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인간지능

지식의 사회사II by 피터 버크 (Peter Burke)

비즈붓다 2025. 4. 1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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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서문)

 

지식들은 명시적 지식과 암묵적 지식(또는 드러나지 않는) 지식, 순수 지식과 응용 지식, 국소적 지식과 보편적 지식으로 나뉠 수 있다......'어떻게를 아는 것'과 '어떤 것을 아는 것'과 나란히 놓일 자격을 분명 갖고 있다.

 

 

(제1부 지식의 수집에서 이용까지)

 

(제1장. 지식을 수집하다)

 

서로 다른 집단들이 지식을 얻어서 가공하고 전파해서 채용하는 방식들....이 일련의 과정을 정보 분야에서는 네 단계로 나누기도 함

수집(collection) -> 분석(analysis) -> 전파(disseminatioin) -> 행동(aciton)..줄여서 CADA....

 

(지식을 수집하는 방법들)

 

탐험, 관찰, 측량, 실험 같은 일련의 과정들

 

두 번째 대발견의 시대

 

1750년에서 1850년 사이에 채집 또는 수집된 새로운 지식의 양은 현기증이 날 정도인데, 특히 유럽인들이 세계 다른 지역들의 동물군이며 식물군, 지리, 역사에 관해 모은 지식의 경우가 그렇다. 

 

측량

 

조사 또는 측량이라는 뜻의  survey는 높은 곳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을 가리킨다.

 

인구조사...

 

높아지는 수집품들

 

화석, 동물과 사람의 해골, 두개골, 조개껍데기, 곤충, 무기, 도구, 회화, 가면, 토템 기둥, 부처상이나 시바상....

양피지나 종이, 파피루스에 쓴 필사본들이 박물관과 도서관, 기록 보관소들로 계속 흘러들어 왔다.1886년이 되면 베를린 대학 도서관에는 산스크리트어로 쓴 대략 2000부의 필사본이 있었으며...

 

현장 연구

 

현장 관찰과 연구...

삽으로 과거를 파내는 고고학자나, 망치를 들고 다니는 지질학자, 생태학자, 동물행동학자, 지리학자, 사회학자...

 

실험들은 가설을 검증하거나 아니면 연구 결과를 공개적으로 보여 주려고 수행할 때가 많지만, 이와 함께 특별한 종류의 관찰을 가능하게 해 주고, 그리하여 지식의 채집에 일조하기도 한다.

 

관찰

 

현장이 관찰하기에 더 가까운 입각점을 제공한다...

 

19세기 초에, 천문학자 월리엄 허셜은 관찰을 놓고 배우고, 또 연습해야 하는 기술이라고 표현했다. 관찰적 이해..

 

20세기 '참여 관찰'...사회학자 비어트리스 웹...노동자가 돼서 일을 했고...

 

'육안'에 대한 보조 장치들로는, 망원경과 현미경 둘 다 17세기에 흔히 사용하기 시작한다. 

 

X선이 1895년에 발견됐으며.....

 

 

듣고 질문하고

 

심문 또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중세와 근대 초기 종교재판관들의 예만으로도 이를 상기하기에 충분할 것..

 

면담은 언론인이나 사회학자, 의사, 심리학자들이 하는 것으로 (대체로) 더 부드러운 형태의 심문으로 볼 수 있으며...

 

 

설문지

 

 

기록하기

 

정보의 가공은 이미 수집할 때부터 시작된다. 집필은 현장에서 시작할 때가 많다. 

 

사진 기록...

 

 

필기장에서 데이터베이스까지

 

필기장이나 타공 제본 종이철, 색인 카드에, 심지어는 봉투 뒷면 또는 셔츠의 풀 먹인 소맷부리에 적었다.

 

19세기에는, 조각 종이들을 점점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유명한 사례가 <옥스퍼드 영어 사전>으로서, 1858년에 작업을 시작한다.

 

 

(지식의 저장)

 

백과사전들은 지식의 저장고라 할 수 있다.

