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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내용 ]

 

ㅇ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왜 우리 사회는 이래야만 하는가?" 이런 질문이 거듭될수록 그리고 대답을 얻기는커녕 단순한 메아리로 증폭될수록 사회에 대한 분노는 냉소적 절망으로 변질되고 맙니다.....현재의 삶과 사회 현실에 대한 분노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결합할 때 비로소 기존의 정치 제도와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다.

 

우리를 바람직한 사회로 인도할 정치적 이념에 관한 진지한 성찰과 논의가 없다면, 정치는 우리를 순간적으로 자극하고 선동하는 사건으로 '심미화' 됩니다.......정치적 이념이 실종된 정치의 패션화는 결국 정치를 몰락시키고 맙니다. 지금 20~30대 젊은인들에게서 거세계 불고 있는 정치 열풍과 몰입이 우려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ㅇ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듣고 싶은 말만 하는 곳에선 결코 담론이 자라날 수 없습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감성적/정치적 '취향'이 바람직한 미래 사회의 이성적/정치적 '방향'으로 전환되려면 정치적 이념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이념은 우리를 바람직한 미래 사회로 안내하는 이정표입니다.

 

ㅇ 자유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건강한 정치문화가 자리 잡은 서구에도 여전히 좌파와 우파가 존재합니다. 나는 한국 정치문화의 토양이 척박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좌/우 구별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좌파가 진보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우파가 무엇을 보수하겠다는 것인지 도대체 불분명하기 짝이 없습니다.

 

ㅇ 한국 정치에서는 사회문제를 뿌리부터 인식하려는 정신이 없고,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념의 치열한 경쟁도 없기 때문입니다.

 

ㅇ 이념 없이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눈먼 장님이 길을 안내한다는 것과 같기 때문에 맹목적이라면, 정의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이념은 내용이 없는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ㅇ 우리의 이익과 이념을 대변하는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는 행위만큼 중요한 정치적 참여 행위도 없다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정치적 판단'일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정치적 판단의 지형도가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ㅇ 지난 2세기 동안 정치사상과 정치활동을 규정하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표현하기 위해 관습적으로 사용된 '좌파'와 '우파'는 동시에 정치적 지각과 판단의 규범적 척도입니다.

 

ㅇ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올바로 내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극단화되지 않은 좌/우의 구별입니다.

 

이데올로기의 극단화를 피하려면, 우리는 고정되고 경직된 진영적 사고로부터 탈피하여 현실의 문제와 대결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끊임없이 재점검하고 재평가해야 합니다.

 

ㅇ 극단적 이념은 결국 현실을 왜곡하고 부정....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을 보면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극단으로 보이지만 중간에서는 상대를 경쟁적 대안으로 관용하고 표용할 수 있다. 중간에 서야 비로서 좌-우가 보이고 비로소 올바른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좌-우의 구별이 늘 확고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먼저 정치적 취향과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좌-우가 있어야 우리가 판단의 척도로 삼을 중간을 알 수 있기 때문...

 

ㅇ 역사는 항상 위험한 것에 도전하여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아방가르드에 의해 발전해왔다.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꿈, 우리의 사회가 보다 인간다운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이제까지와 똑같은 방식으로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

 

보수 우파는 '무엇을 보수할 것인가?'를 철저히 물어야 하고, 진보 좌파는 '어떤 방향으로 개혁할 것인가?'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기존 사회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좌-우의 정치적 입장을 더욱더 선명하게 밝혀야 한다.

 

ㅇ 다양한 갈등과 이익을 정치적으로 표출하고 정치적 이념 경쟁을 통해 바람직한 사회적 대안을 만들어내야 할 정치가 자본주의적 현실의 압박과 관료주의의 제도적 압박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위기 현상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정치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정치를 바꿔도 소용이 없다는 의식이 팽배해 질 때 정치는 몰락할 수 밖에 없다.

 

ㅇ 정치에 대한 권태와 염증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치'임에 틀림없다.

