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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제1부)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이 적혀 있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종속
무지는 힘
그의 온몸에 전율이 퍼졌다. 종이에 뭔가를 적는다는 것은 중요한 행위였다.
2분 증오가 무서운 것은 사람들 자신이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자기도 모르게 이런 행위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이었다.....공포와 복수심의 끔찍한 광경, 죽이고 싶고 괴롭히고 싶고 커다란 망치로 얼굴을 부숴버리고픈 욕망이 전류처럼 모든 이에게로 번져서 얼굴을 부숴버리고픈 욕망이 전류처럼 모든 이에게로 번져서 자기의사와는 상관없이 오만상을 찌푸리고 소리를 질러대는 미치광이로 변하게 했다. 각각이 느끼는 분노는 블로램프의 불처럼 그 상대가 바뀌는, 추상적이고 일정하지 않은 감정이었다.
교수형이 그날 저녁 공원에서 집행된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한 달에 한 번쯤 있는 이런 일은 인기가 좋은 구경거리였다. 아이들은 언제나 구경 가고 싶다고 시끄럽게 졸라댔다.
모든 행동의 결과는 행동 자체에 포함되어 있다.....사상범죄가 필연적인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사상범죄 자체가 죽음이다.
그의 비극이란 과거의 것, 개인적인 비밀과 사랑과 우정이 있고, 한 가족이 이유 없이 서로를 믿는 그런 시대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의 슬로건에 따르면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과거의 본성은 바뀔 수 있지만 과거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무엇이든 현재의 진실이 영원한 진실인 것이다.
이중 사고....
서로 상충되는 것을 알면서도 두 의견을 동시에 믿는 것, 논리를 공격하는 데 논리를 사용하는 것, 도덕을 요구하면서 거부하는 것,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믿으면서 당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믿는 것, 잊어야 할 것은 뭐든 잊었다고 필요하면 다시 기억 속에 끌어들이고 다시 바로 잊어버리는 것,
자신의 기억 외에 그 어떤 기록도 존재하지 않을 때, 아무리 확실한 사실이라도 어떻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겠는가?
무산계급의 문학과 연극, 오락을 다루는 독립된 분과가 따로 있었다. 이곳에서는 스포츠, 범죄, 점성술 따위가 들어 있는 쓰레기 같은 신문, 선정적인 싸구려 소설, 섹스 영화, 작곡기계라 알려진 일종의 특수한 만화경에서 완전히 기계적인 방법으로 작곡된 감상적인 노래 같은 것들을 만들어냈다.
---> 깜짝 놀랬다. 요즈음 예능이라는 것들, 유투뷰를 보면 대체로 나는 이 문장의 느낌을 받는다....
---> 미디어 학자인 닐 포스트먼 (Neil Postman)의 <죽도로 즐기기>가 생각냈다. 1985년 이미 "영상매체로 인해 정치, 교육, 공적 담론, 선거 등 모든 것이 쇼비즈니스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책이다. 조지 오웰이 그리는 세계는 1984년 4월 4일이 시작이다.......우연하지만....
매우 교묘한 조직인 만큼 어떤 일을 한 사람에게 믿고 맡기는 법이 결코 없었다.
--> 놀랍다. 대기업, 공기업 등 큰 조직에 다녀 본/다닌 분들은 왜 이런 현상, 이런 big head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언어의 파괴는 아름다운 일이야. 가장 쓸모없는 말은 동사와 형용사에 있어."
--> 깜짝 놀랬다. 기업에서 보고서를 쓰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형용사와 부사를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 불필요한 오해를 낳기 때문이다. 명사와 동사 중심으로 쓰라고 한다. 단순 명료해야 전파하고 공유하기 쉽기 때문이다. 공동의 이해를 공감하고 행동을 통일하기 위한 것이다....이해와 인식, 행동의 단일화... 음.....
가령 '좋다'는 말을 봐. 이 말이 있는데 '나쁘다'라는 말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좋지 않다'면 충분하지.
