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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가메야마 이쿠오 외...에서)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된 삶을 막연한 '기다림'이라는 두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인생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전후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무의미한 짧은 대사와 부조리한 행동이 '연극'이며, 줄거리는 없고 그저 '기다린다'는 상황을 블랙 유머로 표현하고 있다.

 

고도가 누구인지는 각자가 생각해야 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인류를 존속시켜 온 힘이며, 인간의 존재 조건인 것이다. 블라디미르는 정신, 에스트라공은 육체를 나타내고,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리는'데, 고도가 올 때까지 '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상황을 상징한다. 포조와 러키는 현세에 사는 인간의 주종적인 삶의 상징이다.

 

(평생 독서 계획, 클리프턴 패디먼...에서)

 

베케트는 자신의 동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표현할 것도 없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도 없지만 표현하려는 예술가의 욕구는 가지고 있다."

 

베케는 허럴드 핀트에게 이런 글을 써 보냈다."......나는 과거에 입원을 한 적이 있었어요. 옆 동에는 후두암으로 죽어가는남자 환자가 있었지요. 조용한 병동이라 나는 그의 비명을 계속 들을 수 있었어요. 내 작품에 형태가 있다면 그런 비명과 같은 종류가 있을 뿐이에요." 

 

그의 연극은 마음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처럼 귀로 느껴야 한다. 베케트는 자신이 다음의 두 어두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무능력의 고뇌를 독자에게 전달하려 애쓴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그는 인간의 비참함에 깊이 동정하며 그 자신의 생애는 뛰어난 인품을 보여 준다. 그의 나다(nada, 허무)는 헤밍웨이의 ;나다와는 다르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일탈에 대한 수동적 반응이 아니라, 영원히 똑같고 영원이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비전에 대한 형이상학적 반응이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의 마지막은 이러하다.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해." 

---> 국내 번역본 제목은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이수은에서)

 

대안 없는 이 삶만이 유일한 인간 둘이, 서로가 서로에게 근거 없는 희망을 부추기면서, 불가피한 절망의 증거가 되어 주면서, 최종의 심연을 향해 고꾸라지고 있는 광경을 목도할 때. 

 

극 속의 대사들은 누군가에게 속한 말이 아니라 '말 그 자체' 또는 '보편적인 인간의 말'로 기능한다. 개성은 지우고 의미만 전달하는 '코드'나 '신호'에 가깝다. 

 

모두 각자 자기만의 고도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갈팡질팡하면서. 무떡대고. 대책 없이. 지긋지긋해 하며.

 

고도가 신인지를 집요하게 묻는 인터뷰들에 사뮈엘 베케트는 거듭 단언했다.

"고도는 결코 신이 아니며, 극 안에 묘사된 것이 그에 관해 알려진 전부다."

 

극 속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일은 '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과의 싸움이다. 기다림이 길어질 수록 고도가 '아직 나에게 당도하지 않은 기쁜 미래'일 거라는 믿음은 약해져 간다. 그럼에도 기다림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기다림을 포기하는 순간 지나온 시간이 헛됨과 돌이킬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지금'을 회의하게 만드는 허상들의 총합이 고도이고, 그게 허상이라서 고도는 오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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