 

정치는 좌파와 우파의 정치적 이념 경쟁을 통해 바람직한 사회의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정치는 근본적으로 좌/우의 구별과 대결을 전제한다.

 

ㅇ 이성이 결여된 감성, 즉 어떻게 국민을 책임질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감정에만 호소하는 정치 역시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박성민이 말하는 것처럼 것처럼 김어준은 "정치가 재미있을 수도있고, 좀 더 속물적으로 말해서 잘만 포장하면 장사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ㅇ 정치의 패션화가 정치의 진정한 부활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정치의 열기가 끓어오르면 종종 정치의 본질마저 증발되어버리니까..

 

정치는 근본적으로 책임을 위한 이념투쟁이라는 것...

 

ㅇ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배타적인 진리 체계로서의 이데올로기, 즉 다른 가치, 이념 그리고 이를 주장하는 어떤 정치적 집단도 인정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이다.....이데올로기는 시대 상황과 사회 현실에 따라 변화한다...

 

이데올로기의 생산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좌파와 우파의 이념 대결과 이념 경쟁이다.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인가에 관한 좌/우의 경쟁이 없다면 결코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할 수 없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우리를 이끌고 갈 정치적 지도자를 선택하려면, 우리는 우선 정치적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자신의 위치를 결정해야 한다. 좌파와 우파가 이데올로기가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좌파와 우파는 서로 연결된 연속적인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정치적 이념의 방향을 결정하는 좌표이다.

 

ㅇ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사회가 중심을 잡고 건강한 중도 문화를 실현하려면 끊임없이 건강한 좌우의 극단을 만들어내야 한다. 기존 질서를 바꿔 바람직한 새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좌-우의 이념적 대결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한국정치가 방향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치에는 사회문제를 뿌리부터 인식하고자 하는 철저한 현실 인식의 자세도 없고,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치열한 이념 경쟁도 없다.

 

ㅇ 사회주의적 가치에 바탕을 둔 복지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현실 자유주의자가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무조건 눈을 감는 것도 아니다..

 

ㅇ 우리 사회에서는 이 두가지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자유주의가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실현해야 하는 해방의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데, 다른 한편으로 해방된 개인들이 - 개인주의적 삶에 빠지지 않고 -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바람직한 연대를 실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우파가 해방된 개인들의 자유 욕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좌파 역시 자유 실현의 물질적 조건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보수 우파도 개인의 권리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진보 좌파도 역시 경제성장 문제를 도이외시 할 수 없는 이념적 교착 상황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는 더 이상 좌/우 구별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문화는 이념, 사상, 정책의 '대결'을 통해서만 건강하게 발전한다.

 

'자유'와 '평등'이 좌/우 구별의 핵심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ㅇ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기준은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실제의 사람들이 평등이라는 이상에 대해 갖는 태도이다. 좌파는 '비교적' 평등주의이고, 우파는 불평등주의적이라는 것이다.....평등 개념 자체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좌파가 우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등주의적이라는 뜻이다.

 

좌파는 '평등을 중심으로 자유와 평등을 결합하려는 정치적 운동'이고, 우파는 '자유를 중심으로 자유와 평등을 결합하려는 정치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ㅇ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사회적 불평등도 해소되었다고 생각하면 우파임이 틀림없다. 반면, 산업화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가 양극화를 초래하여 자신의 자유를 제대로 실현할 수 없는 계층을 만들어냈다고 답변하면 분명히 좌파이다.

 

ㅇ 부패하고 무능한 보수 여당도 싫지만, 말만 많은 진보 야당도 믿을 수 없다는 것....보수 독점의 정치 구조는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시민들을 양산한다.

 

ㅇ 보수적 중산층은 보수적 정치문화를 낳기 마련이다. 최장집 교수는 "권위주의 산업화의 최대 수혜자인 중산층은 한편으로 권위주의적 강권통치에 반대하여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지했지만, 동시에 급진적 사회변화에 저항하는 사회집단이었다.'