'좋다'를 더 강하게 말하기 원할 때 한 줄로 엮어서 모자라는 막연하고 불필요한 '탁월한', '훌륭한' 등의 말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더 좋다'면 충분히 의미가 전달되고 더 강조하고 싶을 때는 '더더욱 좋다'라면 되지
"뉴스피크어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고의 범위를 좁히는 데 있다는 말을 모르겠나? 결국 우리는 사상범죄를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만들 거야. 그것을 표현할 말이 없어지는 거지..."
"매년 어휘 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의식 영역도 끊임없이 좁아지겠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계급이다.....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계급으로부터 비롯되어야만 했다.....
무산계급이 그들 자신의 힘을 깨닫기만 한다면 음모를 꾸밀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저 일어나서 말이 파리를 쫓듯 몸을 흔들기만 하면 충분했다.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내일 아침에라도 당장 당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 이것이 진정 조지 오웰이 하고 싶었던 말 중 하나 이지 않을까?
잠시 뿐이었지만 수백 명의 목에서 터져 나오던 분노에 찬 외침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던가! 왜 그들은 진정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소리치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이 의식하기 전에는 저항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저항하기 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현대생활의 진정한 특성은 잔혹함이나 불안정함이 아니라 단순한 적나라함과 어둠과 무기력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은 알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현재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믿는 것이 정신 이상의 증후가 된 것처럼 오늘날에는 과거를 바꿀 수 없다고 믿는 것이 그렇다.
결국 당은 2에 2를 더하면 5가 된다고 발표하고 그것을 믿게 할 것이다.
이단 가운데 최고의 이단은 상식이었다. 두려운 것은 그들과 생각을 달리한다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말하건대 우리는 2와 2를 더하면 4가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과거와 외부세계가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면, 마음 자체를 조절할 수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 정말 놀라운 문장이다. 생각을 급히 해 볼 문장이다.
--> 철학 분야, 뇌과학이나 신경과학, 인지 심리학 분야, SF 분야에서 주로 다뤄지는 '통속의 뇌'라는 주제도 생각나고....
---> 산업화 사회의 '교육 획일화' 문제도 생각이 나고...
자유란 2에 2를 더하면 4가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정되며 다른 것들도 이를 따를 것이다.
"한편으로는 늙어서 유리한 점도 있어. 젊었을 때 했던 고민이나 걱정은 더 이상 하지 않다도 되니까. 여자관계도 없으니 대단하지."
인생이란 배고픔, 추위, 불면, 그리고 참기 힘든 복통과 치통에 대한 순간순간의 투쟁이기 때문에....
(제2부)
인간이 인간으로 머무는 한 죽음과 삶은 같은 것이니까
그는 먼 옛날, 시원한 여름 오후에 남녀가 옷을 걸치지 않고 사랑을 나누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또 일어나야 할 압박감도 느끼지 않고, 그곳에 마냥 누워 바깥의 평화로운 소음을 듣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흔한 일이 었는지 어땠는지 막연하게 상상해 보았다. 이런 일이 일상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정말 있었을까?
난 우리 세대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그러나 여기저기 반대세력이 생기고, 소수의 집단이 뭉치고 점점 세력이 커져서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면, 우리가 미처 하지 못한 일을 후대가 할 수 있도록 할 수는 있소.
어떤 의미에서는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성공적으로 주입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해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신이 온전할 수 있었다. 마치 곡식 한 알이 소화되지 않은 채로 새의 몸 안을 거쳐 그대로 배출되듯이 그들도 찌꺼기를 남기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무엇을 먹든 해를 입지 않았다.
난 자백을 말하는 게 아니오. 자백은 배반이 아니오. 무슨 말을 하건 무슨 짓을 하건 그건 문제가 되지 않소. 감정만이 중요한 것이지. 만약 그들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막는다면, 그것이 진짜 배반이란 말이요.
