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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 ]

 

"'모르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은 오늘날 훌륭한 리더십을 요하는 모든 일의 핵심이다. 리더십의 본질은 새로운 미래 가능성을 감지하고 수용하며 실현하는 것이다.  - 오토 샤머(Auto Schamer), U이론의 창시자
"미래는 아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의 것이다." - Richard Leider, (목적의 힘) 저자
"하이젠베르크는 '물릭학이 자연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현재의 지식을 설명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지식과 세상 자체가 똑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 마틴 가르지울로(Martin Gargiulo), ISEAD 교수 

어떤 사람이나 어떤 동물도 긍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가 뒤따르는 행동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더 많은 성공을 거둘수록 더 많은 긍정적 강화를 얻게 되며, 성공에 대한 환상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나는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 나는 성공한다. 고로 나는 이런 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그리고 자식을 기르는 내내 '알아야 한다'는 중압감이 항상 나를 따라 다녔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불확실하고 복잡하며 변덕스러운 곳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복잡한 도전과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규정할 수조차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지식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기존의 지식에 매달리거나 임시방편의 해결책을 시도하거나, 혹은 그 상황을 완전히 외면해버리는 식으로 반응한다.

 

삶이란 '모르는 것'과의 끊임없는 투쟁이다.

 

기존 지식에 의존하려는 욕심을 줄이고, 확실하다고 단언하는 사람들에 대해 보다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며, '모르는 것'이란 상태에 좀 더 편안해졌다. 

 

"여행자여, 길이란 없다. 걷다 보면 길이 되는 것이다. " -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

---> 신기하다. 이 문장은 루쉰의 말과도 비슷한다. 안토니오 마차도(1875년~1939년), 루쉰(1881~1936년)으로  두 분이 탄생과 죽음의 시기도 비슷하다. 정확히 출처가 출간된 시와 산문의 시기를 따질 이유는 없으니, 두 분의 통찰력이 비슷한 시기에 발휘되었거나, 한 분의 말을 한 분의 전하여 듣거나 건너서 읽거나 한 것이 아닐까? 우연이라고 치기에는 너무나 문장이 표절처럼 비슷하다. 

 

(1장. 똑똑하고 유능한 전문가가 빠지는 함정): 뭐든 알고 있다는, 뭐든 알고 있어야 한다는 환상에 대하여

 

마이클 가자니가....'해석 기관'...좌반구의 지속적인 해석 능력은 그것이 '항상 질서와 이유를 찾고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질서나 이유가 존재하지 않을 때조차 말이다."

--> 이에 대한 완벽한 보충서...

---> 이 책의 핵심 주장을 나타낸 그림이다. 내가 늘 평소에 견지하려고 하는 지식에 대한 태도이다. '겸손'. 회사에서 여러 명이 회의나 한담을 하다보면 많이 느끼는 바이다. '잔이 이미 너무 차있는 사람들이 많다.' 혹시 내가 그런가? 반성하게 되는.....

--> 폴 렙스 (Paul Reps)의 '101가지 선의 이야기' 1번 첫번째 이야기, '스님, 잔이 넘칩니다'

--> 비슷한 장면.... (인터넷에 떠도는 글인데, 출처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이라 함)

맹사성의 자만(自慢)
조선시대 세종 때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까지 지낸
맹사성(1360~1438)의 일화이다
천하제일의 수재였던 그는 19세에 장원급제하여
자만한 마음을 한껏 품고 고승을 찾았는데…

고승이 맹사성과 대화를 하면서
찻잔에 차를 붓고 있었다
맹사성이 고승에게 질문을 한다
“군수로서 지표를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 있습니까?”
“나쁜 일하지 말고 착한 일하면 됩니다”
“그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그때 고승이 부은 찻잔에 차가 넘치고 있었다
“찻잔에 차가 넘치지 않습니까?
지금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찻잔이 넘쳐 바닥을 적시는 것은 아시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당황한 맹사성을 부끄러움에
황급히 일어나 자리를 뜨려다
방문 상단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고개를 숙이면 매사에 부딪히는 법이 없지요”

“겸손을 배우려 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 영남일보-

 

지나친 자신감이란 자신의 판단력과 능력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성향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거의 모든 면에서 '평균 이상'으로 평가하는 강력한 경향이 있음이 밝혀졌다.