 

저장의 온라인화...

 

 

(제2장. 지식을 분석하다)

 

상대적으로 날것인 정보를 진정한 지식으로 바꾸는 것은 분석이라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분석'이라는 용어는 근대 초기에 사용하기 시작했고, 1750년을 지나면서 많은 학문분과에서 자주 채용하게 됐다.

 

사회학자들 : 경로 분석이나 체제 분석, 경제 분석...

철학: 분석 철학

분석 고고확

언어학자: 언어분석, 담화 분석

비평가들: 문학 분석

지리학자들: 공간 분석

고고학자들: 인공유물을 놓고 일련 분서과 군집 분석...

프로이트: 정신분석

인류학자들과 공학자들: 구조 분석

공학자들과 사업가들: 위험 분석

 

분석은 일종의 가공 또는 조리..

기술하고, 분류하고, 체계화하고, 연대를 매기고, 측정하고, 시험하고, 해석하고, 서술하고, 이론화하는 따위가 포함된다.

 

(지식의 분류와 재분류)

 

분류는 현상들을 범주속으로 끼워 넣는다는 의미에서는 항상 일어나지만, 역사가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재분류다.

 

린나이우스의 유영한 이항 분류 체계는 1753년에 발표...

 

<백과전서>를 출범했던 편찬자 드니 디드로와 장 르 롱 달앙베르는 '지식의 나무'라는 전통적인 심상을 사용...

프랜시스 베이컨의 체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고 지식을 인간 정신의 세 능력에 따라 나눴다. 

(역사와 자연사를 아우리는) 기억, 이성(철학,수학,법률, 상상(예술)이었다.

 

스펜서는 학문들을...자신이 선호한 삼중적 분할로....(논리학과 수학으로 한정된) 추상적 학문들, 구체적 학문들(곧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이 둘 사이에 있는 '추상적 구체적 학문'들로 곧 역학, 물리학, 화학이었다.

 

십진분류법(DDC)는 1876년 멜빌 듀이가 창안...

 

지식의 축적과 파편화가 갈수록 빨라지고, 또 그 결과 모든 것을 분류하기 위한 경쟁적 체계들이 급증하면서....

 

 

지식의 해독

 

체계적인 해독은 18세기 후반 시작...

 

상형문자들...1799년 이집트에서 나폴레옹 군대의 병사들이 이른바 로제타석을 발견하였으니, 거기에는 설형문자뿐만 아니라 이집트 속용문자와 그리스어로도 비문이 새겨졌던 것이다.

 

마야 문자의 경우, 해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1950년대 초에 러시아의 유리 크노로조프였다. 

 

 

지식의 재구축

 

1800년 전후 고생물학 분야...

거대한 뼈들이 발견...어떤 동물의 것도 아닌 것 같았으며, 그러다 '공룡'으로 밝혀지게 된다. (공룡이라는 이름은 1842년에 등장)

 

 

지식의 평가

 

위작들을 가려 내는 것...검증은 역사가 오래돼서....

 

 

연대 측정

 

근대 초기 고미술 연구가들은 고전이니 고딕이니 하는 양식을 보고 많은 인공유물의 연대를 측정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크리스티안 톰센...1816년....덴마크 국립박물관 전시 책임자...

선사시대 유물들이 연속적인 세 시기로 배열될 수 있다고 주장...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라고 불렀다. 

 

1916년 나무의 나이테를 이용한 뉴멕시코서 발견된 인공유물드의 연대 측정..

 

러더퍼드의 방사성 연대 측정은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으로 이어지는데, 1949년 이후 미국의 월러드 리비가 이끄는 일단의 과학자들이 개발한 방법

 

수치화

 

수은기압계는 17세기에, 수은온도계는 18세기에 발명됐다.

 

1912년 이탈리아의 통계학자 코라도 지니가 '지니계수'라고 알려진 방법을 발표..

 

'통계'.....괴팅겐 대학에서 특히 1770년에서 1800년 사이에 하나의 학문 분야로 발전했다. 