--> 소설은 최소한 두 번 읽어야 하나 보다. 두 번째 읽은 때 왜 이 문장이 그리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 (Patricia Meyer Spacks)교수는 깊이 읽기 위해서 다시 읽으라고 한다... "우리가 책을 다시 읽을 때 ‘안전함’을 원하지만, 결국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변했는가라는 사실이라는 ‘안전과 변화’의 법칙이다."
결국 계급사회라는 것은 빈곤과 무지를 근거로 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가장 최하위직 당원이라도 유능하고, 근면하고, 심지어 좁은 범위 내에서는 지성적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는 공포, 증오, 아첨, 광란 등에 쉽게 속아 넘어가는 무지한 광신자가 되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전쟁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이 두 가지 목적은 지구의 전 세계를 정복하는 것과 독립적 사고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이 해결해야 할 두 가지 큰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어떤 사람이 당의 의사에 반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떻게 하면 아무런 예고 없이 단 몇 노 이내에 수억 명을 죽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철학이나 종교나 윤리나 정치에서는 2 더하기 2가 5가 될 수도 있지만, 대포나 비행기를 설계할 때는 4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고 전쟁의 목적은 국토 정복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있었다.
진실로 영원한 평화는 영원한 전쟁과 같다. 이것이 (당원의 대다수는 천반한 의미로서만 그것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만) '전쟁은 평화'라는 당의 슬로건의 숨은 뜻인 것이다.
이 집단의 목적은 결코 조화될 수 없다. 상층 계급의 목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중류계급의 목적은 상층계급과 자리를 바꾸는 데 있다. 하층계급의 목적은, 그들에게도 목적이 있다면 (하층 계급은 너무나 노동에 시달려서 일상생활 이외의 일은 진지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변치 않는 특징이다) 모든 차별을 없애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창조하는 데 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똑같은 투쟁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세 계급 중에서 하층계급만이 일순간이라도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는 일이 결코 없다.
어떠한 부의 증진도, 어떠한 개혁이나 혁명도 인간의 평등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층계급의 관점에서 변화는 그들의 지배층이 바뀌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역사는 순환과정이라고 설명하고, 불평등은 인간생활에 있어 불변의 원칙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많은 사상가들이 나타났다.
지배계급이 권력에서 물러나는 방법은 네 가지 밖에 없다. 이 네가지란 외부 세력에 의해 정복당하는 경우, 비능률적인 통치로 인해 군중이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 불만은 품은 강력한 중류계급이 생겨나는 경우, 통치할 의욕을 스스로 상실하는 경우이다......대개 이 네가지는 맞물려서 나타난다. 이 원인들을 전부 제거할 수 있는 지배계급은 영원히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결정적인 요인은 지배계급 자체의 정신 상태라고 할 것이다.
현존하는 지배층의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위험은 능력은 있지만 낮은 임금을 받고 권력에 굶주려 있는 새로운 집단이 분열되어 생기는 것과 그들 자신의 집단 안에서 자유주의와 회의주의가 싹트는 것이다. 즉 문제는 교육적인 것에 있다. 그것은 지배층과 바로 그 밑에 속하는 방대한 관료층의 의식을 끊임없이 조종하는 문제이다. 대중의 의식은 단지 소극적인 방법으로 영향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빅 브라더는 당이 세상에 스스로 내세우기 위해 만든 가공인물이다. 그는 집단에 대해서보다 개인에 대해서 느끼기 쉬운 감정적 사랑, 공포, 존경을 한 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
당원은 올바른 의견뿐만 아니라 올바른 본능을 가져야 한다.
---> WoW. 정말 문장의 힘이.....
'흑백사고'....
상대편에 적용될 때 이 단어는 검은 것을 흰 것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당원에게 적용될 때는 당이 요구하면 검은 것을 흰 것이라고 기꺼이 말하는 충성심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검은 것이 흰 것이라고 믿고, 그로 인해 전에 반대로 믿었던 사실을 잊어버리는 능력을 의미한다.
과거는 기록과 기억이 합쳐져 있다.
과거에 대한 통제는 기억의 훈련에 달려 있다.
