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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들

생각의 요새 by 고명섭

비즈붓다 2023. 10. 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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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사미천의 <사기>와 마찬가지로 <군주론>은 고통과 비애의 산물이다.

 

시대가 궁핍한 시대임을 알아보려면 그 시대를 궁핍한 것으로 절감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궁핍한 시대만이 자기 시대를 궁핍한 시대로 인지한다. 그러므로 생각은 궁핍한 시대에 처한 궁핍한 정신이 창출한다.

 

결핍이 없다면 우리는 철학하지 않을 것이고, 길을 뚫지 못하면 지혜 곧 '진리에 대한 앎'에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

 

"거의 모든 곳에서 새로운 사상에 길을 열어주면서 존중되던 습관과 미신의 속박을 부수는 것은 광기다." - 니체, 아침놀

 

진리를 향한 격투는 난파당할 각오로 벌이는 싸움이다.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 - 하이데거

 

 

(마비된 자아에서 빠져나오기, <탈합치>, 프랑수아 줄리앙)

'탈합치'(De-coincidence)란 인간 삶의 근본적 작동방식을 '합치'(coincidence)에서 이탈함(de)'로 이해하는, 줄리앙 자신이 창안한 개념이다.

 

실존한다는 것은 탈합치일 수밖에 없다. "탈일치는 자신과 자신의 일치, 자신에 대한 자기적응에 균열을 냄으로써 '자아'의 마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자유주의자와 아이러니스트,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리처드 로티)

로티는 창조적 자율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개인을 아이러니스트(ironist)라고 부르고,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관심의 초점을 두는 사람을 자유주의자(liberal)라고 부른다.

 

로티는 우연성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전통 형이상학에서 주장하는 '불변하는 실체/본질/현상'을 제시한다. 우리가 아는 어떤 것도 불변의 본질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는 것이 로티 철학의 출발점이다.

 

아이러니스트란 새로운 어휘, 새로운 언어를 창조함으로써 자기의 자아를 새롭게 창조하는 사람이다.

이런 아이러니스트의 전형으로 로티가 꼽는 사람이 소설가 프루스트, 나보코프, 철학자 니체, 하이데거, 푸코, 데리다다.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는 자신의 사적인 영역에서 새로운 어휘와 언어를 창안함으로써 자기창조에 몰두하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이 세계에서 고통과 굴욕이 사라질 날을 희망하며 노력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 노력을 할 때 필요한 것이 공감적 상상력이다.

 

 

(바보와 앵무새들의 철학에 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미셀 옹프레>

간결하고 명쾌한 글,,,,교수들이나 대학의 엘리트가 아닌 최대 다수를 위해 사고하려는 마음,,,,인간 본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능케 하는 심리학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

 

'프랑스 이론'이라는 것이 '철학의 횡설수설'이라고 직격한다. 그 '프랑스 이론'으로 거명되는 것이 라캉의 <에크르>(1966),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1972), <천 개의 고원>(1980) 따위다.

 

"이처럼 억지로 고안해낸 언어는 대가의 말을 바보처럼 반복하거나 멍청하게 모방하는 광신적 신봉자들을 양산하게 된다. 예술에서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의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철학에서도 '텍스트를 위한 텍스트'의 시기, 따라서 '철학을 위한 철학'의 시기가 있는 것이다. 이 시기가 바로 '텍스트 종교'가 나타나는 시기이며 이 시기에 글쓰기는 기도가 되고 사고는 주문이 되며 방법은 비이성이 된다."

 

웅프레는 마르크스가 부르주아 집안 자식으로 평생 부르주아 생활습관을 버리지 못했지만, 프루동은 가난한 부모에게서 자란 '가난한 자들의 철학자'였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의 혁명 사상은 책 속에서 건져낸 이념이었지만, 프루동의 '자유사회주의' 사상은 삶의 실천 속에서 길어 올린 것이었다.

 

 

 

(철학과 수학은 어떻게 만나는가, <수학 예찬>, 알랭 바디>

바디우의 대표작 <존재와 시간>(1988)이 수학, 그중에서도 '집합론'에 바탕을 두고 축조된 철학적 구조물이다.

 

"수학자는 신화나 종교의 전제에서 풀려나, 증명의 형식을 취하는 보편성을 처음 도입한 사람들이다."

 

수학은 실재하는 모든 것의 보편적 구조에 대한 연구다. 요컨대, 수학에서 말하는 수리나 법칙은 실재한다. 플라톤이 바로 실재론의 대표자다. 

 

수학의 본질에 관한 두 번째 관점은 형식론적 관점이다.

수학의 대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들을 설명하려고 논리적으로 고안된 허구적 형식이라는 것이다.

