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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동양 고전은 많은 경우 그 난해함에 의해 가치가 입증된다. 요약해 보면, 난해함이 신비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이 난해한 신비는 시대를 따라 세포분열을 하다고 마침내 빵빵한 오라(aura)를 갖춘 신화가 되어 왔다.

노자에 의해 맨 처음 드러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노자적 사유는 사실 상나라 때 정인들, 혹은 상나라 이전 시대의 정인들의 머릿속에서 일상으로 반복되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인이란 (정)하는 사람, 즉 정을 집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상나라 때에 왕실의 대소사를 관장하며 점을 치던 무당 계열의 사람들로, 예민한 눈썰미와 천재적 예술성을 지녀 문자 디자인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곁들여 정상급의 권력도 누리고 있었다.
---> 상(商, 기원전 1600년경 ~ 기원전 1046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미지와 소리, 그리고 글꼴을 체계적으로 연결 지으며 사고했던 최초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바로 정인들이었다.

정인들이 작품을 완성하면 사람들은 그 글꼴을 보며 정인의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를 공유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이미지에 공감하며 소통의 도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노자는 결국 당시의 흔하디흔한 정인들의 사유를 정리해 보았을 뿐이었다. 그것을 난생 처음으로 읽도록 한 것은 노자가 아니었다. 단지 후대 사람들이 그렇게 읽었고 그렇다고 믿고 있는 셈이다.

도의 고대 글꼴은 산이나 나무 따위를 직접 그려낸 상형문이 아니다. 그저 단순한 기호에 해당된다.....이미 만들어진 어떤 상형으로 부터 발전해 온 변형이 아니라 정인이 처음, 주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만들어낸 창작의 이미지라는 것이다......필요에 의해 상상을 거쳐 뽑아낸 이미지라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정치적 힘은 정보 장악에 있다. 무기가 인간의 통증을 담보로 한 힘이라면 정보는 인간의 무지를 근거로 한 영향력이다.

춘추와 전국시대 모두에서 <논어>속의 '학'이 단순히 '배우다'의 의미가 아니라 왕실 귀족 사내들의 정보교환 장소이자 왕궁이며, 아울러 제례 공간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논어>의 첫 구절을 다시 읽어 보면 이렇게 바꿔야 한다.
'왕실 제사를 진행하는 궁궐 학에서 제례 절기를 따라 제반 절차를 실제로 실습하는 과정,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 그 유명한 논어 1장은......'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대체로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로 해석한다.
---> 저자의 문장에 꽤 수긍이 된다..

<주역>은 흔히 이야기하듯 태고의 신비를 알고 있는 어느 도인이 써낸 책이라기보다는 후대에 편집된 짜집기 서적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일단 이 책은 아무리 빨라도 상나라 이후에 만들어진 책이다. 주나라 때의 책인지라 <주역>이라고 한다지만, 상한선은 한나라 이후, 서기가 시작되는 시점 이후에 호기심 많은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여기저기 끼워 넣은 책으로 보인다.

<주역>은 유교문화를 주요 가치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후대의 어느 식자가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점술 문화를 뒤섞어 묘한 신비감을 조성해 놓은 책이다. 다른 동양의 고전들이 일방적으로 훈계와 주장을 남의 이야기인 척 위장하는 전략을 취했다면, <주역>은 태고로부터의 신비를 배경으로 가치관을 전수하려 한 고도의 스토리텔링 저술이다.

공자가 유교문화를 창시해낸 것이 아니라 유교문화 속에 공자가 있었던 것이다.

맨 처음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는 사상가라면, 그리고 그 말이 주류 사회의 가치적 표현(norm)으로 자리매김하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던진 표현에 대해 논리적인 설명을 가하는 것이 우선이다.
---> 내가 구경해본 칸트의 저서가 딱 이렇다.



상나라의 정인...왕실 전용 엘리트로서 문자, 문서, 정보관리와 함께 일상의 점쾌 다루기와 조상의 혼령 관리까지 해내야 하는 전문직이다. 때로 정인은 왕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 주술적 힘이다.