 

안테르스 시아에로는 노르웨이 초대 중앙 통계국장으로서, 1894년 '대표 표본조사'라는 발상을 내놓았으며 ...

 

 

지식의 묘사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를 두고 묘사의 시대라고 부리기도 하는데, 특히 박물관의 경우가 특히 여기해 해당한다.

 

네델란드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1919년)....시각적으로, 또 음향적으로 (예를 들어 종소리 따위의) 생생한 묘사들을 담고 있으며, 그러면서 중세 후반의 궁정을 일종의 무대로서 제시하는데...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노동계급의 상황)(1851년)...

 

독일의 테오도어 폰타네 같은 소설가들의 작품을 보면, 19세기 사회학을 연구한 한 역사가가 이 시기 사회학을 문학과 과학의 중간에 놓았던 것이 놀랄 일은 아니라고 하겠다.

 

 

비교

 

고생물학 연구...해부학작 구별..

 

체계적인 비교가 상대적으로 일찍 발달하는 또 다른 학문 분과는 언어학...

라틴어와 그리스어, 산크리스트어 사이의 상동 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1786년...

 

19섹 후반 이후로는 비교종교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초판이 1890년에 출판...

 

설명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 (1830년)...

 

실험은 물리학과 화학이라고 부를 학문 분과들에서는 1759년 이전에 자리를 잡았고, 다른 학문 분과들로 퍼져 갔다.

예를 들어, 의학의 경우에는 설명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실험들이 출현... 클로드 베르나르의 <실험 의학>(1846년)

 

어떤 것의 표면 아래로 들어간다는 의미의 분석을 갈수록 강조..

경제학과 사회학에서 쓰는 '균형'이 한 예....자연과학에서 개념을 빌려 옴..

 

 

해석

 

사물들을 바깥에서, 곧 원인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설명하며, 다시 인간 문화에 관한 연구가 있으니, 여기서는 목표가 안에서부터, 곧 의미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과학의 언어를 채용하기는 했지만, 정신분석은 해석학의 한 종류.....

 

 

서술

 

종합체들은 차이들의 조정을 거쳤거나 아니면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조직됐다는 점에서 단순한 집합체와는 다르다...

 

이론화

 

일군의 현상들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진술이라고 정의..

 

물리학의 열역학법칙, 화학에서는 일정성분비법칙, 천문학에서는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의 오차 이론, 멘델의 유전법칙, 다윈의 진화론, 맥스웰의 전자기이론, 수학의 게임이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모형'은 실제 세계에서 마주치는 더 복잡적이고 복잡한 상황들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 주는 의도적으로 단순화한 기술(記述)을 가리킨다. 

 

 

(제3장. 지식을 전파하다)

 

말로, 그림으로, 써서, 인쇄해서, 전자적으로 전파하는 방식들...

 

'누가에게 전달하느냐?'..

하나는 지리적인데, 세계 한 지역에 관한 지식이 세계 다른 지역들의 사람들에게 갈수록 많이 전달됐다.

또 다른 사회적인데, 지식이 점점 더 대중화됐다...

세번째는, 매체들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한 전달 수단이 다른 전달 수단으로(곧 라디오가 텔레비전으로, 신문이 인터넷으로) 대체됐다는 식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단순하다......오래된 매체와 새로운 매체는 공존하며 상호작용한다. 

 

말하기

 

말하기(대화나 논쟁, 강연 등)...

 

환경이나 기술이 달라지면서(예를 들어, 구슬 녹음기가 출현하면서) 말하기가 변모했다는 것...

 

19세기는 연설, 설교와 함께 강의의 황금시대였다고 볼 수 있으며...

 

17세기 후반의 런던에서는 새로운 커피 하우스 가운데 몇 군데가 문학에서 자연철학에 이르기까지 특정한 주제들을 둘러싼 토론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었다. 1780년대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는 '실험실 차 모임'이 하나의 관례가 됐다.

