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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독서의 역사>를 쓴 작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일찍이 이런 사례를 들었다.

"우리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소설류'에 넣는다면 이 책은 유머가 넘치는 모험소설로 간주될 것이고, '사회학'의 범주에 넣는다면 18세기 영국을 비판하고 파헤친 결과물이 될 것이다. 또한 이를 '아동문학'의 범주에 넣는다면 난쟁이와 거인 그리고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말 한마리가 전개하는 재미있는 우화가 될 것이고 '공상소설'로 분류하면 SF소설의 선구로 평가될 터이며, '여행서'로 분류되면 서양 여행문학의 모범 가운데 하나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 알베르토 망겔 (Alberto Manguel)의 <독서의 역사>는 번역서가 있다.

모든 책이 하나의 가능성의 세계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알렉산드로 I. 게르첸이 믿었던 개방적인 인류 역사의 풍경이다. "역사는 동시에 수천수만 집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문이 열리는 집만 사실이 되고 나머지 가능성은 전부 소멸되거나 숨어버려 사람들 각자의 사유 속에 존재하고 한 권, 한 권의 책 속에서 숙성되면서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

게르첸은..."인류 역사는 일부 미치광이의 자서전이다."라고 말했다.

 

책 한 권을 사는 것은 손 한 번 움직이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고, 책을 잘못 사서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확정하는 데도 하루저녁의 시간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독서의 의미에서 소유를 완성하려면 다시 며칠 밤의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작가들이 평생 책을 쓴다 해도 몇 권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재능 넘치고 학문과 교양이 풍부하여 장수하면서 쉬지 않고 글을 쓴다 해도 마찬가지다. 먼저 마르케스의 경우를 살펴보자. 87세의 고령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소설의 마왕인 근는 유럽 대륙의 풍부한 소설 전통을 계승했으며 콜롬비아를 비롯하여 라틴아메리카 전체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졌던 전란의 고난을 대가로 전란의 고통으로 쓰러진 무수한 시체 더미 위에서 글을 써왔다. 이런 그가 평생 쓴 책이 얼마나 될까? <백 년 동안의 고독>과 <콜레라 시대의 사랑> <미로 속의 장군> <족장의 가을> 같은 장편소설 몇 편과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등의 중편소설, <이방의 순례자들>을 비롯한 문집, 그리고 몇 편의 단편소설이 전부이지 않은가?.........그럼 보르헤스는 어떨까? 타이완에서 출간된 전집 네 권 외에 다른 책은 없는 것 같다.. 칼비노는 어떻까? ..그의 작품이 거의 다 출판되어 있다. 그래도 10권 내외가 전부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윌리엄 포크너, 콘래드 등 초일류 소설가들도 작품 수는 이 정도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허먼메빌은 작품이 <모비딕>하나 뿐이고 샐린저의 작품은 <호밀밭의 파수꾼>, 마크 트웨인의 작품은 <톰 소여의 모험>, 키플링의 작품은 <정글북> 하나뿐인 것 같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루소는 각각 <참회록> 한권씩 만을 남긴 것 같고 나보코프는 몇 십년에 걸친 찬란한 창작 인생을 <롤리타> 한 권에 다 바친 것 같다.

---> 그래서 나는 다작하는 작가들을 싫어한다. 한 인간의 정신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맑은 물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생각이다. 너무 자주 길어 오르면 흙탕물, 똥물만 나오는 법이다. 

 

소설이 이러하니 사상이나 이론을 다루는 작가들은 더욱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그래서 인문학자니 철학자니 이런 title을 버젓이 저자 약력에 걸고 수십권의 책을 내는 사람들은.. 좀.... 

 

때로는 책 한 권, 작품 한 편을 가지고 10년 넘게 씨름하기도 했다.

 

톨스토이처럼 거의 모든 사람에게 소설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거장으로 손꼽히는 작가의 3대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도 다 읽은 사람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 나도 역시 그랬다. 읽기는 했지만 내가 읽은 것은 시사영어사에서 나온 요약판이거나 짧게 요약한 축소판이었다. 2020년 나도 이에 대한 반성과 도전으로 <돈키호테1/2>,<모비딕>, <안나 카레리나>에 도전하고 있다. 다 합치면 거의 6,000페이지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예컨대 겨우 열 권 정도의 규모로 인류 소설 서사의 전체적인 성취를 빠르게 장악할 수도 있다. 영국의 소설가 서머싯 몸의 방법이 바로 자기 마음속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 열 명을 골라 그들의 대표작을 조합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비롯하여 도스토옙스키의 <카마라조프의 형제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등 가장 훌륭한 소설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다.

 

정말 위대한 소설을 읽고자 한다면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작품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라는 영혼 전체를 이해하고 그의 꿈과 선택, 고뇌와 생명의 변화, 그가 평생 하고 싶었던 일 등을 포함하여 인간 톨스토이의 완전하고 심오한 부분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부활>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진정한 프로선수들의 가치는 어떻게 성공을 향유하느냐 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실패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면서 실패했을 때도 잘 살아가느냐 하는 데 있다.

 

벤야민은 아무리 성공한 소설이라 해도 실제로 그 내용에서 확인하는 것은 '인간의 실패나 성공의 이면에 깔린 의지의 침몰 및 소실상태'라고 지적한 바 있다......성공에는 대개 기적에 가까운 요소, 특정 시간과 장소에만 국한된 특별한 요소가 담겨 있어 백 퍼센트의 전이나 복제가 불가능한 반면, 실패에는 이런 요소들이 비교적 적은 대신 불운의 요소가 많은 데가 구조적으로 인간 본성의 아픈 곳을 건드리고 인간의 기본적인 한계와 보편적인 곤경을 폭로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현대 소설에서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려 한다면 실패 쪽을 파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바로 그곳에 역사의 기회와 우연성, 개별적인 독특성을 초월하는 공통된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의 <무지>는 내가 최근 몇 년 동안 읽은 소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이다. 

---> 우리말 번역본으로 <향수>를 말하는 것 같다. 밀란 쿤데라의 여러 책을 사놓고 아직 다 못 읽고 있다. ㅠㅠㅠ

산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길이 변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또 끊임없이 쇠락하는 신체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 

 

존 업다이크는 "보르헤스와 마르케스, 칼비노 등은 모두 인류를 위해 무한한 꿈을 만들었다.......그 가운데 칼비노가 가장 따스하고 밝았으며 인류의 진실에 대해 가장 다양하고 인자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 이 문장을 읽고 칼비노의 <인류 삼부작>, 즉 '‘우리의 선조들’ 세 작품'을 다 구매해 놓았다. 

 

[ 자평 ]

 

탕누이의 책을 읽고 마르케스, 칼비노, 보르헤스 세 분의 책을 찾아서 읽기로 결심했다. 

그의 책은 2020년 10월 현재 네 권이 번역되어 있는데, 두 권을 연속해서 읽게 되었다.

그의 추천 덕분에 사 놓은 소설이 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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