기억을 재조정하고 기록을 손질해야 한다면 자신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기술은 다른정신적 기술과 마찬가지로 습득될 수 있다.
이것을 고어에서는 현실 통제, 뉴스피크어로는 이중 사고라 부른다.....
이중사고란 한 사람이 마음속에 두 개의 상호모순 되는 개념을 가지고 두 개를 모두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고의적인 거짓말을 진실로 믿으면서 말하고, 불필요한 사실을 잊어버렸다가 그것이 다시 필요해지면 필요한 기간 동안만 망각 속에서 다시 사실을 끌어내고, 객관적 혁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그 부정한 진실을 항상 고려하는 것 등 모든 것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중 사고의 신중한 작용.....모순을 일치시킴으로써 권력은 영원히 존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 WoW. 정말 감탄스럽다....어떻게 이런 생각을....
--> 비즈니스 사고법에 이런 양극단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비즈니스 솔루션라는 주제로 유사한 것을 가르치는 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데보라 슈로더-사울니어 (Deborah Schroeder-Saulnier)가 쓴 <우리는 어떻게 모순을 해결했는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통계숫자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하고 중얼거리면서 잠이 들었다. 그는 이 말 속에 깊은 지혜가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평등이 있는 곳에는 온전한 정신이 깃들 수 있다.
새들도 노래 부르고 무산계급도 노래를 부르지만 당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무산계급이 육체로 살아남는 것처럼 우리도 마음으로 살아남아 2 더하기 2는 4라는 비밀 원칙을 전달한다면 그 미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조지 오웰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문장이지 않을까?
(제3부)
그는 면도날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을 쓸 자신이 없었다. 십 분을 더 살고 그 다음에는 또 영락없이 고문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십 분의 삶을 받아 들이고 순간에서 순간으로 삶을 이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고통에 관해서는 단 한가지만을 바랄 수 있는데 그것은 고통이 멈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어떤 것이라도 육체적 고통보다 더 나쁜 것은 없었다. 고통 앞에서는 영웅도 없다. 영웅도 없다 하는 생각을 되풀이하면서 그는 병신이 되다시피 한 왼팔을 의미 없이 붙들고 방바닥에서 뒹굴었다.
---> 개인적으로 나는 이 문장에 100% 동의한다. 허박지 살이 괴사하여 진통제를 먹고 있는데도 참지 못해 쌍욕이 나온 적이 있다. 신장 결석으로 몰핀을 맞았는데도 쌍욕을 해 본 적이 있다. 다리 전체 깁스를 한 후 굳어 버린 다리를 재활하면서 억지로 찟는 과정에서 쌍욕을 해 본 적이 있다......육체적 고통.....음....
주먹이 때리려고 뒤로 물러나는 것만 봐도 실제로 있었던 죄며 상상한 죄며 모든 자백을 쏟아놓기도 했다.
---> 이 문장에서 영화 <변호인>의 장면들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이런 짓을 하는 목적은 그를 모욕해서 그가 가진 논리와 이론의 힘을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정말 무서운 점은 몇 시간이고, 몇 시간이고 끝도 없이 질문을 계속하면서 함정을 만들어서 그가 걸려 넘어지도록 하고, 그가 한 말 한마디 한마디를 틀어놓고, 모든 단계에서 그에게 거짓말과 자기모순을 확신시키고, 부끄러움과 신경의 피로 때문에 마지막에는 울게 만드는, 무자비한 심문이다.
그는 단순히 무엇이든지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말하는 입, 서명하는 손이 되었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그들이 어떤 자백을 원하는가를 발견해서 고문이 다시 시작되기 전에 재빨리 그 자백을 해버리는 것뿐이었다.
---> 변호인의 고문 장면들 & 유관순 열사가 받은 고문의 종류를 읽은 기억을 떠올리고, 그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가를 같이 느끼게 된다. 약한 인간과 악한 인간....
"그럼, 그 과거란 존재한다면 대관절 어디에 존재하는가?"
