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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은 이유 ]

 

진짜 궁금해서...

 

[ 배운 점 ]

 

비슷한 주제로 내가 읽은 책은  다케우치 가오루, 미루야마 야쓰시가 쓴 '과학의 미해결 문제들'이 있다.

 

과학의 미해결 문제들이 블랙홀, 진화론, 리만 가설, 푸앵카레 추측 등 좀 더 과학적인 이론에 관한 주제라면.....

 

이 책은 약간 더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미해결 주제를 찾는 듯 하다.

 

가장 눈길을 끌고 마음을 울린 주제는

1번 우리 집 멍멍이는 좀비일까?

10번 리얼리티가 무엇일까?

 

종합적으로 나를 포함한 우리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를 알게 된 좋은 독서였다.

 

[ 주요 내용 ]

 

ㅇ 우주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를 아직 모르는 것은 빅토리아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다......커다란 우주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라는 신비스런 두 가지 물질로 구성된 듯하지만 그것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추측만 가능할 뿐....

 

ㅇ 우주의 기원에 대한 가설, 또는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빅뱅 이론이 있다. 하지만 폭발한 것은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폭발했으며, 폭발의 도화선이 된 것은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ㅇ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실로 엄청나게 놀라운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것들과 비교하면 지금까지 우리는 깊은 지식의 바다 속을 헤쳐왔다기보다 그저 그 물에 발가락 정도만 담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ㅇ 과거에는 상단히 중요한 발견들이 대중에게 알려지기까지 몇 주, 심지어 몇 달씩 걸리고는 했었는데 (1952년 발견된 DNA 이중나선 구조에 대한 언급은 거의 반 년 동안이나 신문에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시시콜콜한 반전들이 마치 그 문제에 대한 최종 결론인 양, 그리고 마침내 어려운 수수께기가 한 가지가 해결되었다는 투로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특히 의학 관련 기사는 과다 보도의 부작용을 자주 겪는다.

 

버렸다. 팀을 구성해서 작업을 하고, 발견물과 결과물은 곧 그들의 수익 증가와 직결되며, 과학자들의 생계는 신속한 출판과 동료들의 평가에 의해 좌우된다. 이것은 바람직한 과정이고 사실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기란 어렵다....하지만 여기에는 괴짜와 기인들이 끼어들 자리가 거의 없다.

 

ㅇ 예를 들면, 시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자, 인지심리학자, 그리고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생명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지질학자, 천문학, 어쩌면 우주론과 생화학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ㅇ 1840년대에는 찰스 다윈이 지질학, 생물학, 그리고 기상학의 최첨단 실용 지식을 알고 있거나 그 잡다한 세부 분야에 통달하는 일도 어느 정도는 가능했다. 지금은 복잡하고 난해한 용어들이 너무나 난무해서 다윈 같은 인물은 좀처럼 등장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설령 그런 인물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는 결코 비글 호를 출항시키기 위한 연구 보조금을 타낼 수는 없을 것이다.

 

ㅇ 현대 물리학은 진실로 하나의 악몽이다. 아다도 현대 물리학의 가장 커다란 그리고 지금까지 풀릴 기미가 없는 미스터리는 양자물리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게 정확하게 뭘까? 라는 문제일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폴 디렉의 유명한 답변은 '입 다물고 계사하라!'이지만, 물론 이 대답도 충분하지는 않다.

 

ㅇ 기억이 어떻게, 어디에 저장되는지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자유의지라는 것이 환영에 불과한지 어떤지도 아직 모른다.

 

ㅇ 감응력을 판단하는 일곱 가지 '기준표'....이 목록의 첫 번째 항목은 마음 이론, 즉 다른 존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거나 또는 추측해낼 수 있는 능력으로 시작된다......흔히 던지는 질문은 바로 '저기 저 사람이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네 살이 넘으면 사람은 이 질문에 제대로 답변할 수 있다.