유가에서는 '자신의 재능이 채택되면 제도권에서 일을 하고, 채택되지 않으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지침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것은 '사색과 예술의 길을 걷다가 창조의 샘이 마르면 나가서 벼슬을 한다'라는 지침을 마련해놓지 않은 도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도가가 멍청함을 고집한다면 유가는 썩 현명한 축에 든다.

유가는 예의와 염치로 욕심을 제어할 것을, 도가는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욕심을 덜어낼 것을 강조한다. 반면에 불교는 무욕, 아예 욕심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경지로 뛰어들려 한다.

상나라 때의 갑골문에는 아무리 여러 번 보아도 마음을 다룬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갑골문에는 심장의 상형문이 있지만, 심장을 마음 또는 느낌과 연결해 놓은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상나라 때, 적어도 B.C. 1046년 이전까지 '음'은 동양문화가 이야기하는 음양의 음이 아니었다. 파트너도 '양'이 아니로 '계'였고, 그렇기에 동양문화 속의 음양을 논하는 동서양 전문가들은 도대체 어떻게 음양이 태곳적부터 시작된 것임을 확인하고 있는지 궁금증만 더해간다...... 양은 단 1회만 등장한다. 이 말은 200여 년 동안 단 한 차례 등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작성 시기가 명백한 문헌들을 놓고 보면, 음양이론은 한나라 때 완성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 한(漢)나라는 기원전 202년 ~ 220년까지 존재한 중국의 통일 왕조라고 본다.

<황금가지>의 저자 제임스 프레이저(James G. Frazer)는..."인간 정신의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한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가 하나의 가치에 묶이기를 무의식적으로 갈망하고 있다. 이것을 '내재적 전체성의 원리'(inhabitating principle of the whole)라고 신화학자들은 설명한다.

민심은 천심이어서 하늘도 나라님을 민심 따라 낸다는 동양의 전설은 그저 오래된 혹세무민의 정치적 레토닉일 뿐이다. 문화의 관성에 따라 오늘도 매체들은 그렇게 정치적 사후관리를 하곤 한다.

갑골문은 지금으로부터 3.500여 년 전의 황허 유역에 살던 사람들의 언어를 간직하고 있다.

동양학의 줄기는 경서를 축으로 그것을 해석해가는 주해에 의해 이어져 왔다. 수많은 설왕설래와 학파들의 등장, 주해를 근거로 한 정치적 음모와 이합집산이 동양사회의 핵심 에너지임을 떠올려보면, 힘은 들었지만 갑골문을 파헤쳐온 시간이 아깝지 않다.

유교사관이란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 년 전, 진시황과 한나라 무제 시대를 전후해 형성된 역사관이다. 물론 현존하는 문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동양의 역사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진시황 이전의 상화이었다.

상나라 사람들의 버전으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질문에 답을 하면...
"정의란, 특정 상대를 정벌하는 데 필요한 신묘한 판단력과 물리적 힘의 결합 상태이다."

[ 자평 ] 이 책으로 인해 동양사상을 믿지 않게 되었다. 아니 무언가를 믿는 것에 대해 꽤 약한 사람이 되었다.

나에는 결정적인 영향력을 준 책이다.
(안타깝게도 김경일교수는 이제는 거의 책을 내지 않으시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노자, 장자, 공자 등 동양 사상 관련 책을 읽지 않는다.

이 책의 주장에 충분히 공감하기 때문이다. 또한 읽을 이유가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2000년 초반에 보아온 이 분야 (자칭) 고수란 분들의 꼬라지에 더욱 실망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실망한 꼬라지는....<잘난 놈 때려서 관심 받기> 관심병 환자들의 공략법이다....

1999년 베스트셀러 저자인 도올 김용욱이 EBS에서 강연을 하면서 <노자와 21세기 1/2/3>라는 책을 내어 대박을 친다..


2000년 이경숙이라는 분이 도올의 <노자와 21세기>를 반박하기 위해 <노자를 웃긴 남자1/2>를 쓴다.


