엇을 향한 자유인가?' 라고

그대가 손을 내밀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저들에게는 앞발만을 내밀라. 나는 그대의 앞발에 발톱이 있기를 바란다.

(아이와 혼인에 대하여)

그대들도 언제가는 자신을 넘어서서 사랑해야만 한다!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

죽음을 맞이해서도 그대들의 정신과 덕은 대지를 에워싸는 저녁놀처럼 타올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대들의 죽음은 실패작이다.

(선사하는 덕에 대하여)

"모든 신들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위버멘쉬가 살기를 바란다."
이것이 언젠가 다가올 위대한 정오에 우리의 마지막 의지이기를!

(지복의 섬에서)

신은 일종의 억측이다. 그런데 누가 이 억측이 주는 고통 전부를 마시고도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백승영교수 해설) "진정한 철학자는 명령하는 입법자다. 그들은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와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하는지를 규정한다."

(춤의 노래)

나는 근본적으로 삶만을 사랑한다. 그리고 진정, 삶이 미울 때 삶을 가장 사랑한다!
내가 지혜에게 잘 대해주고,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잘 대해주는 것은 지혜가 내게 삶을 곧잘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무덤의 노래)

내게는 상처 입힐 수 없는 것, 파묻어버릴 수 없는 것, 바위를 뚫고 나오는 것이 있다.
내 의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의지가 말없이 그리고 변함없이 세월을 뚫고 걸어간다.

(자기 극복에 대하여)

생명이 있는 곳에서만 의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존의지가 아니라, 내가 가르치노니, 힘에의 의지다!

(백승영교수 해설) 인식과 진리를 창조해내는 것은 정신의 명상적 힘이 아닌, 신체로서의 인간의 온몸에서 발휘되는 활동적 힘이자 창조의 힘이다. 즉, 힘에의 의지다.

(시인들에 대하여)

"나는 오늘의 존재이고 지난날의 존재지만, 내 안의 어떤 것은 내일과 모레 그리고 장래의 것이다."

(큰 사건들에 대하여)

(가장 고요한 시간)

뭇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자가 누구인지 그대는 모르는가? 위대한 일을 명령하는 자다.
위대한 일을 수행하는 것은 어렵지만, 위대한 일을 명령하는 것은 더 어렵다.

(환영과 수수게끼에 대하여)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더!"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백승영교수 해설) 매 순간이 필연이고 의미가 충만하며, 그렇기에 영원한 회귀를 바랄 정도라는 점이다.
힘에의 의지의 자기 본성으로의 영원회귀 -> 힘에의 의지의 지속적 운동 -> 관계세계의 지속 -> 그 세계 속 모든 것의 의미와 필연성 확보' 과정.

(백승영교수 해설) 특히 자본주의의 천민적 형태와 그것과 결탁한 저널리즘이 정신의 죽음을 야기하는 원흉으로 선고된다.

(백승영교수 해설) 19세기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이다. 펜과 자본의 결합 및 대중의존성, 센세이션 만들기, 시대의식이나 소명의식의 부재, 인류의 건강성이라는 목적 및 방향성의 부재, 정신의 죽음 등이 이유로 제시된다.

(백승영교수 해설) 신도 지상을 중심으로 도는데, 그가 지상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돈과 이익이다. 돈과 이익은 현대라는 시점의 현실에서 최고 가치로 평가되는 것이고, 이것이 그리스드교 신마저 조정해버린다.

(중력의 정신에 대하여)

인간은 발견해내기 어려운 존재다. 자기 자신을 발견해내는 것은 가장 어렵다.
정신이 영혼에 대해 거짓말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중력의 정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시도와 물음. 이 것이 내 모든 행로였다.
그리고 진정, 이런 물음에 대답하는 법도 사람들은 배워야 한다! 이것이 내 취향이다.

