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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연결 ]

 

작가인 래리 맥머트는 칠십대 초반에 이렇게  썼다. "예전에는 모험을 위해 책을 읽었지만, 지금은 안심하기 위해 읽는다. 언제나 그대로인 것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기억하고 있던 멋진 이야기는 진부한 상투어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성숙해졌다는 증거일 수 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뭔가를 상실한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읽은 책들이 주는 안정성을 통해 우리는 견고한 자아상을 구축할 수 있다. 이는 경험으로서 다시 읽기가 지닌 심오한 측면을 드러내는 중요한 지적이다. 즉, 다시 읽기는 자아의 성장과 연속성을 기록하는 급수(degree)인 것이다. 

 

19세기 고전 소설인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위대한 유산> 네 편이 있다.

20세기 고전으로는 <1984>가 들었다. 

 

(제인 오스틴의 문명세계)

 

"왜 오스틴을 좋아하지요?"

"아이러니와 위트, 위아함 때문이예요!"

 

"왜 오스틴인가요?"

"문명을 대변하잖아요."

 

오스틴의 작품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사회 규범이 별 무리 없이 지켜지는 세상에 대한 묘사가 나무랄 데 없는 플롯과 문체를 바탕으로 펼쳐지고 있음을 재차 발견하게 된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가 발견되지 않으면 몇 세대에 걸쳐, 여러 시대를 아우르며 읽혔을 리 없기 때문이다.

 

오스틴은 결혼은 낭만보다 사회적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로맨스의 궁극적 목적은 교육이다. 

 

(1950년대의 책)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 중요성과, 당시 및 이후 내게 영향을 미친 점에서 <행운아 짐>과 닮았다.

 

(직업을 위한 다시 읽기)

수년 간 근대극을 매년 가르치면서 나는 조지 버나드 쇼와 체홉을 반복해서 읽었다. 몇 년 뒤 쇼는 지겨워졌으나 체홉은 점점 더 좋아졌다. 체홉은 위대한 극작가이며 쇼는 몇 수 아래라는 게 나의 결론이다. 

 

[ 자평 ] '다시 읽기'를 스스로 터득했다면, Pass...

 

약 10년 전부터 나도 '다시 읽기'의 가치를 깨달아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공감이 간다. 

내가 가장 많이 반복해서 읽은 책은 칼리 지브란의 <예언자>이다.

짧아서 빨리 읽기가 쉽고, 늘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로 읽힌다. 

 

10대 때 누님이 사놓은 1991년 출판 버전 부터 20대, 30대, 40대, 50대까지 10년에 꼭 한 번씩은 읽게 된다. 

다만 40대 부터 지브란의 <예언자>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패러디임을 알고 <짜라투스타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돌아 서기는 했다. 

(강은교 시인 번역본)

 

(류시화 시인 번역본)
(공경희 번역본)

다만 많은 분들이 가장 한글답고 깊이 있는 번역본으로 언급하는 <함석헌> 선생의 번역본은 중고 서적도 귀하여 구하기가 어려워 읽어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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