"기록이지요. 쓰여 있으니까요."
"기록에 또...?"
"마음에요. 사람 기억에요."
"기억에. 그럼, 좋아. 우리 당은 모든 기록을 통제하고 모든 기억을 통제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거를 통제한다. 안 그런가? "
"아니야! 단순히 자백을 얻거나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왜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지 말해줄까? 너를 고치기 위해서야! 너를 정상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야! "
그들에게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슬픔과 '빅 브라더'에 대한 사랑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어.
왜 우리가 권력에 집착하는가를 말해보라. 우리 동기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힘을 원하는가? 어디 말해봐....
당은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인류는 자유 아니면 행복을 선택해야 하는데 인류의 대다수에게는 행복이 자유보다 더 좋은 것이다. 당은 약자의 영원한 수호자이며, 행복을 가져오기 위해서 악을 행하는 헌신적 집단이고, 남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행복을 희생한다.
우리는 권력을 양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권력을 쥐는 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권력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야. 혁명을 보장하기 위해서 독재를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독재를 수립하기 위해서 혁명을 하는 거야. 억압의 목적은 억압이지, 고문의 목적은 고문이고. 권력의 목적은 권력.
그가 자신을 완전하게 할 수 있다면, 완전히 굴복할 수 있다면, 자신을 벗어나고 당에 자신을 몰입시켜서 자신이 즉 당이 될 수 있다면 그 때 그는 전능하고 불멸이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권력을 주장하려면 어떻게 하는가, 윈스턴?"
"그를 괴롭힘으로써"
"맞았다. 그를 괴로힘으로써다. 복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가 괴로워하지 않는 한 그가 자기 의사가 이니라 네 의사에 복종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권력은 고통과 모욕을 가하는데 있는 거야. 권력이란 인간의 정신을 갈기갈기 찢어 그것을 네 마음대로 다시 맞추는 데 있는 거야....."
"아무래도 좋아요. 결국 가서는 그들이 당신네들을 때려눕힐 거예요. 조만간 당신네들의 정체를 발견하고 갈기갈기 찢어버릴 겁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무슨 증거라도 있는가? 또 그래야만 한다는 이유는?"
"없어요. 하지만 난 그걸 믿습니다.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아요. 이 우주에는 무엇인지가....... . 모르겠어요, 무슨 정신이갈까, 무슨 원리랄까...... 하여간 정복할 수 없는 무엇이 있어요."
...
"그럼 그게 뭐야, 우리를 때려눕힌다는 원리라는 게?"
"모르겠어요. 인간의 정신이지요."
"그럼, 너는 너를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럼요."
"네가 인간이라면, 윈스턴, 최후의 인간이다. 너 같은 종류는 소멸되었어. 우리가 그 후계자야, 너는 혼자라는 걸 알겠나? 너는 역사 바깥에 있어. 너는 비존재야."
"너는 최후의 인간이야.... 너는 인간 정신의 수호자야. 너는 자신의 정체를 볼 것이다. 옷을 벗어."
"네가 타락하지 않은 단 한지 예라도 들 수 있는가?"
"나는 줄리아를 배반하지는 않았어요."
정상적인 정신상태란 통계적인 것이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것을 배우는 문제에 불과하다. 다만...!!
---> 아 정말....이런 문장이 가리키는 것에서 벗어난, 벗어날 수 있는 의식적 삶이 있을까???
모든 것이 얼마나 쉬운가! 항복만 하면 다른 모든 것이 뒤따르기 마련이었다.
--> 아 정말....이런 문장이 말하는 것을 자유의지로 벗어날 수 있는, 벗어난 삶이 있을까?
우리 마음을 통하지 않고 우리가 무슨 지식을 가질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진실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완전에 한 구멍을 뚫린 꼴이 될 것이다. 그들을 증오하면서 죽는다는 것, 그것이 자유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그의 처벌을 대신 받아줄 사람이 이 세상에 꼭 한 사람 있다는 것을.......쥐와 자기 사이를 가로막아줄 수 있는 한 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미친 듯이 똑같은 말을 외쳤다. "줄리아한테 해! 줄리아한테 해! 나 말고! 줄리아! 줄리아를 어떻게 하든 괜찮아. 얼굴 껍데기를 찢어내고, 뼈다귀까지 저며도 좋아. 나 말고! 줄이아! 나 말고!"