 

ㅇ '감응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은 모방 능력이다. 영장류들은 어떤 일을 할 때에 다른 이들을 모방하려고 하는데, 이때 활성화되는 것이 바로 '거울세포'라는 신경 단위다......거울 테스트, 즉 '거울에 비친 것이 바로 자기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라는, 실험에 통과하는 것이 감응력을 지닌 존재와 좀비의 중요한 차이였던, 실험에도 비둘기와 코끼리를 포함한 동물이 이미 합격한 상태이다.

 

ㅇ '감응력'을 보여주는 '난이도가 가장 높은' 자질은 메타 인식, 즉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은 자신이 자신을 의식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유명한 명제이다. 최근까지도 인간을 동물과 구분시켜 주는 것은 과거의 일을 반추하는 능력, 동물적 사고를 구성하는 '바로 지금'의 세계와는 다른 정신세계를 사는 능력이었다. 그런데 이 생각이 곧 바뀔지도 모른다.

 

ㅇ 중요한 진실을 우리가 동물에 대해 아는 것이 점점 늘어나면서 그 동물들이 다름 아닌 바로 우리를 닮았다는 것,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존재로 밝혀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ㅇ 인간은 왜 지금처럼 똑똑해졌는지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우리 두뇌가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총 소모 칼로리의 1/8 정도가 뇌 컴퓨터에 전원을 공급하는 데 사용된다), 바로 그 두뇌 크기 때문에 여타의 포유동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출산의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ㅇ 자연선택: 생물체가 자연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어떤 특정한 이유로 또는 우연히 작은 변이가 생겨 그것이 조금이라도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경우 다음 세대에도 유전된다는 이론

 

행동주의 학파인 스키너......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인간이나 동물의 행동만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파....

 

ㅇ 행동주의자들은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는 말할 것도 없고 이를 거론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의식하는' 마음이라든지 그 의미를 논의하려 드는 것은 마치 요정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들에게 생각이란 고작해야 내면화된 언어 형태에 불과한 것이다.

 

운전하는 내내 당신은 거의 좀비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훌륭한 기량을 과시하는 가장 복잡한 행동들 중에서 상당히 많은 것들이 의식의 통제를 받지 않고 수행되고 있는 듯 하다.

 

인간들이 스스로의 행동을 의식하지 않고도 테니스를 치거나 운전을 할 수 있다면, 침팬지들도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사냥을 하거나 훈련을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과 인간에게 자의식의 감정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ㅇ 지금까지 8개의 종이 거울 테스트에 합격했다. 그 가운데 6종 (인간, 침팬지, 보노보, 오랑우탄, 돌고래, 코끼리)은 확실하게, 나머지 2종 (고릴라, 비둘기)은 조금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태로 통과했다.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은 통과하지 못했고, 놀랍게도 개와 고양이 역시 불합격이었다. 흰목꼬리감기원숭이는 합격과 불합격의 경계선에 걸친 상태였다.

 

ㅇ 시기심이나 빈정거림, 유머 감각 같은 감정은 고도의 세련된 자아 인식을 요구한다. (사랑이나 미움,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은 이 정도의 인식력이 필요하지는 않다)

 

ㅇ 새들의 지능은 물리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는 누구와 협력관계에 있고 누구는 누구와 연관되어 있다는 등의 사회적인 정보를 처리하고 이용하기 위해, 그리고 이 정보를 이용해서 이익을 얻고 속임수를 쓰기 위해 진화되어 왔다고 연구자들은 생각한다.

 

ㅇ 새들이 '인지 도구상자'를 이용해서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내면화시켜 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력히 암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도 완전한 감응력과 의식이 있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럴 수 있다는 충분한 증거는 될 수 있다.

 

ㅇ 지능이 의식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포유동물, 파충류, 물과 육지 양쪽 모두에 서식하는 새, 그리고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이들 모두의 뇌는 의식이라는 것이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ㅇ 도구 사용, 언어, 정의감, 그리고 유머와 질투와 같은 감정에 이르기까지 한때는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많던 적던 간에 이제 동물들에게 속속 관찰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이 인간에게 자행한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행위들은 가해자들이 희생자들을 의식이 부재한 존재, 즉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종종 일어났다.