 

BBC의 라이브 강좌는 1948년에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로 시작하여 유명한 연례 기획자로서, 지금도 Radio 4에서 계속 이어진다.

 

 

전시하기

 

런던 만국박람호...1851년에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이 만국박람회..

 

19세기 후반을 '박물관의 시대'라고 불렀던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지식의 보급은 지식의 저장과 함께 이 많은 기관들(박물관, 동물원, 식물원 등)의 주요하 목표였다. 예를 들어 '스미소니언 박물관'

 

 

쓰기

 

편지나 책....

19세기에는 금속 펜이 표준화 됐으며, 19세기 말에는 만년필이 뒤를 이었고, 1940년에는 볼펜이, 1980년대는 수정 볼펜이 등장..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가 수동식/전동식 타자가 모두를 빠르게 대체...

 

훔 볼트는 혼자서 5만 통의 편지를 썼거니와, <홈 볼트 임 네츠>라는 인터넷 학술지가 훔볼트의 작업 연구에만 전념할 만하다고 하겠다.

 

19세기 뒤쪽으로 가면서는, 기업들이 더 커지면서, 지시를 내려 보내고 보고서들이 올라오고 하는  따위의 내부 소통을 위해 글쓰기가 갈수록 중요해졌다.

 

 

정기 간행물들

 

자연과학에서....미국에서는 (원래는 수공인들이 독자층이었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1845년)과 <파플러 사이언스>(1872년)가 있었으며....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에도 <네이처>(1869년)...

 

 

서적들

 

1960년대에는 세계적으로 33만 2000종의 책이 출판됐는데, 1990년이면 84만 2000종으로 늘어나 있었다.

2005년에는 영국에서만 20만 6000종이 출판됐고, 미국에서는 17만 2000종, 러시아 연방에서는 12만 3000종이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1859년)은 19세기가 끝나기 전에 5만 6000부가 팔려 나갔다.

 

1920년대 말에 대중 과학의 부활이 있었는데, 이를 주도한 것은 과학자들 자신들로서, 이를테면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의 <물리적 세계의 성격>(1928년)은 1943년이면 2만 6000부가 팔려 나간 상태였고, 우주학자 제임스 건스가 쓴 <신비로운 우주>(1930년)은 1937년까지 대략 14만 부가 팔렸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지적인 남자를 위한 과학 안내서>(1960년),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약사>(1988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1976년)나 스티븐 제이 굴드의 <판다의 엄지>(1981년).....

 

 

시각적 보조물들

 

사회조사 결과들과 위원회 보고서들에도 책이나 논문들처럼  통계들이 갈수록 포함되면서, 1820년대 이후로 '인쇄된 숫자들의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표 또는 런던 통계학회의 표현대로 '표 행태 표시물'의 중요도가 갈수록 커졌으며, 이 표시 방법은 자연과학에도 역시 채용되는데...

 

"아마 지금까지 제작된 것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망상도일 것"이라고 묘사됐던 런던 지하철 노선도(1933년) 같은 것들이 있었다.

 

 

 

(제4장. 지식을 이용하다)

 

검색

 

가장 먼저 생각나고 또 가장 많이 퍼진 형태의 정보 검색은 인간의 기억이지만, 기억이 갖는 한계와 오류 가능성 때문에 인공적 보조장치들로 기억을 보충하려는 시도가 많이 나왔다.

 

광범위하게  쓰이는 멜빌 듀이의 십진분류법이 있고, 듀이 방식의 경쟁 체계인 의회 도서관 분류법도 있다. 

 

허먼 홀러리스가 정보를 검색하는 '전기 도표화 기기'를 발명해 국세조사 결과를 비롯한 대규모 자료들을 분석했던 것...

 

'파일 검색 및 편집 시스템 FRESS'라는 것이 1960녀내 브라운 대학에서 개발됐다....이후 '데이터베이스'들을 출현...