---> 내게는 이 문장이 이 책에서 가장 슬픈 문장이었다. 온전한 자기 책임을 진다는 것, 인간은 약하다는 것, 인간에 대한 슬픔과 자기사랑, 그리고 살아 간다는 것에 대한 역겨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아주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일으킬 수 있는 위대한 문장.....
2+2 =...
"그들은 우리 마음속까지 들어오지는 못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마음속까지 들어왔다......
과연 그 말이 옳았다.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것, 자신의 행동이 있었다. 가슴 속에서 무엇인지가 죽어버렸다. 타 없어지고, 썩어 문드러져 버렸다.
"....그 길 말고는 자신을 구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방법으로라도 자신을 구하겠다는 거지요. 그것이 그 사람에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거지요. 남이야 어떻게 되는 조금도 문제가 아니에요. 자기밖에 모른다니까요.:
"자기밖에 모르지요."
"그런 다음에는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전과 같지 않거든요."
그러나 잘 되었다, 다 잘 되었다. 싸움은 끝난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이겼던 것이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던 것이다.
--> 나는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왜? 조지 오웰은 이 문장으로 이 소설을 끝낸 것일까?
--> 서평 관련 서적, 인터넷을 보면 이 문장을 해석한다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다...나는 아직 나의 해석을 찾지 못했다....
[ 자평 ] 조지 오웰의 팬이 되었다. 피를 토하면서, 죽기 전에 완성하려한 가치가 충분하다.
허접하게 문과를 나와 경영학을 전공한 내게 1984는 애플의 광고가 먼저 떠오른다.
내 지적 20~30대 지적 수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추잡하고 속물적이었 던가......
<1984>를 갑자기 집어 들고 읽은 동기는 세 가지이다.
첫째, 내가 읽어 야 할 인생 소설에 상위권에 있는 소설이었다. 남들이 좋다니 무조건 집고 읽어야 했다.
우선 클리프턴 패디먼과 존 메이저가 쓴 <평생 독서 계획>의 '조지 오웰'장에서는
ㅇ 1984는 그의 걸작일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책들 중 하나이다.
ㅇ 우리는 1984를 예언이라기보다 경고로 해석해야 한다.
ㅇ 윈스턴 스미스가 2 더하기 2는 5라는 주장을 믿어 주는 에피소드는 힘으로 강요된 프로파간다의 놀라운 힘을 잘 보여 준다.
ㅇ 그의 문체는 쉽고, 정직하고, 어떤 효과를 위해 일부러 꾸민 흔적이 없다.
이수은 편집자의 <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의 '1984' 장에서....
ㅇ 1984는 레닌의 위대한 볼셰비키혁명을 천인공로할 전체주의로 '타락'시킨 스탈린을 맹비난한 작품이다
ㅇ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 아마존의 고전분야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작품이다
ㅇ 조지 오웰은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가는 아닌지 몰라도 20세기가 배출한 가장 중요한 작가임은 분명하다
ㅇ 윈스턴은 빅브라더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고백하고, 총살된다
ㅇ 그의 저항은 실패가 예정된 일탈에 불과했다.
ㅇ 더 이상 자백할 것이 없어도 무엇인가를 자백해야 할 때, 인간의 마지막 한 조각 신념은 붕괴된다. 그러고나면 2+2=5가 진실로 믿어진다.
ㅇ 조지 오웰이 현대문학사에 그토록 중요해진 이유? 그가 그려내는 끔찍한 미래상이 20세기 이후 서구열강이 이룩한 모든 시스템을 '열렬히 수호할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것'으로 고양시켜주기 때문일 것 같다.