 

ㅇ 피텅 싱거(Peter Singer)의 주장척럼, 인간에게 횔씬 많은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논리에 어긋난다. 싱거에 따르면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챔팬지의 생명을 빼앗는 게 옳다면, 침팬지를 구하기 위해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것 역시 어떤 상황에서는 옳은 일이다.

 

앞으로 몇십 년 후, 또는 여러 세기가 지난 후에 우리는 지금 우리가 동료 피조물, 즉 동물들을 다루고 있는 방식을 250년 전 세계에서 가장 '진보했던' 사회에서 널리 자행되었던 노예제도를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볼 때와 똑같은 혐오감으로 되돌아보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채식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연민과 동정의 마음을 좀 더 지니자는 말이다.

 

ㅇ 우선 살이 쪘다는 것이 우리가 교육 받은 것처럼 건강에 그렇게 치명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확실하지가 않다. 비만의 생리도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처럼 휠씬 더 복잡하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비만은 칼로리를 섭취/소모하는 단순한 문제를 뛰어넘어 상당히 복잡한 문제로 발전한다.....

 

ㅇ 심각할 정도로 비만인 경우만 아니라면 정상 체중에 속한 사람들보다 생존율이 낮게 나오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약간 살이 찐 상태가 사실은 더 건강한 것이다."

 

'다 체질 때문이야'라는 살찐 사람들이 오래 써먹던 고전적인 변명이 사실 신빈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ㅇ 과체중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실제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ㅇ 진부하게 표현하자면 우리의 정체성은 이제 평범한 숫자의 나열로 실추된 것이다.

 

ㅇ 과학의 발전이 인간 의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솔직히 아직은 충분한 이해라고 할 수 없지만), 이제 우리는 존재의 연속성이란 한갓 허구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되었다.

 

ㅇ 우리의 삶은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일련의 경험들이지만, 그렇다고 그 중심에 그러한 경험들을 담아놓은 어떤 하나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요컨대 진정한 자아는 없다. 존재의 연속성이라는 것은 경험을 하는 의식이 착각은 아니라고 해도 환상이다.

 

ㅇ 과학은 이제 오컴의 면도날(필연성 없는 개념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경제성의 원리)에 근거해 영혼이라는 개념을 부정한다. 영혼(우리에게는 영혼에 대한 증거가 없다)이 두뇌를 사용해서 생각을 한다고 믿느니 차라리 그런 생각들의 경험을 생성해내는 것이 바로 두뇌라고 믿는 편이 휠씬 수월할 것이다.

 

ㅇ 만일 정체성에 어떤 진수가 있다면 그것과 가장 가깝게 있는 것이 아마도 진짜 기억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무심코 또는 일부러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거짓 기억을 갖게 되는 일도 능히 가능한 일이다. 거짓 기억의 경우들을 생각해 보면 정체성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 알 수 있다.

 

 

ㅇ  우리의 자아는 두뇌에서 일어나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인해 시시각각 죽고 다시 태어난다. 또한 그 자아는 주변 사람들과 우리 자신에 의해 바로 이 순간에도 증가하고, 조작되고 그리고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ㅇ 각자의 공적(지능+노력으로 정의함)으로 신분이 규정되는 사회에서 그 사회의 상류층들은 자신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특권을 가질 자격이 스스로에게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ㅇ 암흑에너지를 밝혀내기가 너무도 힘든 이유는 바로 그 에너지가 고르게 펴져 있기 때문이다. 물질과는 달리 암흑에너지는 어느 한 곳으로 응집되어 덩어리를 형성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이 에너지는 모든 곳에 부드럽게 퍼져 있다.

 

ㅇ 1세제곱미터 우주에 들어 있는 암흑에너지의 양은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E=MC2을 적용해 볼때) 약 10의 -26승 킬로그램이며 이는 한 줌 정도의 수수 원자와 동일한 양이다. 이는 우리가 사는 태양계의 암흑 에너지를 합쳐도 작은 소행성의 질량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다는 의미이다.

 

ㅇ 우주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엄청난 부피일 것이다. 이렇게 광대한 우주에 두루 퍼져 있는 암흑에너지는 그 영향력을 아무리 최소한으로 평가한다고 해도 실로 엄청난 것일 수밖에 없다. 암흑에너지는 우주를 조각하는 거인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우주 전체의 팽창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은하들이 매달려 있는 조금 작은 규모의 '무대'구조물로도 기능을 한다.