"도올은 전 국민이 보는 TV에 나와서 고전강의를 한 것이 아니라 삼류 개그쇼를 한판 때린 거다. 개그쇼라는 게 사람들을 웃겨보자는 거라고 볼 때 우리는 웃어줘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지금부터 난다긴다하는 개그맨보다 더 골때리는 도올의 명 개그쇼를 감상하며 웃어보자"라고 썼다....

실제 개그를 하지도 않았고 꽤 진중한 강의 였으며 동양 고전을 대중화하는데 공이 있었던 강의였다.

이경숙님이 왜 그렇게 주장을 하는 것일까?를 보고 당시 나는 깜도 안되는 분이 왜 이런 관심병이 생겼을까?라고 결론을 내린 기억이 난다.

특히 웃기지도 않은 것은 이경숙님의 도덕경의 가장 유명한 1장에 대한 반론은 이렇다.
"도덕경 제1장 첫 문장을 한번 보자. 도의 의미를 설명하는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이란 구절에서 도올은 도를 단지 '길(way)'이라고 설명하지만, 저자는 이를 '깨달음' '섭리' '법칙' 등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도올의 <도덕경> 해석은 '道'의 기본적인 개념조차 잘못 되어 있기에 전체 내용이 '엉터리'일 수 밖에 없다"고 썼다.


꼬라지하고 참....
길과 섭리, 법칙, 깨달음하고 무슨 차이인지? 말 장난도 아니고...참......

오히려 갑골문에도 '도'가 생성된 역사를 보면 도올의 해설이 더 나은 해설인 것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또 한번 있었다.
1998년 도올 김용옥선생은 <話頭, 혜능과 셰익스피어>, 1999년에 <금강경 강해>란 책을 낸다.





이에 대한 불교철학 연구자인 변상섭은 김용옥의 불교 이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책을 낸다.
<김용옥선생, 그것 아니올시다>
주장의 핵심은 " 화두는 지식이 아니며 자기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김용옥씨가 그에 대해 해설한다는 것은 더 이상 화두에 들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화두는 해설하는 것이 아닌 참구하는 것인데 해설을 했다는 비판이다... 그 것도 선에 대해 잘못 이해했다는 뜻이다..
일전에 나는 같은 화두에 대해서 해설한 불교학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 각자의 해석이 얼마나 다른지를 블로깅 한 적이 있다. 천차만별이고 (글로만 보면) 지 꼴린대로 해설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화두해설 수준이다......

변상섭님은 왜 같은 업계에서 활동하는 많은 불교철학자, 불교기자, (자칭/타칭 대선사라고하는) 선사들이 낸 화두해설집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는지?

웃기지도 않고 말도 안되는 글이다.
왜 꼭 집어서 누구의 해설만 안된다는 것인가, 자기 해설은 맞다는 것인가?!!!

성격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유명인들을 이렇게 지적질 하는 심리에는 숨어있는 열등감 폭발, 자신이 우월감을 확인하고 이를 넘어 공격하려는 본능, 자기애적 성향이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나는 집단애적 성향(즉, 불교 전공자, 대선사만 해설해야 한다는)과 자기종족주의(우리는 깨달아 알았지만 이심전심/불립문자요.. 남들은 알 수가 없음..) 심리라고 본다....

근래 (2021년 1월) 불교 관련 글을 꽤 내는 장웅연씨가 조주어록을 해설한 책을 냈다.
조주선사는 나도 개인적으로 꽤 좋아하는 선사다.. .


(당장은 사서 보지는 않겠지만) 잠시 훑어 본 아래 글이 눈에 들어 와서 옮겨 본다.

"인간관계에는 7:2:1 법칙이란게 있다.
열 사람이 있으면 그 중 두 사람은 나를 싫어 한다는 것이고, 그래도 한 사람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일곱 사람은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내 편이 좀처럼 없다고 시무룩해 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돈을 벌려고 회사에 왔지 나를 사랑하려고 회사에 온 것이 아니다."

"인생은, 잠깐 있다 가라고 있는 것이고
시련은, 잠깐 쉬었다 가라고 있는 것이고
죽음은, 이제 그만 쉬라고 있는 것이고
세상은, 구경이나 하라고 있는 것이고
사랑은, 사랑도 해보라고 있는 것이다.
아, 편안하다.
죽어도 좋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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