ㅇ 고도화된 자본주의와 정보기술이 좁은 의미의 '정치'를 무력화 시키는 오늘날 이들 두 시스템 자체가 세계의 지배이념이다. 그러나 완전한 권력이라는 이상은 그 속성상 언제든 조지 오웰이 그토록 강력히 경고한 1984의 세계를 현재로 불러 올 수 있다.
김연경교수는 <살다, 읽다, 쓰다>의 '1984' 장에서...
ㅇ 빅 브라더는 '스탈린'을, 골드스타인은 '트로츠키'를 연상시킨다
ㅇ 전체주의의 악몽 속에서 철저히 마모돼 가는 개인의 실존을 포착한 걸작의 닫힘 구조를 자먀틴의 <우리들>처럼 <1984>도 반복한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번역본에는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Evgeni Zamiatin)이다.)
ㅇ <부록: 신어의 원리>는 인간의 의식 구조의 형성과 변화에 언어-문학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새삼스레 환기시킨다.
둘째,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을 <1984> 빅 브라더의 등장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알고 싶었다.
세째, 이정서씨가 <1984>을 새로 번역했다고 하여 읽고 싶었다. (하지만 사 놓고 안 읽은 1984가 있어 일단 이것 부터 읽기로 했다)
빠져 들어서 읽은 책이다.
문장이 힘이 있다면 이 책의 문장의 힘으로 가득하다.
때로는 '당'이라는 주어를 '기업'으로 바꿔서 이해 하면서 조직이 가지는 (의도적/비의도적) 전제주의적 행위와 유사하게 겹쳐 보일 때 소름이 돋았다.
이정서씨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고 이후의 세계에 대한 힌트는 마지막 부분 <신어의 원리>에 있다고 했다.
제대로 번역을 하려면 책을 몇 번은 읽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번역자의 말을 일단 들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읽은 번역에는 <신어의 원리>가 없다. 이 부분만 따로 찾아 봐야 겠다.
꼭 찾아서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이정서 번역자가 주었다.
이정서씨는 페이스북에서 (원래 역자의 말에 있다 한다) "작가는 본문을 빅 브라더의 전제정치, 혹은 독재정치가 성공한 것처럼 끝내지만 (주인공이 패배한 것으로), 실상 마지막 <보유>를 통해 빅 브라더 정치는 실패했으며, 세상은 주인공의 예견대로 본래의 사회와 도덕적 질서를 회복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보유(補遺) 빠진 것을 보태어 채움. 또는 그런 것.)
이 부분은 매우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이정서씨의 말씀이 맞다면 <1984>는 디스토피아적인 소설이 아니라 <빅 브라더>가 지배한 사회 이후, 더 중요하게 윈스턴이 극복하고자 했던 그 사회가 극복된 사회가 있고, 이 소설은 극복되기 전에 시대를 서술한 책이라는 힌트를 주는 것이다. 완전한 반전인 것이다.
내 기억으로 이런 말과 글을 을 해주는 서평 (책이든, 인터넷이든, 그 잘난 유투버 든)은 없었던 듯 하다...
사실이라면 충격이고, 하나의 관점이라면 그 것 또한 신선하다.......
이것 저것 궁금하여 조지 오웰과 <1094>에 대한 검색을 해 보았다.
인터넷은 참 좋다. 재미있다.
이 책의 내용을 짧고 간략하게 정리해 주고, 해설도 아주 잘 해주는 내용이 많다.
마치 이 책을 꿰뚫고 있다는 듯, 청산유수라 해설한 분들도 많다.
윈스턴이 당한 고문을 그냥 읽는 것과 고문을 당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읽는 것과 고문과 같은 육체적 고통을 겪어 본 사람이 읽는 것과 고문을 개념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읽는 것과 고문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읽는 것과 읽는 것 자체가 고문인 사람이 억지로 읽는 것과 이런 요약본을 고문처럼 읽은 사람들과......이런 저런 고문 고문 고문....
어떠한 고문을 겪었던지 이 모든 느낌의 무게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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