 

ㅇ 자유와 평등과 관련하여 좌파와 우파는 분명한 이념 대결을 벌여야 한다. 좌파는 국민의 평등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기획할 수 있는 이념과 정책을 개발해야 하고, 우파는 개인의 자율과 경쟁을 권장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이념과 정책을 발전시켜야 한다.

 

ㅇ 좌파....성장지상주의를 배격하고 분배를 통해 성장을 추진해야 한다. 우파...성장하지 않고 잘사는 나라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

 

ㅇ 사회는 허리가 굵어야 건강하다.

 

ㅇ 나는 중산층을 이렇게 규정한다. 미래를 꿈꿀 수 있다면 중산층이다.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면 중산층이다. 현재의 경제적 여건이 중산층 기준에 맞지 않을지라도 꿈꾸고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ㅇ 중산층이 몰락한다는 것은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함. 풍요의 사회에서 빈곤층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휠씬 더 비참하다.

 

ㅇ 중산층이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가진 '예비 부유층'이기보다 언제든지 빈곤층으로 추락할 수 있는 두려움을 가진 '생계형 중산층'이라면, 우리 사회는 분명 양극화 사회다.

 

ㅇ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은 자본주의의 지나친 성공에 기인한다. 과도한 시장, 과도한 경쟁, 과도한 이익이 양극화를 불러온 것...

 

ㅇ 사회의 실질적 변화를 모색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따른다면 좌파는 시장 경쟁을 무시할 수 없고, 우파는 사회적 불평등에 눈감을 수 없다. 시장 체계는 좌파를 중간으로 압박하고,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는 우파를 중간으로 밀어붙인다.

 

ㅇ 경제위기와 사회문제의 근저에는 '신자유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가난해져서는 안된다.'라는 자본주의 윤리가 청년 실업, 비정규직 문제, 사회 양극화로 인해 깨지고 있다.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사회를 끊임없이 자극해야 한다. 기회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선 더욱 그래야 한다. 물론, 사회를 자극하여 문제를 폭로하는 '도발적 의제'는 동시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적 의제'여야 한다.

 

진보 좌파는 분배를 통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이제까지 이론적/정채적 차원에서 주장했던 복지국가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양극화를 해소하면서 어떻게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ㅇ 이제 우리는 경제우선주의를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 경제적 부와 성장 외에도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다른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유와 평등, 타인에 대한 배려와 연대, 환경과 복지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들이다. 이러한 가치들을 균형 있게 실천할 수 있는 경제 환경을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결국 문제는 '국가와 시장의 관계', 즉 '정치와 경제의 관계'이다.

 

ㅇ 국가가 시장에 합리적으로 개입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모델, 즉 새로운 자본주의를 고안해야 한다...좌파가 성공하려면 분배를 통해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 민주화를 넘어선 경제 민주화의 길입니다.

 

ㅇ 좌파는 한국 사회에서 재벌로 표현되는 부와 자본의 집중이 경제발전에 미친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측면을 인정하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양극화는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부정적인 파괴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종소기업들의 생산력과 경쟁력을 향상시키지 않고서는 사회 양극화 현상을 타개할 수 없다.

 

ㅇ 우파는 자본이 축적된 사회에서만 경제발전이 이루어졌고, 경제성장이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에만 비로서 정치적/사회적 민주화가 실현된다고 생각.....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대기업의 규모와 생산력을 키워야 한다고..

 

ㅇ 소수의 성공을 위해 다수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면 소수가 성공한 후에 다수를 도와줘야 한다는 '동시적 연대'가 추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는 제도화되어야 한다. 가난한 집 맏아들은 성공한 후 반드시 가난한 가족을 보살피도록 사회적 제도를 구축해야 하는 것...

 

ㅇ 우리 국민들은 경제적 선택과 집중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경유착, 관치금융, 부정부패 같은 부작용을 수용하고 감내했습니다. 일단은 잘살고 봐야 한다는 반민주적 빈곤 문화가 만연했던 것....