 

 

실용적 지식

 

실용적 지식이라는 (또는 응용된 지식, 실제적 지식, 기술적 지식이라는) 개념조차도 그 나름의 역사를 갖고 있으니, '순수', '기초' 또는 '고등' 학문과 대비되거나 (19세기의 유명한 표어인 "예술을 위한 예술"을 선례로 삼은) 지식 자체를 위한 지식과 대비되면서 그때그때 정의됐던 것이다.

 

오하이오 기술공 학교(1828년)는 "실용적 지식의 더욱 보편적인 확산"을 위해 설립됐다.

 

경제학자들과 경제사들의 담화에서....'실용적이고 신뢰할 만한 지식'(useful and reliable knowledge, URK)가 등장...

 

루이 파스퇴르가 미생물학을 연구하다가 '저온살균법'을 개발했던 유명한 사례....

어쨌든 '실용적' 지식보다 '사용 가능한' 지식을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텐데, 어떤 것이 어떤 목적에 쓰일 수 있을지 미리 말하기란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하겠다.

 

 

지식과 산업

 

18세기 후반의 영국은 순수 지식과 응용 지식, 아니면 기초적 지식과 실제적 지식 사이의 상호작용이 특히 활발했던 시대이자 장소였다....예를 들자면, 이런 결과로 기술학교와 경영학교들이 설립됐다.

 

덴마크에서는 맥주 양조업자 야코브 크리스티안 야콥센이 (칼스버그의 소유자로서) 1875년 칼스버그 연구소를 설립했고, 한 해 앞서서는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뉴저지 멘로 파크에 자신의 연구 실험실을 열었는데, 이 실험실은 더러 "세계.....최초의 산업 연구소"로 표현되기도 한다.

 

19세기 시작부터 기업의 관리자들은 회사를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자기 기업 자체에 관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회사 업무를 조정하며 평가하고, 그 비용을 산출해야 했던 것이다. 제너럴 모터스가 이런 정보의 수집에서는 선구자였는데, 특히 통계로 된 정보를 수집해서 회사 내 서로 다른 부문들의 실적을 감시하고 장차 장비나 노동력이 얼마나 필요할지를 예측했다....

 

20세기 초에는 '과학적 경영'이라고 알려진 것의 시대....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의 원리들>(1911년)이 그 시작..

 

아치볼트 크로슬리는 1926년 시장조사 회사 크로슬리를 설립했으며, 유명한 라디오 청취율 조사자가 되었다. 

 

기업의 효율성을 증진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지식 경영'이라는 새로운 분야  또는 학문 분과가 이미 많이 성장했으며, <지식 경영 연구와 실제>(2002년) 같은 전문 학술지들도 나오고 있었다.

 

이제 지식은 "무엇이 됐든 기업 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으로서, 기업에 경쟁 우위를 부여하는 모든 것의 총합"으로 정의되며, 주요한 자산으로 여겨진다. 

 

 

지식과 전쟁

 

지휘관들과 그 정부들은 갈수록 지리 지식의 군사적 용도를 인식하게 된다.

 

루스 베니딕트의 유명한 일본 연구 <국화와 칼>(1946년)을 의뢰한 것도 전쟁 정보국이었으며, 이 연구에서는 일본의 '수치심 문화'와 미국의 '죄의식 문화'를 대비했다.

 

 

지식과 정부

 

지식과 대학

 

대학들은 오랫동안 그 자체를 위한 지식, 곧 '순수' 또는 '기초' 연구의 보루로 여겨졌다.

 

학문적인 경제학은 너무 추상적이며 이론적이라고 여기게 됐고, 그리하여 '경영'(business administration)이라고 불렀던 것을 다루는 과정을 포함해 더 실질적인 교육과정들이 19세기 후반 이후로 대학들에 계속 개설됐다. 미국의 경우,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 경영 대학원(1881년), 시카고 대학 경영 대학원(1898년), 하버드 경영 대학원(1908년)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하버드 경영 대학원은 1910년에 첫 경영학 석사를 수여했다.

 

1957년 퐁텐블로의 유럽 경영 대학원(INSEAD)이 학위를 수여하는 첫 유럽 대학이 됐고...