 

유능해질수록 우리는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 지식의 저주란 아는 것이 많을수록 자기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간단한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타인에게 전달하기가 어려워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문제를 정의할 때 이미 그 속에 자신의 관점이 내재되기 때문이다. 학식과 전문 지식이 다양한 관점과 가능한 해법의 탐색을 제한하기 때문에 우리는 수평적 사고(를 하기 어렵고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진다. 행동 경제학자들은 이를 기준점 편향(anchoring bias, 닻을 내린 배가 크게 움직이지 않듯이 처음 제시된 정보가 기준점이 돼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라고 부른다. 기준점 편향에서는 기존 지식에 의해 문제의 특성이 이미 규정돼 있거나 고정돼 있다.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Archilochus)는....사람들을 두 가지 범주로 구분해 '여우'와 '고슴도치'에 비유하고 있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전문가인 고슴도치는 중요한 것 한가지만 안다..... 테들록 교수는....여유의 예측이 전문가인 고슴도치보다 더 정확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전문가의 편협한 초점이 자신의 전문분야 이외의 다른 요소들로 구성된 더 큰 그림을 보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 이 책에 나오는 얘기...

 

지식이 전문 지식이 되면 우리의 관점을 제한하고 편협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스스로 안다고 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본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자신의 배운 것을 평가할 수 없다." 
-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넥타이를 매고 있는 사람의 예측을 받아들이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 특히 나는 금융권에 대한 신뢰나 낮은 것 같다. 

주어진 역할을 맡은 개개인은 흠잡을 데 없는 지성을 갖추고 있었지만 이는 전문가들의 자만심과 집단 심리, 맹목적인 믿음이 주요 원인인 집단적 실패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 개별적으로 보면 다들 똑똑하고 합리적인 개인들이 모인 집단이 어떻게 바보가 되는가....

--> 똑똑이가 모여서 창발적인 조직의 힘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바보같은 광풍이 나오는 이유는? 

타인들에게 이의를 제기받은 전문가들이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경우를 보기는 좀처럼 어렵다. 대신 그들은 변화하는 환경을 탓한다.

---> 전문가거나 임원들이거나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내 생각에는 치열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다 보면 반추(反芻,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거나 생각함. 또는 그런 일)세포 (또는 거울뉴런, 공감뉴런 등)를 하지 못하거나 '자기 반성'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이'알아서 오히려 진보를 방해하는 상황들을 분명이 있다. 

 

회사에서 주는 압박감과 부담감은 '지식의 환상(illusion of knowledge)'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점점 의문에 대한 면역성이 생기조, 비록 아는 게 없지만 아는 것처럼 말하는 '아는 척 하기' 기술의 달인이 된다....... 우리는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안다는 환상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어떤 믿음에 얽매여 있을수록 그 믿음에서 벗어나거나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기가 더 어렵다..

 

인간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의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책임자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커지며, 책임자가 명확성을 제공하고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켜주실 바란다.....

압박감이 적을 때 협동하기는 쉽지만, 압박을 받기 시작하면 그 팀은 책임자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그 책임자에게 해결해 주길 바라게 돼죠...