 

ㅇ 어떤 사람들은 탈산업화 사회에서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경제성장의 동력이 바뀌기 때문에 대기업이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장하준 교수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ㅇ 간단히 말해서 일감 몰아주기는 대주주 일가 사이에서 이뤄지는 과세 없는 부의 이전인 셈...

 

ㅇ 취약한 중소기업은 재벌 위주의 성장정책이 빚은 '구조적' 문제입니다. 문제가 구조적인 성격을 띨 때에는 문제를 만든 주체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ㅇ 대기업을 때린다고 중소기업이 저절로 크는 것은 아니기에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중소기업들이 기업가 정신을 갖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경제 민주화이다.

 

ㅇ 대기업을 때리는 좌파는 어떻게 재벌개혁이 대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실행될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반면, 글로벌 대기업의 성장을 국가경쟁력의 토대로 생각하는 보수 와파는 어떻게 중소기업을 활성화해 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ㅇ 좌파는 복지는 국가의 책무라 한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근본적으로 주거, 노후, 교육, 일자리, 평화의 '5대 불안'이 짙게 드리워진 '불안 사회'다.

 

ㅇ 우파는 복지 포퓰리즘은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고....국가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조차 지원함으로써 개인의 자생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

 

ㅇ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위험과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발전할 수 있다.'. 이런 과신이 신자유주의로 인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신빈곤층의 문제에서도 발견된다.

 

ㅇ 한국 사회의 밑바닥에는 현재 '박탈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늪'이 있다고 한다.

1) 실직자의 늪

2) 저임금 비정규직의 늪

3) 저소득 자영업자의 늪..

나는 실직-자영업-비정규직으로 이루어진 트라이앵글을 위킹 푸어의 구조적 악순환이라고 생각한다.

 

ㅇ 자율적 복지- 스스로 도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빈곤의 원인이 대체로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우파이고, 사회구조에 있다고 생각하면 좌파이다.

 

ㅇ 보수적 관점에서 보면 가난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고 올바른 결정도 내리지 못한 부도덕한 사람들이 된다.

 

ㅇ 빈곤을 결정하는 것은 절망과 좌절이다. 국가가 이렇게 절망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기본 조건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좌파....

 

ㅇ 나는 빈곤의 원인과 문제를 '개인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이들을 보수 우파, 그리고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이들을 진보 좌파라고 생각한다.

 

 

ㅇ 좌파는 민족적 모순을 극복하려면 국가 대 국가의 적대 관계보다는 같은 민족이 가지는 특수 관계에 입각하여 대북 포용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ㅇ 우파는 '우리는 하나'라는 민족주의적 통일지상주의에 빠져 북한 인권, 3대 세급, 수령 숭배 문제, 천안함 사건에 침묵하는 좌파는 설령 종복은 아닐지라도 남북 화해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ㅇ 개인 위헤 세워진 집단은 결국 자신이 설정한 숭고한 목표를 집단의 구성원에게 강요합니다. 집단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세뇌가 시작되는 것...

 

한나 아렌트는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자유가 정치의 의미라고 말한다.....우리가 그것을 스스로 인식하건 못하건 간에 행위할 수 있는 한 우리는 불가능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치적 능력이다.

 

ㅇ 정치는 공동체의 비전을 실현해야 하는 책임을 둘러싼 권력투쟁...

 

ㅇ 정치와 정치적 인정투쟁은 '권력투쟁','책임 경쟁','공동체의 비전'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갖고 있다. 공동체의 비전은 국민의 삶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것인가 하는 '정치적 이념'과 연관이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미래에 실현될 올바른 정의사회의 모습이다. 책임 경쟁은 국민을 이끌고 나아가야 하는 정치가의 도덕적 능력을 의미한다.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는 판단력,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정직함, 합리적 설득을 통해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추진력이 어쩌면 부정부패로 얼룩진 한국 정치문화에 가장 필요한 정치적 덕목일지도 모른다....