수학을 일종의 '언어 게임'으로 본 비트겐슈타인이 형식론의 대표자다.

 

수학은 진리의 존재론의 바탕이 되며, 주체는 그 진리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참된 주체가 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열쇠, <비트겐슈타인 새로 읽기>, 이승종)

칸트가 이성을 사용해 이성의 한계를 규명하는 '이성의 자기비판'을 감행했듯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사용해 언어의 한계를 드러내는 '언어의 자기비판'을 탐구의 본령으로 삼았다.

 

철학자들이 골몰하는 철학의 문제라는 것이 대개 언어의 잘못된 사용으로 빚어진 일종의 질병이라고 보고 언어의 사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이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비트겐슈타인의 목표였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원초적인 것은 '참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의 문제다.

어떤 것이 참이냐 거짓이냐를 판별하는 것보다, 어떤 것이 의미가 있느냐 무의미하냐를 판별하는 것이 더 앞선 문제라는 것이다.

 

의미와 무의미를 원초적으로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차원을 비트겐슈타인은 '삶의 형식(Lebensform)'이라고 불렀다.

 

 

(로고스중심주의와 해체의 철학, <그라마톨로지>, 자크 데리다)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20세기 인문학의 가장 중대한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도 이 책이다.

 

에그리튀르(ecriture)...

사전상으로는 문자, 글쓰기, 문체를 뜻하는 말인데, 이 책에서는 특히 '음성언어'에 대비하여 '문자언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라마톨로지'란 에크리튀르를 다루는 학문, 곧 문자학을 뜻하는 신조어다.

 

이 책은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를 대비해 서양 형이상학의 2000년 역사가 음성언어 중심의 역사였음을 밝히고  그런 규명을 통해 서양 형이상학의 토대를 해체하는 작업을 목표로 삼는다.

 

음성언어 이전에 문자언어, 곧 에그리튀르가 있었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당대에 밝혀진 분자생물학의 DNA 염기구조나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일종의 문자로 돼 있다는 점에 주목해 문자의 보편성을 발견해낸다.

 

 

(사르트르와 칵테일의 현상학, <현상학 입문>, 단 자하비)

우리의 의식에 잡히는 일상의 대상들이 현상학이 말하는 현상이다.

 

후설의 현상학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은 '지향성'이다. 지향성이란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무언가를 지향하면서 의식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무것도 지향하지 않는 의식이란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특정한 지향적 관점에서 보거나 생각하거나 기억하는 방식으로 의식한다.

 

후설의 에포케(epoche, 판단 중지)...

에포케란 우리가 사태 자체를 경험하기에 앞서 수행해야 하는 절차다. 사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선입견을 괄호로 묶어서 배제하는 것이 후설이 말하는 에포케다. 더 좁혀서 말하면, 외부세계에 대한 특정한 독단적 태도, 곧 '자연적 태도'를 거부하는 것이 에포케다.

 

 

(라캉 정신분석 최종장, <상식을 넘어선 현실계>, 니콜라 플루리)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을 알려주는 명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무의식은 언어와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일 것이다.

 

언어로써 우리는 이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그 언어적 질서 너머에 있는 세계가 실재계인데, 이 실재계는 우리 언어가 가닿을 수 없고, 그래서 끝내 알 수 없는 세계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실재계다. 

 

 

(체계이론과 주체 없는 사회학, <사회적 체계들>, 니콜라스 루만)

20세기 최고의 사회학자라는 평가...

 

사회적 체계는 사회관계에서 형성되는 온갖 형태의 체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이 사회적 체계의 작동 방식. 루만은 사회적 체계가 '소통(커뮤니케이션'의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소통은 정보를 알려주고 그 정보를 이해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소통은 '정보-통보-이해'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사회학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은 인간을 행위의 주체로 그린다. 그러나 루만은 인간은 주체가 아니라 체계를 구성하는 '기능적 요소'일 뿐이다. 인간은 수많은 사회적 체계 속에서 그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역할을 한다.

 

루만의 사회학은 주체를 기능으로 대체한, 주체 없는 사회학이다.

 

 

(대표제의 길, 민주주의의 길,  <대표>, 모니카 브리투 비에이마, 데이비드 러시먼)

<리바이던>에서 토머스 홉스는 자연 상태에 있는 개인들은 그저 군중에 지나지 않으며, 이들은 "만인이 만인에게 늑대인 상태"에 있다고 간주했다. 이 자연상태를 끝내려면 개인들이 사회계약을 맺고 자신들의 모든 권한을 단일한 대표자에게 위임해야 한다.