(낡은 서판과 새로운 서판에 대하여)

저들은 맹수다. 저들의 '노동'에는 강탈이 있고,저들의 '벌이'에는 책략이 있다. 그러니 힘겹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건강을 되찾은 자)

(백승영교수 해설) 좀 더 높은 인간들의 위험, 위버멘쉬의 길을 가려는 인간 전체의 위험이기도 하다. 진리의 부재라는, 저인적 고향 상실의 위험 말이다.

(좀 더 높은 인간에 대하여)

가장 근심 많은 자는 오늘날 이렇게 묻는다.. "인간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는가?"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유일한 자이자 최초인자로서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해야 인간이 극복될 수 있는가? "

오, 내 형제들이여, 내가 인간에게서 사랑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하나의 과정이자 몰락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대들에게도 내가 사랑하고 희망하도록 만드는 것이 많이 있다.

모든 위대한 사랑은 사랑을 바라지 않는다. 사랑 이상의 것을 원하지.

진리를 말하는 자 차라투스트라, 진실로 웃는 자 차라투스트라,
성급하지 않은 자, 무조건적이지 않은 자, 도약과 탈선을 사랑하는 자, 나 자신의 이 면류관을 내 머리 위에 얹은 것이다!

(학문에 대하여)

공포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예외적인 것이지. 반면 용기, 모험, 불확실한 것과 시도되지 않은 것에서의 기쁨, 이런 용기가 내 생각으로는 인류의 선사 전체였던 것 같다.

(역자 해제)

'건강한 인간인 위버멘쉬가 부르는 영원한 긍정의 노래'

니체는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를 '나는 의욕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로 바꿔버린다. 이성 대신 의지가 인간을 대변하고, 문제해결 능력도 갖추었다는 것이다.

[ 자평 ] 죽을 때 까지 읽을 책...새로운 번역서와 해설서는 계속 나오겠지만.....

내가 니체에 빠진 계기는 1997년에 나왔던 오쇼의 <내가 사랑한 책들> 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한 책들을 모두 읽어 보리라 작장하고 이리 저리 찾아서 읽거나 구매해 놓았던 20대 추억이 있다.

지금은 틀린 정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오쇼는 이 책에서 니체를 극찬한다.

"비록 니체가 생전에 출간한 유일한 작품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지만, 그는 인류에게 위대한 공헌을 남겼다. 차라투스트라는 거의 잊힌 존재였기 때문에, 니체보다 인류에 더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세상에 다시 부활시킨 인물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미래의 성경이 될 것이다."

니체는 내게는 아마 철학자 중에서는 가장 많이 읽고 가장 많이 책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일 것이다.

읽다가 포기 했지만 가지고 있는 <차라투스타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총 4권.
20대에 그냥 뭔지도 모르고 읽었던 홍신문화사에서 사순옥님 번역으로 나온 1987년 판.

정동호교수가 번역한 2000년 책세상판.

백성현씨가 독특한 운율로 번역한 2007년 판
(이 책은 인터넷에 전문이 PDF로 공개가 되어 있었다.)

근래에 이진우교수의 번역본과 백승영교수의 번역본을 가지고 고민하다가 백승영교수의 책과 인터넷 강연에 감동한 기억이 있어 백승영교수의 번역번으로 다시 읽었다. 읽는데 약 한 달이 걸렸다.

내가 니체에 대해서 읽은 책 중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본 최초의 책은 외국 번역본이었고 이후 몇 권의 잠언집을 읽었다. 가장 좋은 해설을 해 준 책은 고병권씨, 이후 백승영교수의 책이었다.

혹여 20 ~30대 돌아 간다면 오쇼의 강연을 받아 쓴 차라투스타 같은 허접한 책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 아름다운 것이 꼭 진리만은 아닐 것이다.

그냥 니체 철학을 전공한 학자가 쓰거나 독일어 전공자가 번역한 원전 번역본을 읽는 것이 1000배 났다.
(내가 20대에 읽었던 책이 있으나 절판된 모양이다.)

내 눈과 심장을 거쳐 책장으로 다시 돌아간 니체 관련 책들을 훑어 본다.
죽을 때까지 극복되지 못하리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