 

 

수렴

 

서로 다른 분야에 있는 기관들이 서로 발상을 빌려 오는 경우도 많았다.

 

 

 

(제2부 진보의 대가)

 

 

(제5장. 지식을 잃다)

 

경영학 쪽에서는 점점 더 주목하고 있는데,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조건 속의 위험관리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감춰진 지식

 

어떤 지식은 숨겨 놓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기술적 지식들은 직업상의 비밀로 유지될 때가 많았다.

 

지식의 파괴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도 포함되는데....탐험가들....숙청...전쟁 때 사망 등...

 

지식의 폐기

 

구식화, 어떤 개인들이나 집단들이 구식화라고 믿는 것의 결과다. 

 

도서관과 백과사전

 

이전까지 지식으로 여겼던 것들을 폄하하는 과정....

18세기에는 책들을 이단적이거나 전복적이라서가 아니라 쓸모가 없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생각들을 품기 시작했다.

 

개념들의 폐기

 

개념들 또는 '범주'들 역시 폐기되며, 여기에는 지적인 이유와 사회적인 이유가 혼합돼 있다.

 

예를 들면 점성학, 초심리학(심령 연구), 우생학 등

 

 

(제6장. 지식을 나누다)

 

1960년대 초에는 5만 종의 과학 정기물이 600만 편에 이르는 논문을 그때까지 실은 것으로 계산됐으며, "1년에 최소한 50만편"씩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1954년에서 1965년 사이에 물리학 출판물이 8년마다 두 배씩 늘어나고, 사회학 쪽에서는 3년마다 두 배씩 이었다. 이런 '지식 폭발'과 그에 따른 '정보 과잉' 심화의 시대에는 전문화가 갈수록 더 필요해졌다. 

 

박학가들의 쇠퇴

 

헤라클레이토스는 총람적 지식을 가졌다고 자처한다는 이유로 피타고라스를 사기꾼이라고 불렀고, 로저 베이컨을 비롯한 다른 몇몇 중세 학자는 악마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의심을 샀으며, 다시 이 의심은 16세기의 저 파우스투스 박사 이야기로도 나타났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대단히 비범한 박학가를 실례를 보여 주는데.....

케임브리지 대학 이매뉴얼 학료의 토머스 영....영은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인간"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과학자들의 출현

 

'과학자'는 1830년대 만들어 진 말이다. (독일어의 해당 단어는 '자연 연구자'라는 뜻이였다)

 

1959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한 유명한 강연에서 (물리화학자였다가 소설가가 된) 찰스 퍼시 스노가 안타까워하며 지적한 '두 문화' 사이의 분열이었다.

 

 

전문적 학회, 학술지, 학술회의

 

 

학문 분과들의 설립

 

19세기 하반기 대학들에서 새 학문 분과들이 설립돼서 제도화되는 시대...

중세와 근대 초기 대학들은 학사 과정 학생들에게는 '학예 과목'을, 고급 과정 학생들에게는 신학, 법학, 의학을 가르쳤다. 

 

사회학은 이를테면 법학에서 나왔고, 해부학과 생물학은 의학, 생리학은 해부학, 철학은 신학이었고, 심리학은 철학이었다. 

박물학은 셋으로 (지질학, 식물학, 동물학으로) 갈라졌다. 

 

 

전문가와 전문 지식

 

갈수록 전문화된 지식을 습득해서 사용하는 이 흐름은 학문적 영역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이 흐름은 19세기의 이른바 '직업 사회의 출현'에서 한 부분이었는데, 특정 분야에서 영업하는 데 필요한 공식적인 면허, 또는 '특허'제도가 자리를 잡는 것이 이 사회의 특징으로서, 이런 자격 증명들은 학문 쪽의 박사 학위와 같은 기능들을 했던 것이다. 