 

ㅇ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정치는 좌우의 생산적 대결을 통해 바람직한 비전과 정책이 결정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정치인을 발굴하는 인정투쟁이다.

 

 

[ 배운 점/느낀 점 ]

 

부제는 '대한민국 정치이념 지형도'

이 책을 읽은 시점은 2012년 7월 이다.

저자의 말처럼 '나꼼수' 처럼 웃고 즐길 수 있는 편한 정치를 넘어서

뭔가 묵직한 생각을 던질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읽게 되었다.

 

특히 386이 아닌 나는 좌파, 우파, 보수, 진보라는 어렴풋이 알고 있는 개념들이 어떻게 정리가 되는지 궁금했다.

 

좌/우가 들어간 책 중 내가 읽어 본 책은 다음과 같다.

특히 리영희선생님의 책은 그 제목이 너무 멋져서 좋아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나랑은 차이가 있어 읽다가 포기를 했다.

 

박노자의 책은 외국인의 시각이라는 신선함이 있고, 콘텐츠가 나와 동시대이며, 글 자체가 명쾌하여 좋아 하고 대부분의 책은 읽은 듯 하다.

 

좌우가 어떻게 같은 사안에 대하여 다르게 주장하는 가를 정리한 책의 갑은 10여명 공동저자들인 쓴 '좌우파 사전'일 것 같다. 사전 형태이고 책 두께(620쪽)와 책 값(35,000원)이 만만치 않으며 개인적으로 소장에 필요성이 없어서 도서관에서 읽고 반납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좌우파 사전

 

책장을 훑어 보니

정치 관련 도서는 아니지만 이후 강수돌교수님이나 윤구병교수같은 분의 생각과 글, 특히 그 분들의 행동이 좋아서 이 분의 책을 몇 권 연타로 읽은 것 같다.

 

강수돌 : '팔꿈치 사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노동을 보는 눈', '내가 만일 대통이라면', '한국 경제의 배신', '더 나은 세상을 여는 대안 경영(번역서)',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노동을 보는 눈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한국경제의 배신더 나은 세상을 여는 대안 경영

 

윤구병 : '철학을 다시 쓴다-있음과 없음에서 함과 됨까지', '잡초는 없다. '

철학을 다시 쓴다잡초는 없다

 

기타 정치분야로 분류되는 책장의 책 중에 마음에 드는 책들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진보와 보수, 문제는 프레임이다.', '가장 왼쪽에서 가장 오른쪽 까지 : B급 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와 영성", '나는 왜 불온한가',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나는 왜 불온한가

 

경제 민주화가 희망이다. (손석춘)

 

경제민주화가 희망이다

 

곁길이지만 당시

김규항와 이아무개 목사님의  글 쓰는 스타일이 좋아. 당시 그 분의 책은 전부 뒤적거린 듯 하다. 두 분 모두 근래에는 책을 내시지 않는 것 같아....아쉽다..... 

 

B급 좌파, 예수전, 길에서 주운 생각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B급 좌파예수전길에서 주운 생각들노자 이야기

 

본론으로 와서 이진우 교수의

이 책을 다시 정리하는 시간은 책을 일은 이후 5년이 지난 2017년 3월이다.

 

책의 지적은 살아 있다. 아니 탄핵 이후 탄핵 대통령의 검찰 출두, 5월 9일 대선이 예정된 이 시점에 더욱 더 살아 있다.  

 

이 책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그 동안 치열한 고민과 해법을 제시한 것이 없다.

당시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한 많은 문제들은 그대로 이거나 악화되었다.

 

저자가 좌/우의 관점으로 치열하고 논의해 보자던 이야기는 이루어 지지 않았다.

 

특히 상대 진영이 던지는 질문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하는가?를 깊이 해결책은 볼 수 가 없다.

 

저자는 정치의 패션화를 경계한다.

당시 그 시류의 선도에는 '나꼼수'가 있었다.

이제는 다만 '썰전'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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