이러한 기대의 중압감 아래서, 관리자/리더들은 단기적인 임시방편이라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이런 방편은 일시적으로 긴장감과 불확실성을 완화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도전 과제에 대한 실질적인 진보를 이루는 데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 매우 중요한 현상......기업에서도 리더/리더십에 (광적으로/과도하게) 신뢰하고 집착하고 기대는 조직적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 에릭 호포는 "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모두 벗어던지고, 국가ㆍ교회ㆍ정당 따위의 집단에 광적으로 매달리는가?"를 고민하여 '맹신자들'을 썼다. 기억 나는 문장은..."좋은 지도자는 좌절한 영혼을 대중운동의 재료로 삼지 않는다. 좋은 지도자의 자신감은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며, 자신이 인류를 명예롭게 대하지 않는 한, 아무도 명예로울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Etienne de La Boetie)는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 민족들, 국가들이 독재자의 전제 정치를 참고 견디는 일이 일어나고 있느가? 왜 복종하는가?"라는 의문을 시작으로 '자발적 복종'을 썼다. 그는 인민이 권력을 부여한 권력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함으로써 모든 해악을 불러일으키는 매커니즘을 설명하고자 했다. 

---> 집착에 빠진 리더가 얼마나 비쳐서 조직을 망칠 수 있는가?라는 측면으로도 읽을 수 있는 책...'모비딕'

---> 기가 막힌 통찰이다. 압축하여 문장은 만든 파스칼도, 그걸 이런 그림으로 표현한 저자도 참으로 놀랍다.

 

우리 시대의 가장 훌륭한 경제학자들이 국제적인 경제 위기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전망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 좋은 이론은 (과거/현재의) 현상을 설명해 주고, 미래를 예측하게 해 준다.

--> 이런 측면에서 과학(천문학, 물리학 등)은 2014년 발사하여 32억㎞를 날아가 2018년에 소행성에 10kg 정도의 탐사선을 착륙시킬 정도로 예측력이 있다. 경제학은 이런 측면에서 '꽝'이다. 학문이라고 보기에는 좀 창피한 수준이다. 경영학은 더욱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데이비드 스노든(David snowden)과 메리 분(Mary Boone)은 논문에서 난해한 상황과 복잡한 상황의 차이를 '페라리'와 '브라질 열대 우림'에 각각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페라리 그 자체는 고정된 채 움직이는 수많은 가동 부품으로 구성된 난해한 기계다.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전문 정비공은 시간만 충분히 주면 그것을 분해했다고 다시 조립할 수 있다...... 열대 우림은 고정된 부품으로 구성돼 있지 않으며 울창한 나무와 기후, 동물, 곤충 등 다양한 요소들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져 있고, 보다 광범위한 생태계와 인간의 사회적 체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 전체는 부분을 단지 합해놓은 것보다 휠씬 더 큰 의미를 갖는다. 페라리는 난해하지만 (질서가 있고, 예측할 수 있지만), 열대 우림은 복잡하다(예측할 수 없고, 불시에 나타난다)는 얘기다. 

"모든 복잡한 문제에는 명료하고 간단하지만 잘못된 해답이 있다." - H. L. 멘켄(Mencken), 미국 언론인

마티 린스키(Matty Linsky)와 로널드 하이페츠(Ronald Heifetz)는 도전 과제의 복잡한 요소를 난해한 요소로 잘 못 진단하는 것이 리더십의 주요한 실패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단번에 문제를 해결해줄 쉬운 해답, 즉 묘책을 찾고 싶어 한다. 

--> 적응적 리더십(어댑티브 리더십) 시리즈를 쓴 그 분들...

(2장. 앎과 무지의 경계에서): 모르는 것과 맞닥드릴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세상의 끝'이라는 의미의 '피니스테레(finis terrae)'라는 라틴어....

피니스테레곶은 (친숙하고) 알려진 것의 경계이며, 신비로운 곳이다.

 

지배력, 영향력, 자율성,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태도는 중요하며 우리의 행복감과 직결된다.

 

통제력은 방어 수단이자 '모르는 것'에 대한 해독제로 등장하고, 우리는 이를 통해 확실성을 붙잡으려 한다. 자신의 능력을 쥐어짜거나 자신을 폐쇄해버릴 수 있고, 보다 많은 권력을 사용하며, 보다 지시적이며 독재적이 될 수도 있다. '나사를 조인다.' 또는 '상황을 엄격히 통제한다' 등은 이런 상황에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압박을 받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기본적인 태도는 일상적인 절차와 익숙한 체계 및 규칙을 통해 통제하는 것이다. 조직들은 통제의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인위적인 체계를 만든다.

