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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들

파괴적 혁신 by 뤼크 페리

비즈붓다 2018. 11. 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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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친 문장 ]

 

ㅇ 현대 경제에는 두 가지 성장 구조가 존재한다. '케인스식 경제성장'과 '슘페터식 경제성장'

 

케인즈식 경제성장은 소비자의 숫자가 늘고 그들의 주머니가 최대한 두둑해질 때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보며, 슘페터식 경제 성장은 과거의 모든 유물, 즉 이전의 생산물, 생활 방식, 산업 구조 등을 점차 구식으로 치부하게 하는 혁신을 진정한 성장동력으로 여긴다.

 

ㅇ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실제로 경제성장을 가능케 하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 생산 체계의 모든 핵심 분야에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데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ㅇ 먼저 혁신은 피고용자의 불안정성과 유연성을 끊임없이 만들어내, 경영자들로 하여금 전 세계적 차원의 경쟁에 적응하기 위해 계속해서 전략에 매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니콜라 부주가 저서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는 들리지만 숲이 자라는 소리는 들지 않는다'에서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내용이다......

 

ㅇ 결코 쉴수 없으며, 최소한의 휴식조차 바랄 수 없다.

 

ㅇ 성장의 바탕이 되는 기술적 혁신은 생활 방식과 사회 관습들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뿐 아니라, 초기에는 어쩔 수 없이 실업과 불평등을 야기하고, 나아가 역설적이게도 성장이 아닌 퇴보를 불러오는 것이다.

 

ㅇ 혁신을 위한 혁신은 분명 여전히 비상식적이며 그 어떤 의미도 없다....오늘날 세계사의 특징은 우리가 어떤 세계를 왜 만들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전혀 단편적이지 않은,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이유로 인해 세상의 흐름은 그 의미를 잃었다.

 

ㅇ 세계화 속에서 국가 정책이라는 수단은 사실상 아무런 효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한 나라의 경제성장이 재무부 장관의 손에 달려 있다고 여기는 것은 우습기만 한 생각이다. 그 본질적인 이유로, 국가 정책은 국가-민족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데 비해 시장은 세계화되었고, 결국 기존의 정책적 수단 대부분이 헛되이 굴러가게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ㅇ 국가가 무능력해질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시기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ㅇ 국가 정책은 정부의 수단을 점점 더 무효화시키는 세계화와, 또 다른 혁신을 위한 혁신인 시청률의 논리(이를테면 '특종주의')에 매여 있는 광적인 미디어화 사이에 놓인 책 점차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ㅇ 터무니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주적 국민국가로 회귀하려는 시도가 대중을 현혹하는 그럴싸한 겉모습을 갖추게 디는 것이다.

 

ㅇ 세계화된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철학적인 부분에서도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분명하다. 바로 힘과 의미에 대한 질문이다.

 

ㅇ 샤를 폐기는 "오늘 아침에도 호메로스는 새롭다. 그리고 오늘자 신문만큼 낡은 것은 없을 것이다."라는 어록을 남긴 바 있다.

 

ㅇ 질투(또는 선망),,,,'부자를 혐오'하지만 그 안에 포함되고 싶어한다.

 

ㅇ 기업 대표들에게 잘못을 물어야 한다... 그들이 수십 년 전부터 파괴적 혁신이 불러 일으킬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예측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 이 논리를 적용하는 데 전력을 쏟아왔기 때문이다.......오래전부터 품어온 단 하나의 목표는 바로 이 세상의 아이들이 소비자, 가능하면 중독자, 즉 디지털에 중독된 소비자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수 는 없다. 이것의 그의 직업이고, 국민의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이 기업은 분명 파산에 이르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와 중독이 완벽하게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가지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유전자 구조와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

 

ㅇ 회장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고객의 정의가 마약중독자의 정의와 완전히 일치한다. 더 자주, 더 많이 구매하는 고객을 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들을 더 빨리 이러한 고객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이들을 결핍의 논리에 던져넣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대규모 광고활동을 벌이는 것. 둘째, 전통적 가치를 최대한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

 

내면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을수록, 도덕뿐만 아니라 문화적/정신적으로 안정적이고 튼튼한 가치체계를 확립하고 있을수록, 끊임없이 소비해야할 것만 같은 일종의 필요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전통적 가치들을 잃을수록 중독에 쉽게 빠지며, 결국은 저항조차 없이 소비 논리에 몸을 맡기게 되는 것이다.

 

ㅇ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어쨌든 예의 바르고 교양 있는 잘 자란 아이들과, 그가 끝없이 만들어 내고 싶어하는 산만하고 소비를 하는 아이들을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들이 같은 뇌 속에 공존할 수는 없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늘 깨어서 구습을 타파하고 우리가 안주해 있는 전통들을 끊어내야 하며, 쉬지 않고 발명과 혁신을 거듭하는 자만이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ㅇ 부르주아는 이제 전통을 끊임없이 파괴하려는 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의 파괴를 유감스러원한다. 그의 오른손은 왼손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주동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때로는 치명적인 몰락으로, 때로는 성공의 약속으로 나타나는 이 상황의 내막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ㅇ 쇠퇴하는 유럽, 몰락하는 서구사회, 벗어나려는 국민, 자유경제주의의 공포, 자본주의의 실패 등에 대해 길다긴 글들을 발표했다. 결국은 과거 찬양론자들이 늘 하는 말처럼 "옛날이 더 좋았지"라는 것이다.

 

ㅇ 인간이 더 이상 또렷한 의식과 같은 이상적이고 합리화된 존재가 아니다. 오늘날의 인간은 위대함과 비참함을 지닌, 한 시대에 완전히 새로운 색채를 선사하는 경험을 지닌 존재다.

 

ㅇ 칸트는 '판단력 비판'을 통해 진정한 예술이란 아름다운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대상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그림으로 그려진 주제가 아닌, 그 주제를 다루고 있는 방식이야말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 총평 ]

 

철학자가 쓴 파괴적 혁신에 대한 책....

파괴적 혁신이 낯설어서가 아니라 저자가 철학자라 구매하여 읽었다.

 

특히 이 책을 다시 읽을 때즘 (2018년 11월) 김동연부총리와 장하성정책실장을 맨 비난하는 여기 저기 떠 오르는 경제실책 지적들을 보면서 아래 글이 생각 마음에 와 닿았다.

 

"국가 정책은 정부의 수단을 점점 더 무효화시키는 세계화와, 또 다른 혁신을 위한 혁신인 시청률의 논리(이를테면 '특종주의')에 매여 있는 광적인 미디어화 사이에 놓인 책 점차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기타 다른 글들은 내게는 필요가 없을 듯 하여 읽고 버렸다.

 

다만 저자가 필립 로스가 훌륭한 작가가 하여 필립 로스의 책을 읽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후로 몇 권의 필립 로스를 읽었고 나는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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