 

ㅇ 바이러스는 살아 있을까? 바이러스는 DNA나 단백질이라는 이른바 '생명 재료'로 구성되어 있지마는, 샬레에서 결정화시킬 수도 있다. 반면 비비원숭이나 뱀을 결정화시킬 수 는 없는 일이다.

 

ㅇ 끈 이론의 문제점은 근본적으로 테스트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그래서 근본적으로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입자들을 그만한 규모로 드러내서 연구하려면 우리가 지금까지 이론적으로만 생각해 왔던 것보다도 어마어마하게 큰 원자 충돌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공간이 모든 것을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시간은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ㅇ 우리에게는 기억 속의 경험들과는 상이한 일련의 경험들만이 있을 뿐이며, 이 상이한 차이가 바로 의식 작용을 하는 인간의 두뇌에서 시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ㅇ 끈이론: 만물의 근원을 점 모양의 입자가 아니라, 끈 상태의 것으로 보는 이론으로 양자역학의 문제점인 계산상의 무한대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

 

 

 

ㅇ 인간관계는 시간의 단서가 되어 우리 뇌에 아예 하드웨어로 내장되어 있는 듯하다...."아마도 우리 두뇌 깊숙한 곳에 원인과 결과라는 이 인과관계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인과관계가 적용되지 않는 이론을 생각해낼 수 있는 학자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ㅇ "왜 반드시 여기에 무언가가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궁극적이고, 현재로서는 전혀 답을 할 길이 없는 질문이 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그 방정식들에게 불을 불어 넣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우주는 왜 그 수고를 감수하면서 존재하는 걸까?'라고 썼다.

 

ㅇ 만일 모든 것의 토대를 구성하는 일련의 궁극적인 법칙/논리적인 명제가 있다면, 이들 법칙들은 본질적으로 우주의 존재와 더불어 자신들의 존재도 필요로 하지 않을까?....다시 말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은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ㅇ 우주는 직경이 대략 465억 광년에, 용적이 3/4*10의 71승 세제곱킬로미터로 측정되었다. (이 숫자는 우주의 나이인 137억 년에서 추론한 것과 같지 않을 수 있다. 관찰 가능한 우주의 지름이 274억 광년이 아닌 이유는 시공간이 휘어져서 빛의 제한속도가 깨지기 때문이다.)

 

ㅇ 과연 우리는 이 우주의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입자가 쿼크 또는 끈이 아니라 정보로 이루어져 있는 하나의 커다란 우주 컴퓨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ㅇ 영국의 물리학자인 앤드로 리들(Andrew Liddle)....'중요한' 질문들은 세 가지 범주로 구분될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A 범주에는 어느 누구도 그 답이 무엇인지, 또는 어떤 방식으로 해답을 구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들이 들어간다. B범주는 '답이 무엇일 것이라는 이론상의 아이디어는 있지만, 관찰에서 얻은 증거나 그러한 증거를 얻을 현실적인 희망이 없는 질문들'로 구성된다. 마지막 C범주는 '답이 무엇일 거라는 아이디어도 있고 그 아이디어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할 관찰에 의한 증거가 모색될 수 있는 것들이다."

 

ㅇ 실제로 기저를 형성하는 하나의 심오한 논리가 존재하는 것일까? 모든 것의 바탕에는 질서만 존재하고 혼돈은 없을 것이라는 우리의 가정이 오류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연세계에 수학적인 질서, 균형, 그리고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를 부여하려는 타고난 욕구가 있는 듯하다. 실제로 자연세계는 전혀 그러한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기저를 이루는 논리의 문제는 아마도 리들이 말하는 B와 C의 범주 사이에 속할 것이다.

 

ㅇ 우리는 사실 사물의 존재 이유를 묻는 궁극적인 질문에 대해 고대 그리스인들보다 그 해답에 더 근접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질문은, 리들이 말한 '그 답이 무엇인지, 또는 어떤 방식으로 해답을 구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들'인 A범주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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