 

18세기 장자크 루소는 홉스가 상정한 '대표'개념을 거부했다. 대표자를 선출함과 동시에 인민은 자유를 잃고 타인의 의지에 휘둘리는 노예가 된다는 것이 루소의 생각이었다. 대표제와 민주주의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다.

 

시에예스는 국민이 행동하려면 대표자가 필요하고, 대표자가 행동할 권한을 누리려면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바로 여기서 대표제와 민주주의가 하나로 연결되는 '대표젝 민주주의'가 등장했다.

 

 

(구약은 왜 인류의 고전이 되었나, <구약 읽기>, 크리스틴 헤이스)

<구약 성서>는 서구 3대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공통 토대이기도 하다.

 

헤이스는 이 유대인들이 그 시대의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어떤 급진적이고 새로운 사상과 전승"을 지녔기에 시련을 딛고 일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헤이스가 말하는 "급진적이고 새로운 사상"이 바로 유일신 사상이다.

 

헤이스는 신이 역사를 통해 인간들에게 도덕적 명령을 내린다는 것이야말로 <구약 성서>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런 이유로 신의 도덕 명령을 대행하는 선지자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놓인다. 

 

인간의 도덕적 타락이라는 문제를 신앙의 본질과 연결한 것이야말로 <구약 성서>가 인류의 고전으로 남은 이유라고 이 책은 말한다.

 

 

(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휴머니즘, <그리스인 이야기 1, 2, 3>, 안드레 보나르)

그리스 문명의 목적은 하나다. 자연에 맞서 인간의 능력을 키우는 것, 인간다움을 완성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휴머니즘이라고 부른다.

 

알렉산드로스의 인도 도달은 '그리스 인본주의와 불교 인본주의의 만남'이라고 묘사한다.

 

하나의 단어가 한 문명 전체를 드러내 보여주는 경우가 있는데, 로고스가 바로 그런 말이다. 

로고스는 말,계산,비례, 더 나아가 이성,추론을 뜻한다. 그리스 문명은 한 마디로 줄여 로고스 문명이다.

 

아르케(arche, 근원,원리)의 추구가 자연(피시스 Physis)에 대한 탐구로 나타났다.

 

 

(걸림 없는 회통의 사상가 원효, <원효의 발견>, 남동신)

원효(617~686)가 우리 역사상 최고의 불교 사상가라는 데는 학계에 이견이 없다.

 

7세기 후반 ~ 8세기 전반 최고조에 이른 동아시아 교학 불교를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원효

 

원효 사상의 핵심으로 꼽히는 '일심'과 '화쟁'과 '무애'를 유기적으로 엮어 원효의 삶과 생각을 한 줄에 꿰 들어간다.

 

<대승기신론>은 중관과 유식이라는 대승불교의 양대 사상을 종합한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환상에서 깨어나라, 무아의 불교론, <붓다의 치명적 농담>, <허접한 꽃들의 축제>, 한형조)

불교 언어가 일상성과 현대성을 획득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원효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뒤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의식일 뿐이니, 마음 밖에 의식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하겠는가"라고 노래했다. "이 세계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리지만, 한형조는 단언한다. "불교는 세계의 실재를 에누리 없이 긍정합니다!"

 

비유하자면, 중력장이나 블랙홀이 우주 공간을 구부러뜨리듯이, 마음은 각자의 관념/욕망으로 실재를 왜곡한다. 이렇게 주관적으로 왜곡된 상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이란 마음이 비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자기의 이해관심에서 해방된 상태가 공이며, 그때 공은 무아와 같다. 무아는 내가 본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주관적 환상에 집착하는 나로부터 떠난다는 뜻이다. 그렇게 무아 상태가 되면, 우리는 탐욕이나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한형조는 말한다.

 

 

(민주주의의 미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고병권)

고병권은 민주주의가 동의를 조직하는 일이 아니라 이견을 제출하고 차이를 생산하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고병권은 민주주의가 '지배 없음' 그리고 '근거 없음'을 본질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끌어낸다.

 

민주주의란 결국 아르케가 없는 사람들, 곧 기반도 근거도 불분명한 사람들이 평등하게 모여 데모스의 힘을 행사하는 것을 뜻하다. 

 

고병권이 보기에 핵심은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요컨대,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실패할 수 있고 그때마다 번번이 다시 민주화 투쟁을 요구한다. 

 

최장집은 대의제를 강화해 완성하는 일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과제라고 보지만, 고병권은 민주주의 열망은 대의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고 본다. 

 

 

 

 

 

[ 자평 ]   좋은 책을 보는 눈, 깔끔한 단어와 문장으로 압축하는 힘......독자라는 탁월한 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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