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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조직의 지식은 조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 있으며 이러한 관계의 특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적 자본을 측정하고 지식을 관리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의미를 상실한다.

 

20세기는 통제가 작업 현장에서의 활동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로, 다음에는 인간의 신념과 가치로, 결국에는 인간의 마음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지식은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관리할 필요도 없다.

지식은 참여를 통한 자기조직화 과정이며 이 과정은 일관되게 스스로 패턴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위 주체성은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작용 과정이며 이 과정은 연속성이 있으면서도 잠재적으로는 변형된 모습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구성한다.

 

지식의 창출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적극적인 의사소통 과정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지식은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구성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개인과 조직 혹은 사회를 분리된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과 조직 혹은 사회는 항상 분리된 두 차원의 현상으로 다루어지기 때문에 학습과 지식의 창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설명이 요구된다.

 

학습과 지식 창출에는 지식의 전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주류적 사고의 핵심적인 가정이다.

 

일반적으로 데이터는 사건에 대하여 개별적인 사실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정보는 차이를 만드는 데이터이다. 이것은 송신자로부터 수신자에게 전달된 메시지로서 수신자의 지각을 형성한다. 정보에는 의미가 있다. 정보는 형태를 지니며 어떤 목적을 위해서 조직된다. 정보의 생산자가 데이터에 의미를 부여할 때 데이터는 정보가 된다.

 

지식은 새로운 경험과 정보를 평가하고 통합하는 프레임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프레임은 지식을 소유한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현재의 가치와 신념 뿐 아니라 과거 경험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지식은 유동적이며 구조적인 형태로 저장된다. 

 

행위는 지식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선택이며, 이 지식은 그에 따른 결정과 행위의 결과에 비추어 평가된다. 이것이 오류의 작동에의한 시스템적인 학습의 개념이다.

 

언어는 공식적이고 객관적인 상징체계로서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며 기존의 생각과 개념을 남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형태로 옮겨주는 도구라는 가정이 만들어진다. 

 

주류적 사고는 마음의 본질과 뇌의 기능에 관한 특정의 시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것은 마음과 뇌(마음은 뇌의 기능이라고 봄)가 표상을 형성하고 이를 기억에 저장하며 정보와 자료를 처리하고 이어서 선택을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고와 선택이 행위에 선행한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이 모든 가정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추론하는 인간은 새로운 의도와 정신적 습관을 형성한다.

 

개인의 마음과 사회적 관계는 동시에 그리고 함께 출현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관계 패턴을 방해하고 혼란시키는 조직의 기능과 정책들을 변화시키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관계 패턴을 방해하고 혼란시키는 조직의 기능과 정책들은 학습과 지식 창출의 과정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가령 기업의 합병과 인수를 고려할 때, 핵심 질문은 인간관계 패턴을 방해하고 혼란시키는 그러한 움직임들이 합병이나 인수의 정당성을 어떻게 왜곡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의미는 행위자들이 서로 반응을 주고받으면서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것이다.

 

의미는 단지 과거(제스처)나 미래(반응)에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현재에서의 양자 간 순환적인 상호작용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현재는 단지 하나의 고정된 시점이 아니라 동적인 시간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제스처가 상대방의 신체에서 불러일으키는 것과 동일한 반응을 우리의 신체에서 체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알 수'가 있다.

 

정교한 음성 제스처 패턴의 발달, 즉 중요한 상징으로서 언어의 발달은 개인의 의식 및 복잡한 형태의 사회가 발현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마음과 사회는 언어를 매개로 동시에 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하기와 듣기는 신체의 활동이고 신체에는 느낌이 수반되기 때문에 언어라는 매개체는 느낌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마음 혹은 의식은 사적인 역할 놀이나 무언의 대화처럼 자신을 향한 신체의 제스처이자 반응 행위인 반면 사회는 서로를 향한 신체의 제스처이자 반응 행위이다. 

 

마음/자아 및 사회는 모두 논리적으로 동등한 대화의 과정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은 다른 사람과의 제스처 대화, 특히 언어에 대한 제스처 대화이다. 

반면에 마음은 타인과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자아의 내면에서 무언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개인적 자아', '사회적 자아', '타인', 그리고 '집단' 간의 제스처 대화이다. 그 결과 의미를 구성하는 상징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재귀적이고 성찰적인 정교한 협력이 이루어진다. 항상 신체와 느낌이 관련되는 이러한 과정은 인간의 경험을 촉진하기도 하고 제약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소위 관계 형성에 나타나는 복잡반응과정의 기본 형태이다.

 

상호작용하는 개체들이 충분히 촘촘하게 연결된다면, 자기 조직화라는 이 상호작용의 과정은 어떤 청사진이나 프로그램 없이도 일관성 있는 패턴을 스스로 생성할 수 있는 본질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하는 일이 서로의 몸을 통해 관계를 맺으면서 반응하는 과정으로서 서로의 관계 형성을 끊임없이 패턴화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행위 주체성은 이러한 패턴화 과정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패턴화 과정에 의해 형성되기도 한다.

 

예측이 가능하고 매우 자주 반복되는 형태의 제스처와 반응들이 결합으로 형성된 것들이다. 

지식이란 어딘가에 저장했다가 끄집어내서 행위의 기반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개인 간에 이루어지는 관계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끊임없이 재현되고 변형되는 것이다.

 

지식은 항상 하나의 과정이며 관계적인 것으로, 단지 개인의 머릿속에 저장했다가 끄집어내어 조직의 자산으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은 대화의 행위이며 대화 방식과 관계 패턴이 달라질 때 학습이 일어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지식은 저장될 수 없으며 모종의 인위적 도구에 저장하려고 하면 더욱 하찮은 것만 포착될 것이다.

 

사회적 행위는 다른 사람을 향하는 공적인 행위인 반면, 개인의 마음/자아는 자신을 향하는 사적인 행위이다.

 

상호작용 혹은 관계는 본질적으로 패턴을 형성하는 특성이 있는데 여기에는 상호작용이 충분히 이질적일 때 새로움이 창발하는 것도 포함된다.

 

느낌은 신체 리듬의 변화이며 신체의 시공간적 역동성이다.

 

나는 지각된 경험의 질적인 측면과 신체적으로 느껴지는 유사한 질적 측면 간의 연결이 지식의 기초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신체 제스처(A) - 신체 반응(B) = 상징 = 의미

 

일을 줄여야 더 많이 성취한다.

 

 

[ 자평 ]  제대로 쓴 연구소는 소름끼치도록 놀랍고, 깊은 감탄을 준다는 것.....때론 학자의 결과물의 선사의 오도성보다 더 놀랍다. 

 

한 번 읽어서 다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특히 7장 이후는 나랑 큰 관련이 없어 약간 어려워서 그냥 훑고 넘어 갔다.

한 번만 읽고 그만 둘 정도로 가치가 없는 책이 아니다. 앞으로 분명히 더 읽을 책이다.

 

피터 센게식의 학습조직이나 노나카 이쿠지로의 지식에 익숙하여 지식하면 그저 무의직으로 '명시적 지식'과 '암묵적 지식'과 '이 있고, 어쩌고를 주절될 줄 아는 나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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