 

 

전공의 등장

 

물리학은 오래전에 이론과 실험 분야로 나뉘어 있던 것이 다시 전공들로 세분됐는데, 역학, 핵물리학,, 고에너지물리학, 소립자물리학, 분자물리학, 지구물리학, 천체물리학, 생물물리학 같은 것들이 있다. 

 

 

(제3부 세 가지 차원에서 본 지식사회사)

 

(제7장. 지식의 지리학)

 

 

(제8장. 지식의 사회학)

 

지식과 그 사회적 환경 사이의 관계를 특히 '지식 경제','지식 사회','지식 국가'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것의 시대를 배경으로 더 정밀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다.

 

 

지식의 경제학

 

요즘 말하는 '지식 경영'이 기업들에 경쟁 우위를 가져다준다는 생각은 비교적 최근에 정식화됐다.

 

 

다양한 지식 노동자들

 

많은 종류의 직업적 지적 노동자들.....

탐험가나 교사, 탐정, 기자, 첩자, 출판인, 실험실 조수, 지식 관리자.....계속 늘어났다.

 

 

노동계급과 지식

 

18세기 후반부터는 도서관이나 미술관, 박물관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여성과 지식

 

 

(제9장. 지식의 연대기들)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정보혁명'을 검토하기 전에, 역사가들이 17세기에 '과학 혁명'이 일어났는지, 아니면 18세기 후반에 '산업 혁명'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점점 더 회의적이 돼 왔다는 것을 떠올려 볼 만하다. 두 경우 모두에서, 변화를 어떤 갑작스러운 사건이라기보다 중기적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지식 폭발

 

가장 두드러지는 장기적 경향은 이른바 지식의 폭발이다. '폭발'이라는 표현은 한때는 낙관적으로 지식의 진보 또는 성장이라고 불렀던 것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어쨌든 이 새 은유는 두 개념을 (곧 급속한 팽창과 파편화를) 솜씨 있게 결합했다.

 

중요한 문제는 정보 이론가 클로드 새넌이 쓸모없는 '잡음'이라 부른 것으로 유용한 정보와 구별하는 것이다.

 

지식 폭발보다 극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중요했던 것이 '지식의 표준화', 아니면 최소한 지식을 수집, 분석, 시험, 전파하는 방식의 표준화로 나아가던 장기적인 흐름이었다.

 

 

세속화와 반세속화

 

지식의 일국화는 국제화와 공존했고, 전문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학제적 연구를 하려는 움직임들이 있었던 것..

 

지식 기관들 쪽에서는 세속화가 지배적인 흐름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지식의 단기적 경향들

 

내가 보기에는 50년이라는 기간이 '단기적'이라 할 수 있다. 

 

만하임이 지적했듯이, 어떤 세대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전쟁이나 혁명, 위기 같은 어떤 전환점에 대한 공동 경험이다.

 

 

지식의 개혁: 1750 ~ 1800

 

제1권은 <백과전서>(1751 ~ 1766년)을 출판으로 끝났다. <백과전서>를 기준치로 삼아 여기서부터 변화를 측정하게 될 것..

 

편찬자들의 정치적 구상이었다고 하겠으니, 곧 지식을 이용해 개혁에 복무하려던 것이었다.

 

 

지식 혁명: 1800 ~ 1850

 

1789년에서 1815년 사이의 프랑스에서 일어났는데, 곧 (나폴레옹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몇 년 동안) 대학이며 학술원이 없어져 버려고, 국립학교들이 단과대학들로 대체했으며, 공과대학이 설립됐고, 또 기록 보관소들을 개방하라는 법령이 통과되고 했던 것..

 

1830년대 영어에서 '과학자'라는 단어가 출현....이 혁명의 일부를 구성하는 전문화와 직업화를 보여 주는 징표였다.

 

 

학문 분과들의 출현 : 18500 ~ 1900

 

19세기 후반은 전문화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기간...

 

 

지식의 위기: 1900 ~ 1950

 

실증주의에 대한 반란...

 

철학....니체의 '관점주의'....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정확한 방식 같은 것은 없고 오직 다양한 시각 또는 관점들이 있으며...