 

분석 마비(Analysis Pralysis), 일반적인 반응

-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해야 해."

- "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

- "내 결재를 받고 싶으면 더 많은 정보를 가져오라고."

---> WoW. 이것은 웬만한 기업에서는 매일 매일 듣는 말일 것이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지식의 부족 때문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탓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읽고 연구하면 일을 더 잘하고 해답도 찾으낼 수 있을 거라고 여긴다. 이러한 생각의 맹점은 우리가 복잡한 문제를 다룰 때 해결은 고사하고 문제를 정의하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있으므로 결코 그 진상을 밝히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그 문제를 충분히 알거나 충분히 해결할 만큼 유능해질 수 없다.

 

"과거의 기억을 버리세요. 미래의 바람을 버리세요. 둘 다 잊어버리세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바리는 것을 모두 버려야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 월프레드 비온(Wilfred Bion), 정신분석가

기업은 '계획'에 중점을 둔 리더십 관점에서 '문제'에 중점을 둔 리더십 관점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계획에 소비하는 에너지를 줄이는 대신 문제를 이해하는 데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거죠.

 

(3장.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즐거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 방법, '부정적' 수용 능력 기르기

 

더 큰 성공을 거둘수록 우리는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안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든 프로젝트와 모든 문제는 각각 다르다. 

 

변혁의 중심에는, 신뢰라는 기반위에서는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이 일을 더 잘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아무런 지시를 받지 않은 아이들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찾아낼 가능성이 휠씬 더 높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무지에 의해 형성된 공간을 아는 것으로 채우고 싶은 유혹을 뿌리질 수 있다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생각,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즉흥성 발휘의 시발점은 그 구조를 아는 것이다. 훌륭한 재즈 음악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먼저 그 과정의 패턴과 의식적인 절차를 알아야 그것에서 벗어나 즉흥성을 발휘할 수 있다.

--> 일어 나려면 먼저 넘어져서 한다. 보조국사의 말로 알고 있는데 원래는 임제선사 --> 대혜종고선사의 말일 것이다.

 

나는 어둠 속으로 창을 던져본다. 이것이 직관이다. 그러고 나서 그 창을 찾기 위해 어둠 속으로 군대를 파견한다. 이것이 지성이다. 

 

[ 자평 ] 좋은 책이다. '알았다', '배우면 알게 된다' 등에 대한 다른 눈을 뜨게 해 준다. 

 

좋은 책이다. 지식은 물론 유용한 경우가 많다.

대체로 우리 사회는 지식은 유용하다, 많이 알수 있다는 측면에서 설계되어 있다. 

 

다만 '무엇을 안다, 알고 있다'란 것이 무엇인가 궁금한 내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지식의 한계와 그런 한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좀 더 나은 방향을 나아 갈 수 있는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과 같이 무지에 대한 관심, 지식의 한계에 동일한 컨셉의 책은 몇 권 있다. 책장을 훑어 보니...

다만 번역자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 책 전체는 문제 없이 수월하게 읽힌다. 번역상의 문제는 별로 없어 보였다. 

다만 제목이다. . 

원서의 제목은 'Not Knowing: The Art of Turning Uncertainty into Opportunity'이다.

내가 번역자가 아니라 멋진 표현을 잡아낼 수 없지만 것이 '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으로 번역을 했으니

(내 생각에) 대참사다. 원제목을 전혀 살리지 못한, 연결성도 없고 힘도 없는 완전히 이상한 졸작이 나왔다.

누구 보면 이렇게 잘 쓴 원서를, 허접한 팀장 역량 강화 책으로 알고 찾지도 않게 만들었다. 번역서 제목이 오히려 원작을 죽어버린 꼴이라고 100% 말하고 싶다.

영화 '애수(哀愁: 마음을 서글프게 하는 슬픈 시름)'의 원래 영화 제목은 'Waterloo Bridge'다. 원제목보다 번역제목을 잘 붙인 전설적인 사례다....반성할 일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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