 

정설이었던 것의 전복은 물리학에서 가장 분명....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원리(1915년)는 상대주의에 힘을 실어 줬으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는 양자역학과 관련해서 (1927년) 정식화댔지만, 확실한 일반을 약화했다. 객관성을 띠고 있다고 전제하는 이론들은 한 분야 한 분야에서 차례로 기반을 잃어 갔고, 일반적 법칙들이나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버론에 대한 신뢰 역시 약해져 갔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남긴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 하나는 과학과 연구가 국가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점을 부각했다는 것....

 

 

지식의 기술화: 1940 ~ 1990

 

전기 시대의 파동....

1951년 컴퓨터, 1958년 복사기,1969년 알파넷, 1971년 CPU, 1961년 PC, 1984년 콤팩트디스크, 1987년 파워포인트....

 

'지식 경제'가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지식 기반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생산이 연구에 의존하게 되고, 이것이 이번에는 '후기 산업사회', 다른 말로는 '정보사회' 또는 '지식사회'  출현으로 이어졌으며, 여기서는 일상생활에 새로운 형태의 지식들이 침투하게 된다.

 

지식사회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가 정보를 "지금까지 경제 이론가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경제적으로 흥미로운 재화 범주"라고 묘사하는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 1973년이었던 것이다.

 

지식 노동자... 교수, 기록 보관인, 학예사, 언론인, 지식 관리자, 컴퓨터 노동자, 연구자들...

 

 

재귀성의 시대 : 1990 ~ 

 

1989 ~ 1990년...

베를린 장벽 붕괴....WWW은 이제 이름을 갖게 됐고, 1990년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

 

지식의 기술화는 계속해서 빨라졌다....정보의 폭발...

디지털 자료들은 이제 기가바이트, 테라바이트, 페타바이트, 엑사바이트로 측정한다. 2005년에는 인류가 150엑사바이트의 자료를 만들어 낸 것으로 추정되지만, 시장조사 회사 인터내셔널 데이터 코프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10년에는 대략 1200엑사바이트의 디지털 자료가 생산될 것이었다.

 

'지식 관리'가 필요하다는 소리가 특히 경제계에서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지식의 맥도날드화'....

대량생산(학생수의 증가), 또 측정을 통해 효율성을 향상시키려는 시도(교수 평가, 인용 색인, 연구 실적 평가), 또 (저 광적인 효율성 추구자였던 멜빌 듀이가 19세기에 주장했던) 표준화, 또 (예를 들어, 어학 실습실에서처럼) 일부 학습 과정에서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현상의 결합에 관해....

 

종이책과 전자책은 공존할 것....책의 축소도 같이 일어날 것...책의 중요성이 줄어든다는 의미에서는 은유적 축소이고, 점점 많은 정보를, 심지어는 지식도 다른 매체들에서 얻는 독자들에게 맞춰 책이 더 작아지고 더 짧아진다는 문자적 의미의 축소이기도 하다.

 

지식의 국제화, 공조/협조 :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의 강입자 충돌기

 

지식의 민주화로서, 특히 더 많은 지역의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돼 갔다는 의미...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개방'....인터넷은 새로운 형태의 공적 공가이라고 하겠다. 

 

위키백과....재귀성...

"사회가 스스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의 증가"를, 곧 끊임없이 "사회적 관습들을 이 관습들에 관한 지식에 비추어 수정"하는 것을 강조한다. "정보적 발전 양식에서 특징적인 것은 생산성의 주요 원천으로 지식 자체에 대한 지식의 작용이다."

 

사업을 위한 정보관리는 그 자체가 성공적인 사업이 됐다....

독일에서는 심지어 (지식사회학, 과학사 또는 지식사 같이) 지식 자체의 연구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

 

 

[ 자평 ]

 

원저의 제목은 'A Social History of Knowledge II : From the Encyclopaedia to Wikipedia'으로 2011년에 나왔다.

필요에 의해서 10년 전에 읽고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정리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